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참았던 숨을 푸후, 넘치게 몰아쉬었다. 아이고 노곤해. 클라이브 파커의 <피의 책>은 몇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그 정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책이다. 처음 읽을 때는 흥미로 두 번째부터는 관성으로 읽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살덩이가 너덜하게 묻어나는 문장들이 파도처럼 덮쳐온다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후로 피바다 쓰나미에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 문장과 나 사이 신경전이다. 먹히면 죽는다. 먹히면 죽어.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 없는 건 흡사 마술인가. 나는 변태인가. 살과 뼈가 분리되는 아주 지독한 묘사와 수사인데 그게 또 되게 달콤하고 각별하다. 어쨌단 요번 판본은 표지가 아주 엉망이야. 오른발로 슬쩍 밀어 저쪽에 밀쳐두었다. (181p) 

  




‘영국 판타지 문학상’과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집. 총 여섯 편의 단편은 공포와 유머, 사랑과 죽음을 기발한 상상력과 사실적인 묘사로 절묘하게 버무린다. 작가는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난 변주된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책은 2008년 영화화가 결정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피의 책, 피그 블러드 블루스, 드레드와 국내 독자들이 접할 기회가 적었던 작품 위주로 선별했다.

‘피의 책’은 한 편의 완결된 단편이자 작품집 전체의 서문에 해당한다. 영매를 사칭한 남자로 인해 죽은 자들이 분노하고 응징에 나서는 이야기다. 죽은 자들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남자의 육체에 글로 새기는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이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뉴욕이라는 도시에 염증을 느끼던 카우프만이 주인공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지하철 살인사건에 카우프만은 피상적인 관심만 갖는다. 사건의 주인공 마호가니는 스스로를 선택받은 인간이라 여기며 매일 밤 벌이는 살인에 신성한 의무감마저 느낀다. 그리고 이 운명의 두 인물이 어느 날 한밤의 식육 열차 속에서 만난다. 숨 막히도록 잔혹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이성이 마비된 카우프만은 도살자의 눈을 피해 도망자 신세를 탈피해야 한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는 원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새로운 공포를 선보인다. 퀴퀴한 땀 냄새와 음침한 공기가 진동하는 청소년 갱생원에 파견되어 온 레드먼. 경찰 출신답게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곳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그런 그의 시선에 어느 날 레이시라는 아이가 색다른 느낌으로 들어온다. 틈만 나면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레이시는 지금까지 쌓아온 레드먼의 관념을 농락하는데... 



클라이브 바커 (Clive Barker) - 1952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리버풀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출간한 <피의 책>으로 영국판타지문학상과 세계판타지문학상을 받았다. <헬레이저>와 <캔디맨> 등 열 편이 넘는 영화작업에 참여했고, 연극연출가와 화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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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9-03-2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의 책, 그야말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의 작품이지요.

stella.K 2009-03-24 14: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싹할 것 같은데 그 묘사가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한다는...^^

진달래 2009-03-2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미널 마인드>에 필 꽂힌 1인으로서 관심 갑니다. ㅋㅋ

stella.K 2009-03-25 11:21   좋아요 0 | URL
진달래님이 호러에 관심있으신 줄은 몰랐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