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난 글을 쓰는 두 가지 방법을 얘기했다(하나는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써 보는 방법. 문화센터나 창작교실 같은 곳에 등록하는 것). 세 번째 방법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세 번째의 방법을 말하기 전에 나의 이야기를 잠시해 볼까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전에 여기에 잠깐 잠깐씩 얘기하기도 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얘기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무렵 작가의 꿈을 자연스럽게 갖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별다른 재주는 없었고 그나마 글 쓰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제도권 그러니까 무슨 백일장이나 글짓기 대회에서 입선을 해봤다던가, 하다못해 교지에 내 글이 실리는 그런 영광 한 번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늘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꿈이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서 '너 글 좀 쓰네.'라는 말을 가끔씩 듣기도 했다. (그런 내가 제도권에서 놀지 못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문학 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고, 문학 소년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그런 나의 꿈도 한때였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나의 인생 어느 한때 작가의 꿈을 버렸던 때가 있었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작가의 꿈을 접었는데, 하나는 어느 날 내가 어떤 책이든 한 번 이상을 읽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다른 독자도 나와 같지 않을까? 독자들이 이 한 번 읽을까 말까한 책을 내가 작가가 돼서 쓴다는 게 별로 의미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또 하나는, 당시는 민주화 항쟁이 극에 달하던 때로 한다 하는 작가들은 하나 같이 참여 문학을 했다. 나는 그들이 왜 참여 문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단지 이제 문학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방황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틈엔가 나의 의식에 훅하고 들어왔던 게 심리학이었다. 학교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공부를 잘 해 본적이 없으면서도 심리학 교수가 되는 건 어떨까 꿈꾸리만큼 심리학을 좋아했다. 하지만 난 엉뚱하게도 신학교를 들어갔고 대신 목회 상담학쪽으로 졸업 논문을 쓰고 간신히 졸업을 했다.
그 시절 이 분야가 너무 좋아서 당시 다니던 교회 청소년 상담을 자원 봉사하기도 했는데 진짜 상담을 했던 건 아니고 그냥 허울만 좋은 상담원 노릇만 했다. 졸업하고는 (지금의) 교회를 옮겼는데 이곳엔 따로 청소년 상담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그것도 그 어렵다던 고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다니는 부서에. (지금은 그게 중2로 낮아졌지만 내가 교사를 하던 시절은 그랬다.)
2년 정도 교사를 해 보니 나는 가르치는데는 젬병이라는 것을 알고 그만 접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통 교사를 안하겠다고 하면 주일학교는 적당히 밀당을 하다가 놔주는 것이 관례인데 뭐 때문인지 당시 담당이셨던 목사님이 나를 놔주지 않는 거였다. 나중엔 너무 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전화대고 찔찔 울기까지 했는데 그러면서도 모르긴 해도 목사님이 이러실 땐 뭔가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목사님이 1년을 제안하시길래 못 이기는 척 그러겠다고 하곤 1년을 더 주일학교에 있기로 했다.
어찌보면 난 그 2년 동안 나름 뭔가를 열심히(하는 척) 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으니 아이들과 주보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고, 집단상담에서 인간관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으니 목사님의 입장에선 내가 뭔가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꿇기로 했던 그 1년이 나에겐 엄청난 변화의 계기가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