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yuqi wang -guohua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 모두 유죄 - 노 희 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 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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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nda78 님 서재에서 이 그림 보구 넘 좋던데...여기서도 만나네요.

tnr830 2004-05-0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
저두 어찌생각하면 제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이 있는데...

stella.K 2004-05-0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찔렸답니다.
 

조각칼로 파헤친 세상 소리없이 가슴을 베고 가버려…
서성란 소설집/문이당

대저, 소설이란 무엇이고 소설가란 누구인가? 요즘 들어 부쩍 이 질문을 내게 자주 한다. 답은 작가마다 다를 것이다. 나 역시도 내게 맞는 내 답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질문의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잊을까 봐 수시로 던지곤 한다.

이제 소설은 잊혀진 장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손아귀에 힘이 불끈 쥐어진다. 기초예술분야가 천대받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소설은 아직 숨겨진 광맥이 무궁하게 많다고 누군가는 그것을 캐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불 나간 집에 전깃불이 들어오듯 일시에 환하게 밝아질 그런 날도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는 작가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도저한 답을 가지고, 남들 배추씨 뿌리러 우르르 몰려갈 때 혼자 무씨 뿌리러 묵묵히 가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서성란이다. 서성란<사진>은 ‘혹시?’ 하고 뒤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뚜벅뚜벅 앞으로만 걸어갈 뿐이다. 그가 즐겨 신는 단화가 남긴 발자국은 그래서 더욱 선명하다.

서성란은 1996년 중편 ‘할머니의 평화’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작년에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이라는 장편을 상재했고 일 년 만에 그의 첫 소설집이자 두 번째 책인 ‘방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다시 독자 앞에 돌아와 섰다.

“아이는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종이 카드를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여간해서는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다. 방 안 여기저기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숫자 카드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잠든 아이를 안아 요 위에 눕히고 손에 쥐어져 있던 카드를 빼내려 하자 잠결에도 아이는 손을 꼭 쥔 채 모로 돌아누워 버린다. 잠든 아이의 얼굴에는 상처가 깊이 패어 있다. 관자놀이와 양 볼은 찢어져 아물지 않은 상처와 보랏빛 멍자국들로 어지럽다.”(‘모델하우스’ 233쪽)


▲ 소설가 서성란
세모꼴의 조각칼로 예리하게 파헤친 듯한 이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어떤 참견도 거절한다. 표제작인 ‘방에 관한 기억’을 포함해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딱 손에 쥐기 좋을 만큼 한 움큼씩 나뉘어져 붉은 리본에 감긴 고급 소면이 떠오른다. 작가는 잘 삶긴 쫄깃한 면발을 따뜻한 육수에 풀어 내놓았다. 국수를 한입 머금고 있다가 입 속으로 ‘쪽’ 하고 빨아들일 때 국숫발이 입 천장에 찰싹 달라붙는 명랑한 소리를, 그 유쾌한 즐거움을 독자들은 책의 곳곳에서 보고 듣고 느낄 것이다.

이 책에는 그가 첫 책에서부터 집요하게 그리고 있는 발달 장애아와 그 어머니들의 모습,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능력을 지니지 못한 아버지, 불어난 몸 때문에 사회와 남편에게 버림받는 여성, 사랑의 상처를 광기에 가까운 동성애의 집착으로 표현하는 여성, 가난과 줄기찬 투쟁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페미니즘적 저항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리적 굴절이나 종교적 초월도 보이지 않는다.”(문학평론가 황광수) 그저 담담히 응시할 뿐이다. 지독할 정도로 담담해서 오히려 섬뜩하게 만든다. 가령 이런 말들.

“하긴 우리 부모는 이제까지 나한테 아무 것도 준 것이 없으니까요.”(‘산초’ 42쪽)

슬프지도 않는데 슬픔을 요구하거나, 안개를 뿌려 문장을 달달하게 만들거나, 읽고 난 뒤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이야?’ 하는 허전함이 남게 하지도 않는다. 단지 조각칼로 날카롭게 파헤칠 뿐이다. 잘못하다간 그의 조각칼에 가슴을 베이기 십상이다. 도둑처럼 스며들어와 소리도 없이 긋고 가니까. 내출혈이 걱정되면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책을 펼칠 일이다.

(이현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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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는 12시간 일하고 36시간 쉬었다
신명호 지음
시공사/294쪽



▲ 조선시대의 궁녀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높인 MBC TV 드라마‘대장금’의 한 장면. 의녀는 다른 궁녀와 마찬가지로 공노비 중에서 선발됐고, 내의원에 소속돼 궁중 여성들을 치료했다. 이들은 출퇴근을 했으며 혼인도 가능했다.
“설한단(雪漢緞·고급 비단) 남치마와 불빛 모단(毛緞) 족도리며/ …항아(姮娥·중국 고대신화의 달의 여신)가 적강(謫降)한가 속태(俗態)도 전혀 없네.”(‘한양가’ 중에서 궁녀를 묘사한 부분)

인터넷에서 ‘월간궁녀’나 ‘궁녀센스’라는 잡지 형태의 희한한 게시물을 한 번쯤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최근 많은 TV 사극에서 궁녀들은 궁중 암투극의 필수적인 조연을 넘어서 당당한 주인공으로까지 격상되고 있다. 일상사와 생활사로 관심이 집중되는 교양 역사서의 흐름이 이런 대중적인 관심과 만나면 이제 책이 한 권 나와야 한다. 바로 이 책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조선시대의 궁녀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을 하는 과정이 ‘역사의 무의식 속에 침잠해 있던 기억들을 되살려내는 느낌’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궁녀에 대한 기존의 지식은 생존 궁녀의 증언을 토대로 한 이규태 저 ‘개화백경’(1971)과 김용숙 저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1987)가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방대한 기록 속에서도 궁녀에 대한 내용은 드물다. 궁녀란 원칙적으로 ‘왕의 여자’였으므로 왕 말고는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역모사건에 대한 법정 기록인 ‘추안급국안’에 궁녀들의 인적사항과 업무가 대단히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었고, 이 책의 주요 자료가 됐다.

왜 궁녀인가? 수천 년간 침묵을 강요받았던 그들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문화인 왕실의 생활문화를 창조하고 전승한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왕실의 음식과 옷과 육아의 담당자가 그들 아니면 누구였겠는가? 그들은 지밀(왕·왕비의 침전과 대청 등 근무)·침방(옷·이부자리 제작)·수방(수를 놓는 일)·생과방(음료·과자 담당)·소주방(음식 담당)·세수간(세숫물과 목욕물)·세답방(빨래)으로 그 부서가 구분돼 있었고, 정5품에서 종9품까지 직급이 나누어졌다.

▲ 궁녀
방마다 궁녀 전체를 총괄하는 제조 상궁과 부제조 상궁이 있었고, 이들은 각 처소의 궁녀들을 대표하는 실력자였다. 궁녀들도 하녀를 두었는데 방자·취반비·무수리 등이 그들로, 넓은 의미의 궁녀에 포함된다. 궁궐 안에는 우물이 부족해 물을 긷는 ‘무수리’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궁녀들은 생각보다 많은 급료를 받았는데 1년에 적어도 쌀 10가마는 보장됐다. 이러다 보니 갖은 이권에 개입해 재산을 모으는 궁녀까지 생겼다.

궁녀에 대한 웬만한 궁금증은 이 책에서 거의 풀린다. 사극에서 방문을 열어주는 궁녀는 잠도 자지 않고 24시간 대기했을까? 아니다. 주·야간으로 교대했고 보통 12시간 일하고 36시간 쉬었다. 임금의 승은을 입지 못한 궁녀는 어떻게 성적 본능을 해소했을까? 내시·별감과의 스캔들, 심지어 동성애까지 기록 곳곳에 보인다. 여가 시간은 어떻게? 바느질, 글씨(궁체) 연습, 투호….

3년 전 ‘마지막 궁녀’가 세상을 떠난 대목은 서글프다. 1966년까지 순종의 황후인 윤 황후를 모셨던 성옥염 상궁은 이후 절에 들어가 살았는데, 유품은 지갑에 들어 있던 2만3000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어쩌면 최초의 전문직 여성이었을지도 모를 그들의 삶은 끝내 전근대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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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5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구 싶어요. 값이 좀 내리거나 이벤트하면 얼른 데리고 올려구요. 물론 평이 좋아야겠지만...요즘 자꾸 사는 책마다 실패하는게 많아져서...
 
 전출처 : waho > [영화] 여인의 향기




맹인 퇴역장교 프랭크 슬레드는 철학과 시를 아는 지적인 사람이지만 약간 괴팍한 면모를 갖고 있다. 함께 사는 조카들은 프랭크를 무서워하고, 평소 프랭크는 항상 혼자다.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 돌아오고 프랭크의 가족은 그를 빼고는 모두 여행을 떠난다. 프랭크는 가족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훌쩍 뉴욕으로 떠나는데, 추수감사절동안 프랭크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맡았던 가난한 모범생 찰리는 그 엉뚱한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그러나 프랭크의 여행의 목적은 자살. 그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이기지 못하여 죽으러 떠난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그의 여행길에는 호화로운 만찬과 고급스러운 술, 여자가 있다. 찰리는 프랭크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영화로 알파치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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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잉크냄새 > 몰두

인격의 근본적인 변화는

한 사람이나 한 가지 작업에 몰두할 때에만 일어난다.

어느 행위에 온전히 몰두하는 것은,

그것이 정신적이든지 육체적이든지,

유일하게 넘쳐흐르고 있는 활동이 되는 것을 뜻한다.

자아는 항상 가장 집중해서 몰두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 안젤름 그륀의 <자기 자신 잘 대하기>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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