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칼로 파헤친 세상 소리없이 가슴을 베고 가버려…
서성란 소설집/문이당

대저, 소설이란 무엇이고 소설가란 누구인가? 요즘 들어 부쩍 이 질문을 내게 자주 한다. 답은 작가마다 다를 것이다. 나 역시도 내게 맞는 내 답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질문의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잊을까 봐 수시로 던지곤 한다.

이제 소설은 잊혀진 장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손아귀에 힘이 불끈 쥐어진다. 기초예술분야가 천대받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소설은 아직 숨겨진 광맥이 무궁하게 많다고 누군가는 그것을 캐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불 나간 집에 전깃불이 들어오듯 일시에 환하게 밝아질 그런 날도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는 작가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도저한 답을 가지고, 남들 배추씨 뿌리러 우르르 몰려갈 때 혼자 무씨 뿌리러 묵묵히 가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서성란이다. 서성란<사진>은 ‘혹시?’ 하고 뒤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뚜벅뚜벅 앞으로만 걸어갈 뿐이다. 그가 즐겨 신는 단화가 남긴 발자국은 그래서 더욱 선명하다.

서성란은 1996년 중편 ‘할머니의 평화’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작년에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이라는 장편을 상재했고 일 년 만에 그의 첫 소설집이자 두 번째 책인 ‘방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다시 독자 앞에 돌아와 섰다.

“아이는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종이 카드를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여간해서는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다. 방 안 여기저기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숫자 카드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잠든 아이를 안아 요 위에 눕히고 손에 쥐어져 있던 카드를 빼내려 하자 잠결에도 아이는 손을 꼭 쥔 채 모로 돌아누워 버린다. 잠든 아이의 얼굴에는 상처가 깊이 패어 있다. 관자놀이와 양 볼은 찢어져 아물지 않은 상처와 보랏빛 멍자국들로 어지럽다.”(‘모델하우스’ 233쪽)


▲ 소설가 서성란
세모꼴의 조각칼로 예리하게 파헤친 듯한 이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어떤 참견도 거절한다. 표제작인 ‘방에 관한 기억’을 포함해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딱 손에 쥐기 좋을 만큼 한 움큼씩 나뉘어져 붉은 리본에 감긴 고급 소면이 떠오른다. 작가는 잘 삶긴 쫄깃한 면발을 따뜻한 육수에 풀어 내놓았다. 국수를 한입 머금고 있다가 입 속으로 ‘쪽’ 하고 빨아들일 때 국숫발이 입 천장에 찰싹 달라붙는 명랑한 소리를, 그 유쾌한 즐거움을 독자들은 책의 곳곳에서 보고 듣고 느낄 것이다.

이 책에는 그가 첫 책에서부터 집요하게 그리고 있는 발달 장애아와 그 어머니들의 모습,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능력을 지니지 못한 아버지, 불어난 몸 때문에 사회와 남편에게 버림받는 여성, 사랑의 상처를 광기에 가까운 동성애의 집착으로 표현하는 여성, 가난과 줄기찬 투쟁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페미니즘적 저항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리적 굴절이나 종교적 초월도 보이지 않는다.”(문학평론가 황광수) 그저 담담히 응시할 뿐이다. 지독할 정도로 담담해서 오히려 섬뜩하게 만든다. 가령 이런 말들.

“하긴 우리 부모는 이제까지 나한테 아무 것도 준 것이 없으니까요.”(‘산초’ 42쪽)

슬프지도 않는데 슬픔을 요구하거나, 안개를 뿌려 문장을 달달하게 만들거나, 읽고 난 뒤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이야?’ 하는 허전함이 남게 하지도 않는다. 단지 조각칼로 날카롭게 파헤칠 뿐이다. 잘못하다간 그의 조각칼에 가슴을 베이기 십상이다. 도둑처럼 스며들어와 소리도 없이 긋고 가니까. 내출혈이 걱정되면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책을 펼칠 일이다.

(이현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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