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에게 사랑을 묻다 - 명사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위대한 작품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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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감춰진 삶의 이면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연애사는 단연 으뜸일 것이다. 보통은 예술가들이 연애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는 뭘까? 연애를 잘 하기 때문에 예술가가 된 것일까 아니면 예술을 하니까 연애도 자연스럽게 잘하게 된 것일까? 

알다시피 뮤즈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중 하나로 예술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사랑하는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애인에게 이것만큼 잘 어울리는 대명사가 또 있을까? 이 책은 예술가들의 사랑하는 사람과 그것이 예술에 미친 상관관계를 소개한 책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서 그 질투의 마음을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란 썼던 톨스토이. 확실히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고나 할까?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자 평생 다섯 곳의 전장을 누비며 총알 사이로 사진을 찍었던 로버트 카파. 그에게도 평생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지만 같은 사진 기자였기에 결혼을 하면 오히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는 연인의 말에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찰라에서 영원으로의 사랑으로 죽어서 이룬 신화 같은 사랑되어 버렸다.

또한 평생 빚을 갚기 위해 하루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써야했던 발자크. 그것이 위대한 문학혼을 낳았다고 우리는 단순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더 크고 발칙한 사연이 덧붙여져 있다.

평생 빚을 갚기 위해서만 글을 써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창작의 고통을 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더 많은 연인과의 염문과 향락을 위해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계의 나폴레옹이란 야심을 품게 만들었다. 

역시 발자크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그런 그에게 속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것은 그의 허세스러움과 몽상 같은 꿈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것이 남에게 환영을 받던 비난을 받던 사람은 자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실천했던 사람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빚에 쪼들린다고 불행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는 살면서 나름의 낭만을 즐겼던 사람이다. 사람은 확실히 사는 낭만을 알아야 살 수 있다.

보들레르는 또 어떤가? 평생 잔 뒤발과 폴로니 사바티에 두 여인을 사랑하면서 하나는 밤의 감성을, 다른 한쪽의 낮의 이성을 오가며 어찌보면 사랑의 지옥과 천국,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선과 악을 동시에 경험하며 사랑과 정염의 화신이 됐던 건 아닐까?

이 책은 이렇게 총 25명의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펼쳐보이고 있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저 25명 중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라는 점인데, 역사라는 게 거의 대부분 남자의 이야기고 보면 이렇게 엮은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다. 또 사랑이란 게 종종 벌이 꽃을 보고 달려 드는 형국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역사도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 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게 주가 되지 않던가?

이 책은 평이하긴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확실하게 집어주고 있어 고맙기도 하다. 예를들면 조루주 상드 같은 경우 우린 흔히 여자 카사노바로 모든 남자를 첫눈에 무력화시키는 마력을 지닌 사람으로 알지만, 책을 보면 그녀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보여진다. 그걸 알고나니 상드에게 정감이 간다.

하지만 뮤즈로서 가장 확실한 인물은 역시 루 살로메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지성 이를테면 니체나 프로이트를 자신의 발 앞에 무릎꿇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더구나 사랑은 하되 육체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연애 방정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상대는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을까? 그랬던 그녀가 릴케에게는 몸을 허락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릴케는 물론이고 그녀를 사랑한 사랑의 최후는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루 살로메야 말로 뮤즈의 진정한 마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본인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어쨌든 읽다보면, 예술하는 사람은 사랑을 잘할 거라는 환상이 이 책에서 다소 깨어지는 느낌이다. 연애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 사람의 성격에 달린 거지 예술을 하기 때문에 연애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뭔가를 할 줄 안다는 것 또는 그것으로 인해 유명해지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하기 때문에 연애도 잘할 것이라는 건 섣부른 판단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들은 사랑을 자신의 예술에 승화시킬 줄 안다는 면에서 확대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예술인이라고 사랑을 더 아름답고 성숙하게 할 거란 편견도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사랑과 예술에 대한 빠르고도 얕은 꿀팁을 제공해 준다. 그냥 교양서 정도로 읽어주면 좋을 것 같고, 오타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는 흠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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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6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 한 번도 안 피고, 반려자 한 사람만 사랑하다가 살다 간 예술가를 꼽으라면 이중섭, 마그리트, 백석, 천상병이 떠올려요. 이 사람들 말고 더 있을 텐데 평범함을 뛰어넘는 열정적인(?) 사랑을 하다 간 예술가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네요. ^^;;

stella.K 2015-06-16 18:1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예술가들 바람둥이일 것 같지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의외로 깨끗한 사람도 많아.
마루야마 겐지도 그렇고, 하루키도 있잖아. 박목월도 있고.ㅋ
난 작가도 성직자 못지않게 정결해야 한다고 봐.ㅋ

푸른기침 2015-06-1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가의 심정을 이해 못하고 오늘도 커피나 홀짝이고 있습니다. ㅎ

굿밤요~~~

stella.K 2015-06-19 11:55   좋아요 0 | URL
ㅎㅎ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어제 교회에서 모 대학 부속 병원에서 행정 일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언론에서 듣는 메르스와 실제로 겪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들어 보았다. 그런데 그게 참 의외로 생각보다 놀라웠다.

 

같은 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사람이 무슨 일 때문에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그 택시가 그쪽으론 가지 않는다며 승차 거부를 당했단다. 말이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거지 그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모 치킨 배달 업체도 그 병원엔 배달을 안 간다고 딱지를 놓고. 

격리된 환자들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냥 병원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주는 밥과 간식 먹고 지낸다고 한다.

 

확실히 도가 넘는 공포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승차 거부를 당하고 배달을 못한다면 이건 명백한 차별 아닌가? 또한 뭐 멀쩡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환자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을 격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에 가두는 건 좀 우습지 않나?   

 

그렇다면 사망자는 어떻게 볼 것인가? 그건 그전부터 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바이러스가 만나서 사망에 이른 것이지 순수하게 그것 때문에 사망자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한다(물론 그런 상황에서 오늘 건강했던 30대 남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옛적부터 바이러스는 항상 있어왔다. 메르스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제와 백신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과거에도 여러 바이러스가 있어왔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닦고 그래서 면역력이 좋아지면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이겨낸다고 한다.

 

지나치게 언론에서 공포를 조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것도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언론과 정치의 합작품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어제 한 소리 듣고 오긴했다. 그게 진짠지는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여파를 감당하기에 서민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장사가 안 되고 경제가 휘청거릴 정돈데 위에 계신 분들 적당히 좀 하셨으면 좋겠다. 자기네들 좋자고 나라를 망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한숨이 절로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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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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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그냥 붙은 말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이 소설은 추리로만 자신의 소설을 다 표현할 수 없어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본격소설을 쓴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역시 약간의 추리 기법이 여기서도 언뜻 보여진다. 

 

무엇보다 애거사 크리스트는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묘파하는 재주를 지닌 것 같다. 죽은 오빠대신 태어난 셜리. 동생이라 사랑하고 예뻐할 것 같지만 주인공 로라는 동생이 없어지길 바란다. 그래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몇번이나 지신이 동생을 놓쳐 바닥에 떨어트리는 상황을 상상한다. 이는 어쩌면 가인과 아벨 콤플렉스의 또 다른 변형처럼도 보인다.  

 

이 부분을 읽는데 솔직히 나 역시 약간의 마음의 찔림을 받았다. 솔직히 로라처럼 아기를 안다가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트리지는 않더라도 나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형제 또는 자매를 언덕 비탈에서 밀어 굴려버리던가, 방문 모서리 틈에 일부러 손가락을 끼게 만들어 다치게 만드는 일을 상상하거나 슬쩍 해 버리는 실수(?)를 누구든 하지 않나?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천사니 동심은 맑다는 둥 하는 말은 그렇게 되길 바라는 어른의 바람을 투사시킨 말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는 그 아이를 키운 부모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들도 어렸을 때 이런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사실 아기가 자라는 동안 부모는 가장 예민해져서 주의력이 최고조에 이를 것 같지만 의외로 그런 것에 취약하다. 비록 악의는 없다고 해도 은연 중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그것이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간에. 그럼 그것이 아이들에겐 비수가 되는 것이다. 어린 로라를 두고 그녀의 부모가 뭐라고 말하는지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라.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부모들은 언뜻언뜻 비교하는 말을 서슴없이 잘 한다. 무의식스럽게.

 

그러다 어떤 계기에 이런 아이들의 형제에 대한 적의에 가까운 질투가 사랑으로 바뀌는 일이 있다. 로라는 그 계기가 바로 화재였다. 화마 가운데에서 건져낸 내 동생! 위험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건져냈기에 내 동생은 미워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 줘야할 존재임을 깨닫는다. 거기엔 어떤 심리적 기저가 있는 것일까? 불에 데인 듯, 자신이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동생을 두고 그런 못된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이 없어져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은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양심이 불가항력적으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또 트라우마처럼 아니 어쩌면 원죄처럼 남아서 사랑인지 집착인지도 모를 사랑을 로라는 평생토록 동생에게 쏟아 붓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소설에선 그다지 비정상적이지는 않다. 충분히 인지 가능한 거고 로라도 이것을 경계해서 마음엔 들지 않지만 동생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하는 동생을 보며 셜리는 동생을 위해 모종의 결단을 내린다. 물론 결정적일 때. 그리고 그것은 그래야만 동생이 행복할 수 있다고 정당성을 부여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이야기는 성경에 입각한 인간의 원죄 의식과 정죄 의식을 애거서 크리스티 특유의 방법으로 풀어낸 이야기 같다. 또한 그것은 지나치게 의도적이거나 작위적이지도 않으며 특유의 통찰과 사유와 은유로 풀어간 가히 명작이다 싶다. 어찌보면 로라를 사랑하는 루엘린은 성경에 다윗의 죄악을 깨닫게 했던 나단 선지자는 아니었을까?

 

인간은 어느 때 가장 교만해지는가? 우린 흔히 뭔가를 할 줄 알고, 인정 받을 때 교만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 교만의 최고 절정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다. 원래 교만은 인간이 신과 같아 질려고 하는 마음을 일컬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 주는 것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인가? 그게 아니라 그렇게 해 주는 순간 그 마음이 이미 신의 마음과 같아져서 바로 그것이 교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또 소설에서 한 마디로 잘 표현되어 있다. "왜 우리는 자기가 남들에게 최선이 뭔지 안다고 생각할까요?"(306p)라고. 그러고 보면 애거사의 사유의 깊이는 가히 참 놀랍다 싶다. 어떻게 그것을 이렇게도 명징하게 서술할 수 있을까? 

 

나는 앞의 2부까지는 로라와 셜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지다 왜 갑자기 3부에서 루엘린이 갑자기 나오는 것인지 다소 뜬금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봐야 그 내용을 다 알 수 있는 그녀의 영리한 서술 방식에 새삼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사랑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디든 누구든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이 사랑이 참 쉽지가 않다. 사랑은 받을 때 보다 줄 때가 더 좋은 거라고 말하지만 주는 사랑에도 함정은 있다. 

 

원래 이 책의 원제는 '짐 The Bunden'이라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우리의 반감이라는 짐, 미움이라는 짐, 그리고 사랑이라는 짐 "을 신이 짊어진다고 말한다. 또 짧은 오솔길이라 생각하고 들어선 숲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모르며 밖으로 나가는 지점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발길을 돌릴지 계속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일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의미있는 말이다. 

 

인간이 다루는 모든 이야기는 반면교사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랑 결핍이거나 사랑 과잉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세상에서 이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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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0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문학으로서의 크리스티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이군요. 출판사가 번역본 제목을 잘 지었어요. ^^

stella.K 2015-06-04 17:1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 애거사 여사가 추리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사유가 나름 깊더군.
난 아직 여사님의 책을 못 읽어 봤는데 몇 권 더 읽고 싶어졌어.^^

페크pek0501 2015-06-0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아주 오래전 이 작가의 추리소설에 반한 적이 있는 것 같고(기억이 가물가물~)
(이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티브이에서 많이 보기도 했죠. 그땐 이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많이 보여 줬던 것 같아요.
제가 우리 큰애한테 이 작가의 작품으로 영어 공부를 하라고 한 적도 있어요.
단문이 많고 좋은 문장이 많은 것 같아서요.

stella.K 2015-06-06 11: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ㅎ
예전에 많이 했었죠. 특히 오리엔트 특급이란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했었는데 전 그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안나요.
아마 안 봤을 것 같다는..ㅠ

2015-06-06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6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기침 2015-06-1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문판 전집을 부지런히 읽던 아주 오래전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ㅎ
삶...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고도 좋은 하루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5-06-11 13:08   좋아요 0 | URL
헉, 푸른기침님!
이렇게 홀연히 제 서재에 나타나 주시다뇨...
놀라고 반가울 다름입니다. 잘 지내시죠?
제가 이래서 서재질을 놓을 수 없나 봅니다.ㅠㅠ
님도 좋고도 좋은 하루하루 보내세요.
가끔 나타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푸른기침 2015-06-11 17:29   좋아요 0 | URL
서재질 놓으시면 미워할 겁니다. ㅎ
가끔씩 이런 곳에 마실 오는 재미는 있어야죠.
자주 나타난다고 성가셔 하지는 마세요.
봄날은 가고, 또 가나봅니다.
 

<실종느와르 M>이 끝났다.

오랫동안 수사 추리물을 본적이 없어서일까? 이 장르에 대한 비교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난 이 드라마를 매회 감탄하면서 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고 정교한지. 특히 무대 세트가 마음에 들고, 음악 역시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하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왔던 셜록 시리즈 못지 않다는 느낌도 들고. 적어도 그 시리즈를 연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까지 김강우의 매력이 뭔지 잘 몰랐는데 여기선 정말 괜찮게 나온다. 약간의 날티를 풍기는 박희순과의 케미도 나름 나쁘지 않다.

 

 

 

끝나더라도 왠지 아주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시즌 2를 할 건지 모르겠다. 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이 드라마 의와로 시청률이 저조했다고 한다. 좋은 드라마는 시청자가 먼저 아는 법인데 이렇게 괜찮은 드라마가 저조하다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MBC 휴먼 다큐 사랑>

이 프로를 항상 보는 건 아니다. 어쩌다 채널을 놀리니 눈에 띄어 본게 지난 번 안현수 선수를 다룬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편과 어제 '진실이 엄마II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두 편을 보게 되었다. 둘 다 보면서 공통적인 건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못 됐다는 거다.(물론 착하고 선한 사람도 많겠지. 그런 사람 빼고) 남의 앞길 축복은 못해 줄 망정 막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빙상계의 문제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러시아로 이적한 안현수를 견제해 러시아 당국에 안 선수를 받아주지 말라고 압력을 넣다니 이놈의 나라에서 연좌제의 망령은 언제나 사라지려나 싶다. 그뿐인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고 최진실의 두 자녀들. 그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만인의 연인이라던 최진실이 그렇게 간 것도 가슴이 아픈데 아이들에게까지 악플을 쏟아 붓는 벌레 같은 인간들이 있다는 게 화가난다. 그것 때문에 그 둘은 미국 유학까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아픔을 딛고 밝게 자라 준 것만도 대견하고 기특하지 않은가?

난 그 아이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 아이들도 축복 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나는 그 아이들이 인생에서 정말 좋은 스승과 멘토를 만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누군지 모르지만 악플이나 달아대서 남의 앞길이나 막는 그런 인간 해충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ㅅㅅㅋ는 뭐하나 모르겠다. 그런 해충들 박멸 안하고.

 

<인간극장> 이번 주 분.

평소 이 프로를 잘 보지는 않는데 이번 주는 좀 볼 일이 생겼다. 

시인 고진하의 삶이 소개되서 말이지.

특별히 아는 시인은 아니지만 난 이런 문인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

제목이 '흔하고 귀하게 잡처처럼'인가 하던거 같은데 시인 고진하 부부의 삶은 소박하지만 멋이 있다. 한 달에 100만원 가지고 살지만 가난하다고 척박하게만 사는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소소한 것에서 멋을 즐길 줄 아는 그들의 서로 다르면서도 소꿉놀이 같은 삶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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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6-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까지 악플을 쓰다니... 마음 아픈 일이네요. 무슨 죄가 있다고...

제가 시청한 게 하나도 없네요. 채널이 많다 보니 다 볼 수 없어서 친구들과 얘기할 때도
공통으로 시청한 걸 찾기 힘들 정도예요. 다채널 시대라서 좋긴 하지만.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의 멋. 이것을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stella.K 2015-06-03 13:19   좋아요 0 | URL
오, 언니! 반가워요.
역시 언니는 결정적일 때 나타나는 저의 수호천사 같아요. ㅎㅎ

그렇죠? 그 아이들이 당하는 슬픔이 얼마만한 건지를 알면
그렇게 쉽게 잔인하게 말 못할 텐데 이건 쓰레기 수준이 아니라
해충인 거죠. 인간 해충!!
특히 그 딸은 참 밝은 성격이어요. 웃을 때 얼굴이 정말 귀엽구요. 함 보세요.

그래도 언니한텐 저 인간극장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아는 지인에게 가르쳐 줬어요. 꼭 보라고.
이쪽 방면을 너무 좋아하거든요.흐흐
 
상의원 : 초회 한정판 - 스페셜 스토리북(38p) + 엽서(4EA) + 아웃케이스
이원석 감독, 한석규 외 출연 / 해리슨 앤 컴퍼니(H&Co.)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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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아마데우스>와 비견될만 하다. 단지 그 영화는 살리에르의 냉혹하고도 가차없는 시전이 느껴지지만 이 영화속 또 다른 살리에르라 할 수 있는 조돌석의 한석규는 좀 더 인간적이다.

 

예술을 호구를 삼고 마침내 장인이 된 사람은 예술 때문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사람은 밥의 문제가 해결이 되면 예술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쫓는다. 그래서 예술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가 없다. 하지만 예술로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반드시 일을 즐겨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짓밟게 되어 있다. 왜? 권력이 최고의 자리에 데려다 주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사람의 예술의 진정한 경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질투와 시기를 하며 어떻게든 그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돌석은 어찌보면 정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예술의 진정한 경지에 오른 공진(고수 분)을 질투할망정 부당하게 대하거나 모욕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가끔 세상은 2인자 또는 패배자는 기억하지 않는다며 세상을 싸움판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가끔 이 영화처럼 오히려 진정한 1인자였던 공진은 묻히고,  오히려 2인자였던 조돌석을 기억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것이 어찌보면 이것이 영화 <아마데우스>와 또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살리에르는 영원한 2인자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지만 모짜르트는 영원한 1인자로 후세에 남지 않는가?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1인자는 정말 그렇게 진짜 1인자를 짓밟고 올라간 2인자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권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 같지만 결국 추함과 아름다움의 대결이라면서 말이다.  

 

그것의 차이는 조돌석은 권력을 탐했기에 가능하지만 공진은 권력을 탐하지 않았기에 후세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가설 때문이기도 하다. 공진은 사랑만을 탐했을 뿐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면 조돌석처럼 권력을 탐하는 것이 더 현명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조돌석과 함께 공진도 후세가 기억하는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어떤 것이든 그들의 말로는 쓸쓸하고, 사랑과 권력 그건 선택의 문제지 사랑이 권력 보다 숭고하고 이름다운지는 결국 보는 사람의 몫인 것 같다. 

 

언제나 그렇지만 예술을 완성시키는 것은 뮤즈다. 누군가 사랑하는 대상이 있지 않으면 예술은 완성될 수 없다. 왕비를 사랑하는 공진의 마음이 동시에 그의 예술혼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예술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만 대부분 사랑은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절절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소재도 독특하지만 아름다움에도 색깔이 있고 격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잘 보여준 잘 보여준 영화가 아닌가 싶다. 섹시하고 탐스러운 것도 아름다움의 한 종류지만 결국 우아함과 청초함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얼음 같이 찬 왕의 마음도 녹일만한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 왕은 스스로가 갖는 열등감과 질투 때문에 끝내 왕비와 공진을 용서하지 못한다. 결국 아름다움은 무위의 마음을 가졌을 때야 비로소 온전히 볼 수 있는 것임을 조돌석과 왕을 보면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영화를 보면 정말 조선 시대 의복이 어떻게 변천해 갔을까가 궁금해진다. 그 시대에도 아름다움과 미풍양속이 대립되고 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데 과연 그 기준이 어떤한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또한 조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도 볼만하고 특히 커트로 넘겨지는 궁녀들의 왕을 유혹하기 위한 패션쇼와 그것이 성공했을 때의 짧지만 강렬한 유머 코드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빛나게 한 건 역시 조돌석의 한석규와 이공진 역의 고수의 연기 대결인데 나는 고수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 줄은 예전엔 몰랐다. 이 영화에선 가히 한석규를 압도할만 하다. 

나 개인적으로 근래에 본 영화에 별 네개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 영화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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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0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를 안 봐서 심심하네요.. ㅎㅎ

stella.K 2015-06-01 18:31   좋아요 0 | URL
제 글이요...? 흥! 삐짐입니다.;;
이거 드라마 아니고 영화거든요...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