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평전 완결판 낸 소설가 김원일
'뛰어난 소수는 찬연히 부활한다'
"10대 후반에 '어릿광대...'보고 동경하던 예술가 전형 찾아내"



▲ 김원일
10대 후반의 김원일은 조잡한 인쇄의 그림 한 장을 벽에 붙여놓고 망연히 바라보곤 했다. 피카소의 ‘어릿광대로 분장한 화가 살바도’(1923년). 어디서 묻어들어왔는지도 모르는 그림이었다.

“이룰 수 없는 꿈만 키우던 시절, 젊고 아름다운 어릿광대의 모습은 내가 동경하던 예술가 모습의 전형으로 비쳤습니다.” 내성적인 청년 김원일은 그 그림을 열심히 베껴 그렸다. 모딜리아니의 연인 에뷔테른의 긴 얼굴과 배우 제임스 딘의 옆모습 사진을 베끼던 시절이었다. 가난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은 김원일은 소설의 길로 들어선다.

원고지 2600매 분량의 피카소(1881~1973년) 평전, ‘김원일의 피카소’(이룸)에는 화가를 꿈꿨던 소설가의 그림 사랑이 녹아 있다. “문학의 길로 나서지 않았다면 화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자주 그림을 옆에 두고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피카소의 30대 중반까지를 담아 2년 전 펴냈던 ‘발견자 피카소’를 대폭 개정하고, 다루는 시기도 전 생애로 늘렸다. 피카소의 작품 232점을 비롯, 동시대 작가 35명의 작품 67점의 도판을 수록했다.


▲ 피카소의 ‘어릿광대로 분장한 화가 살바도’(1923년, 130.5×97㎝, 스위스 바젤미술관). 청년 김원일이 연필화로 모사하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던 작품이다.
“피카소를 거치지 않고는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그는 사망하기까지 쉴 틈 없이 자신의 세계를 새로 세우고 거푸 깨부수었죠. 그처럼 부단한 변모와 실험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그리고 그 소용돌이친 피카소의 내면을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버림받은 자의 슬픔을 내면에서 끌어낸 ‘청색시대’, 슬픔을 따뜻하게 껴안은 ‘분홍색시대’를 거쳐 브라크와 함께 시작한 입체주의로 오늘날 추상주의 예술의 효시가 된 이후에도 새로운 실험을 계속한 피카소의 생애와 예술을 추적했다. 가난과 고통,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찬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은 등장인물의 대화나 심리묘사를 동원해 소설처럼 극적으로 전개했다.

피카소의 천재성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는가. “이미 ‘있어온 것의 재창조’를 통한 자기화(自己化)의 발견에 있다”고 작가는 풀이했다. 세잔, 반 고흐, 고갱 등의 기법이 피카소에 와서 어떻게 변형되고 재창조되었는가를 읽는 것이 피카소 그림 감상의 키워드라는 것이다.

피카소는 그림으로 일기를 쓰듯 자신의 일상, 주변인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피카소의 작품에는 그의 삶이 녹아 있죠. 시인을 좋아하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피카소 주변에는 늘 시인이 떠나지 않았죠. 평생 친구였던 막스 자코브를 비롯, 기욤 아폴리네르, 폴 엘뤼아르 같은 인물이 그들입니다. 올리비에, 올가, 마리 테레즈 등 새로운 여자를 만날 때마다 작품 경향도 바뀌었죠.” 피카소를 평하는 글에서 작가의 예술관도 드러난다. 현대미술의 걸작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혹평을 받은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에 대한 평이 그렇다. “당대 대중사회에서 너무 앞서 갔다고 해서 훗날 다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소수는 찬연히 부활한다”는 지적이 그 예다.

“이제 소설 쓰기는 쉬고 남의 좋은 글이나 읽으며 여생을 살고 싶다고 나태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들춰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의 갈 길을 피카소가 넌지시 암시해준 셈이지요.”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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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4-2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꼭 사서 보고 싶네요...

stella.K 2004-04-2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은 것 같아서 올리긴 했지만, 쪽수나 가격이 만만찮네요.

김여흔 2004-04-2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찜해뒀답니다. ^^

stella.K 2004-04-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흔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비로그인 2004-04-2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전작을 꿈꾸는 작가 중 한 명인 김원일...
전 김원일의 그림도 참 좋던데...그가 동료 문인들을 그린 그림을 보면, 단순한 가운데서도 특징을 아주 잘 잡아내잖아요. 저도 이 책 보관함으로 담아 갑니다! ^^

stella.K 2004-04-2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흔님 vs 냉열사님의 리뷰. 재밌겠는데요. 두분, 보관만하시마시고 어여 어여 읽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