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aomi > 김현태씨의 '혼자는 외롭고 둘은 그립다'

고백은 늘 서툴기 마련입니다.

아무말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그저,도망치듯 뒤돌아 왔다고 해서

속상해 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모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완전하게

표현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겁니다.

저 멀리서 언제나 뒷모습만 흠모하다가

정녕 그 사람의 앞에 서면,

왠지 그 사람이 낯설기에 순간,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고백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서툴면 서툴수록 고백은 더욱 완벽해 집니다.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다

끝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뒤돌아 왔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고백은 없을 겁니다.

그것만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건 없을 겁니다.

사랑한다고,

사랑해 미칠 것 같다고

굳이 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신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고백은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간절한 그리움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곁에 살포시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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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04-04-21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똘해지네요 .. 가져가서 좀 더 골똘,하렵니다. ^^

잉크냄새 2004-04-2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은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간절한 그리움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곁에 살포시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련히 아파옵니다.
저도 가져가서 연구좀 해봐야겠네요...
 

그냥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는 이의 몫이 아니라, 끊임없이 찾아내고, 정성껏 키워내는 이의 몫이기에 나는 그만큼 더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겠다.

<기쁨에게>

 

기쁨아, 너는 밝게 흐러왔다

맑게 흘러가는

물의 모임이구나

 

빠르게 느리게

높게 낮게 모여드는

강, 바다,

호수, 폭포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흘러오는 너를

나는 그때마다

느낌으로 안다

 

모든 맑은 물이 그러하듯

기쁨아, 누구도 너를

혼자만 간직할 수 없음을

세상은 안다

 

그래서

흐르는 생명으로 네가 오면

나도 너처럼

멀리 흘러야 한다

메마른 세상을 적시며 흐르는,

웃지 않는 세상에 노래를 주는

한 방울의 기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기쁨은

                                             날마다 내가 새로 만들어

                                             끼고 다니는 풀꽃 반지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소중히 간직하다가

                                             어느 날 누가 내게 달라고 하면

                                             이내 내어주고 다시 만들어 끼지.

                                             크고 눈부시지 않아

                                             더욱 아름다워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나누어 가질수록

                                             그 향기를 더하네

                                             기쁨이란 반지는-

                                                                                 -이해인, <꽃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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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맹세 위로 덮치는 망각과 세월의 함정
루이스 세풀베다 소설집 '외면'
권미선 옮김/ 열린책들/ 318쪽


▲ 루이스 세풀베다 소설집 '외면'
참희한한 것은, 우리들의 사랑의 기억들이 대개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야 망각의 밤을 딛고 살아나온다는 사실이다.(297쪽) 순수한 언어의 침묵들로 축조된 오랜 세월의 심연을 건너야만 비로소 사랑의 힘이 세워 놓았던 낡은 인생 계획표가 연인들의 눈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우정을, 흐르는 시간을, 사랑을, 그리고 자기자신’(목차)을 ‘외면’(책 제목)해 왔는지 세풀베다가 조용히 독자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비밀의 문을 열어 보인다.

이 책에는 모두 27편의 작은 이야기들이 묶여 있고, 그것들은 다시 다섯 덩어리로 나뉘어 있다. 그중 세 번째 덩어리가 ‘사랑을 외면하다’이고, 그 속에 ‘솔로르사노 부인에 대해 말해주마’라는 짧은 소설이 들어 있다. 길이는 짧지만 커다란 울림으로 생의 복판을 두드리고 지나가는 작품이다.

아마도 칠레 출신 문인(저자 자신)일 것으로 추정되는 ‘나’는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체코 시인)의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라하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증기 기관의 역사’라는 스페인어 책을 발견한다.

모국어로 쓰여진 책이라는 단순한 반가움에 책을 훑어보던 나는 그 책의 소유자였던 사람들이 책 앞장에 파란 잉크로 휘갈겨쓴 개인 메모를 보고 깜짝 놀란다. 흔히 책을 선물할 때 적곤 하는 메모인데, ‘이 책을 헤나로 블랑코에게 바칩니다. 우리를 이어준 모든 것과 그의 꿈을 기리며. 필라르 솔로르사노 드림. 1909.8.15’라고 돼 있었던 것이다.

블랑코는 ‘내’가 어렸을 적 친할아버지가 데리고 와서 우리집에 함께 살게 된 무정부주의자이자 기계 발명가였던 노인이다. 내가 열두 살 때 죽은 그 노인은 틈만 있으면 나를 불러 옆에 앉혔는데, 그때마다 “이리 와라, 너에게 필라르 솔로르사노에 대해 말해주마”라고 말했던 것이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과 더불어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칠레 출신의 루이스 세풀베다.

당시 집안 식구들은 솔로르사노 부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의심하면서, 노인의 망령된 헛소리쯤으로 치부한다. 그후 까마득히 잊고 말았는데, 수십 년이 흐른 어느날 ‘내’가 이역만리 동유럽 땅을 걷던 중 충격적으로 조우한 그 책에서 블랑코의 얘기가 모두 사실이었을 가능성에 가늘게 몸을 떨게 되는 것이다.

‘나’는 솔로르사노 부인의 실존 기록들을 찾아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고, 이미 고인이 된 블랑코와 솔로르사노가 함께 찍은 여러 사진까지 확인한 후 “세월이라는 함정이 사랑의 맹세 위로, 어리석은 이성을 흐리게 하는 행복의 열병 위로 가차없이 덮쳤다는 것”을 상상해본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전 세계에 수천만 독자를 갖고 있는 세풀베다(Luis Sepulveda·55)는 칠레에서 태어났다. 피노체트의 독재를 피해 망명길을 떠나야 했던 그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방황하다가 1980년 독일로 이주했고, 암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장편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절판된 작품집에 실린 작품, 혹은 미발표 작품 가운데 세풀베다가 가장 아끼는 작품들만 직접 고른 것으로, 그 다양한 소재나 주제는 물론이고, 뛰어난 예술성과 인생론에서 단연 돋보이는 수작들이다.

번역을 맡은 권미선씨는 “망각과 착각, 우연과 필연이 교묘히 교차되면서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여유와 낭만이 물씬 배어 있고, 비참한 현실을 아프게 꼬집는 무서운 독설도 함께 묻어 있다”고 말했다.

세풀베다는 1997년부터 스페인에 정착했다. 지금까지 국내 번역 작품은 ‘지구 끝의 사람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연애 소설 읽는 노인’ ‘감상적 킬러의 고백’ ‘귀향’ 등이 있고, 이번 책이 여섯 번째다.

삶이란 ‘나’를 비켜간 운명의 부스러기가 장난처럼 쌓인 흔적일 뿐이라고 낙심하고 있을 독자들께 이번 소설집을 권한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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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평전 완결판 낸 소설가 김원일
'뛰어난 소수는 찬연히 부활한다'
"10대 후반에 '어릿광대...'보고 동경하던 예술가 전형 찾아내"



▲ 김원일
10대 후반의 김원일은 조잡한 인쇄의 그림 한 장을 벽에 붙여놓고 망연히 바라보곤 했다. 피카소의 ‘어릿광대로 분장한 화가 살바도’(1923년). 어디서 묻어들어왔는지도 모르는 그림이었다.

“이룰 수 없는 꿈만 키우던 시절, 젊고 아름다운 어릿광대의 모습은 내가 동경하던 예술가 모습의 전형으로 비쳤습니다.” 내성적인 청년 김원일은 그 그림을 열심히 베껴 그렸다. 모딜리아니의 연인 에뷔테른의 긴 얼굴과 배우 제임스 딘의 옆모습 사진을 베끼던 시절이었다. 가난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은 김원일은 소설의 길로 들어선다.

원고지 2600매 분량의 피카소(1881~1973년) 평전, ‘김원일의 피카소’(이룸)에는 화가를 꿈꿨던 소설가의 그림 사랑이 녹아 있다. “문학의 길로 나서지 않았다면 화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자주 그림을 옆에 두고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피카소의 30대 중반까지를 담아 2년 전 펴냈던 ‘발견자 피카소’를 대폭 개정하고, 다루는 시기도 전 생애로 늘렸다. 피카소의 작품 232점을 비롯, 동시대 작가 35명의 작품 67점의 도판을 수록했다.


▲ 피카소의 ‘어릿광대로 분장한 화가 살바도’(1923년, 130.5×97㎝, 스위스 바젤미술관). 청년 김원일이 연필화로 모사하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던 작품이다.
“피카소를 거치지 않고는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그는 사망하기까지 쉴 틈 없이 자신의 세계를 새로 세우고 거푸 깨부수었죠. 그처럼 부단한 변모와 실험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그리고 그 소용돌이친 피카소의 내면을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버림받은 자의 슬픔을 내면에서 끌어낸 ‘청색시대’, 슬픔을 따뜻하게 껴안은 ‘분홍색시대’를 거쳐 브라크와 함께 시작한 입체주의로 오늘날 추상주의 예술의 효시가 된 이후에도 새로운 실험을 계속한 피카소의 생애와 예술을 추적했다. 가난과 고통,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찬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은 등장인물의 대화나 심리묘사를 동원해 소설처럼 극적으로 전개했다.

피카소의 천재성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는가. “이미 ‘있어온 것의 재창조’를 통한 자기화(自己化)의 발견에 있다”고 작가는 풀이했다. 세잔, 반 고흐, 고갱 등의 기법이 피카소에 와서 어떻게 변형되고 재창조되었는가를 읽는 것이 피카소 그림 감상의 키워드라는 것이다.

피카소는 그림으로 일기를 쓰듯 자신의 일상, 주변인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피카소의 작품에는 그의 삶이 녹아 있죠. 시인을 좋아하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피카소 주변에는 늘 시인이 떠나지 않았죠. 평생 친구였던 막스 자코브를 비롯, 기욤 아폴리네르, 폴 엘뤼아르 같은 인물이 그들입니다. 올리비에, 올가, 마리 테레즈 등 새로운 여자를 만날 때마다 작품 경향도 바뀌었죠.” 피카소를 평하는 글에서 작가의 예술관도 드러난다. 현대미술의 걸작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혹평을 받은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에 대한 평이 그렇다. “당대 대중사회에서 너무 앞서 갔다고 해서 훗날 다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소수는 찬연히 부활한다”는 지적이 그 예다.

“이제 소설 쓰기는 쉬고 남의 좋은 글이나 읽으며 여생을 살고 싶다고 나태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들춰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의 갈 길을 피카소가 넌지시 암시해준 셈이지요.”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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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4-2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꼭 사서 보고 싶네요...

stella.K 2004-04-2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은 것 같아서 올리긴 했지만, 쪽수나 가격이 만만찮네요.

김여흔 2004-04-2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찜해뒀답니다. ^^

stella.K 2004-04-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흔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비로그인 2004-04-2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전작을 꿈꾸는 작가 중 한 명인 김원일...
전 김원일의 그림도 참 좋던데...그가 동료 문인들을 그린 그림을 보면, 단순한 가운데서도 특징을 아주 잘 잡아내잖아요. 저도 이 책 보관함으로 담아 갑니다! ^^

stella.K 2004-04-2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흔님 vs 냉열사님의 리뷰. 재밌겠는데요. 두분, 보관만하시마시고 어여 어여 읽으십시오!^^
 

불문학의 뮤즈 탐구서 '흰 비너스 검은 비너스'
그녀의 향기…감미로운 구원인가, 무자비한 고문인가


▲ 시인 보들레르가 데생한 애인 잔 뒤발
사랑은 인간을, 흔들면서 지배한다. 그중 가장 크게 흔들리는 인간이 예술가들이다. 불문학자이자 시인인 이가림 인하대 교수는 ‘흰 비너스 검은 비너스-프랑스 문학 속의 매혹의 여인들’(문학수첩·262쪽·8000원)에서 프랑스 문학사를 훑어 내리며 시인·작가들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은 매혹의 뮤즈들을 탐구한다.

이가림이 꼽은 대표적 프랑스 작가는 낭만주의의 거장들인 라마르틴 네르발 뮈세에서 시작해서 상징주의의 대명사인 보들레르 베를렌을 거쳐, 새로운 에스프리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를 각각 대표하는 아폴리네르 엘뤼아르 같은 일곱 문호에 이른다.

그들을 흔들고 지나갔던 사랑의 여인들은 피부색을 뛰어넘는다.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미인, 아름다움의 극치로 이상화된 ‘흰 비너스’들만이 불멸의 여인상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가림이 대표적으로 꼽은 ‘검은 비너스’는 보들레르(1821~1867)의 여인이었던 잔 뒤발(식민지 태생의 흑백혼혈녀). 보들레르 자신이 ‘검은 비너스’라고 불렀던 이 여인은 “위험한 향기의 꽃”이다. 엘뤼아르(1895~1952)에게는 ‘오렌지처럼 푸른 대지’에 비유될 정도로 “신선하고 투명한 육체를 지닌” 갈라(러시아 여성) 같은 초현실주의적 꿈의 화신도 있었다.


▲ 보들레르

이가림은 이 여인들이 시인의 영혼에 어떻게 다가와, 어떻게 충돌했으며, 그 결과는 어떤 문학적 형상화로 남겨졌는지를 생생한 현장담을 통해 추적한다. 수년 동안 프랑스에 살았던 이가림은 “그들의 고향, 생가, 연애 장소, 무덤 등을 찾아다녔다”면서 “불멸의 뮤즈로서 살아 숨쉬는 현존성과 체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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