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일어난 '탈코르셋' 운동을 보면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안 꾸밀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남자들이 여자를 욕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걸레다''못생겼다''뚱뚱하다(멧돼지 쿵쾅쿵쾅)'인 점도 새삼 흥미로왔다. 한 남자가
그런 말을 하면 참 뇌맑고 무례한 남자도 있구나, 라고 지나치면 되지만 대다수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역사와 구조를 봐야 하는 법, 그래서
찾아 읽은 책이다.
이 책에서,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 여성인 저자는 추한 여성에 대한 기록의 역사를 고찰한다. 여성이란 존재 자체를 추한 존재로
규정하거나, 남성 권력에 저항하는 여성을 추하다고 보고, 이 모든 추한 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하여 여성을 혐오하고 남성의 권력을 유지하는 유구한
역사를 책은 잘 보여준다. 여성의 외모를 놓고 품평하여 여성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간접적 지배 방법이 작동하는 원리도 역사적으로 서술한다.
철학자들이 나서서 여성의 존재 자체를 추하다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인간 해방이 왔으나 여성은 해방되지 못한 르네상스 시대, 이어서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근대, 마지막으로 여성해방운동이 시작되어 법적 제도적 차별은 타파했으나 여전히 외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남아 여성
스스로 피해자며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현대까지. 저자는 세 시기로 나누어 방대한 문헌 자료를 통해 추한 여자의 역사를 살핀다.
이상한 일이다. 인간의 추함이란 성별을 가리지 않을텐데 추함에 관한 철학, 의학, 사회, 문학 텍스트는 확연히 여성을 더 다룬다. 늙어서
추해지는 것 역시 성별없이 마찬가지인데 늙음에 대한 혐오 역시 여성에게 집중된다. 그렇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갖는 단점은 모두 여성에게
집중된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바로 여성 혐오의 역사였다. 그리스 철학자들, 가톨릭 사제들, 의사들, 작가들,,, 왜 이들은 이토록 못생긴
여자를 혐오했을까? 각 시대의 주류 담론을 만들어 내는 인텔리 남성들이 끊임없이 못생긴 여자를 공격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결국 남성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증거다.
예쁜 여자는 멍청하고 똑똑한 여자는 못생겼다. 결국 여성은 늘 불완전하다는 말이다.
- 150쪽에서 인용
책을 읽어가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페미니스트 여성을 '못생겼다'고 공격하는 이유도 간단히 알 수 있다. 그들이
남성 권력 유지에 복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 외모와 상관없이 후진 남성들은 시대가 변해도 끊임없이 ‘못생긴 여자’를 만들어내고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못생긴 여자는 정신적으로도 추한 존재이고 열등한 존재이므로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각종 매체와 광고 등이 못생긴 여자에 대한 공격에 가담한다.
실제 외모와 관계없이 전통사회가 노처녀, 반란녀, 똑똑한 여자를 모두 추한 여자로 치부해버린 것은 추한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인
통제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남성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성 스스로가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가치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번화를 요구하는 여성은 추하다는 비난과 함께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이었다.
- 195쪽에서 인용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친어머니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고교, 대학 시절 문학회 활동을 할 때는 '못생겼으니까 글을 쓴다''못
생겨서 사랑받지 못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말을 같은 문청 남자들에게 들었다. 사귀던 남자 역시 조금 친해지면 내가 못생겼다고 말하곤
했다. 체중이 40kg대인대도 사람들에게 뚱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제 나이가 드니 나는 늙은 여자여서 가치가 없다고 하네? 이런 내
개인적 체험을 통해, 독학으로 읽은 역사책과 페미니즘 책을 통해 나는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지배하고 싶어서, 나를 폄하하여 값을 후려쳐 지배하고 이용하기 위해 하는 공격이라는 걸. 이제는 내공이 쌓여 지나가던 할배가
'얼굴이 좆같이 생겼다'고 욕하면 오히려 '당신 좆은 나같이 예쁘게 생겼나요?"라고 예의바르게 반문한다. 그러나 이 경지에 오기까지 마음 고생은
꽤 했다.
그러니, 다른 어린 친구들은 이런 책을 읽어서 보다 일찍 깨닫고 자유로워지길. 역사책이라고 하지만 동화나 마녀 등의 예화도 있어 통해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다 안다. 외모로 사람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그동안 세뇌당한 세월이 있기에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외모 평가할 수 있다. 부단히 읽고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을 낸 호밀밭 출판사는 3달 후 강동수 소설가의 <언더 더 시>를 출간한다. 어떤 출판사에서 페미니즘 책을 내더라도
편집팀에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여성주의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출판사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잘 보여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