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페미니즘 - 함께 공부하는 여성권 강의 사회운동 작은책 2
이유미 지음 / 사회운동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분이 직접 몇 년간 페미니즘 주제로 노동자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세미나에서 토론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실용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성폭력 문제를 노동권 측면에서 접근한 장점이 돋보인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거나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적 쟁점을 주로 다루어 출간된 지 몇 년 되었지만 낡은 느낌이 없다. 인용하고 있는 통계 자료만 업데이트해주면 스테디하게 사랑받을만한 책이다. 얇지만 내용이 충실하다. 콤팩트형 서바이벌 키트같은 느낌?  

 

저자는 강조한다.  성폭력 예방 문제를 매녀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가해자를 처벌하면 해결되는 개인적인 문제라거나 주변에 여성이 있을 때 언행을 조심하는 정도의 도덕적인 의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서술한다.  전체적인 여성 억압의 현실이 어떤지, 노동 시장에서 여성들이 받는 차별과 성적인 폭력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이 있게 이뤄지지 않는 것. 그래서 사건 발생 때 잠깐 관심 가졌다가 마는 것 같은 문제 말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성역할 구분과 그로 인한 위계, 여성의 성을 금기시하고 남성의 공격적 성욕을 본능처럼 생각하는 이중적 성규범,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풍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 사회적 문제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사회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조직 안에서 여성 동료에게 술 따라라, 연애하자는 식으로 치근덕대는 행위, 밖에 나가서 성매매하고 도우미를 부르는 행위, 여성노동자가 관리자와 고객으로부터 성희롱 당하는 현실이 모두 동일한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 본문188쪽에서 인용

 

또한 성폭력은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노동할 권리를 침해한다. 가해자는 위력을 가진 직장 상사뿐만이 아니다. 온갖 갑질하는 인간들이 가해자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생기는 젠더 폭력이기 때문이다. 음란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는 콜센터 노동자라든가 백화점, 마트, 식당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당하는 성폭력도 직장 성폭력이다. 직장은 '고객이 왕'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방치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일 경우 파견 관리하는 정규직 남성 사원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직장 성폭력은 불륜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기본 노동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딛고 있는 조건을 혁신하는 것부터 출발해서 여성들이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도록 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싹틔웁시다.

- 본문 189쪽에서 인용

  

독서 모임에서 활용하기 좋게 각 챕터마다 토론 거리를 주고 있어 더욱 유용하다.  제목 대로 '지금 여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페미니즘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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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일이다. 외대 후문 쪽에서 알바를 했다. 집도 학교도 그쪽이 아닌데, 친구가 하던 자리를 이어받아 하다보니 장장 6개월 동안 1주에 6일은 외대에 가게 되었다. ( 여담인데, 그래서 나는 내가 1/8 외대생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한 학기를 다녔으니까. )

 

지금도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데 대학생이던 그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렇다, 오죽했다. 알바하다 쉬는 시간에 후문 쪽 분수대에서 커피 마시거나 학생 식당에서 짜장면 먹고 있으면 왜들 그리 '대시'를 해'대시'는지, 원. 취향도 독특해. (여담인데, 남자들아, 제발 입가에 짜장 묻히고 있을 때는 말 좀 걸지 말라구. )

그중 한 남자가 계속 내가 알바 출퇴근하는 길목을 얼쩡거리며 말을 걸었다. 외대역까지 쫄쫄 따라 오곤 해서 짜증이 났다. 무시하고 지나치던 어느날, 그가 길에서 내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밥 한 번만 같이 먹어달라고. 다시는 안 따라다니겠다고.

 

좋다! 식당으로 안내하라, 남자여.

 

그는 외대 정문을 등지고 지하철역으로 향했을 때 대로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무슨 경양식집이었다. 칸막이로 테이블이 분리되어 있었다. 인테리어는 원목과 하얀 회칠벽으로 되어 있었다. 어딘가에 하이디가 잠자는 다락방도 있을 것 같았다. 하이디네 염소같은 표정으로 메뉴판을 들여다보더니, 그는 정식인지 돈까스인지를 2인분 시켰다.

 

지금도 박력 넘치고 괴팍미 뿜뿜하는데, 20대 시절에는 오죽했을까? 그렇다, 나는 오죽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첫 데이트에 성공한 기쁨을 천천히 누리려는 대시남은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맹렬하게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고기를 썰고, 삼지창을 이용해 입으로 날랐다. 마지막 고기 한 점을 삼키는 즉시 얼른 후식 커피를 달라고 소리쳤다.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지? 나 간다. 앞으로 귀찮게 굴지 마!"

대시남이 화를 내며 말했다. "먹고, 그냥 튀게?"

 

파바박, 머리가 돌아갔다. 이 남자가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이 새끼가, 나를 돈 주고 산 것으로 여기고 있구나. 지가 밥을 샀으니 여자인 나는 얻어먹고 웃어주고 애교떨며 자기 즐겁게 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너에게 쓴 돈값을 하라니, 감히 내게?

 

나는 군말 안 하고 카운터로 가서 2인 밥값을 계산했다. 반도 안 먹은 돈까스 접시를 앞에 두고 당황해하는 돈까스남을 버려두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다음날, 돈까스남은 또 나타났다. 약속과 다르다, 왜 나타났냐고 물었다. 그가 뇌맑게 웃으며 말했다. "대개 여자들은 얻어 먹는데, 너는 내 밥값까지 내 준 것으로 보아 내게 호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또 왔다. "

 

그 이후 오랫동안, 돈까스만 보면 그 남자 생각이 나서 화가 났다. 그러나 후진 남자의 상처는 새 남자로 치유하는 법. 내게 돈까스만 보면 생각나는 다른 남자가 생겼으니,

 

바로 17세기 루이 13세 시절 프랑스 총리이던 리슐리외 추기경.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보면, 결투를 하려드는 달타냥과 총사들이 리슐리외의 근위병에게 체포당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리슐리외는 1626년 결투 금지령을 내렸다.

 

결투금지령 외에도 리슐리외가 결투를 막는데 기여한 사실이 더 있다. 리슐리외는 식사용 나이프의 끝을 둥글게 깎으라는 명령도 내렸다. 이전에는 식탁용 나이프와 일반 나이프의 구분이 없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식사하다가 다툼이 생기면 바로 식탁에 있던 나이프를 들고 칼부림을 하곤 했다. 이런 문제를 줄인 리슐리외형 나이프는 곧 프랑스 귀족 집안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는 프랑스 전체와 유럽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칼싸움 방지 목적도 있지만, 식사 도중에 나이프를 들고 이를 쑤시는 손님을 보고 경악해서, 라고도 한다.

 

여튼, 나는 자라서 역덕이 되었기에, 이제 돈까스를 먹을 때는 그때 그 대시남이 아니라 리슐리외 추기경을 생각한다.

 

아, 리슐리외 당신, 식사용 나이프의 끝을 둥글게 만든 것, 정말 잘 한 일이었어요. 만약 여전히 나이프가 뾰족했더라면, 아마 저는 그때 그 돈까스남을 ,,,, 그랬더라면 역사 에세이 작가가 된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그리고 이렇게 제 책 광고도 못 했겠죠.

 

 삼총사와 리슐리외의 갈등, 결투 금지와 식사용 나이프 등등, 흥미진진한 서양 명작과 역사 배경 이야기가 담긴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가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초판 원고에서 역사부분을 보강하고 전체적으로 손 봤습니다. 여기에 쓴 리슐리외형 나이프 이야기는 삼총사 편에 새로 들어갑니다. 기존 박스 기사에서 좌측통행 우측통행 이야기를 빼고 넣었습니다. 돈까스남 대신 제게 많은 사랑을 주시길 기대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쓴 책 신간 광고입니다.

알라딘에 근래 글을 자주 안 썼는데, 오랫만에 와서 대놓고 광고하기 죄송스러워서 수다부터 떨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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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사용 4개국 -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역사와 언어사 그리고 특징
이상민 지음 / 다해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독일어 사용하는 4개국 즉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의 역사와 문화, 언어, 국가 제도에 대한 책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책은 많은데 스위스에 대한 책은 없어서 이 책을 구해 읽었다. 이 책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긴 하다만, 그래도 유럽사나 오스트리아 등 다른 나라 통사에서 파편으로 읽어 꿰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한번에 주욱 읽을 수 있는 것이 어디랴. '스위스 역사'로 검색하면 학습 만화만 주르륵 나오는 실정인데.

 

책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인 '유럽의 약사(略史)와 게르만족의 성장'에는 위 독일어 사용 4개국가에 공통되는 기본 지식을 제공한다. 유럽의 어휘 의미와 지리적 정의, 유럽의 약사, 게르만 민족의 성장 발전과 독일의 기원 등등. 이 부분 별 기대없이 읽어나갔는데 의외로 내용이 풍부해서 좋았다. 세계사나 유럽사, 독일사 통사의 앞 부분에 조금 나오는 내용이 길게 서술되어 있다. 유럽 고대, 중세사에서 게르만족의 비중이나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카를 데어 그로쎄)를 유럽의 아버지로 추종하는 이유를 여실히 느꼈다.

제2장은 '독일어의 변천'인데, 슬프다. 1달 학원 다녀 배운 독어 실력으로는, 그저 흐름만 대강 따라 구경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내 실력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장이니 패스.

 

가장 기대했던 제3장 '독일어 사용 4개국의 역사' 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역사의 경우 다른 책으로 좀 읽어 배경 지식이 있다.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의 경우는 다른 지역 역사를 읽다가 토막토막 안 정도이고. 그래서 한 줄에 꿰어 읽는 효과를 보고 싶었는데, 분량이 적어 아쉬웠다. 할당된 쪽수 자체가 적은 관계로 서술이 피치못하게 사건 전후 관계 분석 없이 연도와 장소, 사건 나열일 수밖에 없었고.  

제4장인 '4개국의 특징'은 각국의 기본적인 사회 제도 등을 다루고 있다. 이건 기본 정보 서적같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그리 만듦새가 좋은 책은 아니다. 편집도 그렇고, 원고 자체도,,, 심한 논평은 생략하겠다. 역사 서술에서 중복되는 부분이 많고 같은 용어를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도 많았음을 밝힌다. 예를 들자면, 어디는 '웨스트팔리아' 조약이고 어디는 '베스트팔렌' 조약이다. 같은 용어에 대한 영어, 독어 표기도 그때마다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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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 김미진 옮김 / 호밀밭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부터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일어난 '탈코르셋' 운동을  보면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안 꾸밀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남자들이 여자를 욕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걸레다''못생겼다''뚱뚱하다(멧돼지 쿵쾅쿵쾅)'인 점도 새삼 흥미로왔다. 한 남자가 그런 말을 하면 참 뇌맑고 무례한 남자도 있구나, 라고 지나치면 되지만 대다수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역사와 구조를 봐야 하는 법, 그래서 찾아 읽은 책이다.

 

이 책에서,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 여성인 저자는 추한 여성에 대한 기록의 역사를 고찰한다. 여성이란 존재 자체를 추한 존재로 규정하거나, 남성 권력에 저항하는 여성을 추하다고 보고, 이 모든 추한 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하여  여성을 혐오하고 남성의 권력을 유지하는 유구한 역사를 책은 잘 보여준다. 여성의 외모를 놓고 품평하여 여성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간접적 지배 방법이 작동하는 원리도 역사적으로 서술한다.

 

철학자들이 나서서 여성의 존재 자체를 추하다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인간 해방이 왔으나 여성은 해방되지 못한 르네상스 시대, 이어서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근대, 마지막으로 여성해방운동이 시작되어 법적 제도적 차별은 타파했으나 여전히 외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남아 여성 스스로 피해자며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현대까지. 저자는 세 시기로 나누어 방대한  문헌 자료를 통해 추한 여자의 역사를 살핀다.

 

이상한 일이다. 인간의 추함이란 성별을 가리지 않을텐데 추함에 관한 철학, 의학, 사회, 문학 텍스트는 확연히 여성을 더 다룬다. 늙어서 추해지는 것 역시 성별없이 마찬가지인데 늙음에 대한 혐오 역시 여성에게 집중된다. 그렇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갖는 단점은 모두 여성에게 집중된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바로 여성 혐오의 역사였다. 그리스 철학자들, 가톨릭 사제들, 의사들, 작가들,,, 왜 이들은 이토록 못생긴 여자를 혐오했을까? 각 시대의 주류 담론을 만들어 내는 인텔리 남성들이 끊임없이 못생긴 여자를 공격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결국 남성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증거다.

 

예쁜 여자는 멍청하고 똑똑한 여자는 못생겼다. 결국 여성은 늘 불완전하다는  말이다.

- 150쪽에서 인용

 

책을 읽어가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페미니스트 여성을 '못생겼다'고 공격하는 이유도 간단히 알 수 있다. 그들이 남성 권력 유지에 복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 외모와 상관없이 후진 남성들은 시대가 변해도 끊임없이 ‘못생긴 여자’를 만들어내고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못생긴 여자는 정신적으로도 추한 존재이고 열등한 존재이므로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각종 매체와 광고 등이 못생긴 여자에 대한 공격에 가담한다.

 

실제 외모와 관계없이 전통사회가 노처녀, 반란녀, 똑똑한 여자를 모두 추한 여자로 치부해버린 것은 추한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인 통제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남성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성 스스로가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가치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번화를 요구하는 여성은 추하다는 비난과 함께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이었다.

- 195쪽에서 인용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친어머니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고교, 대학 시절 문학회 활동을 할 때는 '못생겼으니까 글을 쓴다''못 생겨서 사랑받지 못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말을 같은 문청 남자들에게 들었다. 사귀던 남자 역시 조금 친해지면 내가 못생겼다고 말하곤 했다. 체중이 40kg대인대도 사람들에게 뚱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제  나이가 드니 나는 늙은 여자여서 가치가 없다고 하네? 이런 내 개인적 체험을 통해, 독학으로 읽은 역사책과 페미니즘 책을 통해 나는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지배하고 싶어서, 나를 폄하하여 값을 후려쳐 지배하고 이용하기 위해 하는 공격이라는 걸. 이제는 내공이 쌓여 지나가던 할배가 '얼굴이 좆같이 생겼다'고 욕하면 오히려 '당신 좆은 나같이 예쁘게 생겼나요?"라고 예의바르게 반문한다. 그러나 이 경지에 오기까지 마음 고생은 꽤 했다. 

 

그러니, 다른 어린 친구들은 이런 책을 읽어서 보다 일찍 깨닫고 자유로워지길. 역사책이라고 하지만 동화나 마녀 등의 예화도 있어 통해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다 안다. 외모로 사람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그동안 세뇌당한 세월이 있기에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외모 평가할 수 있다. 부단히 읽고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을 낸 호밀밭 출판사는 3달 후 강동수 소설가의 <언더 더 시>를 출간한다. 어떤 출판사에서 페미니즘 책을 내더라도 편집팀에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여성주의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출판사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잘 보여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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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음식문화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3
맛시모 몬타나리 지음, 주경철 옮김 / 새물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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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른 책 읽다가 생각나서 꺼내들어 잠깐 뒤적여 보다가 그만 처음부터 다시 다 읽어버렸다. 최근에 후진 음식문화사 책을 한 권 읽어서인지,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의 진가를 더욱 알 것만 같다. (마치 무식한 언행을 일삼는 남자에게 지치고 상처받아 인생 최고의 남자라고 생각했던 옛사랑에게 돌아가 다시 안긴 것 같다.) 심지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으며 넘겨가는데 막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아, 눈물겨워라.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개 읽은 책 중 최고의 음식문화사 책이다. 일반 유럽 문화사 책으로 봐도 다른 명저서들과 견주어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경철 선생님의 다른 저서에서 언급해서 알게 되었는데 절판이어서 구하기가 어려웠다. 여름 휴가 때, 작정하고 시내 대형 서점을 다 뒤지고 다니다가 간신히 매대 한 귀퉁이에 남은 한 권을 구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내게 쉬운 남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곧 재판 찍어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게만 튕기는 남자였던 것이다.) 뭐 이런 사연이 있어 내겐 더 애틋하다. (지금 검색해보니 또 절판이다. )

 

책의 내용을 간추려 적어 놓는 것은 의미 없다. 그냥, 내 친구분들께, 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무작정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후추 같은 향신료가 육류의 장기 보존을 위해 필수적이었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었라는 등 특히나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 지식을 바로잡아주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보통이 아니다. 또 게르만 문화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대립을 맥주- 고기 문화와 포도주 -빵 문화의 대립으로도 서술하는 등,  정치사나 전쟁사가 아니라 음식 문화사라는 또다른 시각을 통해 유럽사를 조망해 보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매우 유익하다. 

 

그외에도 일반 유럽사 통사를 읽을 때 미처 설명해 주지 않는 세세한 점들, 유럽 배경인 소설이나 영화 볼 때 궁금했던 음식 문화 관련한 점들을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가톨릭 측의 금식 목록에 얽힌 이야기나 종교 개혁 덕분에 유럽의 음식 문화가 더욱 섞이게 되었다는 등 기독교 문화와 관련된 부분이 많아, 특히 종교 개혁기 역사에 관심있으신 분이 읽으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

 

배경 지식이 없으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강추! (사실, 숨겨놓고 혼자만 몰래 만나고 싶은 남자같은 책이기는 하지만) 역덕이라면 중고 서점에 보인다면 무조건 사서 쟁여 놓고, 구하기 힘들면 먼 지역의 도서관에 택시타고 가서 대출해서라도 꼭 읽을만한 책이다. 모든 좋은 역사서가 그렇듯이 이 책은 편견없이 세상을 보는 보다 너른 시각을 갖게 만들어 독자를 성장시켜 주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남자와의 좋은 연애가 비록 헤어진 후에도 한 여자에게 평생 자신답게 살아갈 내적인 힘을 남겨 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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