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 My Dear Enem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윤기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여자, 정혜>를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란...! 대사는 별로 없고 영상으로 말하려 하는 것을 충실히 전달해  나름 좋게 보았다. 그런데 누구는 그의 영화가 재미없다고도 한다. 아니 어떻게 이 괜찮은 영화를 재미없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재미로 봐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재미란 인상 깊은 것의 다른 말일 뿐이다.  

어쨌거나 난 '여자, 정혜'를 본 이후로 이 감독을 좋아하게 되었고, 얼마 안있다 이 <멋진 하루>가 나왔다고 하길래 조용히 대중들의 반응을 지켜 보았다. 뭐, 그닥 큰 성공을 거둔 건 아니지만 '여자, 정혜'보단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반응? 그래도 하정우, 전도연이 나온다니까 봐줄만 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음모나 배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이윤기 감독만의 독특함이 묻어나 있어 즐겁게 봤다.   

이 이야기는 하루 동안 옛 애인에게 떼인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 애인을 따라다니는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희수의 애인 병운이 350만원을 갚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는데 희수가 동행하면서 겪에되는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병운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하고 있고, 그 사람들을 통해 병운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만나게 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줌으로 희수는 처음엔 몹시 귀찮아 하다가 차츰 병운에게 동화되고 그와 동행하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이구나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제목처럼 '멋진 하루'일 밖에.  

거기에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그저 비슷 비슷한 인간 군상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 나름의 사연들을 안고 살아간다. 또한 그것을 별것 아닌 양 능청스럽게 보여주면서도 간간히 희수의 1년 간의 삶과 병운의 1년간의 삶을 서로 넌지시 던지는 한마디 속에 응축해낸다. 나는 감독의 그 노련미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주인공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매 씬마다 보여주는 에피소드 즉 조연들이 보여주는 삶속에서 빗대어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다이라 아즈코란 일본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을 읽어보긴 했지만 원작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병운 역을 맡은 하정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껄렁껄렁한 백수건달 역을 참 잘도 소화해낸다. 하지만 건달이어도 참 사랑스럽다. 그런 돈 빌린 기억이 없다고 딱 잡아 뗄 수도 있을텐데 성실하게 갚아 줄려고 애쓰고, 나는 비록 백수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으니(스페인에 막걸리집을 내는 희망) 지난 세월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 까칠할대로 까칠해진 희수를 오히려 위로한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많고 까칠한 희수에겐 차라리 단순한 병운이 잘 맞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왜 둘은 서로를 못 알아보고 헤어지는 걸까? 물론 맨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둘이 뭔가의 프로포즈를 할 것처럼 하다가 끝나버리긴 하던데 거기서 뭔가의 암시가 있는 것 같긴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 자체는 사랑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있지 않다. 


영화를 보다보니 좀 황당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문제의 이 스틸컷. 

남자들은 왜 여자의 과거가 궁금한 걸까? 맨 오른쪽의 재수남 이미 자신의 와이프가 된 여자에게 학교 때 병운이랑 자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이에 저 긴 생머리의 여자 순간 화가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희수가 남자에게 가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다시 돌아 올거라고. 정말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앉는다. 그래놓곤 미안하다고 하고, 앞으로 또 한번만 그러면 죽을 줄 알라고 한뒤 둘은 또 이전 분위기를 회복한다. 참 재밌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는 남자들은 온갖 비리를 서츰치 않으면서 왜 그렇게 여자들의 과거를 건드리고 싶어하는 걸까? 진짜 저런 재수남 보면 두들겨 패주고 싶다. 

이 영화의 영상적 미덕이라면 남녀 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덧칠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아닐까? 하정우 피부 정말 장난 아니다. 어쩌면 그리도 얼굴에 분화구가 많은지?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고 자기 맡은 역할에만 충실했던 것 같다. 또한 전도연도 늙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직 피부는 좋아보인다만 코에서 입까지 한쪽에 짙게 그려지는 굵은 주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나이 먹어가는 모습 그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지켜봐 주는 것도 특권이 아닐까 싶다. 제발 배우들 늙는 거 싫다고 발악하는 모습 좀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배우들 그렇게 늙어가면서 관객들이 위로 좀 받으면 안되는 걸까? 배우들이야 돈이 많아 늙지않게 하는 온갖 것들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서민들이야 그럴 수 있는 처지가 못되지 않는가? 그럼 그 갭을 어디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배우란 모름지기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과 함께 나이 먹고 늙어가며 관객의 가슴속에 별로 남을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저 하정우와 전도연도 그렇게 남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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