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란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릭 게코스키는 독서계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하는데 가히 그런 칭송이 아깝지 않을만큼 재밌게 썼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모르는 작가가 나온다. 존 케네디 툴이다. 그는 켄 툴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본명의 애칭쯤 되는 것 같다. 그가 <바보들의 연합>이란 책을 내놨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사람의 책이 우리나라에도 출판이 됐었다는 것. 제목은 <조롱>이란다. 가끔 원제목을 쓰지 않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목을 고쳐서 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제목을 고친다고 원제 보다 더 좋으리란 법도 없는데.  

조롱 보다는 바보들의 연합이 더 낫지 않나?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책 햇빛도 받아보지 못하고 절판이 되었다.  

아니 언제 나왔다 사라진 것이냐?  

사실<아주 특별한 책...>에 따르면 켄 툴은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인물은 못 된다. 

그는 이 책을 쓰고도 출판할 곳을 찾지 못해 196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1961년 그는 육군에 입대해 푸에르토리코에서 신병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보직을 받았는데 그 환경이 너무 좋아 책상과 타자기가 딸린 개인집무실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2년 동안 <험프리 와일딩>이란 장편을 썼는데 이것이 <바보들의 연합>의 초고였다고 한다. 

제목을 <바보들의 연합>으로 한 것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선견지명 있는 경구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인데, "진정한 천재가 세상에 나타났음을 알리는 표식이 있다. 그 표식이란 바보들이 모두 연합해서 그에게 대항한다는 것이다."에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릭 게코스키는 그의 책에서 "스위프트의 이 경구가 이그나티우스('바보들의 연합'에 나오는 주인공)보다는 툴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계의 멍청이들이 존 케네디 툴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펼쳤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어쨌든 그들은 한결같이 툴의 작품을 출판하기를 거절했다. 그러니 돌대가리 출판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127p)  

나는 그의 신랄함이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뭐란 뭐냐?  

물론 미국작가가 꼭 우리나라에도 알려져야 하고 안타까움을 자아내야 하는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번역되어 나온 작품을 사장시켜야 한다는 것은 더 바보스러운 건 아닌가?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출판사일까? 책을 읽지 않는 잠재된 독자들인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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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다가 발견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의 직접적은 없다. 단지 우리가 잘 아는대로 펄벅은 <대지>의 작가며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우리나라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우리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건 이번에 새롭게 알게되었다.  

그것도 좀 우습긴(?) 한데, 솔직히 난 펄벅 보다는 장영희 교수의 아버지인 장왕록 박사에 관심이 생겨 이 분의 책이 뭐가 있을까를 찾던 중에 발견한 것이다. 그런고로 이 장왕록 박사가 이 책을 번역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불어 펄벅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걸 알게된 것. 

그런데 이 책의 발행 년도를 보니 2005년도다. 왜 그걸 이때까지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걸까? 

갑자기 급 관심이 갔다. 지금 다시 <대지>를 읽으라면 조금 주춤거리기는 한데(뭐 이를테면 핑계를 대는거지. 서양인이 본 중국이 얼마나 정확하겠어. 아무리 노벨상을 받았다고는 하나 인간은 편견의 존재 아니냐? 등등) 같은 저자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니 관심이 가는 건 또 뭐냐? 

그런데 좀 불안해졌다. 혹시 이 책 곧 절판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말이다. 

찾는 사람 없으면 몇 부가 팔렸던지간에 또는 자회사 어느 구석에 쳐밖힐 망정 서점엔 절판으로 나온다. 우리나라가 출판 10위안에 드는 출판대국이라고 하면서 절판률을 좀 줄여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암튼 이 책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다. 주목받는 책만 주목받고 우리나라 영문학계의 태동을 이끌었던 저명한 분의 이런 책은 여전히 음지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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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참았던 숨을 푸후, 넘치게 몰아쉬었다. 아이고 노곤해. 클라이브 파커의 <피의 책>은 몇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그 정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책이다. 처음 읽을 때는 흥미로 두 번째부터는 관성으로 읽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살덩이가 너덜하게 묻어나는 문장들이 파도처럼 덮쳐온다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후로 피바다 쓰나미에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 문장과 나 사이 신경전이다. 먹히면 죽는다. 먹히면 죽어.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 없는 건 흡사 마술인가. 나는 변태인가. 살과 뼈가 분리되는 아주 지독한 묘사와 수사인데 그게 또 되게 달콤하고 각별하다. 어쨌단 요번 판본은 표지가 아주 엉망이야. 오른발로 슬쩍 밀어 저쪽에 밀쳐두었다. (181p) 

  




‘영국 판타지 문학상’과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집. 총 여섯 편의 단편은 공포와 유머, 사랑과 죽음을 기발한 상상력과 사실적인 묘사로 절묘하게 버무린다. 작가는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난 변주된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책은 2008년 영화화가 결정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피의 책, 피그 블러드 블루스, 드레드와 국내 독자들이 접할 기회가 적었던 작품 위주로 선별했다.

‘피의 책’은 한 편의 완결된 단편이자 작품집 전체의 서문에 해당한다. 영매를 사칭한 남자로 인해 죽은 자들이 분노하고 응징에 나서는 이야기다. 죽은 자들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남자의 육체에 글로 새기는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이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뉴욕이라는 도시에 염증을 느끼던 카우프만이 주인공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지하철 살인사건에 카우프만은 피상적인 관심만 갖는다. 사건의 주인공 마호가니는 스스로를 선택받은 인간이라 여기며 매일 밤 벌이는 살인에 신성한 의무감마저 느낀다. 그리고 이 운명의 두 인물이 어느 날 한밤의 식육 열차 속에서 만난다. 숨 막히도록 잔혹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이성이 마비된 카우프만은 도살자의 눈을 피해 도망자 신세를 탈피해야 한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는 원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새로운 공포를 선보인다. 퀴퀴한 땀 냄새와 음침한 공기가 진동하는 청소년 갱생원에 파견되어 온 레드먼. 경찰 출신답게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곳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그런 그의 시선에 어느 날 레이시라는 아이가 색다른 느낌으로 들어온다. 틈만 나면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레이시는 지금까지 쌓아온 레드먼의 관념을 농락하는데... 



클라이브 바커 (Clive Barker) - 1952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리버풀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출간한 <피의 책>으로 영국판타지문학상과 세계판타지문학상을 받았다. <헬레이저>와 <캔디맨> 등 열 편이 넘는 영화작업에 참여했고, 연극연출가와 화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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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9-03-2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의 책, 그야말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의 작품이지요.

stella.K 2009-03-24 14: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싹할 것 같은데 그 묘사가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한다는...^^

진달래 2009-03-2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미널 마인드>에 필 꽂힌 1인으로서 관심 갑니다. ㅋㅋ

stella.K 2009-03-25 11:21   좋아요 0 | URL
진달래님이 호러에 관심있으신 줄은 몰랐어요.ㅋㅋ
 

10·26 다룬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 출간

조선닷컴 북스조선
입력 : 2005.02.11 15:03 07' / 수정 : 2005.02.11 16:59 27'

조갑제 기자가 25년 동안의 끈질긴 추적으로 재현한 박정희의 마지막 24시간!

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 궁정동에서 벌어진 10ㆍ26사건을 다룬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의 '朴正熙의 마지막 하루' 10·26, 그날의 진실(월간조선사)이 출간됐다.

김재규는 왜·어떻게 박정희를 쏘았고, 박정희는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궁정동 현장의 생존자들을 모두 만나고 쓴 10·26사간의 최종 진실이 이 책에서 밝혀진다.

저자는 10ㆍ26사건을 박정희의 18년 정치를 마감하고 13년의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킨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으로, 그리고 입체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시대를 구획할 만한 결정적 순간을 산 증인들은 후대인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10·26사건을 거의 분초 단위로 재구성하여 결정적 순간의 인간군상(群像)들과 그들의 숨소리까지 전하는 이 책은 후대인들에게,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오전 9시쯤 일어나 1층 집무실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몸을 옮겼다. …

김재규가 행동을 개시했다. 오른손으로 옆에 앉은 김계원의 허벅지를 툭 치고는 "각하를 똑바로 모십시오"라면서 권총을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뽑았다.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똑바로 되겠습니까?" …-- (본문 중)

/ 조갑제지음/월간조선사/372쪽/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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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1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갑제 ㅠ.ㅠ
 
 전출처 : 바람구두 >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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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쉰" 선생을 존경한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지만 존경한다는 건, 다른 말로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어요"란 뜻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음속으로 존경만 하고 그의 삶을 본받지 않는다면 존경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란 뜻에서 한 말이었다. 문제는 정작 말만 그렇게 하고 나 역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일 게다. "희망은 길이다"란 책을 나는 지금까지 근 10여 권 넘게 구입했다. 아마 알라딘을 통해서만 그 정도일 게다. 내가 이 책을 그렇게 많이 구입한 것은 내가 한 권을 읽고 난 뒤 나만 읽지 않고 좀더 많은 이들에게 루쉰의 글을 읽게 하고 싶다는 욕심에 그리한 것인데, 오늘 살펴보니 그간 이 책을 선물 받은 이들이 죄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는지 이 책에 대한 간략한 리뷰 한 줄 없는 것이 안타까와 올려본다.

이 책의 정가는 9,500원인데, 알라딘에서는 7,6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요즘 단행본 중에 7-8,000원 미만으로 구입할 수 있는 책은 시집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책의 페이지수가 232쪽에 불과하다고 해서 비싸다고 할 수는 없을 게다. 게다가 이 책은 하드커버인 데다가 책 띠까지 두르고, 책의 매무새나 만듦새가 여간 단단한 게 아니다. 나는 웬만하면 책 띠는 죄다 벗겨내 버리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띠지가 컬러풀하고, 루쉰 선생의 얼굴이 들어 있고, 작가 소개를 겸하고 있어 벗겨 버리질 못하고 있다. 영미권 고전 가운데 90%는 재번역이 필요하다는 최근의 기사도 있지만, 루쉰에 관련한 꽤 많은 종의 책들이 있지만 번역 상태가 좋은 책들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욱연 선생은 소장파 중국학자로 이 책의 번역 상태는 내 나름으로는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번역이 가장 좋은 책은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고 들었다).

"희망은 길이다""루쉰 아포리즘"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 루쉰 자신이 아포리즘으로 따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이욱연 선생이 루쉰이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하고 있는 글들 가운데 엄선해 편역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얼마전 리뷰했던 생텍쥐페리의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와 같은 형식의 책인 셈이다. 하지만 유혜자 편역의 그 책과 결정적인 차이는 판화가 이철수 선생의 판화작품들을 컬러 도판으로 삽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까지 감안해보면 책값을 비싸다고 할 수 있을까(참고로 이철수 선생의 2005년 판화달력은 알라딘에서 5,400원이다). 루쉰 선생의 글에, 이철수의 판화, 이욱연의 번역이라면 불경하옵게 자본주의 상품으로 보더라도 진경(眞景)에 속한다.

사실 국내 시인, 작가들의 이름으로 나온 아포리즘들 가운데 읽을 만한 것을 그리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에밀 시오랑의 아포리즘들을 좋아하고,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준 감동을 잊을 수 없는 나로서는 뭔가 태부족이거나 아쉬움이 남았는데,  그것은 이전의 생텍쥐페리의 글에서 따온 아포리즘을 읽었을 때도 매한가지였다. 문제는 아포리즘이 문학적 글쓰기 행위의 일부란 것을 철저하게 느끼지 못한 이들의 책임도 따를 것이다. 아포리즘에 대한 인식이 책을 읽다가 그저 좋은 구절에 밑줄 긋고, 이를 옮기는 것이거나, 시인들이 시상을 떠올렸으되 이를 시로 옮기지 못한 시작 메모를 책으로 엮어도 좋을 그런 만만한 행위로 느낀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이 책 "희망은 길이다" 역시 본질적으론 그런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루쉰의 글이란 것이다. 루쉰은 "피로 쓴 문장은 없으리라. 글은 어차피 먹으로 쓴다. 피로 쓴 것은 핏자국일 뿐이다. 핏자국은 물론 글보다 격정적이고, 직접적이며 분명하다. 하지만 쉽게 변색되고 지워지기 쉽다. 문학의 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루쉰은 20세기 중국문학의 핵심이었다. 마오쩌뚱은 루쉰을 일컬어 "위대한 문학인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라고 평한다. 물론 루쉰의 문학적 정수들은 그의 소설들에서 표출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루쉰을 루쉰으로 만든 것은 우리가 흔히 잡문(雜文)이라 치부하는 컬럼, 기고문, 편지와 같은 것들에서 등푸른 생선의 지느러미처럼, 숫돌에서 것 벼려낸 칼날처럼 시리게 날 선 짤막한 문장들이었다. 루쉰의 글들은 피로 쓴 문장보다 더 짙은 향기와 생명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에 한동안 루쉰의 글들, 산문들(소설은 제외)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 "희망은 길이다" 이기도 하지만, 그는 유독 희망과 절망을 대비시켜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도 나오지만 중국적인 혹은 동양적인 사유 체계 안에는 이렇듯 대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이."

"나그네의 뜻은 편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즉 앞길에 무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어이 가는 것, 바로 절망에 대한 반항이다. 절망하지만 반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희망으로 인해 전투를 벌이는 사람보다 훨씬 용감하고 비장하다고 본다."

"정치는 현상을 유지시키고 통일시키려 하고, 문학 예술은 사회 발전을 촉진시키고 점차 사회를 분열시킨다. 문학과 예술이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사회는 그래야만 발전한다. 문학과 예술은 정치가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되고, 추방당할 수밖에 없다."

루쉰의 글들 가운데는 지금의 관점에서 읽노라면 분명 논쟁이 될만한 것들도 적지 않다. 가령, 중국 책은 읽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거두절미하고 실려 있는 걸 보면, 대관절 무슨 이야기인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지만 당시 루쉰이 살아가던 무렵의 중국의 현실을 떠올려보면 그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루쉰에게 접근하는 최초의 책으로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의미가 있다. 좀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희망을 품고자 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겐 그 나름의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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