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밤엔 TV 영화 전문 채널에서 <장화, 홍련>을 보았다. 이 영화 역시 몇 년 전 본 영화라 다시 볼 생각을 못하다가 TV에서 한다기에 다시 보았다.
그런데 영화는 확실히 두 번(또는 그 이상)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 처음 봤을 땐 미장센이 좋았던 영화고 나도 보았다는 약간의 뿌듯함 뭐 그런 게 있었는데 다시 보니 생각 보다 별로란 생각이 든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두 번 봐야 한다고 말하면 얼마나 한심한가.
물론 영화 자체로는 흠이 없어 보이긴 한다. 기승전결을 해체한 영화 진행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 미장센은 여전히 감탄할 정도로 좋다. 이런 영화는 세월의 때를 안 타기도 해 2003년도 작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봐도 여전히 세련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시 본 이 영화는 내용면에선 별로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은 아니겠는가? 특별히 호러란 장르를 취하기 때문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을 하나 더 얹은 것처럼도 보인다. 오마이갓! 그런 영화였어??
그렇게 생각하니 김지운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어떠했더라 잠시 내 머리속 필름을 굴려 본다. 일명 '놈놈놈'으로 불리는 그 영화는 당시 개봉관에서 보기도 했는데 나름 장쾌한 스케일이 서부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확실히 자기 스타일은 확보한 감독임엔 틀림없지만 역시 보고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 뭐 꼭 영화가 남는 게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역시 IP TV에서 무료로 볼 수도 있지만 다시 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건 내가 꼭 한번 본 영화는 다시 보지 않는 그 이유만은 아닐 성 싶기도 하다. 바로 그 남는 것이 없다 이유도 일부 작용했으리라. 그렇다고 내가 정우성을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만일 저 말이 남성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허위 유포된 말이라면 여자들은 저 말을 좀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묵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좀 이런 사이비 상식을 뒤엎는 작품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면 남자의 적 또한 남자 아닌가? 한간엔 여자의 질투 보다 남자가 더 질투가 더 무섭다는말도 있던데 왜 이런 것을 다룬 호러 영화는 없는 걸까? 남자의 적은 남자라는 것을 선뜻 인정하기 싫은지 그런 건 늘 경쟁이나 폭력으로 미화될 뿐이다. 솔직히 남자들이 햄릿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런데 또 솔직히 이 영화를 여자가 아닌 남자로 대치해 보라. 각이 살지 않을 것이다. 고로 김지운 감독은 스타일리스트는 될 수는 있어도 진정한 (아직)아티스트는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