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언제 사놓고 여태 읽는지 모르겠다.

작년인가 올초에 알라딘에서 마일리지 소멸 예고를 받고 허겁지겁 산 책이다. 젠장!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이걸 사면 또 언제 읽나? 그렇다고 소멸될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도 없는 일이고. 마일리지 소멸 제도 이런 거 좀 없으면 안 되는 건가? 툴툴거리며 질렀다. 그나마 알라딘이 좋은 건 마일리지 상한제가 없어지고 마지막 10원 한장도 적립금으로 탈탈 털어 쓸 수 있다는 거다.

 

이 책 처음엔 별로 좋은 줄 몰랐다. 무엇보다 소개된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책 읽는다는 게 무슨 의밀까? 오히려 자존심만 상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이동진, 김중혁은 확실히 재담가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렇게 말들을 잘 하시는지. 다룬 책들 외에 다른 풍성한 정보와 그에 대한 해석 등이 정말 말의 정찬을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런저런 책을 읽느라 놓고 있다 어제 또 다시 붙든 부분은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물론 난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 지난 도서정가제 피날레 때 이 책을 살까 말까하다가 결국 포기한 책이다. 그런데 도서정가제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할인을 폐지한 이후 책값이 그다지 싸졌다거나 내지는 현실화가 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도서정가제를 정착시키는 공약중 하나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가격을 안정화 시키면서 독자들이 좀 더 합리적인 가격에 책을 사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뭐 그런 거 아니었나? 그런데 그런 게 체감되지 않는다. 도서정가제, 너 뭐니?

 

어쨌거나 이 <호밀밭의 파수꾼> 다른 외국어 번역판 이름이 재밌다. 이탈리아에선 '한 남자의 인생'이란다. 김중혁은 고작 사흘간의 이야긴데 '인생'이 거창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도 그렇지만 '한 남자'라니? 주인공이 이제 막 가슴에 털 나기 시작했을 텐데 그런 제목 쓰기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비해 일본에선 '인생의 위험한 순간'이란다. 이것도 좀 아이러니하다. 김중혁은 스릴러스럽다고 했는데. 노르웨이는 진짜 압권이다.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의 순간을 취한다' 이게 뭔 뜻이란 말인가? 노르웨이 자기네들도 알아 먹을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스웨덴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는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는 '사춘기'란다. 재밌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론 굳이 영화화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상세한 묘사에 있고, 아무래도 영화화되면 이미지가 고정되서 더 이상의 상상을 불허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엔 문학작품을 영화화 하는 경우가 흔해져 예전엔 이 작품이 영화화되면 얼마나 멋있게 만들어질까 나름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원작과 어떻게 다를까 내지는 좀 짖궃은 마음에 어떻게  원작은 영화에서 말아먹나를 확인하기 위해 보는 것도 같다. 정말 이 책 말마따나 다른 것은 영화화되도 이 작가의 작품들만큼은 영화화되지 말아야할 목록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으로는 이동진과 김중혁이 말하는 하루키의 작품들이 그렇다. 하지만 하루키의 작품 <상실의 시대>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또한 쿤데라의 작품도 그렇지 않나 싶다. 그의 작품들이 어려워 누구도 선뜻 영화화하겠다는 감독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카우프 만은 그의 작품에 손을 댔다가 고배의 잔을 마셔야 했다. 물론 그가 만든 <프라하의 봄>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는 한다. 하지만 쿤데라가 영화를 워낙 싫어했으니 카우프 만에게 좋은 소리했을 리는 없고, 언제나 그렇듯 문학작품 보다 뛰어난 영화는 찾아 보기가 쉽지 않으므로 이제 영화는 문학과의 동침을 그만 꿈꾸고 자기 살 길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또 일부 자기 작품을 영화화될 것을 기대하고 글을 쓰는 작가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들하고 잘 지내 보던가. 

 

아무튼 독자들 중에 문학작품은 문학작품으로 보존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대한 단적인 예로 어떤 작가가 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어 받아 <60년 후>란 작품을 썼는데 결국 출판 금지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의 표현의 자유 또는 상상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하는 자유로운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출판 금지 명령을 받았단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름 그럴 듯하다. "작가의 예술적 구상에는 작품 속 인물의 특징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독자들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이것은 김중혁 작가의 말대로 그 작품이 영화화되지 않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하기도 하지만 상상을 누가하느냐 바로 상상주권자의 권리가 작가에게 있지 않고 독자에게 있다는 점을 감안한 이례적 판례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셀린저도 대단하고 독자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이 <60년 후>란 작품은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검색을 해 보니 다시 빛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어 출판이 되어었고 또 어느새 절판이 되었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2009년도 5월에 처음 출판된 책인데, 미국 법원에서 출판 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출판 연도는 2010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있었던 걸까? 2010년이면 비교적 최근 출판인데 벌써 절판이라니. 미국에서 출금 당했다고 우리나라도 출금이어야 하는 건가? 그 이해관계를 알 수가 없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작가는 호기롭게 홀든 콜필드의 60년 후를 그렸다 오히려 독자의 철저한 외면을 당한 건지 이 책의 운명도 예사롭지는 않다. 그냥 셀린저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봐 주면 안 되는 거였을까?         

 

셀린저가 세상을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의 의미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유투브 같은 매체에 올리기도 했다니 과연 그 명성이 대단하다 싶다.  

 

참고로 셀린저도 쿤데라 못지 않게 영화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개인의 취향이긴 하다. 나 역시도 영화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짧지 않은 세월 은둔의 삶을 살 확률이 높은 내가 영화조차 볼 수 없다면 삭막해서 어떻게 살까 싶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관심은 유지할 생각이다.

 

매년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수위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조만간 한번 읽어주긴 해야할 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5-05-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스텔라님 페이퍼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네요.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 제목의 여러가지 버전이 참 흥미롭네요. <60년 후>는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읽을 수 없다니 더 읽고 싶어지는 이 기분이라니. 김중혁과 이동진은 환상의 콤비인 듯. 그냥 이야기하는 것 듣기만 해도 저는 재미있더라고요.

stella.K 2015-05-06 18:35   좋아요 0 | URL
헉, 전 이거 블랑카님 읽으신 줄 알았어요.
전에 이 책 가지고 이달의 당선작 되신 줄 알고 있는데
안 읽으셨군요.
이 두 사람 나누는 얘기 재밌어요. 그죠?
저도 어제 <호밀밭의 파수꾼>읽고 몰랐던 걸 알았다니깐요.
<60년 후>는 중고샵에선 살 수 있는 것 같더라구요.

빨책은 저도 전에 한번 들었는데 재미있더라구요.
모르긴 해도 이 책 시리즈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
저는 듣는 것 보다 읽는 게 아직은 좋더라구요.
모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blanca 2015-05-06 18:49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읽었는데 저 까마귀고기 먹은 건가요? ㅡㅡ 다 이 책에 나왔던 내용인데 다 새롭게 들리는 이 기분은... 저 찬물 세수좀 해야 겠습니다. 책을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잘 곱씹고 내면화하는 작업도 해야 겠어요. 스텔라님 댓글에 정신이 번쩍 드네요.

stella.K 2015-05-06 18: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다고 무슨 찬물에 세수는...?
그럴 때 있어요. 충분히 이해해요.
복습하고 좋죠 뭐.ㅎㅎ

cyrus 2015-05-0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영화로 나온다면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 졸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캐스팅이 중요한 것 같아요.

stella.K 2015-05-07 11:2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누굴 캐스팅 하겠냐구?
제임스 딘은 이미 죽었고. 이동진이 무슨 말 끝에 그나마 한 사람 있는데
디카프리오라고 했는데 이 작품을 두고 했는지 가물가물하네.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지라...ㅠ
 
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를 자극한다. 우선 이 책의 저자가 그 이름도 유명한 줄리언 반스라는 것. 굳이 그의 책을 읽던지 안 읽던지 셜록 홈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굳이 하나를 더 얹자면, 코난 도일이 살았던 시대 배경이 빅토리아 여왕 즉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대라는 점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 소설가들이 조선 시대를 즐겨 다루는 것처럼 영국의 소설가들은 바로 이 시대를 다루길 즐겨 할 것이다. 

 

사실 난 게으른 탓에 지금까지 줄리언 반스의 작품을 접해 보지 못하다 이 작품 그것도 이제 겨우 1권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줄리언 반스의 작품 중 독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작품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 특히 그 작품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독특한 구성을 언급하곤 하는데 하나 같이 말미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고 왠지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르긴 해도 줄리언 반스는 상당히 지능적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들기가 쉬운가?

 

소설을 다 읽었을 때 갖는 독자의 반응이란 크게 두 가지 아닌가 싶다. 좋다. 잘 썼다. 괜찮네. 그런 긍정적인 반응 아니면 뭐야?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이런 거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게 하던가. 그런데 딱 덮고나서 왠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건 또 뭘까? 나름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일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오는 순간 또 들어 가고 싶은 심정 뭐 그런 걸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소설이 멀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소설은 대체로 앉은 자리에서 완독을 하기가 쉽지 않다. 끊어 읽게 되기 때문에 다시 읽으려면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다시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어떤 소설은 비교적 상기가 쉬운 작품도 있지만 어떤 작가의 작품은 내가 기억하는게 맞나 되집어 만든다. 그런 책은 당장 읽을 때는 약간은 번거로울 수 있겠지만 긴 치매 예방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매 예방을 위해 책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나에겐 이 책이 좀 그랬다. 

 

읽으면서도 내가 지금 맞게 읽고 있는 것인가?  남의 나라 역사 배경과 추리 기법을  사용한데다 영국 작가의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우아함이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아서 코난 도일의 일대기라고 하지 않는가? 어찌보면 경의라도 표하는 의미에서 내가 지금 제대로 읽고는 있는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어 본 바에 따르면 애석하게도 나의 이런 마음 자세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걸 또한 잘 모르겠다. 이 책의 1권은 나쁘게 말하면 변죽만 올렸다고나 할까? 언제나 그렇듯 전략상 1권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제야 비로소 뭔가 보여줄 것 같은데 거기서 끝을 맺고 있으니.    

 

그런데 문제는 2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2권을 읽고 싶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 개인으론 1권 읽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왜 어떤 소설은 사건의 흐름과 전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소설은 꼭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나머지가 가능한 소설이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 지금까지는 전초전 내지는 배경 설명을 다룬다. 더구나 아서와 조지는 한번 스쳐지나 가듯 만날 뿐이지 말도 섞지도 않고, 아서는 아서대로 조지는 조지대로의 삶을 보여주다 끝나 버린다. 그것도 끝에 가서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조지 에들러라는 이름이'하며. 요는 지금도 약간은 지루했는데 과연 2권은 1권의 지루함을 상쇄시킬만큼의 재미 내지는 반스가 이랬었구나 하는 나름의 감동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느낌은 여러가지여서 명성 그대로 나에게 감동으로 전해 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확실히 좋은 책이긴 한데 감동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책도 있다.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건 전자의 책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읽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고. 책을 읽는 도중 갑자기 카프카의 이런 말을 떠올린다면 독자는 기꺼이 그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굳이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사람의 다른 저작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받거나. 요는 나는 이 책 2권에서 이런 느낌, 이런 충동을 받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허겁지고 다시 1권을 들처보게 되거나 역시 반스구나 하며 다른 책도 보고 싶어지거나. 솔직히 반스는 너무도 유명해서 왜 이렇게 1, 2권으로 나눠 읽어야할만큼 길게 썼냐고 불평할 수도 없다. 덜 유명했더라면 그랬을까? 사실 1권만 보더라도 (조금 지루해서 그렇지)막힘없이 그 시대를 거의 완벽히 복원해 내고 있을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문투를 감안하더라도)문장 또한 유려하다. 이런 작품이 흠을 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난 앞서 엄살을 부려 보긴 했지만 2권을 읽긴 읽어야 할 것 같긴 하다. <예감은...>처럼 다시 읽기의 충동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스의 이 소설은 기꺼이 읽기의 수고로움과 모험을 감내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5-0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메트로랜드>를 읽어보셨어요? 저는 <메트로랜드>를 읽었는데 지루했어요. 그렇지만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stella.K 2015-05-05 18:10   좋아요 0 | URL
아니. 그것도 반스건가?
그래. 10 1/2장으로는 재밌다고 하더라.^^
 

 

 

언제부턴가 먹방이 대세다. 어떤이는 먹방이 대세인 것은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먹기는 싫고 대리만족을 위해 먹방을 보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럴듯한 말 같긴 하지만 나는 먹방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음식 본다고 대리만족이 될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시신경을 자극해서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보지 않는다. 설혹 본다고 해도 따라 해 먹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장은 언제 볼 것이며, 언제 다듬고, 씼고, 볶아서 언제 먹을 것인가?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진 고정된 입맛이 무의식 중에라도 남아 있어서 아무리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해도 결국 우린 옛맛으로 회귀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솔직히 5성, 7성급 호텔 수석주방장이라고 해도 그들이 집에서 먹는 건 잘 익은 배추김치에 된장찌게면 밥 한 그릇 뚝딱이라고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난 먹는데 시간들이고 공들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사서 맛있게 먹는 거라면 모를까.  

  

그러는 가운데 지난 달부터 <식샤를 합시다 2>가 종편에서 방송되기 시작했다. tv 보는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당연히 <식샤를 합시다 1>은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의 2편이 1편 보다 더 좋은지 안 좋은지 난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식샤를 합시다 2>는 솔직히 별점으로 치자면 5개 만점에 많이 줘도 두 개 반 밖엔 줄 수 없는 좀 한심한 드라마다. 아무리 만화가 원작이라지만 어쩌면 캐릭터 연구를 그렇게 안 할 수가 있을까? 캐릭터 연구를 음식 뽀샵질의 반만 했어도 이 드라마는 꽤 괜찮은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대장금 버금가는. 하지만 매회 보면서 짜증 작렬이다. 솔직히 이런 드라마는 나는 두 번도 많다. 한 번 딱 보고 접었을 드라마다. 그런 내가 지금까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보고 있다. 먹방의 위력이 새삼이다.

 

그나마 이 드라마는 윤두준과 캐릭터는 후저도 배우들의 먹는 연기 때문에 봐 줄만 하다. 보면서도 내가 어떻게 이 드라마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나 나 자신도 놀라며 보는 중이다. 그러면서 새삼 먹는 게 이렇게도 중요한 것이었구나 한다. 솔직히 밤에 불 끄고 그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배우들의 후루룩 쩝쩝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면 정말 당장 먹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긴 한다. 이 충동을 잘 조절하면 좋은데 실패해서 방송에서 먹는대로 먹으면 비만은 따논 당상일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지난 준가, 지지난 주에 주꾸미 요리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주꾸미 요리가 어디 한 가진가? 처음 주문은 한 가지로 시작해서 어느새 3종 세트를 롱샷으로 보여주는데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등장인물 셋이 저 많은 음식을 실제로 다 먹었다고 치면 그들은 코가 아닌 어깨로 숨을 쉬어야 할 것이며 모르긴 해도 소화제는 기본으로 먹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지난주 같은 경우 실연의 아픔을 먹는 것으로 승화시킨 백수지를 보면서 지금까지의 짜증은 짜증도 아니었다. 배우를 탓하기 전에 작가나 연출이 누군지 정말 이렇게 밖에 못하겠냐고 항의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요즘 누가 실연 당했다고 그걸 먹는 것으로 풀까? 그거 한 가지만 지적했다고 해서 이 총체적 문제의 인물이 나아질리는 없겠지만, 솔직히 이건 여자에 대한 모독내지는 비하며 모르긴 해도 이런 식의 먹방 드라마는 앞으로 지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실연의 아픔을 먹는 것으로 승화시킬 수는 있다. 그건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방송에서까지 그것을 자세하게 쪽쪽 소릴 내가면서 먹는다는 게 뭔가 좀 안 맞고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마치 실연 당하면 먹는 것으로 풀라고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먹은 것도 부족해 백수지는 그 자리에서 라면을 삶아 먹는 기염까지 토했다. 그나마 구대영(윤두준)과의 케미를 위해 라면을 끊이는 방법에 관해 티격태격 싸우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장면 한 가지만 나왔다면 모르겠는데 이젠 백수지가 혐오스러워지려고 한다. 이런 총체적인 소화불량 드라마가 어딨을까 싶다.

 

이 드라마가 방송하고 있을 때 또 어떤 방송에선 다이어트에 관한 방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질 낮은 후진 드라마라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보여주려거든 좀 더 스마트하게 지능적으로 잘 보여줬어야 한다. 벌써 시즌 2 아닌가? 그러면 좀 똑똑해져야 할 텐데 무조건 한상 떡버러지게 차려놓고 배우들이 어떻게 먹나 구경 시키고 따라 먹게 하다 비만에 일조하는 그런 드라마가 된다면 이건 그야말로 낙후다.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학교에 청량음료 자판기가 없어졌다. 드라마에선 흡연 장면을 없애거나 안개처리를 했다. 비만을 이젠 국가가 관리한다고 하는 마당에 이런 드라마가 언제 심의에 걸릴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욕하면서 보는 게 드라마라지만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ㅠ   

 

 

덧;) 나는 평소 라면을 그렇게 즐겨 먹는 편은 아닌데 먹더라도 계란은 잘 넣어 먹질 않는다. 간혹 가물에 콩나듯 넣어서 먹는다면 계란을 풀지 않고 익혀 먹는 편. 계란을 풀어서 먹을 것이냐 그대로 익혀 먹느냐는 확실히 취향의 문제다. 백수지는 계란을 풀어야 계란의 고소함이 면에 베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맞는 얘기긴 할 것이다. 하지만 국물맛이 좀 텁텁할 수 있다. 그런데 비해 계란의 고소함과 국물의 깔끔함을 선호한다면 당연 구대영처럼 계란을 터뜨리지 말아야겠지. 

그런데 난 라면을 먹을 때 무조건 채소를 많이 넣는다. 우리집의 채소란 채소는 눈에 띄는대로 처음부터 잡아 넣고 끊이는 것이 나의 방법이다. 그러면 국물을 훨씬 시원하고 건강하게 즐길 수가 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yureka01 2015-05-0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인의 결핍을...
먹으면서 풀라는 자본주의적인 계략.ㅠ.ㅠ
소득이 낮을 수록 비만율이 올라가는 이치랑 비슷할거예요.

잘봤습니다.
(밥 한공기에 한시간 걸어 땀내야 하는 고역을 알면 ㅎㅎㅎ먹기가 두렵..)

stella.K 2015-05-03 15:30   좋아요 1 | URL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님의 해석이 탁월하십니다.

근데 전 드라마 잘못 만들면 왜 그렇게 욕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되는데 그만큼 아쉬움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ㅠ

yureka01 2015-05-03 15:36   좋아요 0 | URL
그또한 일종의 욕망 아니겟습니까.
한편에서 열받으니 보지마라.한편에선 그래도 땡기니 봐라...
시청하게 되는 것이 아마 후자가 이긴 결과겠지요.
드라마에는 상업적인 고도의 전략이 꼭 숨어 있는 경우가 많겟죠.
그런 드라마 제작자.작가.스탭...돈이 안들어가면 나올리도 없고요.
문제는 그런 자본의 투자가 좀 긍정적이라야 하는데 비만을 유발하고
건강을 헤치게 된다는 점이죠.
아마 그 드라마 보면서
몇몇 시청자는 배달의 기수에게 빨리 배달을 요청했을 겁니다...아니 확실합니다.아니면 하다 못해 야식 라면이라도 끓일려고 물올리고.ㅎㅎㅎ

stella.K 2015-05-03 15:4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그 생각해요.
이 드라마 보면서 배달통, 요기요 불나지 않을까
생각하면 이 드라마는 결코 건강한 드라마는 아니죠. 이런 식의 드라마가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진다면 분명 심의한다고 할거라니깐요.ㅠ

cyrus 2015-05-03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TV를 보면서 누님 생각과 조금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먹방에다가 요리사들이 자주 TV에 나오면서 대중들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채널 몇 개 돌리면 유승옥 같은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보면 대중은 몸짱에 대한 열망에 다이어트 욕구가 생겨요. 우리가 보는 TV의 세계는 모순적이에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TV에 눈이 먼 대중의 모순적인 욕구가 투영되어 있어요. 그 방송 프로그램에 요리사 백종원, 웨이트 트레이너 예정화가 개인 방송을 하고 있잖아요.

yureka01 2015-05-03 21:56   좋아요 0 | URL
한쪽에서는 다이어트 방송.또 한쪽에서는 먹방과 요리사들 요리 프로그램이 공존하죠.
많이 먹는 것도 다 돈이요..빼는 것도 핼스 산업의 요체입니다.
먹고 찌고 또 빼고....다만 니들은 돈을 내면 다 먹고 다뺄수 있다는 자본의 보이지 않는 계산이 치밀하거든요.
저적하신 백종원...프랜차이즈 사업가요...숀리라는 다이어트핼스매너져..거치면 식스팩만든 연애인 나오는 이유.다 그게 그거예요.

stella.K 2015-05-04 15:02   좋아요 1 | URL
모든 양면성은 다 있는 거긴 하죠.
그것을 아예 까놓고 보여 주는 게 tv고.
시청자들 알아서 취사 선택해서 봐라. 그런 거겠지만
눈은 죄가 없다고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다 보죠.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고 했지만
현대의 선악과는 역시 tv를 대표로하는 모든 영상 매체 같아요.
거식증과 폭식증의 진앙지는 tv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하는 줄은 알았는데 그게 그런 프로그램이었구만.쩝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김봉석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뭔가모를 기대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작가야 처음 듣는 이름이고(그래도 이 사람 나름 글 꽤나 쓴다는 부류에선 알아주는 고수긴 한가 보다) 난 바로 이 '대중문화'란 글자에 꽂혀 기런 기대감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문화는 결코 어렵지 않다. 그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것이고, 즐겨야 하는 것이지 고찰되어지고 연구되어지는 거라면 골치 아파 내동댕이 처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엔 되는 일 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은데 이 '대중문화' 조차 까탈스럽고 어려운 거라면 우리는 어디가서 위로를 받는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범죄율의 증가와 깨우치지 못한 중생들이 거리를 방황하며 정신 병원에 사람들이 넘쳐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특별히 '표류기'란 말을 쓰고 있다. 왜 그런지는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갔다. 저자는 한마디로 자신을 루저 또는 조금 고상한 언어로 아웃사이더 뭐 그런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어렸을 적 갑자기 말을 더듬게 된 이후로 그는 세상과 조우하지 못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향유해 나갔다. 그것이 학교와는 담을 쌓은 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을 탐닉했고, 그런 것들에 표류했던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태어난 이상 살아남아야 하는데 경쟁해서 살아남긴 싫고 그나마 이런 것들에 위로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니. 그리고 그것은 훗날 이렇게 훌륭한 당대 문화 체험기겸 인생 고백록이 되었다. 뭐라도 하나 붙들고 있으면 그것이 삶의 자산이되고 힘이 된다는 걸 이 책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아둥바둥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하지 말아라. 사람은 다 자기 밥숟깔은 자기가 물고 나오는 법이다. 

 

문화 체험기란 말을 썼는데 우린 보통 그런 건 외국에 나가 살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글로 옮기는 것을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화 체험기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문화와는 동떨어져 얘기할 수 없으니 당대에 체험한 문화를 기록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고 자신만의 자서전을 쓰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 단번에 끌렸던 건 작가가 루저였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책을 해외 유학파며 명망있는 어떤 문화 평론가가 썼다면 읽으면서도 과대평가하거나 잘난 척한다 했을 것이다. 

 

유년시절에 도무지 세상이 날 원하는 것 같지가 않다고 느끼면 가장 건전하고 빠르게 빠져드는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왜 하필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가 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그 보다 이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물론 계기는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칠무렵 나는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입원 기간을 한 달 남짓이었지만 몸은 피폐해져 오랫동안 학교에 갈수가 없게 되었다. 때마침 집도 이사를 하는 바람에 2학기를 공백기로 보내고  4학년에 편입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본 시험에서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맞았다. 그전까지는 공부를 제법한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그런지 학교 생활도 생각보다 재미도 없었고 힘들기만 했다. 그때 나의 유일한 위로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빨리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도피하기에 이만한 것도 없었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더했다. 첫번째 시험에서 다른 과목은 그만그만 했는데 수학과 과학이 턱없이 떨어지다 보니 나의 석차는 앞에서 세는 것보다 뒤에서 세는 것이 빨랐다. 그렇게 되고보니 난 학교(사회)가 원하는 사람은 못되겠구나 일찌감치 학교 공부는 작파하고 책으로 빠져 들었다. 그 시절 책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렇게 화창한 봄날 이 책의 리뷰를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책을 매력적으로 느낀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가 나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느꼈던 문화를 나 역시 같이 향유하고 누렸다는 것이 새삼 반가움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특히 당대 미국의 전설적인 락의 여왕 펫 베나타를 알고 있다니! 반가웠다. 솔직히 7,80년 대 전설적인 가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보통은 레드 제플린이니 롤링 스톤즈니, 제퍼슨 스타쉽이니 뭐 그런 걸 나열하던데 저자는 의외로 펫 베나타를 지목한다. 그녀의 키가 155센티인지 그랬다는데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락의 열기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시절 나는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과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를 번갈아 듣곤 했다. 거기서 펫 베나타의 곡이 나오면 로션병을 집어 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그렇게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긴, 로션병을 들게 만든 팝 가수가 펫 베나타 한 사람이었겠는가? 어쨌든 로션병 하나 집어들면 세상이 온통 내것 같았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수를 꿈꿔 본 적은 한번도 없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웃긴 건, 펫 베나타를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정작 그녀의 레코드판을 산적이 없었다는 것) 

 

저자는 그 시절 우리 가요를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난 팝송 아니면 그 어떠한 소리도 듣는 것을 거부했다. 자꾸 듣다 보니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 시절 좋아하는 팝 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지금처럽 쉽게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나의 이런 타는 듯한 목마름을 달래줬던 건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AFKN이란 미국 방송이 있었다. 거기서 매주 '솔리드 골드'란 프로가 있었다. 그걸 보면 인기 팝 가수들의 공연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것을 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확실히 난 미국을 동경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무렵 미국으로 이민 간 나의 작은 아버지 일가를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를 것이다. 

 

또 그만큼 그 시절 '메이드 인 코리아'는 모든 게 다 시시하고 시큰둥했다. 그건 내가 받았던 학교 교육에 기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만날 빈 머리에 우겨 쳐넣기나 하려고 하고 선생들은 막대기 들고 아이들 잡겠다고 쌍심지를 치켜 세우는데 내가 우리나라의 것을 좋아할리 만무하다. 난 그래서 드라마도 보지 않았고, 책도 외국 작가의 것만을 선호했으며, 음악 역시 가요 같은 건 거의 듣지도 않았다. 학교 교육이 좀 더 인간적이 었다면 난 그 모든 것들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과외 선생님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챔프>란 영화였을 것이다. 아빠를 잃고 나 보다 조그만 남자 아이의 우는 모습이 얼마나 슬프던지 나 역시 울었다. 아니 그땐 그냥 울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뭔가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자는 내 인생의 영화로 <대부>를 꼽고 있는데, 나는 딱히 생각나는 영화가 없다.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오래된 영화는 아닐까? 오드리 헵번이나 잉그리트 버그만 또는 제임스 딘이 나왔던 일련의 영화들 말이다. 이들이 나왔던 영화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특히 제임스 딘의 영화는. 원조 청춘의 아이콘 아닌가. 

 

저자는 또 이장호 영화에서 한국영화를 봤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가 쓴 소위 '이장호론'(140p~)은 가히 명문이라고 해도 좋을만치 잘 썼다. 나도 이장호의 영화를 몇편 본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의외로 영화를 잘 만든다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내가 감히 한국영화를 봤다고 하는 건 임권택의 일련의 영화들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의 것이라면 무조건 냉소하고 보는 내가 알게 모르게 그의 영화를 참 많이 봤던 것 같다. 만다라는 물론이고, 씨받이, 서편제, 노는 계집 창, 취화선, 춘향뎐, 달빛 길어올리기 그리고 최근 화장까지. 크게 감동할 정도는 아니지만 임권택 감독만큼 한국적 소재를 잘 담아 내는 감독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임권택론을 쓸 수가 없다. 

 

저자는 민주화 항쟁을 보며 대학을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를 보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쓰고 있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그때까지 세상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아는 것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알을 깨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확실히 민주화 항쟁과 하루키는 세대를 가르는 뭔가의 상징임엔 틀림없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사실 나는 좀 뒷북을 쳐대는 스타일이라 민주화 정점에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몰랐다가 교회에서 연극 대본을 쓰다 소위 말해 조직의 쓴 맛을 보고 어느 창작 학원에 발을 내딛었을 때야 감을 잠았다. 그땐 민주화 항쟁의 후일담이나 논하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그 무렵에 보았던 이정현이 나왔던 <꽃잎>이란 영화는 충격적이긴 했다. 실상은 영화 보다 더 충격적이라고 하던데 그러고 보면 난 아웃사이더는 물론이고 루저도 못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 <꽃잎>은 확실히 영화는 영화다. 그후에 이정현이 매스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보면 말이다. 그녀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연예인일 뿐이었으니까. 

 

하루키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키 이전과 이후로. 그의 문학계의 출현은 확실히 센세이션 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세대별로 그 세대를 가름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90년대는 하루키의 세대로 불리울만 하다. 특히 그의 <상실의 세대>를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의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지만, 나는 어찌어찌 굴러먹다 교회에서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것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드라마를, 개그 프로를, 영화를. 연극 대본을 잘 쓰겠다고 대학로 바닥을 먼지를 휘날리며 다니지 않았다. 솔직히 난 글을 쓰긴 써도 희곡을 계속 쓸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조금 쓰다 다른 분야로 전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장 나에게 떨어진 미션은 대본을 잘 쓰는 것이니 지금의 언어와 코드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대본을 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는 없다. 그냥 무의식적으로라도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솔직히 열심히 쓰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글 쓰는데)도움이 되라고 주문을 넣으며 어느 해에 본 영화만 해도 120편 가까이 본적도 있다. 물론 진짜 본다는 영화광들에 비하면 쪽수도 안 되겠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열심히 보진 않는다.  비록 루저라도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복 받은 인생 아닌가? 

 

솔직히 처음에 저자를 루저라며 나와 동일시하며 반가워 하긴 했지만 확실히 저자는 나와는 다르고 배아픈 구석이 있긴 하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스펙 쌓고, 대우 받고 그러면 또 그런가 보다 하겠다. 한데 팽팽히 놀다 반짝 노력해서 대학 가고(그것도 좋은!), 또 자기 좋을 대로 살다 뭔가를 하고, 또 놀다가 뭔가를 이루고 그러다 이렇게 책까지 냈다. 이런 사람은 같은 루저라도 급수가 다르다. 무엇이 그 다름을 결정했던 것일까? 생각해 봤더니 저자는 자기 좋아하는 분야는 확실히 들이 팠던 사람이었다. 때론 넓게 동시에 깊게. 나는 앞에서 책을 좋아했다고 떠들어 댔지만 들이 파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읽을 수 있는 만큼의 독서를 했을 뿐이다. 세상이 원하는 출발 선상에서 경쟁을 할 생각이 없다면 자기 좋아하는 분야를 미치도록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책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어느 한 분야에 대한 기록이요, 집약된 보고서이며, 동시에 저자 자신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저자는 나이 오십이 넘으면 과거를 되짚어 보는 에세이를 한 번 써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264p).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알 것도 같다. 나이 50이면 하프 타임 아닌가? 나머지 반을 위해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 50년을 살았다면 할 말이 좀 많겠는가? 50년을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자신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줄 알았는데 과거의 산물로 남아 있거니 흐르는 시간속에 사장되고 말았다. 한때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정훈희도 가고, 김추자도 갔다. 카페에 가면 뮤직 박스가 있어 DJ에 음악을 신청하면 틀어주기도 했다. 나는 그 때 퀸의 '위아 더 챔피언'을 틀어 달라고 해서 누군지 모르지만 음악을 아시는 분 같다며 칭찬을 들었던 적도 있다. 그게 영원히 계속될 줄만 알았는데 어느샌가 없어지고 말았다. 대중 문화는 그런 것이다. 그게 없어진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문화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며, 이미 있었던 것이라도 새롭게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모를 일이다. 그런 카페의 DJ가 요즘 우리나라 문화의 메카에 여전히 살아 있을지. 다른 옷으로 갈아 입은 채 말이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이런 문화의 흐름을 향유하고 지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니 우린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대중 문화는 인간을 가장 즐겁고, 위안을 주기 위해 고안해낸 인간이 만든 가장 고도화된 산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흠은 너무 일찍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 문화는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며 사라질 뿐이지 죽지는 않는다. 빨리 뭔가에 담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 아주 괜찮다. 읽으면 자신만의 표류기 하나 쓰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4-2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년대 대중문화를 추억하는 책은 과연 언제 나오게 될까요? 제가 지금 20대 중후반이니까 빠르면 2, 3년 뒤에 나올 거라 생각해요. 이번에 새로 나올 ‘응답하라’ 시리즈가 80년대 시절로 맞췄으니 ‘2000년대 시절을 배경하는 ’응답하라‘ 시리즈도 나온다면 제목은 ‘응답하라 2002’가 될 것 같아요. 저는 2002년을 추억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몽정기`에요. 2002년은 제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이 한창 성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무렵이라서 이 영화를 학교에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stella.K 2015-04-25 18:13   좋아요 0 | URL
이책 나한테는 아주 좋았어. 하지만 너의 시대의 문화를 얘기한테면
좋긴해도 이책만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너 정말 아직도 20대야? 난 거의 말쯤되지 않았을까 하는데 말야.
리뷰에 쓴게 나에겐 딱 네 나이 때였던 게지.ㅋㅋ

붉은돼지 2015-04-26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옛날엔 AFKN이 있었어요.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대학생이던 형님이 정말 열심히 보던 기억이 납니다

이장호 이야기하니 언젠가 토크쇼에서
자신이 영화할려고 집나올 때 어른이 동생 대학 등록금 쓸려고 소 팔아 꿍쳐 놓은 돈 훔쳐 가출했다는 이야기 듣고 아!!! 감탄이랄까 여하튼 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요~

stella.K 2015-04-26 16:45   좋아요 0 | URL
저자는 이장호 감독의 똘끼가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AFKN이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엔 미드도 많이하고 라이브 공연도 자주 볼 수 있으니 있어야할
또로 방송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봐요.
뭐 우리 나라 방송도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나쁘지 않겠지요.
다 과거의 산물이어요.ㅋ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지금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5-04-25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셔 두고 읽지 못했어요. 올해 안에 꼭 읽겠습니다. ^^

stella.K 2015-04-25 16:55   좋아요 0 | URL
읽으세요. 전 책 박스에 담겨 못 읽고 있어요.
다시 읽으려면 사서 읽어야 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