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언제 사놓고 여태 읽는지 모르겠다.
작년인가 올초에 알라딘에서 마일리지 소멸 예고를 받고 허겁지겁 산 책이다. 젠장!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이걸 사면 또 언제 읽나? 그렇다고 소멸될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도 없는 일이고. 마일리지 소멸 제도 이런 거 좀 없으면 안 되는 건가? 툴툴거리며 질렀다. 그나마 알라딘이 좋은 건 마일리지 상한제가 없어지고 마지막 10원 한장도 적립금으로 탈탈 털어 쓸 수 있다는 거다.
이 책 처음엔 별로 좋은 줄 몰랐다. 무엇보다 소개된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책 읽는다는 게 무슨 의밀까? 오히려 자존심만 상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이동진, 김중혁은 확실히 재담가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렇게 말들을 잘 하시는지. 다룬 책들 외에 다른 풍성한 정보와 그에 대한 해석 등이 정말 말의 정찬을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런저런 책을 읽느라 놓고 있다 어제 또 다시 붙든 부분은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물론 난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 지난 도서정가제 피날레 때 이 책을 살까 말까하다가 결국 포기한 책이다. 그런데 도서정가제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할인을 폐지한 이후 책값이 그다지 싸졌다거나 내지는 현실화가 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도서정가제를 정착시키는 공약중 하나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가격을 안정화 시키면서 독자들이 좀 더 합리적인 가격에 책을 사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뭐 그런 거 아니었나? 그런데 그런 게 체감되지 않는다. 도서정가제, 너 뭐니?
어쨌거나 이 <호밀밭의 파수꾼> 다른 외국어 번역판 이름이 재밌다. 이탈리아에선 '한 남자의 인생'이란다. 김중혁은 고작 사흘간의 이야긴데 '인생'이 거창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도 그렇지만 '한 남자'라니? 주인공이 이제 막 가슴에 털 나기 시작했을 텐데 그런 제목 쓰기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비해 일본에선 '인생의 위험한 순간'이란다. 이것도 좀 아이러니하다. 김중혁은 스릴러스럽다고 했는데. 노르웨이는 진짜 압권이다.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의 순간을 취한다' 이게 뭔 뜻이란 말인가? 노르웨이 자기네들도 알아 먹을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스웨덴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는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는 '사춘기'란다. 재밌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론 굳이 영화화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상세한 묘사에 있고, 아무래도 영화화되면 이미지가 고정되서 더 이상의 상상을 불허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엔 문학작품을 영화화 하는 경우가 흔해져 예전엔 이 작품이 영화화되면 얼마나 멋있게 만들어질까 나름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원작과 어떻게 다를까 내지는 좀 짖궃은 마음에 어떻게 원작은 영화에서 말아먹나를 확인하기 위해 보는 것도 같다. 정말 이 책 말마따나 다른 것은 영화화되도 이 작가의 작품들만큼은 영화화되지 말아야할 목록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으로는 이동진과 김중혁이 말하는 하루키의 작품들이 그렇다. 하지만 하루키의 작품 <상실의 시대>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또한 쿤데라의 작품도 그렇지 않나 싶다. 그의 작품들이 어려워 누구도 선뜻 영화화하겠다는 감독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카우프 만은 그의 작품에 손을 댔다가 고배의 잔을 마셔야 했다. 물론 그가 만든 <프라하의 봄>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는 한다. 하지만 쿤데라가 영화를 워낙 싫어했으니 카우프 만에게 좋은 소리했을 리는 없고, 언제나 그렇듯 문학작품 보다 뛰어난 영화는 찾아 보기가 쉽지 않으므로 이제 영화는 문학과의 동침을 그만 꿈꾸고 자기 살 길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또 일부 자기 작품을 영화화될 것을 기대하고 글을 쓰는 작가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들하고 잘 지내 보던가.
아무튼 독자들 중에 문학작품은 문학작품으로 보존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대한 단적인 예로 어떤 작가가 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어 받아 <60년 후>란 작품을 썼는데 결국 출판 금지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의 표현의 자유 또는 상상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하는 자유로운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출판 금지 명령을 받았단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름 그럴 듯하다. "작가의 예술적 구상에는 작품 속 인물의 특징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독자들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이것은 김중혁 작가의 말대로 그 작품이 영화화되지 않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하기도 하지만 상상을 누가하느냐 바로 상상주권자의 권리가 작가에게 있지 않고 독자에게 있다는 점을 감안한 이례적 판례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셀린저도 대단하고 독자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이 <60년 후>란 작품은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검색을 해 보니 다시 빛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어 출판이 되어었고 또 어느새 절판이 되었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2009년도 5월에 처음 출판된 책인데, 미국 법원에서 출판 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출판 연도는 2010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있었던 걸까? 2010년이면 비교적 최근 출판인데 벌써 절판이라니. 미국에서 출금 당했다고 우리나라도 출금이어야 하는 건가? 그 이해관계를 알 수가 없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작가는 호기롭게 홀든 콜필드의 60년 후를 그렸다 오히려 독자의 철저한 외면을 당한 건지 이 책의 운명도 예사롭지는 않다. 그냥 셀린저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봐 주면 안 되는 거였을까?
셀린저가 세상을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의 의미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유투브 같은 매체에 올리기도 했다니 과연 그 명성이 대단하다 싶다.
참고로 셀린저도 쿤데라 못지 않게 영화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개인의 취향이긴 하다. 나 역시도 영화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짧지 않은 세월 은둔의 삶을 살 확률이 높은 내가 영화조차 볼 수 없다면 삭막해서 어떻게 살까 싶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관심은 유지할 생각이다.
매년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수위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조만간 한번 읽어주긴 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