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8일은 김탁환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어쩌면 사진 보다 더 백발에 가깝고 훨씬 더 부드러운 인상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부드러운 인상은 차라리 어눌함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만큼 그는 선하고 순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가 나온다는 B 카페를 허겁지겁 들어서고 보니 입구에서부터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애써 못 본 척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지만 그를 만나 보길 나는 또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는 이번에 조선시대 조운선 침몰 사건을 다룬 <목격자들>을 내고 민음사 주관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시작은 작품을 끝내고 난 그의 근황을 듣는데서부터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그는 이렇게 독자를 만나는 스케줄을 계속하고 있었다(모르긴 해도 이날이 책을 낸 후 첫 스케줄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엔 지방 독자들을 위해 이런 강연회를 몇 차례 더 가질 것이고, 특별히 도서관 강연을 많이 가질 거라고 했다.
언젠가 그는 자신을 단순히 소설가라고 하지 않고 집필 노동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에 걸맞게 그는 작품을 마치면 곧 바로 그 다음 날 새로운 집필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그러질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쓰는 내내 몸이 젖어 있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조운선 침몰 사건에서 세월호를 생각해 냈는데, 정말 그는 세월호를 생각하고 조운선 침몰 사건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달 반 정도 작업을 작파했었다고 한다. 집필 노동자를 자처한 그가 한 달 반을 글을 못 썼다는 건 그 사건이 꽤 충격적이긴 했었나 보다. 그래서 일까?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낭독 시간을 가졌는데 2권 378쪽을 읽어 주었다. 그것은 조운선에서 타고 있다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이름을 써 놓은 장이었는데 특별히 '제탁'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 이름은 다름아닌 작가 김탁환의 족보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은 것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하므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하고 싶었던 작가의 자의적 행동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오래 전부터 조선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써 오고 있는데 이 책 <목격자들>이 30, 31번째 소설이고, 그는 필생의 작업으로 이것을 60권까지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벌써 반환점을 돈 셈이다. 마치 발자크의 <인간희극>처럼 말이다(이것에 관해서는 jpsartre.egloos.com/853064.을 찾아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보면 작가들 저마다 필생의 작업이란 게 있나 보다. 고은도 <만인보>를 아직도 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는 왜 조선을 쓰는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려시대는 너무나 먼 과거여서 육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상상으로 써야하는 반면 조선시대는 파헤치고 연구하 보면 뚜렷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목격자들> 그의 많은 백탑파 시리즈 중 하나인 셈인데 알다시피 '백탑파'란 학문적으로는 연암파로, 원각사지십층석탑에서 당대 지식인들이 랜드마크 삼아 모이고 발전해 갔던 학파다. 그것을 작가 특유의 안목으로 파헤치고 소설로 형상화한다는 건 확실히 꽤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은 홍대용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는 우리로 말하면 신대철급 거문고 연주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연주가에서 머물지 않고 악기를 만들기도 하며 망원경을 만들기도 했고, 수학자이기도 했단다. 그는 유학자로 시작해서 묵가로 갔던 급진적 사상가였다고.
하지만 그런 작가도 한동안 백탑파를 쓰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는 한때 추리소설에 대한 회의 즉, 지나친 낭만주의와 사필귀정이란 독자들이 예측 가능한 소설을 쓰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작가들이 잘 도전하지 않는 장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장편을 쓸 때 보통 세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첫째로, 순식간에 없어짐 또는 어떤 타락이나 부패를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두번째로 인간 존엄의 문제를. 세번째로 구경꾼과 목격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곹고통에서 비극으로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특별히 비극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영혼을 강건하게 하는 것을 주제 삼아 작업을 한다고 한다.
2부 순서에선 천문학자인 이명헌 씨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두 사람의 유대관계가 나름 돈독해 보인다. 이명헌 씨는 작가가 과학적 자식이 남다른 과학적 작가고, 김탁환 작가는 이명현 씨를 가리켜 과학도임에도 문학적인 사람이라고 추켜 주었다. 무엇보다 이명현 씨는 작가를 가리켜 혜성과 같은 작가라고 했다. 우린 흔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스타를 가리켜 혜성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혜성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발하는 별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도 주기가 있는데 무려 76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해왕성까지 갖다 오는 시간이 그렇다고 한다. 그동안 자기 살을 깎아먹고 돌아 오는 것이 혜성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하지만 확실히 김탁환 작가가 걸어 온 길과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면 그는 확실히 훗날 우리나라 문학사에 (어떤 의미로든)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이제 반환점을 돌았으니 나머지 반을 또 가야한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마칠 때쯤이면 노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작업을 마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내내 건강해서 우리가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는 작가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김탁환 작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