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래된 영화를 볼까말까 많이 망설였다. 물론 난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다. 1997년작이니 벌써 25년을 바라보는 영화다. 그땐 그저 야하다는 것 외엔 이 영화를 그 무엇으로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벗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 영화를 다시 보기를 망설였던 건 영화 도입 부분에 방울(신은경 분)이 갔던 곳이 사창가인지도 모르고 서너 명의 장정으로부터 집단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 나와서였다. 물론 그게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지만 장면을 보는 순간 역시 안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 VOD를 꺼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나는 매리 린 브락트가 쓴 <하얀 국화>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하나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위안부가 되는가를 초반에 비교적 자세히 보여주는데 그게 왠지 모르게 이 영화와 겹쳐 보이는 것이 있어서 였다. 


분명 일본의 과거사는 규명되어야겠지만 비록 시대는 다르다고 해도 남의 나라 남자들이 여자들을 짓밟는 건 안 되고 같은 내국인 남성들이 짓밟는 건 된단 말인가 이거야 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같은 나라의 남자들이 여자를 짓밟아 온 역사는 일본이 우리나라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은 역사 보다 훨씬 길다. 그것은 밝히지도 않은 채 일본의 과거사만 들먹여도 되는 걸까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무리 거장 소리를 듣는 감독(임권택)이 만들었다고 해도 뭔가 영화적으로 문제는 있을테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자고 했다. 물론 과도한 측면이 없진 않지만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한 여자가 어떻게 창녀로 사육되어 지는가(전락이 아니다. 사육이다.)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우리나라 현대사 속에서 윤락녀들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를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살려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감독의 특기인 한국의 한의 정서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제목이다. '노는 계집 창'이란다. 뭔가 다분히 여성 비하적이고, 논다는 건 의도적이고 자유 의지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어느 샌가 모르게 주인공 방울이 원해서 창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환치시키는 것 같아 불만스러웠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자신이 원해서 창녀가 되겠는가. 요즘엔 그러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만,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여자들이 창녀가 되야 한다면 그건 자신이 원하는 바와 상관이 없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특히나 방울이는 윤간으로 창녀가 된 것이 아닌가. 과연 감독이 그것을 간과한 것이 아니라면 제목은 다분히 반의적 의도로 사용했을까? 


만일 이 영화를 오늘 날 여성 감독이 재해석 해서 보여준다면 어떨까?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그건 그저 영화적으로 잘 만들었을뿐 창녀인 여성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었을까엔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좋던 싫던 창녀촌에 발을 들인 방울에게 선배들은 하나 같이 도망갈 생각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아무도 의기투합해서 그곳을 벗어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곳은 정말 창녀로 사육되기 위해 있는 것처럼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속 시대 배경은 여성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시대다. 여성은 여전히 남자에 의해 종속된 존재들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사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창녀가 있음을 지적한다. 역사는 곧 남성의 역사인만큼 남자들은 유사이래로 이 창녀라는 직업을 아주 잘 관리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자 앞서 소개했던 책과 관련해서 이 위안부의 문제가 이토록이나 해결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이 문제를 단순히 하나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겠다는 것과 역사적으로 남성이 성의 문화를 지배해 왔다는 것의 충돌에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풀기는 상당히 요원해 보인다. 


아무튼,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사창가의 융성은 70년대 산업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무렵 구로공단은 시골에서 대거 올라온 여공들이 차지했겠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에서 안착하지 못한 여자들은 남의 집 가정부가 되거나 영화의 방울이처럼 창녀촌으로 흘러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일과와 시대적 변화는 그곳에 터잡고 사는 구멍 가게 주인 아저씨나 브로커(?)로 일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


이 창녀(또는 윤락녀)에 관해 어렴풋이 기억에 나는 건,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유난히 뉴스나 시사 잡지 같은 것에서 심심찮게 우리 나라 집장촌을 다뤘었다는 것이다. 뭐 이렇다할 뾰족한 대안도 없었으면서 왜 그 시절 그렇게 그곳의 문제를 다룬 건지 알 수가 없다. 마침 80년대 초중반이었던가? 그때 경찰계에서 첫 여성 청장이 나왔던가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어느 잡지에 난 그 여성 청장의 인터뷰 기사를 비교적 꼼꼼하게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독특하게도 우리나라에 공창제의 도입을 역설한 것을 기억한다. 그때 난 사창을 없애도 부족할 판에 공창을 하자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주장이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요는 기존대로 사창을 하면 성을 더 음성화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건강은 물론이고 직업적으로도 보호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암암리 사창가를 단속한다면서 경찰계의 검은 압력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주장대로 우리나라가 공창화가 이루어졌을까. 잘 모르겠다. 오히려 창녀 스스로가 문제를 극복하고 진화하는 쪽으로 발전해 가지 않았을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방울이 처음 창녀가 되면서부터 영화가 진행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미지를 주목해 볼만하다. 괜히 이상한 음란한 영화 보지 말고, 이 영화 보면서 야한 것만 떠올리지 말고 철저하게 짓밟혀진 여성도 고독한 영혼이었음을 또한 누가 그 고독을 위로해 줄 수 있는가를 지켜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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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7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강동원 출연의 <검사외전>과, 김강우 출연의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티브이로
흥미롭게 봤어요. 운 좋게도 거의 시작하자마자 봤어요. 강동원의 연기에 감탄했어요.
강동원이 아니면 그 누구도 그렇게 귀엽고 매력적이게 사기 치는 역을 못 할 것 같았어요.
완전히 당신 역이야,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

위안부 문제를 다른 영화나 소설도 꼭 봐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다른 작품으로 봤는데도 기억 못할 수 있음ㅋ)^^

stella.K 2021-08-27 20:01   좋아요 0 | URL
검사외전을 제가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안네요.
저도 기회가 닿으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08-27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7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점: 3개 반 


이 영화를 보니 기억이 나긴한다. 뉴스에서 한때 론스타니 페이퍼 컴퍼니가 어쩌고 한창 떠들어 댔었지. 우리나라 뉴스가 그렇게 친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뉴스의 문해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어서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잘 몰랐다. 뭔가 불온하다는 것만은 확실한데.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까 좀 알겠다. 가끔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고발성 짙은 영화가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물론 영화인만큼 만든 사람의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알고봤더니 그 사건은 나라에 적잖은 손해를 입히는 중대 사건이었다. 놀라운 건 은행을 헐값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공모했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구속된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건 아직도재판중이며 재판 결과에 따라 나랏돈 5조원을 내줘야할 판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좀 허탈하다. 세상이 믿을 놈 하나도 없고 특히 우리나라 엘리트 집단은 더더욱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만 얻게 만든다. 그래도 영화 자체는 잘 만들었다. 엔딩이 좀 아쉽긴 하지만.


검사 역을 맡은 조진웅의 우직한 연기가 마음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신인 땐 TV 드라마에도 종종 나오더니 누구처럼 영화에 뼈를 묻을 모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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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6-26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머외로 위장한 엘리트 계급들이
사회 곳곳에 빨대를 꽂고 우리나라
의 부를 유출한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를 그만큼 잘 아니
쪽쪽 빨아 먹지 싶습니다.

아무도 책임 지지 않는 사회, 그게
가장 큰 문제이지요.

stella.K 2021-06-26 18:5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나 할까?
알고나면 허탈하고 화가납니다.
이완용의 후예가 아직도 살아있구나 싶더군요.
미쳤습니다.ㅠ
 

별점:★★★★

 

오리지날버전은 상당히 오래됐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여서 과연 새로운 버전이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더구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래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멜렉이 남들은 다 좋다고 난린데 나는 어딘가 어색해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다. 프래디 머큐리 대역이 좀 모험이긴 했지 기본은 하는 배우다.

 

하긴, 오리지날버전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보기엔 투톱 같지만 사실은 각각 스티브 맥퀸과 찰리 헌냄을 위한 영화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만큼 더스틴 호프먼과 라미 멜렉은 주연에 가까운 조연이라고 해야하고.

 

새로운 버전은 오리지널버전에 충실했다고 본다. 난 그런 감독이 오히려 믿음이 갔다. 물론 감독의 새로운 해석이나 모험도 좋긴하겠지만 형만한 아우 없다고 오리지널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만큼 연출에 충실했고.

 

이 영화를 보면 당연 <쇼생크 탈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 자체만 보면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이 영화와 비교하면 웬지 비교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차이를 어디서 봐야할까. <빠삐용>은 인간 자체에 촛점을 맞추지만 <쇼생크->는 웬지 MSG가 다소 첨가된 느낌을 받는다.  

암튼 언제고 <빠삐용> 오리지널버전을 함 봐야겠다. 그거 본지가 언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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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6-05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래디 머큐리가 어색했던 건 이빨 교정기? 뭐 그런 걸 끼어서가 아닐까요? 이에 뭘 씌웠다고 알고 있어요. 입이 튀어 나와 보였었던 것 같아요. 못생겨 보이려고 일부러 그랬던 듯.

그저께 티브이 영화 채널에서 유해진이 출연하는 <럭키>를 봤어요. 참 재밌더라고요. 여러 군데에서 웃음이 터지면서, 내가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싶었어요. 앞으로 코미디 영화와 음악 영화를 주로 봐야겠어요.

빠삐용은 유명한 데도 제가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ㅋ

stella.K 2021-06-05 20:02   좋아요 1 | URL
그런 건 아니구요, 나름 연기도 좋긴한데
진짜 프래디 보단 얄상한 편이잖아요. 그게 좀 아쉽더라구요.
보는데 약간 심술이 나더라구요.ㅋ

빠삐용은 정말 명작이어요.
둘 다 좋긴한데 전 오리지날버전을 추천합니다.^^
 

장르는 법정 스릴러 정도?

내용은 엄마와 딸의 모정 내지는 애증관계를 그렸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감상을 최대한 배제하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려 만족스러웠다.

 

배종옥이나 허진호의 연기도 인상적이고, 딸겸 변호사 역을 맡은 신혜선의 연기가 신뢰가 갔다. 

 

대천을 배경으로 해서일까 등장인물들 거의 대부분이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데 얼마 전 본 <국제수사>도 충청도 사투리 쓴다. 이제 사투리하면 충청도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경상도 아니면 전라도가 대세였던 것 같은데.

 

장예모 감독의 영화엔 항상 공리가 나온다.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영화가 좀 오래되긴 했다. 2007년도 작이니. 지금도 장예모 영화에 공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의 영화를 선택한다면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 영화 역시 최소한 눈호강은 한다. 그런데 영화적 내러티브는 다소 떨어진다. 그래도 눈호강이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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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6 2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황후화 눈호강 정말 끝내주죠. 저는 영화내용에 관심 일도 안가고, 그냥 세트와 의상에 와와 침흘리면서 봤어요. ㅎㅎ

stella.K 2021-05-17 18:1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중국 영화는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군하면서 봤습니다.ㅋㅋ

scott 2021-05-17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예모 중국 정부에 붙어 살고 부터 영화의 수준이 확! ㅎㅎ
국두와 홍등, 인생 영화 장예모+공리 최고의 영화인것 같습니다. ^.^

stella.K 2021-05-18 19:49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군요. 맞아요.
장예모 영화가 원래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근데 제가 국두나 홍등을 봤는지 기억이 안 나는군요.
언제고 봐야겠습니다.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감독, 자인 알 라피아 외 출연 / 플레인아카이브(Plain Archive)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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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뭐 이런 영화가 있나 싶었다. 

극영환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큐멘터리 아닌가 했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건 극영화가 맞다.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사회 고발성 짙은 영화다. 등장인물은 시리아 난민 출신들로 영화를 찍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각각의 등장인물은 실제로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데 영화에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고 심지어는 가족 지간인 양 자연스럽다. 이름도 실명을 쓴다.


솔직히 이런 영화를 본다는 건 즐거운 건 아니다. 뭔가 고통스럽고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영화가 아니면 난민국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어찌 알겠는가. 또한 보면서 국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교육을 통해 문명을 깨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국력이 약하면 제일 고통당하는 건 어린아이와 여성이다. 무엇보다 그런 난민국가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절감하게 된다. 한 가정의 가장은 자신의 가정조차 지킬 수가 없다. 주인공 지인을 보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한다. 


이야기는 어린 지인이 조혼의 구습으로 여동생이 어느 아저씨뻘 되는 남자에게 강제로 끌려가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다 사망자 홧김에 그 남자를 살인을 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법정에 서게 되면서 시작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이 상황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소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엔 그저 주인공 지인이 자신을 방임한 부모를 고발하기 위해 법정에 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 가지고 부모를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갸웃거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인이 사는 곳은 난민 지역이다. 과연 어디가 출생신고를 한단 말인가.  


난민 지역이라고 해도 조혼 풍습을 버리지 못해 이제 막 월경을 시작한 어린 동생이 팔려가는 걸 막을 수 없었던 지인은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가출을 한다. 가출해 일자리를 찾던 중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젊은 여자를 알게 되고 그녀의 어린아이와 동거를 하면서 묘한 가족애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도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라 그것은 언제 깨질지 알 수가 없다. 여자 역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없어 몸이라도 팔아야 할 지경인데 하필 그 일을 하기로 한 날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자식조차 잃어버랴야 할 위기에 처해진다. 그 사이 지인은 여자의 아이와 버텨보지만 결국 아이를 영아 인신매매단에 팔아버린다. 


집에 돌아온 지인은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 여동생이 임신 중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던 지인이 극도의 분노로 칼을 들고 동생을 그렇게 만든 남자를 죽이겠다고 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그것을 그저 단순한 어린아이의 치기로만 볼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다행히 살인미수에 그치지만 한마디고 지인은 찢기고 부서진 영혼이다. 과연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게다가 재판 후 구치소에 수감 중인 지인은 자신을 만나러 온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잔뜩 독이 올라 마구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죽은 동생을 대신해서 태어날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저주를 받는 거라면서.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면 자신의 엄마에게 그런 독설을 퍼붓는 것일까. 그게 보는 내내 참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영화가 뭔가모를 일말의 의문이 남는다. 물론 난민의 어느 한 비극적인 가정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지인에 대해선 다소 감상적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솔직히 지인의 꿋꿋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래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일수 밖에 없겠지만.    


나라가 없으면 이런 비참한 데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도대체 어린 지인은 누구를 원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지인의 나라는 회생하게 될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다가 남의 나라도 남의 나라지만 난 이내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집중적으로 아이들의 학대피해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나름 복지 국가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나라가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아이들의 불행은 몰라보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들의 행과 불행을 수치로 계산한다는 건 확실히 난센스다. 아이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훈육을 한답시고 아이들을 학대하다 훗날 늙고 힘없어질 때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두루 석권했다. 보면서 국력과 인권, 아동과 여성에 대해 두루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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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5-14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 같군요.
이번 코로나 사태는 국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벌써 영국과 미국은 백신 맞은 국민 수가 월등히 많잖아요.

stella.K 2021-05-14 18:3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이어요.
근데 그에 대한 부작용이랄까? 백신 패권주의가 나타나기도 한다더군요.
잘 사는 나라나 백신 백신하지 지구상엔 아직도 백신 그림자도
못 본 나라가 많다더군요. 그런 나라를 상대로 동맹을 맺는다고도 하던데
과연 이걸 믿어야하는지 모르겠어요.ㅠ

영화 괜찮긴해요.

scott 2021-05-17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이런 불행한 삶을 살게 하는 부모 더나아가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인도는! 이나라는 답이 없어요.
도덕 윤리는 겐지스강에 첨벙 첨벙하면 죄가 씻겨내려가는 줄 ㅜ.ㅜ
이란 어린이들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영화, 영화제 통해서 보고 며칠 맘 아파 앓아 누움 ㅠ.ㅠ

stella.K 2021-05-18 20:05   좋아요 1 | URL
와, 앓아 눕기까지...!
그렇다면 스콧님은 이 영화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자꾸 지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고 용기있게 살아갈 것처럼 보여주죠.
그 감상주의가 거슬렸습니다.
어른과 국가 권력이 붕괴된 사회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갈 수가
없어요. 물론 그런 것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면 좋은 거긴한데
말입니다.
나중에 등장인물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자막으로 보여주는데
나름 다행이다 싶긴한데 앞으로 잘 살까 싶기도 해요.
또 다시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나 마얀마 사태에
민간인들 사상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속이 상하고.
저는 이렇게 편하게 오늘도 잘 살았는데 말입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