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이벤트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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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행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기꺼이 찾고 그것에 다가가려고 하는 자에게 행운은 찾아 주는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라. 친구의 장난으로 변소(재래식 화장실은 다 변소로 통칭되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으니. 지금도 어딘가를 가면 그곳이 그대로 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ㅋ)에 갇힌 소년이 갑자기 좋아하는 배우가 마을에 나타났다 하여 사인을 받기 위해 그곳을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소 밑을 통과하는 길 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행한다. 사인을 받겠다는 일념하에 소년에겐 더러운 것이고 뭐고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 배우가 가기 전에 사인은 꼭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이 오물을 뒤짚어 쓴 소년 때문에 오히려 그 배우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소년은 그틈을 타 그 배우에게 사인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평생 한 가지 소원을 위해 자신의 몸쯤 잠깐(소년에겐 그런 것이겠지) 희생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긴 저게 진짜 오물이겠는가? 진흙속을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것이겠지. 저것이 진짜였다면 그 옛날 우리 돌아가신 외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독이 올라 오래 못가 죽는다고 했다. 오물이란 인간에게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저 이야기는 극적 재미를 위해 마련된 에피소드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 용기라면 이 소년은 세상에 못해낼 것이 없다.
결국 소년은 저렇게 자라 그 유명한 자말이 되었고 (사진의 왼쪽) 퀴즈쇼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저렇게 자라기까지 결코 순탄한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이슬람교도에게 방망이로 두들겨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 봐야했고, 어느 앵벌이 조직에 끌려갔다 탈출해야하는 상황도 맞이해야 했다. 슬럼독. 다시 말하면 슬럼가의 개 취급을 받으며 그는 살아왔던 것이다.
그에게는 두 가지 소망이 있었으니 부자가 되는 것과 앵벌이 조직에서 만난 예쁜 소녀 라티카와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부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라! 이것처럼 짜릿하고 행복한 것이 또 이겠는가? 보통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이룰 것이다. 부자지만 외롭게 되던가? 사랑을 이루긴 하지만 조금 불편하게 살던가 말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고 변소도 통과할 용기라면 소년은 충분히 이 둘을 다 이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까지 또 첩첩산중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어린 나이에도 평생 마음의 짝이라고 생각했던 라티카를 만날 수 없는 세월이 몇년이고, 그동안 라티카는 인도의 무희겸 창녀로 자랐다. 하지만 만났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랑의 훼방꾼을 물리쳐야만 했고 그 과정엔 형과도 싸워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저 퀴즈쇼에 나갔던 것도 결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퀴즈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 라티카가 퀴즈쇼를 즐겨 본다는 것을 알고 저기에 나가면 라티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갔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앞서 말했던 부와 사랑에서 부는 자말의 원래의 목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워낙에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기본으로 깔려 있거나.
사실 나라도 비슷한 또는 같은 시기에 부와 사랑을 두고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이루겠느냐고 하면 난 기꺼이 사랑을 먼저 이루겠다고 할 것 같다. 사실 사람이 돈이 많으면 뭐하겠는가? 사랑을 나눌 상대가 없으면 외롭고 허전한 것을. 하지만 나는 여자라 그런다고 쳐도 남자는 안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사랑하는 사람도 데려올 수도 있고(자말과 라티카의 경우) 남자에겐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여자도 따라 붙는다는 속설인지 정설이 있기도 하니까.
영화에서의 퀴즈쇼는 퀴즈쇼 자체만을 위한 퀴즈쇼는 아니다. 그것은 교묘하게도 자말의 지나 온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물론 실제로 이런 퀴즈쇼는 없을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지나온 삶울 유추하고 거기서의 단초가 퀴즈의 정답이 되는 것 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재능이 될 것이다.
한 소년의 무용담을 퀴즈쇼란 도구로 풀지 않고 그냥 시간의 나열로 풀었다면 이만큼 박진감 넘치고 재밌게 볼 수 있었을까? 퀴즈를 너무 잘 푸니까 의심도 받고 진행자의 질시도 받으면서 모진 고초도 당하고 그 과정에서 자말의 지난한 삶도 우리에게 풀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세계적으로 가장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만드는 나라가 인도라고 한다. 예전에 보았던 <슈팅 라이크 베컴>이란 영화를 봤을 때도 그렇고 이 작품을 봤을 때도 그렇고(물론 두 영화 다 배경은 인도지만 제작 국가는 영국이다) 인도 사람 특유의 역동성이 느껴져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이 작품을 오래 전 책으로 읽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그다지 김동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으로 읽으면서 이건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솔직히 이건 누가 봐도 영화로 제작할 것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느낌이 확 온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대박을 치고 올해 아카데미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상이란 영화상은 거의 다 석권하다시피 했다. 하긴 내가 봐도 이런 영화에 상을 주지 않으면 어느 영화에 상을 준단 말인가? 재미 못지 않게 감동도 있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언제 흘러갔나 싶게 오랜만에 푹 빠져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비록 영화라도 이 둘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용감 소년 자말! 라티카와 함께 영원히 행복해야 해!" 이렇게 말이다.
영화가 하도 재밌어 뽀너스로 한 컷 더 올린다. 왼쪽의 소년이 어린 시절의 자말이고 가운데가 리티카 오른쪽이 자말의 형 살림이다. 이들은 실제로 인도 현지의 슬럼가의 아이들을 직접 캐스팅 했다는 말이 있다. 아, 이 아이들에게도 행복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