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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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방식의 글쓰기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리뷰 방식의 글쓰기가 유행이다. 프로 작가건, 아마추어건 자신이 읽은 책이나, 본 영화에 대한 감상과 생각들을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글쓰기의 수준을 인정 받는 작가들이 쓴 책이니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글쓰기 방식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남이 떠 먹여 주는, 또는 남이 해 놓은 음식이 편하기만 하고 맛있다고만 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찾아 직접해 먹는 음식이 더 유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비록 정제되지 못하고, 거칠고 뭔가 맛이 없을 듯하지만 말이다. 그런 것처럼 이런 리뷰 방식의 글은 일종의 비타민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먹으면 건강에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우리의 영양과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비타민을 먹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먹는 것이 필요없다면 우린 비타민만 먹었을 것이다. 

 

분명 이런 글의 유익이 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 또는 뭔가 정리가 안 되는 것들을 잘 정리해 주고, 내가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게도 하며,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을 다소 완화해 주는 뭐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게다가 내가 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 다이제스트로 섭렵하고, 마치 본 것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것(뭐 그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일 수도 있겠지만) 등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단점은 뭘까? 그렇게 다이제스트로만 섭렵을 하니 단타적 지식은 늘어놓을 수는 있어도 진짜 내 생각을 펼쳐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글을 쓰는 작가는 일정 수준의 글쓰기 능력을 갖췄으니 마냥 부러워만 할 수도 있겠다. "너무 글을 잘 써. 언제 나는 이렇게 쓰지...?"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러워만 한다고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 꽤나 쓰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지 않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유익한 독서가 됐지만, 내내 드는 생각은 작가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특별히 리뷰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테마를 '사랑'으로 정했다. 사랑을 주제로 하지 않는 소설이나 영화가 몇이나 될까? 새삼 놀라운 건(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것도 없지만), 요즘엔 그 어느 때 보다도 기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느 평범한 사람이라면, 책으로 봤다면 영화로 보지 않던가(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영화로 봤다면 책으로 읽지 않던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같은 작품에 대해 영화로도 보고, 소설로도 읽는 꼼꼼함을 보였다. 

 

우린 흔히 영화로 본 작품을 문학 작품으로는 보지 않는 우를 범한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총 10권짜리 장대한 서사시인데 이것을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읽고 독후감을 내라는 것을 어느 학생이 언제 다 읽나 싶어 영화로 보고 써 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뭐 그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영화는 2시간 안팎이지만 책은 언제 완독할지 모르는 유장한 작업이다. 할 일 많고, 볼 것 많은 세상에서 언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랴? 오히려 그런 숙제를 내 준 그 교수가 눈총을 받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서를 영화 보는 것에 어찌 비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 작품의 내용 그 속에 감추어진 작가의 문체를 알려고 해야할 것이다. 문학은 작가의 문체로 말해질 수 있고,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그게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요즘엔 영화와 문학작품이 공생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 문학 텍스트가 보고 싶어지고, 책을 보면 영화를 보고 싶은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맞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영혼은 아름답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주제로한 영화나 문학작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자 정말 다룬 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독자는 정말 내가 본 작품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독자들은 조족지혈로도 말할 수 없다면 뭐라 말해야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 나는 그저 책을 읽어대기에 바쁜데, 언제 저자는 자신이 본 작품을 정리해 이런 책을 낼 생각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확실히 나는 비효율적인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독서가 될 수 있으까는 확실히 나의 고민됐다.

 

사랑이나, 연애, 이별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우린 왜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물론 사랑 한 번 잘 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서 패가망신에 영혼까지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다음에 사랑이 오면 또 그것에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DNA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랑을 겁내 시작도 못하는 신인류가 생겨났다. 그들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사이버 공간안에서.

사랑으로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 받는 것이 맞느냐고 저자는 어느 장에선가 묻고 있던데, 나는 사랑을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묻고 싶다.

젊을 땐 사랑에 대해 꿈꾸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으면 사랑은 허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건 사랑할 기회가 젊었을 때 보다 없으니 그렇게도 말하겠지만,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는 사랑에 이젠 수군거리지 말고 진정으로 박수쳐 줘야하지 않을까? 픽션이던, 논픽션이든 사랑하는 영혼은 다 아름답다. 

이 책은 사랑의 방식이나 방법에 관해 말해주는 책은 아니다. 읽다보면 세상에 사랑은 좋아하는 것 하나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정신의 작용이며, 마음과 인격의 확장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또한 사랑의 방정식이 정말로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문학에 여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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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1-2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길은 사람마다 다를 테니, 이런 이야기는 들려줄 수 없으리라 느껴요.
즐거운 삶 즐겁게 노래하면서 고운 사랑 누리셔요~

stella.K 2013-11-22 14:0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요즘의 사랑은 얼마나 진지한가를 생각하게 되요.
시간에 쫓겨 대충 쓴 건데 내용에 관해선 거의 못 썼네요.
나름 괜찮은 책인데...
함께살기님도 예쁜 사랑하시길요.^^
 

1.

한때 미치도록 책을 모았던 적이 있다. 내가 좋아서도 사고, 서재 활동을 하니 여기 저기서 책을 선물 받기도 하고, 물론 또 받은만큼 간간히 개인으로 또는 이벤트로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급적이면 책을 안 모르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은 책이 방 한 가득이니 더 늘어 놓을 때도 없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이판에 사는 친구에게 1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쯤 보내고 있다. 한 번 보내면 적게는 40여권에서 많게는 60권 가까이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줄을 치지 않으면 책 읽는 맛이 안나 줄을 치고, 이건 간직할 책이니까 마음껏 쳐야지 하는 책도 어느 새 사이판 행 책 박스에 들어가 있다. 한때는 나도 밑줄그은 책을 남 주는 것에 대한 묘한 강박이 있었다. 누군가 그 책을 읽으면 괜히 관음증을 자극할 것은 아닌지. 또는 새 책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뭐 그런 것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나도 가끔 누군가 밑줄그은 책을 받곤 하는데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물론 처음엔 이 책 주인은 왜 하필 여기다 줄을 쳤을까? 살짝 궁금해지긴 하지만 만날 일도 없고, 설혹 만난다 해도 왜 그 부분에 밑줄을 쳤냐고 물어 보지도 못한다. 그러니 관음증의 자극은 잠깐 있다마는 정도다. 새 책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잠시다. 요즘 책값이 좀 비싼가? 현금 들여 사지 않을 거라면 그렇게 받는 것도 어찌보면 횡재다. 더구나 새 책이 아니니 밑줄을 맘놓고 칠 수 있어 나쁘지 않다.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물건을 웬만해서 버리는 법이 없으셨다. 그에 비해 나의 엄마는 필요없는 것은 뭐든 버리는 걸 좋아했다. 그 점은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엄마도 아버지와 같은 성격이었다면 우리집은 온갖 잠동사니로 넘쳐났을 것이다.

예전에 책을 모으기만했을 땐 내가 아버지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쌓아두는 것이 싫어 뭐든지 가급적 안 모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예전엔 그렇게 사이판에 책을 보내놓으면 약간은 공간이 생겨 마음도 후련해지고, 저 빈 공간을 뭘로 채울까 여유로운 마음도 생겼는데, 어떻게 된 게 요즘엔 그렇게 책을 보내도 별로 비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을 추리는 일도 크게 마음 먹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 자주 보낼 수도 없다.    

예전에 나는, 책을 사면 언젠가 읽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내보니 그렇지가 않다. 그때 당시엔 왜 그리도 그 책이 탐이 나던지? 무조건 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읽을지도 모르면서 지르기부터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른 책 중 물론 기필코 읽은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은 언젠가는 읽지 않게 된다.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인지, 언제 읽겠다는 기한이 보장되지 않는 책은 시간 지나면 다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인터넷 서점 검색만해도 따끈따끈한 신간이 그때까지 보지도 못한 표지로 독자를 유혹하고 있는데, 눈이 보배라고 그때 당시엔 좋다고 산 책이 지금 보면 구닥다리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뭐 또 그게 아니어도 책이 진화하는 것처럼, 그 책을 낸 저자들도 진화하기 마련이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저자가 무슨 책을 내놨다하면 꼭 사게 만드는 책이 있다. 그러나 그 좋다는 책도 얼른 읽어주지 않으면 공염불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내가 꽤 겉멋이나 들고, 속은 게으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것에 대해 굳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책도 약간의 지적 허영이 있어야 모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출판 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책도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을테니. 물론 또 거기서도 층위가 나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 너는 이런 책도 읽는구나 하는데서 오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나눠갖지 않았을까? 

책 역시 취향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기도 한다. 예전엔 어려운 철학책을 척척 읽는 사람이 있으면 무작정 우러러보고 부러워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을 보면 웬지 범접하기가 쉽지 않을거란 편견부터 갖게도 한다.    

 

어쩌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음, 그래. 허영과 게으름을 얘기했었다. 난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읽는데 게으른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 언젠가 읽을 책을 쌓아만 두고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누가 들으면 핑계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좀 책을 읽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건 책은 좋아하는데, 빨리 읽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딱히 재본 건 아니지만, 한 번 책을 펼치면 얼마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책마다 다르겠지만, 좀 재밌고 사로잡는 뭔가가 있다고 하는 책은 대략 1시간 반 내외인 것 같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좀 지치고 눈의 피로도 오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어도 책 정보가 예전에 비해 엄청 빨라졌고, 많아졌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엔 꼭 발품 팔아 서점을 나가 보던가, 신문을 보지 않으면 무슨 책이 새롭게 나왔는지, 어떤 책이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 일은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각 매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고, 각종 이벤트를 통해 현금을 들이지 않고도 책을 구입해 보는 방법도 많아졌으니 이 게으름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난 그런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한 달이면 책을 소화하는(그것이 완독을 했건 이러저러한 이유로 완독을 하지 못하건간에, 소화불량이라고 말하는 것도 소화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권 수가 예전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매체에서 쏟아내는 양에 비하면 여전히 나는 개미걸음인 것이다.       

 

2.

언제가 읽을 책을 그 언젠가 되어도 읽지 않기에 요즘에 나는 사이판 친구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 외에도 중고 서점에 내다 팔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좀 아깝긴 하지만, 더 쌓아두는 것도 뭐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언제부턴가 뭔가를 쌓아두는 것을 짐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우선은 내가 왜 이런 책을 읽는다고 했지? 하는

책부터 팔기로 했다. 지금까지 두 번 실행을 했는데, 비교적 집 가까운 곳에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어 그곳에 갔다 팔았다. 팔아야 할 책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어느 날 박스 하나를 잡아 한꺼번에 파는 것이 나을 것도 같은데 당분간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운동삼아 직접 나가 팔아 보기로 한다. 

내가 들린 중고서점은 내가 알기론 같은 이름의 중고서점 중 가장 초창기에 문을 연 곳인 줄 알고 있는데 이제야 들려 볼 생각을 한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게으른가 보다. 꼭 팔 목적이 아니어도 오다가다 한번씩 들려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 이 또한 핑계는 여러 가지다. 꼭 중고서점을 들리지 않더라도 읽을 거리는 넘쳐나고, 예전엔 서점에서 한 시간 정도는 서성이며 책 구경을 해도 끄덕없었지만, 지금은 30분 서 있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 물론 운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인도 있겠지만, 노화에 따른 것도 일부 인정은 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서점을 들려야한다면 이유는 한 가지일 것이다. 저렴한 가격. 하지만 이 '저렴하다'는 것도 책을 처음 팔아 본 나로선 엄청난 상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들어서는 순간 참 세련되고, 모던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름도 '중고서점'이 아닌가? 요즘에 화장실을 변소라고 부르면 눈총을 받듯, 이런 곳에서 '헌책방'이라고 하면 큰 일 날 것도 같다. 정말 점잖게 '중고서점'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헌책방'은 확실히 아날로그적 용어인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서점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 같긴한데, 먼지 켜켜이 쌓인 책더미속에서 손님이 찾는 책을 찾아주는 주인의 목장갑 낀 손길. 조금은 바래고, 훝어보면 책의 원주인이 거 놓았을 법한 밑줄들 또는 메모의 흔적. 이런 것이 '헌책'의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어제 책 네 권의 책을 들고 두 번째로 간 중고서점에선 시쳇말로 쪽팔리는 실수를 연출하고 말았다. 네 권 중 한 권이 증정본이었던 것이다. 책을 파는 것인만큼 흠없고 깨끗한 책으로 선별해서 가져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곳 직원의 예리한 눈에 딱걸리고 말았다. "증정본은 안 되시거든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경제학자가 쓴 베스트셀러 책이었다. 이 책이 언제 어떻게 내 손에 들어 왔는지 기억에 없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여도 경제학에 관해선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이런 책이야 말로 그 언제가 되어도 읽지 않을 책이니 어떤 식으로든 진작에 해결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증정본'을 우격다짐으로 팔려고 가져왔겠는가? 그건 정말 실수였다. 좀 더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나의 실수. 하긴 내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하지만 묻고 싶었다. 아날로그가 종말을 고하고, 디지털 시대에 헌책은 가능한가를. 내가 정말로 먼지 켜켜이 쌓인 헌책방에 그 증정본을 가져갔더라면 과연 그 주인은 받아줬을까? 모르긴 해도 받아주지 않았을까? 아주 싼 헐값에 받아줬을지 모를 일이다(물론 그건 그 중고서점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르지. 아니면 말고). 그러나 난 설혹 그렇다해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몇 푼을 받겠다고 그 책을 팔겠는가? 그냥 가지고 있다가 또 어느 때가 되면 사이판의 내 친구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연 아날로그 헌책방과 디지털 시대의 중고서점의 차이는 뭘까를. 

마침 그 서점엔 고맙게도 고객을 위해 앉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입구 가까이 몇몇의 직원들의 하나 같은 인사 소리를 듣는다. "ㅇㅇㅇ번 고객님,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알라딘 회원이십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등등의 소리를. 친절해서 좋긴 하지만 뭔가 기계적이고, 저런 소리도 하루종일 해야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피곤할까를 생각해 본다.

아날로그 시대의 서점은 그렇지 않았다.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계산해서 나갈 때까지 주인과 손님 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무뚝뚝하게 돈만 계산하고 나가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또 오면 그때야 비로소 서로의 경계를 풀기도 한다. 내가 학창시절 어느 날 단골 서점의 주인 아저씨는 한쪽에서 낮술을 하는 것이 멋쩍었는지 책을 사러 온 나에게 "어이, 한 잔 하지."라며 농담처럼 권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버지로부터 주도를 배우고 있는터라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양을 했다. 지금 같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의 인간다움이 느껴지기도 하지 않는가?    

 

3.

앞에서도 저렴한 가격의 상대성을 말했는데, 그렇게 깨끗한 놈으로 팔떨리에 책을 들고 와도 세 권을 팔아도 만원을 채 받을 수가 없다. 요즘 책 한 권에 만원이 넘지 않는 책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인터넷에서 사도 세 권의 책 값은 2만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것을 만원도 못 받고 팔아버렸으니 책들의 아우성을 듣는 것만 같다. 관심을 못 받아도 좋으니 그저 주인님 곁에만 있게만 해 달라고. 하지만 원주인으로부터 관심을 못 받느니 차라리 싼값이라도 새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렇게 유래없이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빛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중고책을 팔 때는 헐값이란 느낌이지만, 살 때는 또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특히 안 사고는 못 베기는 책을 발견했을 때는 말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그곳을 들렸을 때 정말 팔기만 하고 사진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서점이라는 곳을 들어왔으니 무슨 책이 있나 구경은 해야할 것 같았다. 내가 안 읽는 책은 남도 안 읽는 걸까? 같은 책이 몇 권씩 진열된 것도 꽤 있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나의 발을 잡아 끄는 책이 있었다. 바로 강원용 목사가 쓴 <역사의 언덕에서>다. 

 

오래 전, 그분이 <빈들에서>란 책을 쓴 줄은 알았는데 이 책은 그 책을 다시 손 본 거라고 한다.

가끔 그런 책이 있다. 도저히 못 지나가겠는 책. 안 사려고 다른 곳을 코너를 빙빙 돌다 결국 어느 틈엔가 그곳을 서성이게 만들고 결국은 사게 만드는 책. 그런 책은 독자가 그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독자를 선택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읽고 있는 책, 앞으로 읽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 내 책상위에 그득한데 이 책을 사면 언제 또 읽게 될지 모른다. 여타의 많은 책처럼 결국 가지고 있다가 사이판 행 비행기를 타던가, 아니면 다시 중고서점에 파양되지 않을까? 처음에 나는 이 책이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총 다섯 권이고, 그나마 이 책은 알라딘에서는 품절도서로 나온다. 어쨌든 나는 아주 조금씩 읽고 있다.

 

강원용 목사는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1대 신앙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분의 회고록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남다르긴 하다. 회고록이나 평전 또는 자서전을 읽는 것이야 말로 공인된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일은 아닐까?

나도 언젠가 나만의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써 볼 생각이 있는데,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지만, 이런 분의 회고록을 읽으면 나는 얼마나 하찮고 무모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특히 글쓰기가 얼마간은 치유의 효과도 있겠지만, 잠자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도 있으니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특히, 풍수나 명리를 따라 살았던 목사님의 아버지가 장차 이 나라에 전쟁이 있을 것을 예감하고(한국전쟁) 이남으로 가려고 하는 것을 자신의 신앙을 내세워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북에 남도록 설득하고 자신만 남한으로 내려왔던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가슴 저려온다. 오죽 마음이 아팠을까. 오죽 자신을 원망했을까? 하지만 세상엔 그런 일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사람은 한치 않을 모르고 사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을 살 때, 이런 책은 누가 팔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라면 팔지 않고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더구나 세월 탓인지 약간 바라기는 했지만 밑줄도 없고 비교적 상태가 좋았다. 물론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은 횡재한 느낌이었지만. 중고서점은 바로 이런 맛에 가는 것일게다. 그나저나 강원용 목사의 저 책의 나머지를 구입해야 할까? 고민된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문제니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4.

아, 잊은 게 있는데 첫 번째로 들렀을 때 나는 회원등급 플래티넘을 회복한 것을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중고서점 거래 한 번했다고 플래티넘 회원도 되고 꽤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 또 중고서점에 들렀다. 어제는 그냥 팔기만 하고 책은 사지는 않았다. 물론 두어 권 정도가 나의 발목을 잡았지만 나는 애써 그것들을 피해 나왔고, 그래 잘 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첫날 거기 직원이 물어 봤었다. 현금으로 받겠느냐, 아니면 마일리지로 받겠느냐고. 나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현금으로 받겠다고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현금을 마일리지로 너놓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현금으로 받았던 것이 잘했다 싶다.

어제는 거길 나오면서 몇년 전 아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갚지 않은 일이 생각이났다. 물론 그쪽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한동안 잊고지내기도 했는데, 아무래신경이 쓰인다. 책이라도 팔아 신세 갚는 일에 보태야할 것 같다. 옛날엔 책 팔아 학비에 보태쓰곤 했는데, 책을 판다고 얼마나 보탬이 되겠느냐만 그래도 내가 신세진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생각이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신세를 갚게되면 붕어빵 사 먹지 뭐.

 

그렇게 털어내도 별로 비워냈다는 느낌은 안 든다. 하긴 이제 시작인데 비워내면 얼마나 비워냈겠는가? 별로 표도 나질 않는다. 평생 100권의 책만 지니고 살았다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나, 최근 안 일이지만 김영하 작가도 생각하는 것 보다 적은 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도 최종 목표는 정말 가지고 있어야할 책 외엔 갖지 않는 것이다. 갖고 있어야겠다고 하던 책도 세월이 흐르면 별로란 생각이 드는 책도 있다. 그렇게 속아내서 내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책은 몇 권이고, 어떤 책이 될까? 집에 돌아오자 난 또 생각해 본다. 다음엔 어떤 책을 내다 팔까? 이제 나에게 책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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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1-18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하면
그 책이 누구 손으로 돌아가든
아름답게 읽힐 수 있으리라 느껴요.

언제나 즐거운 눈길로
책과 사람과 삶 마주하셔요~

stella.K 2013-11-18 15:49   좋아요 0 | URL
책도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착이 가니까 그렇겠죠.
그래서 제대로 읽어 주지도 못하고 입양 기관에
맞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미안하죠.
그래도 나 보다 꼭 읽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가는 게 맞다고 봐요.
제가 강용원 목사님의 책을 입양해 온 것처럼.^^

페크pek0501 2013-11-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책을 팔지 못할 것 같아요. 아까워서요.
읽지 않은 책들이 많고 어쩌면 끝까지 읽지 못할 책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읽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하나도 없애지 않을 거예요.
이 책도 좋고 저 책도 좋고... 하다 보니까 한꺼번에 병행해서 서너 권을 읽게 되어요.
아직도 읽고 싶으나 읽지 못한 책들이 제 손을 기다리고 있어요.
시간이 많아지면 하나씩 읽어 나가서 리뷰 한 편씩 써서 올리는 걸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지금보다 시간이 많아지는 날이 오겠지요?

그 대신 책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러워 앞으론 아주 신중하게 골라서 책을 구입할 생각입니다. ^^



stella.K 2013-11-21 12:43   좋아요 0 | URL
언니는 욕심쟁이어요!ㅎㅎ
저도 언니 같은 생각이었는데 언젠가는 하다가 안 읽고 방치한 책이
10년 가까이 된 책도 읽더라구요.
이런 책은 아끼고 사랑해 줄 새 주인을 만나는 것이 낫겠다 싶더군요.
요즘엔 글을 가볍게 쓰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책 고르는데 신중해져요.
저는 고전을 많이 못 읽었는데 그런 책은 정말 한번 사면
쉽게 못 처분할테니 그렇게 되면 저도 예전처럼 책 함부로 못 파는
독자가 될 거예요.ㅋ

비로그인 2014-05-21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이 많네요. 책에 관한 이야기, 의료 이야기 등등. 책. 약간의 지적 허영이 있어야 모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글에 공감합니다...

stella.K 2014-05-21 12:29   좋아요 0 | URL
와우, 저의 오래된 글에 댓글을 달아 주시다니...
제가 그런 말을 썼네요. ㅎㅎ
다시 생각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푸른기침 2014-06-2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 뜬금없지만 제 꿈은 모든 책을 버리고 딱 한권만 남기는 겁니다.
저도 모르지만 그 책이 무엇이 될지는 참 궁금합니다.

stella.K 2014-06-27 12:14   좋아요 0 | URL
와우, 이런 오래된 글을 보시다닛!
저는 뭐 성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아서라기 보다(성경은 항상 어렵더군요)
버리면 왠지 불경스러워지는 것 같아서...ㅠ
 
임기응변의 힘 - 어지러운 세상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를 권하다
신동준 지음 / 아템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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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움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옛날부터 그랬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무슨 쌈닭쯤 되고싶은 줄 알 것이다. 하지만 살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싸움이 싫어서 가만 있으면 바본 줄 알고 더 시비를 걸고, 신경을 건드린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있어보면 참고 있으면 나만 죽을 X싸고, 변비에 걸리지 누가 알아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누가 나에게 시비를 걸어 올까 경계하고, 싸우는 것도 쉽지는 않다. 싸우면 잘 싸워야 하는데 나중에 보면 안 싸우느니만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싸울 때 너 죽고, 나 죽자고 그야말로 피터지게 싸운다. 그걸 결사항전이라고 한다지. 하지만 그 뒤에 남는 건 피만 낭자한 처절한 승리일뿐, 그런 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엊그제도 뉴스를 보니, 여자 하나를 두고 두 남자가 피터지게 싸우다 한쪽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놀라기도 했지만, 황당하기도 했다. 그 놈의 사랑이 뭐길래. 하지만 혀를 끌끌 차다 말 것도 아니다. 죽인 쪽은 죄인이니 그 가족들 조차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고, 여자는 여자대로 트라우마가 클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대로 내가 이렇게 어이없이 죽다니, 어이가 없을 것이다. 또 어쩌면 죽는 순간 깨달았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 보다 내 생명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사랑하다, 사랑해서, 사랑 때문에 (장렬히)죽는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랑 하나만 놓고 보자면 그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낭만은 낭만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런 피 빛 현실에선 그런 낭만이 통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죽었는데 낭만 따질 때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두 남자는 한 여자를 두고 어떻게 싸웠어야 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싸움을 참 잘 못하는 민족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싸울 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건 알고 보면 그냥 허세일뿐 진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니다. 싫으니까 쌍욕해 가면서 싸우다 등을 돌리면 그만이다. 또 그게 아니면 내가 당한만큼 복수해 준다고 서로 피를 보는 것이 전부다.

 

싸움도 해 본 사람이 잘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싸움을 아주 즐기는 건 아니지만 소위 말빨에서는 지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왜 싸우는 걸까를 생각하면 이유는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근데 역시 미련은 남는다. 꼭 뒤돌아서서 그때 이 말도 해 줄 걸하며 아쉬워했던 적이 열 번이면 열 번 다다.

 

하지만 싸움은 꼭 이기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적재적시에 표현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다. 거기엔 반드시 작전이 필요하다. 화가 난다고 자기 말만 퍼붓는다고 싸움의 다가 아니다. 나도 화가 나면 상대도 화를 내는 법이다. 그게 설령 잘못이 상대에게 있어도 내가 화로 상대의 화를 돋구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논리나 힘만 가지고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싸우기 전에 내 욕망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자기 욕망을 다룰 줄 안다는 게 또 그리 쉽지가 않다. 불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일게다. 

그런데, 책을 읽는 중에 이런 말을 발견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결코 최상의 계책이 될 수 없다. 싸우지 않고도 굴복시키는 부전굴인이야말로 최상의 계책에 해당한다. 전쟁에서 최상의 계책은 지략으로 굴복시키는 '벌모'다. 차선책은 외교수단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벌교'다. 그 다음 차선책은 무력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벌병'이다. 최하 계책은 적의 성을 직접 공격하는 '공성'이다.(76p)                    

읽다보면 우리가 싸울 때 주로 어떤 방법을 쓰는지 알 것 같다. 책대로라면, 우리가 주로 잘 쓰는 방법은 역시 '공성'이었을 것이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이이제이도 있건만, 왜 우리는 꼭 직접 싸워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싸움은 그렇게 피터지게 싸우는 것만이 싸움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일상생활 전반에 싸워야할 순간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꼭 나와 잘 지낼 수 없는 적하고만도 아니다. 잘 지낼 수 있는 친한 사이에도 있을 수 있다. 피를 보는 것만이 싸움이 아니라 경쟁하는 것,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과정, 하다못해 자신과의 싸움도 싸움은 싸움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최근 언제 싸웠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지난 여름이었던 것 같다. 별로 이성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말을 3시간 내내 떠들고, 결국 내가 먼저 손을 털고 나왔다. 그렇게 이성과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과 뭐하러 3시간이나 싸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상대에겐 그가 갖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나에겐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서로간의 욕망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

처음엔 뭐 이런 사람이 있냐고 씩씩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싸움에 말려들었다는 소리다. 다신 만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버리기도 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좀 잘못했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사실 나만 생각하면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인데, 조직과 얼켜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 사람이나 나나 조직에 적지않은 피해를 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직내에 있는 사람은 뭐란 말인가? 물론 겉으론 그리 손해 볼 것도 없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의기투합만 잘했더라면 윈윈했을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와 나는 서로를 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손을 들고만 것이다. 

보다 못한 내가 최근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성격상 별로 즐겨하지 않는 제스추어이긴 하지만, 조직내에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웠고, 그 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손해를 보고도 저렇게 뻣뻣한가 먼저 꺽고 나오면 상대로 그러지 않을까, 말하자면 협상을 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요령이 필요해 겸손히 설득하고, 상대를 코너로 몰아 얼마의 시한을 주고 선택을 하도록 했다. 물론 이것도 상대의 전세가 불리하게 되었을 때 그 방법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난 저자가 말한 저 계책 중 어떤 계책을 쓴 것일까? '벌교'쯤 되려나?

 

좀 다른 이야기가 될지 모르나, 건물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도 부족해 살인까지 일어나는 판국이니 세상이 무섭긴 하다. 그런데 꼭 무서운 일만 일어나는 것마는 아니다. 어린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친히 편지를 써서 피해를 준 또는 피해를 받은 이웃에게 편지를 써서 줬더니 갈등이 많이 해소됐다는 말도 들었다. 그거야말로 진정한 싸움의 승리가 아닐까? 그건 또 어떤 계책을 쓴 것일까?

 

책은 좀 읽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싸움이나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좀 더 현명하게 싸울 필요가 있다. 그것에 적지않은 통찰과 조언을 담고 있어 곁에 두고 두고 음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훗날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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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1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글은 웬일로 댓글쓰기 지면을 열어 놓으셨나요?
앞의 글 두 개는 댓글을 쓸 수 없게 해 놓으셔서 그냥 추천만 누르고 갔답니다.

저는 싸움을 잘하고 싶다기보다 싸울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말발(말빨)은 센 편인데 어디까지 가야 하나, 어디까지 내 바닥을 보여 줘야 하나, 하는 것으로 고민되는 게 싫더라고요. 저는 둘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아요. 아예 마찰이나 충돌을 피하게 되든지, 아니면 작은 일이라도 목숨 걸고 싸우든지... 그러니까 싸움을 안 하든지 하게 되면 끝까지 가는 거죠. 그 적당한 선을 가늠해서 멈추는 게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싸움을 피하게 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합리화하자면, 쪼잔한 승리자가 되기보다 넉넉한 패배자 되기로 하자, 하고 제 자신과 타협하는 것이죠.

stella.K 2013-11-10 14:40   좋아요 0 | URL
ㅎㅎ 미안해요, 언니! 제가 카테고리를 열어 놓은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어요. 나머지 것도 열어놓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안 열어 놓은 거예요.ㅠ

싸움에 관해선 저도 언니와 같은 생각이어요.
그런데 싸울 일이 생기면 어떻게 싸울까를 생각해야하 잖아요.
잘 싸우고 싶어요. 그런데 더 필요한 건 이 사회가 경쟁체제는 좀 지양하고,
어떻게 연합할 것인가? 어떻게 윈윈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라고 봐요.^^
 

 

 오전에 외출 준비를 하면서 짬짬히 K1 TV에서 하는 <TV 책을 보다>에 강신주 씨가 그 이름도 유명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TV, 책을 보다>는 K TV가 지난 주 가을 개편을 하면서 새롭게 선보인 프론데, 이제 2주차라 뭐라고 평할 수는 없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프로 같다(하긴 나쁠 리가 뭐 있나). 단지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40분 정도 밖엔 하지 않는데 좀 짧지 않나 싶다.

이 프로는, 어떤 명사가 어떤 책을 자기 생의 책으로 소개하고 있나가 관심 포인트 같은데, 난 그저 강신주란 그 이름이 좋아 봤을 뿐인데 역시 그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주와 달리 이 짧은 프로를 온전히 앉아 볼 수 없는 없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음소거를 하고 오늘 같이 만나기로 한 지인과 전화 통화도 해야했으니까. 그렇게 짬짬히 보긴 했어도 강신주는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는 이 책을 액면 그대로 시간으로만 보지 말고 '사랑'을 대입시켜 보라고 한다. 그러면 이 책을 훨씬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을 뒤돌아 보게 되는데, 이제까지의 책들이 사랑에 대해 말은 하지만 이렇게 사랑을 뒤돌아 보는 글을 쓰는데는 실패했다나? 

특히 이 책은 어려운 책으로 유명한데,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소설은 몇 번의 위기를 거쳤다고 했다. 영화만 나오면 소설은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소설 보다 영화를 많이 보긴 했다. 하지만 영화는 표피적이지만 소설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그처럼 프루스트의 이 책은 영화와 다른 소설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오만함(이건 내 표현이긴 하다)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책이 어렵긴 하지만, 어느만큼 인내하고 읽다보면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리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강신주는 단언한다. 대신 책을 필사를 해 보란다. 다하진 말고(할 수도 없겠지만) 다섯 장 정도 필사를 해 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나도 당장 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전이 두려워 아예 사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강신주는 이 책을 알게되면 다른 소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어쨌거나 역시 책 읽는 것은 즐겁지마는 않다. 어느만큼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   

같이 나온 어느 패널은 프루스트를 일컬어 천재성을 지닌 오타쿠 같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9살 때 얻은 천식으로 말을 하면 기침으로 힘들어 했을 테니 그럴 것이라나? 과연 그럴 듯한 해석이다.

 

이런 책이 나온 줄도 몰랐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유럽의 문화사를 관통하고 있다. 알았으면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2013년을 두 달 남여놓고 과연 이 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보관함에 담아 놓았다. 언제고 읽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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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모르는 사이 출판사가 민음사로 바뀌었군요. 아니면 다른 분의 번역인지도..
예전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11권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장정이 더 제 스타일이라 민음사판 장정이 조금 거시기해 보입니다. 프랑스 문학 엔솔러지 2권의 표지가 프루스트였건걸로 기억합니다. 프랑스에선 무진장 존경하는 작가구요.
훌러덩 훌러덩 시간 여행중입니다. 어디선가 마들렌 내음이...

그나저나 열화당에서 발간하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는 완간이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stella.K 2014-06-28 16:33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시간은 자신이 없어 아직 못 읽고 있습니다.
근데 저 책표지도 맘에 들긴 하더라구요.
마들렌을 지난 봄에 먹어 봤어요. 맛있더군요.
그건 홍차랑 먹어야 한다는데 홍차는 못 마셨구요.ㅋㅋ
 
인생의 품격 - 북경대 인문 수업에서 배우는 인생 수양법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2
장샤오헝.한쿤 지음, 김락준 옮김 / 글담출판 / 2013년 10월
절판


사람들의 정신을 바꾸려면 먼저 문예를 널리 알려야 한다. 문예는 사상을 향상시키고, 깊이 잠들고 마비된 정신 상태를 깨우고, 나라를 사랑하는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루신--23쪽

옛말에 "망설이는 호랑이는 침을 쏘는 벌보다 못하고, 움직이지 않는 준마는 천천히 걷는 노마보다 못하고, 요순의 지혜가 있어도 말하지 않으면 말 못하는 자의 손짓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송나라의 문사인 소식은 말했다.
"예로부터 큰일을 한 사람은 세인을 뛰어넘는 재간과 강인한 의지가 있었다."
의지가 강한지 약한지는 선택의 순간 대중을 맹목적으로 따르는가, 내면의 본성을 따르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바깥 세상에 동요하지 말고 어려움에 움츠려들지 말라. 꿋꿋하게 결연하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가자.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의지가 없으면 부끄러운 것이다.-26쪽

만약 자신의 창조성과 개성을 발견하면 자신이 남다른 점을 가진 것에 기뻐하라.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각자 돋특한 역할을 맡는다. 자신을 잘책하는 것은 이 새상에서 자신을 숨기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사랑하면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 인심이 예전 같지 않지만 예전 인심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추억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늘 아름다운 사물을 과거의 시간 속에 놓는다. 하지만 그 속에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은 빼놓는다.
부디 자신을 사랑하라. 그럼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많이 얻고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31쪽

고통은 살면서 겪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고통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왜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용해서 인생을 강인하게 단련시키지 않고 쉽게 좌절하는가? "공이 높은 것은 뜻이 컸기 때문이고, 업적이 큰 것은 부지런했기 때문이다."라는 예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 얻고, 자신을 믿는 만큼 높이 올라간다.-40쪽

"하루에 세 가지 물음으로 나를 살펴본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귈 때 믿음을 주지 않았는가? 전수 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증자-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우환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반성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찾으면 문제를 종합적으로 찾을 수 있다.-47쪽

노자는 말했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
사람은 스스로 밝아야 다른 사람을 밝힐 수 있다. 스스로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위험하지만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반드시 남는 게 있다. 승리했을 때 스스로 완벽하고 결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큰 성과를 얻었을 때 성과만 믿고 거만해지는 것, 명성이 높을 때 안하무인으로 구는 것은 실패의 전조증상이자 원인이다.-64쪽

인성은 예측하기 어렵고 인심은 헤아리기 어렵다. 사람의 도리를 신중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을 신중하게 봐야한다. 거울로 삼을 현명한 사람을 찾으려면 사람의 내면을 관찰하고 시간의 시험을 거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좋고 나쁜 감정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일부분만 보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는 과오를 범하기 쉽다.
사람은 자라면서 자신을 이해하는 동시에 목표를 가져야 한다. 또한 목표를 추구할 때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끊임없이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한다.-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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