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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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들면 조금은 뜨악해진다. 판형이 여느 시집처럼 되어있는데 막상 펼쳐보면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진 희곡집이다. 그런데 저자인 김경주는 자신의 글을 '시극'이라고 말한다. 시극이라. 서지 분류도 애매해 이 책은 시에도 들어가 있고 희곡에도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독자는 이걸 어떻게 봐야할까? 나는 시의 운률은 잘 모르겠고 아무리 봐도 한 편의 희곡 같다. 그런데 굳이 '시극'을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장르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요즘 돌아가는 우리나라 연극계의 흐름을 잘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 분야가 너무 안 알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저자 김경주는 벌써 십년 전부터 이 시극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경주가 말하는 '시극'이란 무엇인가?  어려울 것도 없다. poetic drama. 즉 대사가 시의 형태로 쓰인 희곡을 말하는데, 산문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각각의 글에 라임과 운율이 살아 있는 문학적 장르라고 한다.  쉽게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렇고,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에서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가 그렇다고 한다.  원래 시와 극은 하나였고, 시인은 곧 극작가였다고 말한다. T.S. 엘리엇의 <캣츠>도 시극이었다고.

 

그렇게 설명하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작년 말에 보았던 안중근의 삶을 조명한 연극 <나는 너다>란 작품도 시극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배우 윤석화가 연출을 맡았고, 탤런트 송일국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이 단순한 정보만을 가지고 보기 시작한 연극은 배우들이 구사하는 대사에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뭔가 일상어가 아닌 시에 가깝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으니까. 처음엔 대사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관객이 알아 먹겠나?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 시간 내내 대사를 듣고 있노라니 상당히 고급하면서도 응축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원래 희곡은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책 얘기는 안하고 잠시 딴 얘기를 해서 그렇긴한데,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영화, 드라마와 같은 촘촘한 스토리텔링이 각광받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시극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리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나 드라마는 그 대사가 일상어와 약간의 B급 언어로 이루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드라마의 언어 수준은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혀져 있다고 한다. 우린 어느새 그것이 정석인 양 그 보다 다른 차원의 언어에 대한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건 좀 생각해 볼 일이긴 하다. 언어가 구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을 거부하고 상업주의와 결탁한 오염된 언어가 전부인 양 하고 살아 온 것은 아닌지. 

 

김경주는 그동안 이 시극을 알리기 위해  홍대의 클럽과 카페, 버려진 공장, 들판, 부둣가, 길거리 등 장소를 초월해 시극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가히 그의 노력이 어떠한 것인지 알 것도 같다. 적어도 우리는 이 카페라는 곳을 좀 더 문화 공간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프랑스의 카페는 당대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들에 의해 발전해 온 공간이 아니던가.  또한 카페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그 나라의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날 우리의 카페는 프랜차이즈에 듣도 보도 못한 음료를 팔고, 음악이나 틀어주는 상업주의의 대표 공간일 뿐이다. 물론 요즘엔 카페를 조금 이색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곳도 없지는 않지만 아직은 미약하다.  어느 날 우연히 카페 갔다가 최소한의 무대 장치와 소수의 배우들에 의해 흘러나오는 시극의 대사를 듣는다면 그날은 그야말로 눈과 귀가 호사하는 (소위 말하는)계 탄 날은 아닐까?

 

하반신 대신 고무 튜브를 끼고 거리를 기어 다니며 구걸을 해서 먹고사는 김 씨. 눈 내리는 겨울밤, 파출소 직원은 얼어붙은 길바닥을 배회하는 김 씨를 등에 업어 파출소로 데려 오고, 파출소 직원은 김 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이 시극의 주요 내용이다.  잠시 이들의 대사를 음미해 보자. 

파출소 직원/ 또 뭘 보았지?

 

김 씨, 의자에서 내려 창가 쪽으로 기어간다.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김씨/ 몰래 떨어지는 눈물요.

파출소 직원/ 왜 그걸 자네 손등에 함부로 떨어뜨리고 지랄이야.

                  그건 집에 가져갈 수도 없잖아.

김씨/ 맞아요. 몰래 얼른 주어서 집에 가져갈 수도 없는 거죠.

파출소 직원/ 그런 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나아. 갈 길을 가야지. 앞으로.

김씨/ 그게 누구의 것이든 눈물은 따뜻해요. 손등에 떨어지면.

파출소 직원/ 눈물 나네. 왜 바다로 기어가려고 하지?

김씨/ 배가 고파서 아가미를 열어놓고 물을 마시고 싶었어요.

파출소 직원/ 내가 업어서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으면 자넨 눈사람이 됐을 거야.   지느러미가 있는 눈사람.

김씨/ 한 번이라도 저를 업은 사람은 절 내려놓고 모두 떠났어요.

                                                                            (74~75)         

 

 시가 한 번 읽어서 그 운율와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것처럼 시극 역시 반복해서 읽고 음미해 보면 대사가 주는 의미와 매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부러 찾아 읽기도 해야겠지만 그것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제목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에서 장만옥이 흘러간 사랑을 회상하며 애잔하게 읊었던 대사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등장인물의 대사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미학적 코드가 숨어있다.  뒤에 나오는 문학평론가 허희의 평론도 눈여겨 봐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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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2-18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동사서독 다시 보고 싶습니다...

stella.K 2015-02-18 19: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 영화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지난 주일 밤엔 TV 영화 전문 채널에서 <장화, 홍련>을 보았다. 이 영화 역시 몇 년 전 본 영화라 다시 볼 생각을 못하다가 TV에서 한다기에 다시 보았다. 

 

그런데 영화는 확실히 두 번(또는 그 이상)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 처음 봤을 땐 미장센이 좋았던 영화고 나도 보았다는 약간의 뿌듯함 뭐 그런 게 있었는데 다시 보니 생각 보다 별로란 생각이 든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두 번 봐야 한다고 말하면 얼마나 한심한가.

 

물론 영화 자체로는 흠이 없어 보이긴 한다. 기승전결을 해체한 영화 진행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 미장센은 여전히 감탄할 정도로 좋다. 이런 영화는 세월의 때를 안 타기도 해 2003년도 작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봐도 여전히 세련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시 본 이 영화는 내용면에선 별로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은 아니겠는가? 특별히 호러란 장르를 취하기 때문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을 하나 더 얹은 것처럼도 보인다. 오마이갓! 그런 영화였어??

 

그렇게 생각하니 김지운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어떠했더라 잠시 내 머리속 필름을 굴려 본다. 일명 '놈놈놈'으로 불리는 그 영화는 당시 개봉관에서 보기도 했는데 나름 장쾌한  스케일이 서부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확실히 자기 스타일은 확보한 감독임엔 틀림없지만 역시 보고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 뭐 꼭 영화가 남는 게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역시 IP TV에서 무료로 볼 수도 있지만 다시 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건 내가 꼭 한번 본 영화는 다시 보지 않는 그 이유만은 아닐 성 싶기도 하다.  바로 그 남는 것이 없다 이유도 일부 작용했으리라.  그렇다고 내가 정우성을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만일 저 말이 남성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허위 유포된 말이라면 여자들은 저 말을 좀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묵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좀 이런 사이비 상식을 뒤엎는 작품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면 남자의 적 또한 남자 아닌가? 한간엔 여자의 질투 보다 남자가 더 질투가 더 무섭다는말도 있던데 왜 이런 것을 다룬 호러 영화는 없는 걸까?  남자의 적은 남자라는 것을 선뜻 인정하기 싫은지 그런 건 늘 경쟁이나 폭력으로 미화될 뿐이다. 솔직히 남자들이 햄릿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런데 또 솔직히 이 영화를 여자가 아닌 남자로 대치해 보라. 각이 살지 않을 것이다. 고로 김지운 감독은 스타일리스트는 될 수는 있어도 진정한 (아직)아티스트는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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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2-1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속담은 일반성 가지고 있다기보다 특수한 경우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용상 반대되는 속담도 있고요. 바넘효과 때문에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을 뿐이죠.

남성이 유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성의 기득권 확보에 일조한 면은 있다고 봅니다.

stella.K 2015-02-17 18:4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스토리텔러들이 그걸 또 울거먹잖아요. 그러다 보면
일반적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거죠. 이것도 바넘 효과일까요?ㅎ
암튼 김지운 감독은 스타일은 좋은데 너무 자기 좋을데로 영화를 만드는구나
싶더군요. 그냥 마초 같아요.ㅋ

cyrus 2015-02-1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원래 여자들 특유의 질투심을 비유한 표현이었는데 요즘은 이 말이 남성이 질투에 눈이 멀어 열등감을 표출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식으로 왜곡된 것 같아요.



stella.K 2015-02-17 18:49   좋아요 0 | URL
내말이. 여자를 안다면 저런 말을 쉽게 못하지.
그런데 그걸 여자도 생각없이 받아드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ㅋ
 
블론드 1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 강성희.송기철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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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우연히 마릴린 먼로의 전기 다큐를 보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마릴린 먼로도 먼로지만 저자가 워낙 유명한 작가라 작가의 필체에서 나오는 그녀를 어떻게 형상화 했을지 궁금했다.

 

글쎄.. 간단한 소회를 남기자면, 캐롤 오츠가 글을 이렇게 쓰는구나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읽기 전부터도 결코 만만찮은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만큼 글은 뭔가모를 유장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렵다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딱히 빠져들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약간의 지루함은 또 감안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지루함이란 또 어디서 오는 것일까? 1권은 주로 마릴린 먼로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 그리고 그녀가 막 세상으로 나오기 직전의 상황에 집중되어 있다. 사생아에 엄마 손에서 자라지 못하고 조부모의 손에서 어느만큼 자라다 고아원에 보내진다. 거기서 양부모에게 넘어가긴 하지만 그마저도 엄마, 아빠라 부르지 못하고 이모와 삼촌이라 부르며 자란다. 16세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지만 남편이 2차 대전 참전하므로 파탄에 이른다. 그렇다고 먼로가 그걸 아주 슬프게 여겼던 건 아닌 것 같다.

 

알겠지만 마릴린 먼로의 실제 이름은 노마진 베이커다. 그 이름이 어떻게 마릴린 먼로가 되었는지 보여주고 1권은 끝을 맺고 있는데, 내가 아무래도 관심 있어하는 건 그 이후인 것 같긴하다. 이를테면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밀러와의 결혼은 어땠을까? 그녀는 그를 어떻게 느꼈을까? 그 이후 몇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나머지는 2, 3권에서 다뤘을 것이다.

 

그런데 1권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2, 3권에 도전하는 게 약간은 자신이 없어졌다. 전기나 전기소설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이나 사람들을 아는것이 더 묘미일 수 있는데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 졌다. 그래도 한 가지 경의를 표하고 싶은 건 작가의 우직함이다. 어떻게 해서 먼로의 전기 소설을 쓸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웅숭 깊게 그래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 줄만 하다. 기회있는대로 나머지 책에도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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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3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은 억지로 다 읽을 수 있는데 문제는 3권 이상이면 독서 진도가 느려지거나 아예 중도 포기해요. 읽을 책이 너무 많으니까요.. ^^;;

stella.K 2015-02-14 11:3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웬만치 재미있지 않으면 나도 3권은 벅차더라.
2권은 어떻게든 읽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알라딘내에서만 하더라도 3권까지 읽고 리뷰 쓴 사람이
거의 없어.ㅋ
 

라디오를 들으니 올 2월이 일월화수목금토일이 4번씩 고르게 들어있단다.

헉,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이게 또 823년만의 일이란다.

정말 823년만 맞나?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이 사실을 옛날 행운의 편지처럼 아는 사람한테 전달해 줘야 한단다. 그러면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고, 돈이 들어 온다는 말도 있고,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썰도 있다나...? ㅋ 그러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DJ 말이 우리 삶에서 중요하지 않는 날이 어딨고, 행운이 아닌 날이 어디 있냐고 반문한다. 맞는 말이지. 그러다 보면 정말 행운도, 사랑도, 심지어 돈도 들어오지 않을까?  

오늘도 선물처럼 신께로부터 또 하루를 선사 받았다. 그리고 반나절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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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2-1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엔가도 이랬다네요. ^^ 823년만은 절대 아니랍니다~~

stella.K 2015-02-12 14:39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님 오랜만이어요.
정말요? 그러면 그렇지...ㅋㅋ
뭐 저는 계산엔 약하지만 확률로 따져도 그렇게까지 멀까 싶긴해요.
그런데 그 dj도 그런 문자를 받는다는 거예요.
어쨌든 골고루 있다는 게 기분은 좋네요.^^

cyrus 2015-02-1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2월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 내일은 `13의 금요일`입니다..

stella.K 2015-02-12 18:24   좋아요 0 | URL
우하하하하하. 그렇구나 그걸 생각 못했네.
아이고 무셔라.ㅠ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군.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3 12:52   좋아요 0 | URL
이상한 일들이러군요. 이런 조합이 쉬운 게 아닌데 괴이합니다.
오늘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네요..

stella.K 2015-02-13 12:5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그럼 제가 곰발님의 글을 읽을 수 없지 않습니까?ㅋㅋㅋㅋㅋ
 

이 영화가 1998년도에 나왔단다. 그렇다면 나도 그 무렵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경우가 좀처럼 없으니 그동안 이 영화를 TV에서도 심심찮게 방영했을 것이다. 그때도 꿈쩍하지 않았던 내가 지난 주일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무엇보다 다림(심은하)의 주차요원 복장과 주차질서 글자가 새겨진 차가 새삼스럽다. 저때만해도 저게 있었지? 지금은 없어진지 꽤 되는 것 같은데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정원(한석규)의 사진관은 또 어떻고. 사진관 다닐 일이 없어졌으니 이게 어디가면 있더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문을 닫는 곳이 많지만 그래도 아직 하고 있는 곳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옛날 7, 80년대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도 같았다. 뭔가 계속 장면이 이어질 것도 같은데 다음 장면이 나오고, 심오한 뭔가가 나올 것도 같은데 그냥 끝나버린다. 그래서 허탈하고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건질 게 있다면 심은하의 청초한 이미지와 한석규의 숫총각 같은 서글서글함이 없었다면 뭐냐고 툴툴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삶의 나이테가 얼마 쌓이지 않아 영화를 그저 영화로만 봤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그때 생각하지 못하고 ,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삼 뇌리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왜 '8월의 크리스마스'인지가 이제야 깨닫다니. 제목이 하도 근사해서 당시엔 친구에게 왜 8월의 크리스마스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저 겉멋든(?) 감독의 제목에 대한 은유 뭐 그런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이 이렇게도 표현되어질 수도 있는 거구나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사나브로 가슴에 와 닿는다.

 

'썸'이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싸구려 B급 언어가 아니던가?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간단해지고 명료해져서 편하긴 하다. 이 영화도 말하자면 썸에 관한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썸이 썸으로 간단히 말해질 수 있는 것인가? 영화 속 다림과 정원은 손 한 번 잡지 않았고, 그 흔한 키스조차도 하지 않았다. 요즘엔 남녀가 갈 때까지 가 놓고도 썸이라고도 한다던데 그건 확신이 없는 관계지 여전히 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남녀가 만나면 서로 자연스럽게 물드는 관계. 이런 게 좋은 것 같다. 일부러 끼워 맞추는 관계. 그래서 무슨 대학 나왔고, 어느 집 자식이고, 재산 형성은 어떤지를 따져서 만만하다 싶으면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작업을 썸이라고 한다면 좀 진부해 보인다. 또한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썸은 하나의 장치일 수도 있다. 사귀는 것도 사귀지 않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있다 상대에 대해 단물 다 빨아 먹고 싫어지면 발을 빼기 쉬운 지점을 확보하려고 썸을 만들지 않을까? 어느 정도 가까운 관계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싫어지면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 버리기 좋은 지점을 만들기 위해 썸이란 지점을 만들지는 않는지. 차는 것이 차임을 당하는 것 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이 영화는 정원과 다림이 실제 연애를 한다면 다림의 판정패로 끝날 소지가 많은 영화다. 정원이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은유로서의 병이라면 암은 아니었을까?) 죽음이 예고돼 있기 때문에 함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영화가 딱히 정원과 다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익숙한 신파도 아니다. 그건 다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본다. 자칫 영화는 황순원의 '소나기'의 아류 또는 새로운 버전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로 본 나는 이 영화는 오히려 죽음을 앞둔 남자의 담담한 심정을 묘사한 영화는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연애와 죽음을 동시에 다루고자 했다면 죽음에 더 많은 무게를 두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그래. 사람은 어차피 죽어. 그래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버리고 싶지만 그래서 친구 앞에서 나 죽는다 하면서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붙들고 싶은 생은 뭐란 말인가? 불꺼진 방에서 정원이 삼키듯이 우는 그 짧은 장면이 허허롭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같이 가 줄 수 없는 조금 있으면 맞게될 죽음의 길. 나도 2년 전 오빠를 보냈지만 오빠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거기에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더했다면 오빠가 가는 길이 좀 더 나았을까?

 

영화는 산 사람이 죽을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죽을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주고 떠날지를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사진기 사용법을 설명서도 남기고, 다림의 사진도 예쁘게 남겨두지 않던가.  

 

함께 만나고 있는 동안은 서로에 대해 관심만 있을 뿐 사랑을 확인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원의 예기치 못한 입원으로 더이상 만나지 못할 때 비로소 자신이 정원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다림은 알게된다.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만날 수 없게 되자 분노하게 되고. 한편  그에 비해 아무도 문병을 오지 않는 쓸쓸한 정원의 병실이 대비 된다. 동생이 누구 연락할만한 사람 없냐고 묻자 없다고 말하는 정원이 분명 다림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다림에게 문병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더 큰 욕심을 품어 본다. 그가 아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알아도 한 사람 정도는 모르는 것. 그것이 정원에겐 욕심이라면 욕심이었을 것이다. 설혹 그 사람 마음속에 어느만큼 살아있다 잊혀진다고 해도 말이다. 

 

자신의 영정 사진을 자신이 직접 찍는 건 또 어떤 의미일까? 마침 내가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던 날은 방송국에서 고 유영길 촬영 감독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이 떠올라 묘한 오버랩이 되는 느낌이었다. 

 

다시 리메이크 되어도 좋을 영화인 것 같은데 여러모로 리메이크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필름이 좀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을 빼면 영화 전편에 흐르는 정원의 심리와 전반에 흐르는 정서를 허진호 감독과 한석규만큼 잘 잡아낼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다시 봐도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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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0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메이크를 하면 안 되는 영화로 남아야 몇 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명작이 될 것 같아요. 혹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리메이크하고 싶다거나 후속편을 만들고 싶은 영화인이 있다면 ‘엽기적인 그녀’ 2탄 촬영 소식을 들은 네티즌들의 원성을 생각해야 될걸요. 감히 원작을 넘으려다가 졸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stella.K 2015-02-10 18:51   좋아요 0 | URL
헉, 그래? 엽기적인 그녀 2탄 만든데...?
엽기적인 그녀는 리메이크 해도 되지 않을까?
난 전지현 옛날엔 좀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능가하는 배우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이젠 별로더라.

하긴 형만한 아우 없다고 리메이크 해서 성공한 작품이 거의 없을 거야.
옛날에 고 최진실하고 박중훈이 나왔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민아하고 조정석이 리메이크 해서 성공했단 말 못 들었지 아마.
중간은 했나? 어쨌든. 그러고 보면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배우의 예술이기도 해. 어떤 영화든 극중 등장인물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을 맡은 배우를 기억하잖아.
이 영화만 해도 한석규, 심은하를 생각하지 그들이 맡은 역이 정원과 다림
이란 걸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래서 리메이크 영화가
성공 못하는 가봐.

cyrus 2015-02-10 18:54   좋아요 0 | URL
남주인공 차태현까지는 좋은데 전지현 역은 빅토리아라는 걸그룹 출신 연예인이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빅토리아가 중국 출신인데다가 연기 경력이 전무해서 과연 전지현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번에 엽기적인 그녀 2탄 촬영에 임하는 배우와 연출진들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만들겠다던데... 일단 개봉할 때 영화 퀄리티를 판단해야겠어요.

stella.K 2015-02-10 18:5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구나. 그렇다면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면 전지현이 훨낫지.
가만보면 욕을 사서 먹는 사람이 있긴 있어. 별로 기대 안된다.
차태현이 나온다면 다른 역할 아닌가?
원판을 거의 유지하긴 하지만 차태현도 애아빤데 옛날 같은 삘이 나올까?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0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엽기... 는 전지현 원샷원킬 영화인데 전지현이 빠진 엽기그녀`가 제대로 굴러갈까요... ㅎㅎㅎ 이런 이야기 구조 많이 울궈먹어서 이젠 안 먹히지 슾습니다

stella.K 2015-02-11 10:1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슾습니다.ㅎㅎㅎㅎ
그러니까요. 영화는 오리지날 원판만 보면 되는 것 같아요.
리플리도 그렇고. 아무리 멋진 배우가 나온다해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영화의 스토리와 배우는 늘 새로워야 해요.^^

니르바나 2015-02-1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한편의 영화를 한 백번 아니 이백번쯤 본 이야기를
오래 전 스텔라님과 댓글로 나누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혹시 기억하고 있으신가요.

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본다고 제대로 본 것이 아니고
영화 한편을 봐도 봐도 못본 구석이 많다는 게
앞서 본 영화의 감상 소회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사는 일에 가슴이 먹먹할 때
한번씩 꺼내 다시 보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속 한 여름의 열기도, 가을의 바람도, 겨울속 눈기운도
모두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니르바나 2015-02-10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스텔라님.^^

stella.K 2015-02-11 10:20   좋아요 0 | URL
새해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님의 서재 방명록을 봤더니
작년 새해 인사드렸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아직 설 전이니 대신 여기에 남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 니르바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