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흐림
지난 번 추위에 비하면 요즘은 춥지 않아 좋긴하다.
그러나 아직 겨울이다.
요즘엔 겨울이 짧고 봄이 빨리 오니까 2월쯤 되면 봄 얘기를 해도 좋겠지.
1. 엄마와 함께 연극을.
성탄절 날 내가 관련되어 있는 모 교회에서 연극을 했다. 그 교회에 드라마팀이 있고 나는 올해부터 그곳에 대본을 납품해 주고 있다. 벌써 네번째 출고다. 짧은 연극이긴 하지만 팀원들이 성실히 모여줬고 이 연극을 위해 11월 둘째 주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은 주일 날 한 번 밖에 모이지 않으니.
좀 거시기 했던 건, 이 대본을 여름에 썼다는 것. 뭐 위에서 그러라니 그러는 수 밖에. 한 여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썼다. 나에게도 8월의 크리스마스라니. (실재로 그 드라마는 8월말에 완성시켰다.)
그곳은 독특하게도 젊은 사람은 없고 다 나이 많은 중장년들이다. 나도 그들과 비슷한 또래긴 하지만 이렇게도 젊은이가 없다니 갈 때마다 혀를 끌끌찼다. 나라도 젊었다면 내 영혼이라도 벗겨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러다 이번엔 초등학교 6년생 두 명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젊어도 너무 젊지만 이렇게라도 모여준 게 어딘가. 마침 등장인물에 소년이 있기도 하니.
그중 한 아이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자기 엄마 따라 왔다. 엄마가 결혼 전 연극판에 잠시 몸을 담았고 이번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모르긴 해도 성탄절이고 뭔가 추억을 남기고 싶어 온 모양. 팀 분위기도 들떴다. 마치 애기 울음 소리 들을 일 없는 어느 촌마을에 아기 태어났다고 좋아하는 모양새와 같다.
아, 근데 나도 고맘 때 그랬을까? 전형적인 중2다. 중2병란 말을 한 10년전부터 들어왔던 것 같은데 그동안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가 보다. 얼굴에 표정이 없고 시크하다. 엄마가 결혼 전에 잠깐 극단에 몸담은 적이 있다고 하고, 그동안 계속 이 일을 해 온 것도 알 것이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엄마 연극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반응이 의외였다. 그냥 씩 웃고 말거나, 영혼없이 잘 해요. 뭐 이럴 줄 알았는데 무뚝뚝하게, "이상해요."다. 순간 웃을 수 밖에. 엄마 연기가 이상하다니.ㅎㅎㅎ
하긴, 연극이란 게 그 호흡 때문에 좀 이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으로 봐 이 모녀도 츤데레 가족이란 걸 알겠더라. 원래 가족끼리는 좋은 얘기 안하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 아이는 거짓말 안 한다.
난 웃으며, "엄마 연기 정말 잘 해." 했다. 그러자 소녀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린 아이라고 다르지 않다. 내내 자기를 키워 준 엄마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다가 그렇게 한번씩 누군가가 칭찬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연극은 대체로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그 소녀는 지금은 무덤덤하고 시크해도 크면서 이번 성탄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3. 앞으로 버스비가 오를 모양인가 보다. 3백원인가, 4백원이 오른다는데 예전에 지금의 1200원이 됐을 때 앞으로 돈 없는 사람은 버스도 타지 말라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올해 기습적으로 모든 물가가 오를 때 버스비는 아직 건재했다. 그게 오히려 고마웠다. 하긴 외국에선 원래 버스비가 비싸 외국 사람들 우리나라 버스비 싼 거 보고 좋아라 한다던데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잘도 버텼지. 이제 정말 돈 없으면 버스도 못 타는 시대가 올 모양인가 보다.
전기 요금도 올라서 4천을 더 내야한다고 한다. 말이 좋아 4천원이지 실제 느끼는 체감효과는 이보다 더 할 것이다. 가스비는 동절기 동안 묶어두기로 했다던데 옛날처럼 연탄에 물 데워 쓰고, 밥 해 묵고, 나물 볶아 묵을 날이 다시 오지 않을까 싶다.
4. 그래도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는 어김없이 떠오르겠지.
올해는 유난히 국내 안팎의 문화계 인사들이 많이 타계했다. 여러 가지 불미스런 사고도 많았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나쁜 일도 있었다. 이제 짝수 해 좋고 홀수 안 좋은 그런 징크스 같은 거 안 통하는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 잘 사는 거 그거나 바랄뿐이다.
내년엔 불행한 소식 좀 적게 듣고 대신 좋은 소식 많이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긴 그나마 올해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에 안 들어 갔으면 더했겠지.
어떻게 사나 해도 다 살게 마련이다. 용기 잃지 말고 내년에도 뚜벅뚜벅 잘 살았으면 좋겠다.
모두들 건강하게 새해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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