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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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온하다. 이런 책을 읽기는 또 얼마 만인가? 아니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읽어 온 책들은 얼마나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합리적인 이상을 꿈꾸는 책들이었던가. 그야말로 승자의 언어로 장식된 메이저급 책인지도 모른다.

러나 이 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소외되고, 삐딱하며,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옹호까지 하는 흔치 않은 책이다. 그래서 마이너적이기도 하다.

나는 새삼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책이 일반인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를 회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세상이 원하는 언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지향적이며, 나의 욕망을 자극하며 업그레이드해줄 만한 언어들을 찾고 공유하길 원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나 성공한 사람의 회고록이 그토록이나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과 전혀 반대 선상에 놓여있다. 그러니 이런 책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 책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좋았고,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사람의 틀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말하려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분법이 아닌 다양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옳고 그름만을 얘기하려고 하면 세상은 그만큼 좁게 보인다. 하지만 다양함을 인정하고 보면 세상은 그만큼 넓게 볼 수가 있다.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가 더 인상적이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다던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이 생각이 났다. 우리의 사회가 아이들로 하여금 빨리 어른이 되라고 하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 어린아이 이길 포기하지 않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빨리 어른이 돼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늘 미래의 어른의 삶에 저당잡혀 있다. 그들의 외모는 어른의 그것을 좇아 하면서 행동은 여전히 어린아이다. 그러면서 정신은 늘 어른이길 강요받고 있으니 그 아이는 정말 아이인가 괴물인가.
 
본문 1장의 '사라지는 아이들을 위하여'를 읽고 있으니 새삼 나도 반항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그 어린 시절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럼으로 얼마나 빨리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편입되어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나에게 어린 시절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 시절 나는 허무주의자가 되어 세상은 살아 뭐하나 시큰둥 했을 뿐이지 세상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지 못했다. 그저 그 시절 내가 한 거라곤 학교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것과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책은 1세대 펑크록 밴드 라몬스의 <I Don't Wanna Grow Up>를 소개하고 있다. 성장을 거부하는 노래다. 가사에 보면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잖아'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이기는 하다. 사람의 나이가 몇이든 그 나이다워져야 하는데 그러지가 못하다. 그것은 부모 탓인 경우가 많은데 혹시라도 내 아이가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늦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나은 행동 패턴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것을 알았을 때의 억울함, 분노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록이 대부분 다 그렇듯 분노와 반항을 표현하기만 할 뿐 새로운 이상향은 제시하지 못한다.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라면서 어른에 반항하고 순간의 쾌락만을 강조한다. 그것은 또 허무주의를 낳았고 사람들을 같은 길로 몰아갔다. 발상은 좋으나 그 모습은 기성세대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본 건 영국의 여성 아티스트 사라 루카스다. 그녀는 네 살 때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아홉 살부터 하루 두 갑 정도의 담배를 피웠던 헤비 스모커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야말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온갖 비행을 일삼고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이 이대로 끝장 나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LP 판을 모두 팔아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을 여행하고, 우연히 미술학교에 들러본 것이 계기가 되어 그 길로 아티스트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녀가 들어간 골드스미스 칼리지란 곳은 당대 유명한 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서 '잘 그리기 보다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그녀는 무엇보다 과일, 야채, 계란 프라이를 가지고 성기를 암시하는 표현을 하기로 유명한데, 평생 애증 했을 담배를 가지고도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 보았다. 역시 독특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으며, 개천에서도 용 나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우린 담배가 백해무익한 것으로서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는데 사라 루카스에겐 구원의 매개물이 되었으니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는 사라 루카스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려 하거든 피우지 말라고 훈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 주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그것이 그 아이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그 이름만 들어도 짠하다. 당대 촉망받던 시인이었지만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어갔다. 그녀는 아버지를 개새끼라며 남자를 증오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로부터 보호받기 원했던 여자들의 울분을 과감하게 떨쳐버렸다.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을 해석하면서 그녀가 단순히 힘없고 쓸쓸하게 죽어간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 냈다.

또한 아방가르드 한 김언희의 시는 실비아 플라스가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폭발하듯 분출하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확실히 파격적이며 전복적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것도 예술인가 싶게 아름답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의식을 일깨우고 오히려 분노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길들여진 의식을 깨우는 책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다소 읽기에는 좀 쉽지 않은 느낌이다.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요즘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다른 것을 주장하며, 다른 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비교적 성실하며 진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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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작품 모두 사라 루카스라는 아티스트가 만든 거죠? 첫 번째 사진의 작품이 성적 관계로 만나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군요.

stella.K 2017-05-26 12:03   좋아요 0 | URL
책에 의하면 사라 루카스의 작품 경향이 그렇긴 하지만
외설스럽거나 추잡하지 않다는 거야.
상상력이 좋은 것 같아.
그녀도 그녀지만 그녀가 나왔다던 학교가 더 궁금해지더군.
그런대라면 나도 우등생이 되지 않았을까?ㅋㅋ

페크pek0501 2017-05-2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웬일인지 제 장바구니에 있어요.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어른인 척하며 살다가 죽을 것 같다는... ㅋ

stella.K 2017-05-26 12:05   좋아요 0 | URL
ㅎㅎ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남이 어른답지 못하면 그건 또 분개한다는 거죠.ㅠ
이 책 좀 어렵긴 하지만 나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아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아웃사이더에 관심이 많거든요.
언니도 그쪽 취향이시라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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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1992년도 작이다. 그때는 내가 에로 영화는 좀 질색팔색했던 편이라 감히 거들떠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이런 영화도 볼 생각도 다하고 나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했던 것도 그동안 즐기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에로 영화를 봐 온 탓 아니겠는가? 그래봐야 침대에서 뒹구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세상에 못 봐 줄 야동은 없을 것도 같다.

 

좀 거시기 한 것은, 어제 다운 받아놓고 졸려서 못 보고 아침에 말짱한 정신으로 봤다. 식전 댓바람부터 에로 영화 보기는 머리털 나서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이때가 아니면 따로 본다는 것도 귀찮은 것 같아 마음 먹었을 때 보자 했다. 방 바깥에선 하필 엄마가 일찍 일어나 계셨다. 평소 땐 그 시간 깨지도 않더만. 영화속 두 남녀의 신음 소리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신경이 안 쓰인 건 아니지만 노화로 인해 엄마의 청력도 예전만 같지 않으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영화 참 불온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안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인종차별이 심했을 옛 시절 동양의 남자와 서양의 여자가 사랑을 했다는 것도 심상치 않은데, 나이 30의 중국남자와 나이를 속인 15살 짜리 프랑스 소녀와의 사랑은 또 얼마나 파격적인가?

 

       

이 영화는 그런 질문도 가능하다. 사랑 이후에 어느 쪽이 사랑에 대한 기억을 더 강하게 갖게 될까하는 질문.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 보다는 더 강하게 가질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영화는 여성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 다분히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 물론 중국 남자와 프랑스 여자(아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별로 그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감독은 동양적인 것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갖게 만든다. 예를 들면 중국남자는 그저 돈만 많을 뿐이지 관습에 매어 원치 않은 결혼을 해야 한다는 나약한 인간으로 설정했다. 더구나 아편쟁이 아버지 앞에서는 설설 기기까지 한다. 또한 남자의 아버지를 통해 중국 사람들은 돈은 많은데 아편이나 즐기는 미개한 민족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중에 남자는 자기 아버지와 같이 절망속에 이편을 하지 않는가.

 

이런 남자를 보고 여자 아이는 결혼해서도 만나자고 꼬드긴다. 듣기에 따라선 너는 너의 나라 관습대로 살아. 하지만 간간히 우리 서양 문명을 즐기라고 말하는 것도 같다. 더구나 베트남이 어떤 나란가? 한때는 프랑스의 식민지 아니었나? 홈그라운드의 잇점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 중간중간 프랑스 여자아이의 가족들이 얼마나 이 중국남자를 조롱하고 무시하는가? 하다못해 여자아이의 엄마가 사랑했냐고 물었을 때 그냥 돈 때문에 상대했을 뿐이라고 하자 크게 노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건 소녀의 가정이 갖고 있는 특수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남자를 돈이나 뜯는 상대 외에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우월한 민족의 창녀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여자들 중엔 남편이 술집 여자 상대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래봤자 내 남편 스트레스 푸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나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건 어떤 여자에게든 정을 주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이치인 셈인 것이다. 남녀의 성역할만 바뀌었다뿐.

 

서양문명이 동양의 그것 보다 우월하다는 건 엔딩장면에서도 또 한 번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세월이 흘러 소녀는 어느새 중년의 여인이 되고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남자가 전화가 와서 너와의 사랑을 잊지 않고 있으며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말하곤 끊었다. 그런 것으로 봐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한다는 그 속설에 쐐기를 밖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인종과 문명이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기도 했으니 그렇게도 읽혀진다는 것이다.    

 

연출이나 촬영이 나름 좋아 보이긴 한다. 무엇보다 감독이 편집증이 있나 싶게 섹스 장면이 너무 노골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진지하고 나름 아름답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푸는 방식은 다소 미진하고 불온해 보인다. 소설은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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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와 <컬러 오브 나이트>로 제인 마치는 섹스 심벌이 될 줄 알았는데, 그 후로 하락세였던 걸로 압니다. <컬러 오브 나이트>에서의 베드신이 <연인>보다 수위가 높아요.

stella.K 2017-05-24 20:26   좋아요 0 | URL
헉, 정말...? <연인> 대단하던데...
여자가 보통이 아니네.
<컬러 오브 나이트>는 별로 볼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뒤라스의 원작을 영화화 한 거라 본 거였거든.
음악이 많이 듣던 거였는데 이 영화 주제 음악이더군.
좋더라고.^^

페크pek0501 2017-05-25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걸 민음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어요. 책은 별로 노골적인 성 장면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작가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러 밑줄을 친 곳도 있지만 두 번 읽을 책으론 생각하진 않죠. 술술 읽히지 않았거든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읽어야 해서 집중력을 요하고, 나라마다 다른 문화의 차이라는 것도 있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호기심으로 읽었어요. 안 읽었다면 계속 읽어야 할 작품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굳이 책을 추천하진 않겠습니다.ㅋ)

stella.K 2017-05-26 11:5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원작이 어렵다는 말을 듣긴 들었어요.
프랑스 문학이 쉽게 읽히진 않죠.
역시 마음만 있다뿐 여전히 읽게될 것 같지는 않네요.^^
 

 

지금까지 난 글을 쓰는 두 가지 방법을 얘기했다(하나는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써 보는 방법. 문화센터나 창작교실 같은 곳에 등록하는 것).  세 번째 방법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세 번째의 방법을 말하기 전에 나의 이야기를 잠시해 볼까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전에 여기에 잠깐 잠깐씩 얘기하기도 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얘기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무렵 작가의 꿈을 자연스럽게 갖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별다른 재주는 없었고 그나마 글 쓰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제도권 그러니까 무슨 백일장이나 글짓기 대회에서 입선을 해봤다던가, 하다못해 교지에 내 글이 실리는 그런 영광 한 번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늘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꿈이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서 '너 글 좀 쓰네.'라는 말을 가끔씩 듣기도 했다. (그런 내가 제도권에서 놀지 못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문학 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고, 문학 소년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그런 나의 꿈도 한때였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나의 인생 어느 한때 작가의 꿈을 버렸던 때가 있었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작가의 꿈을 접었는데, 하나는 어느 날 내가 어떤 책이든 한 번 이상을 읽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다른 독자도 나와 같지 않을까? 독자들이 이 한 번 읽을까 말까한 책을 내가 작가가 돼서 쓴다는 게 별로 의미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또 하나는, 당시는 민주화 항쟁이 극에 달하던 때로 한다 하는 작가들은 하나 같이 참여 문학을 했다. 나는 그들이 왜 참여 문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단지 이제 문학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방황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틈엔가 나의 의식에 훅하고 들어왔던 게 심리학이었다. 학교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공부를 잘 해 본적이 없으면서도 심리학 교수가 되는 건 어떨까 꿈꾸리만큼 심리학을 좋아했다. 하지만 난 엉뚱하게도 신학교를 들어갔고 대신 목회 상담학쪽으로 졸업 논문을 쓰고 간신히 졸업을 했다.

 

그 시절 이 분야가 너무 좋아서 당시 다니던 교회 청소년 상담을 자원 봉사하기도 했는데 진짜 상담을 했던 건 아니고 그냥 허울만 좋은 상담원 노릇만 했다. 졸업하고는 (지금의) 교회를 옮겼는데 이곳엔 따로 청소년 상담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그것도 그 어렵다던 고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다니는 부서에. (지금은 그게 중2로 낮아졌지만 내가 교사를 하던 시절은 그랬다.)  

 

2년 정도 교사를 해 보니 나는 가르치는데는 젬병이라는 것을 알고 그만 접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통 교사를 안하겠다고 하면 주일학교는 적당히 밀당을 하다가 놔주는 것이 관례인데 뭐 때문인지 당시 담당이셨던 목사님이 나를 놔주지 않는 거였다. 나중엔 너무 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전화대고 찔찔 울기까지 했는데 그러면서도 모르긴 해도 목사님이 이러실 땐 뭔가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목사님이 1년을 제안하시길래 못 이기는 척 그러겠다고 하곤 1년을 더 주일학교에 있기로 했다.

 

어찌보면 난 그 2년 동안 나름 뭔가를 열심히(하는 척) 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으니 아이들과 주보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고, 집단상담에서 인간관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으니 목사님의 입장에선 내가 뭔가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꿇기로 했던 그 1년이 나에겐 엄청난 변화의 계기가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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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교내 글쓰기 대회 입상은 여러 번 했지만, 전국구나 지역구 백일장 대회에 입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stella.K 2017-05-24 14:14   좋아요 0 | URL
ㅎㅎ 이글 어제 별로 반응이 없어서 누가 댓글 다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네가 젤 먼저 달았네. 고마워.
사실 6월에 강연 하나가 잡힌 게 있어서 내용을 정리해 보고 있는 중이야.
와, 근데 교내가 어디냐?
말했다시피 난 교지에도 실리지 못했어.
그래서 글을 차분하게 잘 쓰시는구만.^^

cyrus 2017-05-24 14:28   좋아요 0 | URL
‘교내‘라면 초ᆞ중학교입니다. 초등학생 때 제일 자신있는 글짓기 대회가 독후감 대회였어요. 그때부터 리뷰 ᆞ독후감 쓰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

stella.K 2017-05-24 14:39   좋아요 0 | URL
그렇군.^^

페크pek0501 2017-05-23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계신 건가요?

‘참여 문학‘하면 저도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한때 소설에 국가를 상대로 데모하는 장면이라도 꼭 들어가야 하던 때가 있었죠. 현실 반영이라는 차원에서 그랬다기보다 정치적인 게 들어가야 소설답다고 인식되던 때였던 것 같아요. 무슨 유행처럼 모든 소설에 정치와 관련한 글이 들어갔어요. 그런 게 들어가지 않으면 수준 이하로 평가되곤 했었죠.

나중에 알았죠. 꼭 정치적인 게 들어가야 좋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지금도 심리학에 관심 많아서 신간이 나오면 자세히 검색해 본답니다.

stella.K 2017-05-24 14:20   좋아요 0 | URL
아뇨. 저는 가르치는 게 젬병이라 벌써 그만뒀습니다.
제가 그 시절 주일학교 연장 근무한 것도 가르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어요.

그죠? 참여 문학이 그런 정치적인 것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 시절 문학이 죽었다고 보는 저의 시각이 틀린 것만도 아니죠?

예전에 심리학이 좋았을 때는 정말 신천지를 보는 것 같아 좋았는데
지금은 좀 시큰둥해요. 사람을 너무 수치화하고 정형화하는 것 같아서 좀...ㅠ
 
캡틴 필립스
폴 그린그래스 감독, 톰 행크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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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이 높길래 기대하고 본 영환데 이런 인종차별적이며, 백인우월주의 영화는 근래 들어 오랜만에 본다. 뭐 허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다 그렇지. 이런 얘기 가급적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영화는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게 만든다.

 

내가 기대했던 건 그런 부조리한 위기 상황에서 좀 더 합리적이면서 인간미 넘치는 주인공 의 기지를 기대했던 건데 영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런데도 그저 끝까지 영웅이라고 우기고 싶어하는 남성주의 영화일 뿐이다.

 

물론 위기 상황을 고조시키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연출은 그런대로 봐 줄만은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전혀 반대 상황에서 놓고 보라. 백인은 늘 우월하고 정의의 사도이며 흑인은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악의 상징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게 요즘 시대에도 먹힌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백인의 입장에선 그들이 단순히 해적일 수도 있겠지만 소말리아인들에겐 그들이 영웅일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들이 왜 해적이 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어떠한 설명도 없다. 그저 백인의 입장에선 처단해야 할 악의 축일 뿐이다. 

 

비주얼도 보라. 소말리아 흑인은 비쩍 마르고 심줄만 남은 검은 말처럼도 보인다. 눈은 왜 그리도 크고 번쩍거리는지. 그런 설정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호감을 갖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비해 주인공 필립스 역을 맡은 톰 헹크스를 보라. 늙어 보이면서 그에 맞게 다소 굼떠보이까지 한다. 관객들은 당연 톰 헹크스에게 마음이 기울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대조가 탐착지 않다.

 

나중에 해적들은 발광을 하다 최후를 맞는데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마땅치 않다. 정의가 이기는 영화가 되어야지 강자가 이기는 영화가 재미있던가? 해적 전원은 사살되었는데 인질로 잡힌 소말리아 선원 1명은 나중에 미국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복역을 하게 된다. 필립스는 치료 후 다시 항해를 하고. 왜 소말리아인을 미국법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강자의 나라라면 적선하는 의미에서라도 한 번은 자기네 나라로 돌려 보내줄 법도 하지 않을까?  물론 소말리아야 워낙 빈국이니 돈을 주고 그 인질을 빼내 올 엄두도 나지 않겠지.

 

배안에서 서로 싸우는 난장판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남자 아이들 어렸을 때 해 본 전쟁놀이 커서도 어디 안 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세상 돌아가는 판을 남자들에게만 맡길 것인가 보는 내내 씁쓸했다.   

                                                              ---------------------------------------------

                                                            우리나라에도 소말리아에서 배를 납치했던

납치범이 수감중이란다.
그 나라는 교화 안되는 미개국인가 할 것도 같다.

자국의 영화를 위해 작고 힘없는 나라를

그런 이미지로 사용하는 건 별로 옳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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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2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5-22 17:38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그게 애매하긴 하겠군요.ㅠ
 

자신이 정말로 글을 쓰고 싶다면 이건 적극 추천할만 하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혼자하는 작업이긴 하지만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은 혼자 쓰기란 쉽지 않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보고 글을 쓴다는 것도(과연 있을까 모르겠다. 이건 참고서 같은 거 아니겠는가?) 여간 독한 마음 먹지 않으면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가장 효율적인 건 문화센터나 창작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 등록하고, 워크숍 작품을 써서 내고 합평을 받아 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합평을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받아서 좋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 의기소침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소리를 듣건  안 듣건 간에 그것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나 같은 경우 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원래부터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참가한 워크숍마다(물론 몇 번 되지도 않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가장 마지막 참가한 워크숍 작품에서 참혹한 혹평을 받았다. 어찌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고, 결국 눈물이 질금 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나놓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해서 나의 좋은 글쓰기 위한 노력이나 관심이 조금도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자양분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말하려 하는 건, 그렇게 좋은 강좌를 들을뿐만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정보도 공유하며 좋은 경험을 쌓아 나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호회 활동도 권유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 기간 동안만 가능할 것이다. 결국 글쓰기란 혼자하는 작업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내가 다닌 마지막 학원에서 함께 들었던 한 수강생은 그전에도 몇 번의 수강 경험이 있었고, 이번에도 또 다시 수강하는 거란다. 그러면서 그는 남의 워크숍 작품은 열심히 읽고 리뷰는 하면서 정작 자신의 작품은 낸 적이 없으며 따라서 누구에게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사람이 나중에 굉장한 작품을 낼 수도 있고, 시간 있고, 돈 있어 그런다는데 뭐랄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것인가 의아스럽기도 했다. 내가 그 학원과 안녕을 고했을 때 듣기론 그 수강생은 다음 번에도 수강 신청을 했다나 할 거라나. 

 

물론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 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어느 한 군데 자신을 종속시키고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해 일견 안쓰럽기도 했다.        

 

지금까지 난 좋은 글쓰기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과 나의 생각들을 얘기했을 뿐이다.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각자가 알아서 찾아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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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5-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stella.K 님 잘 모릅니다. 블로그 글도 거의 못 읽었어요. 하지만 stella.K 님 화통한 게 좋습니다. 뭐랄까 여장부 같다고 할까요. 저 같은 쫌팽이는 당당하게 자기 의견 · 속내를 털어놓는 화통한 성품이 부럽기만 합니다.

stella.K 2017-05-20 19:10   좋아요 0 | URL
ㅎㅎ 아유, 왜 그러십니까? 쑥스럽게...
뭐 가끔 그런 소리도 듣긴 합니다만 그런 사람이
취약한 것도 많죠. 뒤통수도 많이 맞고.ㅋㅋ

저도 님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만,
섬세하시고, 꼼꼼하신 분 같습니다.
저에겐 별로 없는 성격이기도 하죠.
앞으로 한 수 배우겠습니다.^^

cyrus 2017-05-21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가를 받을 때 적당한 비판(퇴고해야 할 부분을 알리는 것)은 받을만 해요. 그런데 비판이 너무 많은 것도 안 좋아요. 상대방이 자신의 글을 퇴고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일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글쓴이와 친해지게 됐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하는 말이 제가 자꾸 퇴고 지적질해서 고칠 때마다 괴롭고, 글 쓰려는 의지마저 줄어들어서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나친 지적이 상대방의 능력 향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행히 그 친구는 지금 기자가 되었어요.

stella.K 2017-05-22 14:52   좋아요 1 | URL
와우, 누군지 좋은 친구를 만난 거네.
이 지적질이라는 게 사람이 받을만할 때 해야
서로 좋은 거지 상대가 그걸 받아들일만한 자세가
안 돼 있으면 못하는 거야.
그런데 지절질 하는 사람도 그래. 이 사람이 정말 상대방의 글에
대해 좋은 의도라면 모르겠는데
골탕 먹일려고 의도적으로 까는 사람 있거든. 그럼 정말 기분 나쁘지.
어떻든 둘 다 그 산맥을 넘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
그걸 못 이겨내면 글 쓰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