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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를 자극한다. 우선 이 책의 저자가 그 이름도 유명한 줄리언 반스라는 것. 굳이 그의 책을 읽던지 안 읽던지 셜록 홈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굳이 하나를 더 얹자면, 코난 도일이 살았던 시대 배경이 빅토리아 여왕 즉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대라는 점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 소설가들이 조선 시대를 즐겨 다루는 것처럼 영국의 소설가들은 바로 이 시대를 다루길 즐겨 할 것이다.
사실 난 게으른 탓에 지금까지 줄리언 반스의 작품을 접해 보지 못하다 이 작품 그것도 이제 겨우 1권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줄리언 반스의 작품 중 독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작품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 특히 그 작품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독특한 구성을 언급하곤 하는데 하나 같이 말미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고 왠지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르긴 해도 줄리언 반스는 상당히 지능적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들기가 쉬운가?
소설을 다 읽었을 때 갖는 독자의 반응이란 크게 두 가지 아닌가 싶다. 좋다. 잘 썼다. 괜찮네. 그런 긍정적인 반응 아니면 뭐야?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이런 거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게 하던가. 그런데 딱 덮고나서 왠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건 또 뭘까? 나름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일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오는 순간 또 들어 가고 싶은 심정 뭐 그런 걸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소설이 멀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소설은 대체로 앉은 자리에서 완독을 하기가 쉽지 않다. 끊어 읽게 되기 때문에 다시 읽으려면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다시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어떤 소설은 비교적 상기가 쉬운 작품도 있지만 어떤 작가의 작품은 내가 기억하는게 맞나 되집어 만든다. 그런 책은 당장 읽을 때는 약간은 번거로울 수 있겠지만 긴 치매 예방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매 예방을 위해 책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나에겐 이 책이 좀 그랬다.
읽으면서도 내가 지금 맞게 읽고 있는 것인가? 남의 나라 역사 배경과 추리 기법을 사용한데다 영국 작가의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우아함이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아서 코난 도일의 일대기라고 하지 않는가? 어찌보면 경의라도 표하는 의미에서 내가 지금 제대로 읽고는 있는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어 본 바에 따르면 애석하게도 나의 이런 마음 자세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걸 또한 잘 모르겠다. 이 책의 1권은 나쁘게 말하면 변죽만 올렸다고나 할까? 언제나 그렇듯 전략상 1권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제야 비로소 뭔가 보여줄 것 같은데 거기서 끝을 맺고 있으니.
그런데 문제는 2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2권을 읽고 싶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 개인으론 1권 읽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왜 어떤 소설은 사건의 흐름과 전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소설은 꼭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나머지가 가능한 소설이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 지금까지는 전초전 내지는 배경 설명을 다룬다. 더구나 아서와 조지는 한번 스쳐지나 가듯 만날 뿐이지 말도 섞지도 않고, 아서는 아서대로 조지는 조지대로의 삶을 보여주다 끝나 버린다. 그것도 끝에 가서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조지 에들러라는 이름이'하며. 요는 지금도 약간은 지루했는데 과연 2권은 1권의 지루함을 상쇄시킬만큼의 재미 내지는 반스가 이랬었구나 하는 나름의 감동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느낌은 여러가지여서 명성 그대로 나에게 감동으로 전해 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확실히 좋은 책이긴 한데 감동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책도 있다.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건 전자의 책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읽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고. 책을 읽는 도중 갑자기 카프카의 이런 말을 떠올린다면 독자는 기꺼이 그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굳이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사람의 다른 저작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받거나. 요는 나는 이 책 2권에서 이런 느낌, 이런 충동을 받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허겁지고 다시 1권을 들처보게 되거나 역시 반스구나 하며 다른 책도 보고 싶어지거나. 솔직히 반스는 너무도 유명해서 왜 이렇게 1, 2권으로 나눠 읽어야할만큼 길게 썼냐고 불평할 수도 없다. 덜 유명했더라면 그랬을까? 사실 1권만 보더라도 (조금 지루해서 그렇지)막힘없이 그 시대를 거의 완벽히 복원해 내고 있을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문투를 감안하더라도)문장 또한 유려하다. 이런 작품이 흠을 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난 앞서 엄살을 부려 보긴 했지만 2권을 읽긴 읽어야 할 것 같긴 하다. <예감은...>처럼 다시 읽기의 충동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스의 이 소설은 기꺼이 읽기의 수고로움과 모험을 감내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