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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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권에서는 표트르 대제,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 모차르트, 볼리바르, 나폴레옹 등 6명의 특출한 혹은 문제적 개인을,  해적들과 와트 등 산업혁명기의 발명가 겸 사업가들을 통해 두 분야의 사회 현상을 다룬다.  주로 18세기이고 혁명 혹은 혁명적 변화, 그러니까 '이중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사 사실을 서술하는데 충실하면서 지나친(소설로 말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이는 '작가의 개입'같은) 논평은 없는 편이다. 널리 퍼져있는 편견이나 오류도 잡아 준다. 프랑스 혁명기 공포 정치가 온전히 로베스피에르만의 책임은 아니라든가,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낭만주의시대 영웅화된 면이 있는 것, 볼리바르는 해방자이며 독재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산업혁명은 와트 등 어느 뛰어난 발명가 덕분이 아니라 기존 기술이 꾸준히 개량되며 진행되었다는 것 등등.  

 

무엇보다 나는 마리 앙트와네트가 '빵 없으면 케이크 먹어라'고 한 말은 사실 아니라든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를 악처로 서술하지 않아서 좋았다.

 

더구나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강경파 의원 장 폴 마라가 코르데라는 여성에게 살해당한 이후 혁명의 문위기는 여성 혐오로 돌아섰다. 과거 잔인했던 여성 지배자의 악행들을 거론하며 이를 앙투아네트와 비교했다.

-131쪽에서 인용

 

위처럼, 남성들만의 박애와 형제애를 추구했던 프랑스 혁명기의 모습을 언급한 것이 좋았다. 사실, 주경철 선생님 정도 되면 역사를 몰라서 못 쓰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가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취사선택해서 자료를 언급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중년 이상 나이드신 남성 저자분들이 프랑스 혁명 언급하면서 마리 앙트와네트를 희화하하는 것이 매우 싫었다. (역사 읽고 쓰시는 분들이 린 헌트도 안 읽었나? 알면서 안 쓰는 건가? ) 나는 지난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때, 어느 역사학과 교수가 박근혜를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교하면서 사치 때문에 혁명 어쩌구 빵 케이크 어쩌구하는 논평을 쓰는 것이 의아했다. 주경철 선생님 책에서도 그런 대목이 나오면 어쩌나, 나는 그럼 이제 어떤 책을 읽어야한다지, 하고 고민했는데 쓸데없는 여성혐오 논평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저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연민어린 시선으로 서술하지도 않는다. 사적인 삶을 추구한 앙투아네트를 두고 구체제의 마지막 왕비라기보다는 최초의 근대적 왕비라고 주장한 샹탈 토마의 견해를 소개하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 불안정과 변덕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결코 도움이 될 수 없었다고 딱 잘라 평한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세 개의 거대한 혁명이 대서양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바로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에 비해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역시 근대적 자유를 확대시킨 결정적 사건 중 하나였다. 1808년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2국이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정치와 위계적 사회 질서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인해 혁명이 일어난 다른 지역들과는 매우 다른 역사가 진행되었다.

- 251쪽에서 인용

 

그런 의미에서, 유럽은 아니지만 볼리바르와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과 독립 역사를 소개한 부분도 즐겁게 읽었다.

 

해적으로 3권을 시작하는 것이 좀 의외였다. <대항해 시대>에서 읽은 내용이어서 독자 개인적으로 아쉬웠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 이 역시 근대 국가 형성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겠다. 해군의 역할을 대신 하고 급료는 알아서 약탈로,,, 하다가 국가가 해군력을 갖추고 나서 하청 면허를 거두며 소탕에 나서는 과정 말이다.

 

1차 근대 서술을 잔 다르크에서 나폴레옹까지로 마무리한다는 저자 서문은 알쏭달쏭하다. 시리즈가 2차 근대 3권으로 또 이어진다는 암시인가? 그러길 기대한다. 물론, 더 읽고 싶으니까 하는 말이다. <유럽인 이야기>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나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능가하는 권수를 가진 시리즈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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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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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내게 힘든 일이 있었다. 성공 보장도 없는데 가던 길을 계속 힘들게 가야할지, 포기하고 안정을 택해야할지를 고민했다. 역시나 책벌레답게 책을 검색했고,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출판사의 책 소개글은 이랬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문인이라는 구태의연한 허상을 벗어던지고 그야말로 생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말한다. 삼십오 년 동안 지속적으로 소설을 써내기 위한 일상적인 실천, 건전한 야심을 품고 해외시장에 도전한 개척자로서의 모험과 성공, 소설로 먹고살기 위해 작가가 자신의 생업에 대하여 지녀야 할 자질과 태도를 열두 개의 장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혔다.

 

위에서 "35년 동안 지속적으로 써내기,,,, "라는 대목에 그만 정신줄을 놓았다. 이건 무조건 읽어야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는 비법을 얻을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놔,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라는 1회부터 연달아 등짝을 두들겨 맞고 혼난 기분이었다.

 

한 줄 한 줄이 눈물겹게 와 닿아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명심하고픈 부분을 옮겨 적는다.

 

제 6회인 '시간을 내편으로 만든다 - 장편소설 쓰기'라는 꼭지에서 하루키는 매일매일 20매씩 쓰는 습관의 중요성을 말한다. 잘 써져도 20매, 잘 안되도 20매라며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아아, 그는 규칙적으로 쓰고 뛰고 맥주를 마시지만, 내가 실천하는 것은 규칙적인 맥주 마시기밖에 없었구나.

 

원고 고칠 때 상대의 조언을 받는 자세에 대해 쓴 부분도 실용적 조언을 담고 있어서 옮겨 놓는다.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 157쪽

 

원고에 시간을 투자한 차이에 대해 온천물과 가정욕조물의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세 군데 인용해 놓는다.

 

작업 하나하나에 들인 시간의 퀄리티는 틀림없이 작품의 '납득성'이 되어서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는 역력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 167쪽

 

시간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 165쪽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시간에 컨트롤 당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요.

- 167쪽

 

특히 제 7회 꼭지인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이란 대목은 줄 쳐가며 눈물 닦으며 읽었다. 글 쓰기란 고독한 작업이니 내 육체를 다스려 참을성 있게 묵묵히 꼼꼼히 하라는 것,,,,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꼬박꼬박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입니다.

- 180쪽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 편으로 만들 것.

- 181쪽

 

책  좋았다. 참 좋았다. 위에 옮겨 놓은 부분이 특히  내게는 현실적인 조언이 되어 주었다. 꼭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혼자서 외롭게 작업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오랜 시간 한길을 가야 성과가 조금 보이는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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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은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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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융심리학의 대가 가와이 하야오를 교토로 찾아가 두 밤 동안 이야기 나눈 기록이다. 두 대가는 한신 대지진과 전쟁 등 커다란 재난을 당하며 변한 일본인들 전체 혹은 개인의 마음 상태라든가 결혼 같은 개인사를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현실의 삶 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고 예술을 창작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무라카미 : 인간은 누구나 병들어 있다는 의미에서는, 예술가나 창작을 하는 사람도 병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가와이    : 물론 그렇습니다. 

 

무라카미 : 거기에 대해 건강한 상태여야 하는군요.

 

가와이    : 그것은 표현이라는 형태의 힘을 가져야만 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예술가는 시대의 병이나 문화의 병을 떠안는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병을 앓으면서도 개인적인 병을 얼마간 초월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병을 초월해서, 시대의 병이나 문화의 병을 떠안음으로써 그 사람의 표현이

 

               보편성을 갖게 됩니다.

 

- 본문 88쪽에서 인용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마지막 꼭지인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의 추억'을 읽고, 도대체 하루끼란 이 남자가 이토록 절절히 인간적 매력을 그리워하여 애도하는 하야오란 이 남자는 누군가, 하는 생각에 찾아 읽었는데,,, 나 역시 이 남자의 매력에 빠져든 것 같다. 뭐랄까, 바탕은 다정한데 산전수전 다 겪어 삶이 심드렁해졌기때문에 단순한 조언을 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괴물들의 입에 먹이를 물려주며 달래는 능숙한 조련가같기도 하고,,,,  아아,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기빨리거나 나쁜 영향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오랜 세월이 필요할까.

 

대화는 덤덤한데, 두 섬세한 남자가 어려운 화제를 유리 구슬을 던지듯 조심스럽게 (편견이지만 일본인답게) 주고 받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라카미가 자신의 집필 전환점이 된 <태엽 감는 새>를 쓰게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내가 딱 그 작품부터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무라카미의 팬인 글벗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다 <상실의 시대>의 재탕 아닌가요? 라고 말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이런 나의 무식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대화를 나눠준 친구들은 나의 하야오 선생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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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8-03-24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이 책이 생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20대때 무라카미 책을 열심히 재밌게 봤고, 융심리학 책도 조금씩 봐둔터라, 기대가 컸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무라카미 소설의 활기나 융심리학의 어떤 활기를 많이 깊히 느끼기는 어려웠고, 그런 활기들을 느낀 책들(무라카미의 소설 자체와 융 분석심리학파의 심리학자들의 주옥 같은 책들)에 비하면, 그런 소재를 대하고 다루는, 일본인스러운 태도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인거 같습니다. 그래도 일본의 융 심리학 소식은, 제게는 엄청 흥미로운 영역인 거 같습니다. 예전의 인류학적인 관점인 <국화와 칼>이나, 일본스러움을 다양한 관점으로 소개하는 책들 속에서도 흔치 않은 관점인거 같습니다.

자유도비 2018-03-28 11:13   좋아요 0 | URL
조금 아쉬운 부분 말씀에 이어서, ‘그런 소재를 대하고 다루는, 일본인스러운 태도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쓰신 부분에 동감합니다. 저도 윗글 본문에‘두 섬세한 남자가 어려운 화제를 유리 구슬을 던지듯 조심스럽게 (편견이지만 일본인답게) 주고 받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라고 썼는데, 비슷한 느낌이지 않나 싶습니다.
말씀하신 <국화와 칼>처럼 외국인 저자가 일본에 대해 쓴 책이 더 일본스러움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기호의 제국>도 그렇고. 아, 최근에 읽은 책 중, <인간 증발>에서 독특한 일본스러움을 느꼈어요. ( 읽고 리뷰는 안 썼어요.)
그건 그렇고, 마일즈님과 책 이야기 나누는 것은 늘 재미있네요. ^^
 
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 3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65
키스 토마스 지음, 이종흡 옮김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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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사료 제시를 통해 정통 종교와 민간 신앙 간 관계를 파헤친 역작이다. 1,2,3권 다 읽고 리뷰는 3권에 한꺼번에 남긴다. 

 

정통 종교는 늘 민간 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고 미신을 부추기는 자들을 탄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세 가톨릭 교회는 민중들의 신앙에 편승하여 세를 불린 측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성찬례의 빵이 퇴마 의식에 사용되는 것을 묵인했다는 사실 등등.

 

어차피 사람들이 마술에 의존하고 있으니 마술을 배척하기보다는 교회의 통제하에 두는 편이 더 유리하지 않은가.

- 114쪽에서 인용

    

문제는 종교개혁 이후다. 프로테스탄티즘 측은 가톨릭 교회의 교회 마술과 민간 마술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가 천년 넘도록 쌓아올린 신자 보호 수단들, 예를 들어 퇴마의례 등은 설 곳을 잃었다. 이에 평신도들은 기존 교회의 보호막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악마나 주술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가축의 급작스런 발병, 기근이나 전염병, 홍수 등등 말이다.

 

16~17세기 영국 역시 그랬다. 특히 영국의 경우, 헨리 8세의 국교회 수립 이후 기존 가톨릭 교회의 구빈제도가 무너지면서 빈민, 과부, 노인 등 소외계층을 배려했던 공동체 시스템 역시 무너졌다. 이웃 사랑을 포기한 주민들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소외된 자들의 저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음식 구걸하러 온 가난한 노파를 문간에서 내쫓은 직후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자신이나 가족, 가축에게 주술을 걸었다고 고발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이성적인 마녀 사냥의 배경이 형성되었다.,,, 등등, 저자는 근대초 영국을 배경으로 역사 같지도 않은 별별 황당한 기록에서 명쾌한 흐름을 잡아낸다.

 

다른 역사서 읽다가 참고 문헌 주석에 자주 등장하기에 찾아 읽은 책이다. 주경철 선생님 저서 등 다른 마녀 관련 서적에서 마녀 사냥의 요인 중 하나로 소개하는, '거부된 자선 모델 설(이웃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마녀를 만들어낸다)'는 내용은 이 시리즈의 3권에 있으니 급하신 분들은 3권부터 읽으면 된다.

 

읽는 내내 이런 대단한 책을 쓴 저자는 물론, 팔리지도 않을 책을 내준 출판사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절판되면 중고서점에서 비싸게 거래될 책이 분명하니, 관심있는 독자분은 어여 사서 쟁여놓으시라.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허무맹랑한 마녀 관련 소품이 아니라 묵직한 역사 대물이다.

 

강추.

 

*** 이 책 외에 마녀 관련해서 내가 읽은 책들 중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책을 더 소개해본다면

<캘리번과 마녀> 자본주의 성립 과정, 특히 인클로저가 여성 억압과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 과정 잘 서술

<유럽의 마녀 사냥> 유럽 사법 체계의 변천이 마녀 사냥에 미친 영향 서술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유럽 민간 신앙과 엘리트 신앙의 관계를 잘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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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8-02-11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럽의 마술에 관한 인문학은 항상 마음을 끄는 소재입니다. 과학의 탄생을 얘기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도하고, 서양인들의 문화에 면면히 흐르는 기저를 확인할 수 있는 많지 않은 통로 이기도 합니다. 위 책의 역자인 이종흡 의 <마술, 과학, 인문학> 이나 다른 역서인 <코스모폴리스>에 그런 얘기들이 잘 나타나 있고, 그 책들에서 처음 그런 주장들을 접했을 때 지적인 즐거움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좀 방향은 다르지만 프랑수아 줄리앙의 비교문화적인 접근도 또 다른 통로의, 서양의 마술에 상응하는 동양의 문화를 탐구한 인문학이라고 생각됩니다. 껌정드레스님 새글 항상 반갑습니다~~
`

자유도비 2018-02-12 11:13   좋아요 0 | URL
우와, 마일즈님! 저 어제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검색하다가 마일즈님 서재 갔는데 오늘 이렇게 와서 댓글 주시다니, 신기합니다. ^^
말씀해주신 <마술, 과학, 인문학>과 <코스모폴리스> 목차 읽어보니 매우 흥미롭네요. 절판된 책이지만 도서관에 가서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제가 어느 쪽에 관심 가지고 더듬더듬 찾아 읽고 으다다다 허접 리뷰 써 놓고 보면, 항상 마일즈님은 한 발짝 먼저 읽고 도와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마일즈 2018-02-20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책은 아직 못봤습니다.ㅎㅎ. <마술, 과학, 인문학>에서 참고 문헌으로만 보고, 이런 책이있구나 하고 있었는데, 번역됐다나 잘 됐네요. 곧 다가올 구정에, happy new (lunar) year! 입니다~~

자유도비 2018-02-13 00:01   좋아요 0 | URL
1,2권은 사례 나열 위주에요. 3권 가면 좀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별 사악한 마법은 없는데 책 가격이 좀 사악해요. ㅋ
번번이 감사합니다.
 
콤플렉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4
가와이 하야오 지음, 위정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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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심리학(분석심리학)을 일본에 최초로 소개한 가와이 하야오 선생이 쉽게 설명해주는 콤플렉스 이야기다. 이와나미 문고 시리즈답게 얇고도 내실있다. 그동안 읽었던 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의 오타쿠같은 책들과 다르다. (물론 그런 책들도 나는 매우 좋아한다)

 

1장에서는 콤플렉스란 무엇인가를 정의내리며 시작한다. 이어서  콤플렉스 현상과 해소 방법을 말한다. 내게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는, 흔한 여러 문제를 갖고 갈등하는 사람들의 예가 나온다. 예를 통해 가와이 선생은 조언을 해 준다. 우리는 누구나 콤플렉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억압하지만 말고 자아 체계에 통합하라고.  억압하고만 있으면 어느 순간 폭발해 버린다고.

 

이렇게 보면 자아는 존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과 스스로를 변혁하려는 경향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자아는 언제나 미완의 상태이자 발전하는 경향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 28쪽에서 인용

 

자아라는 것이 완성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자아의 불안정성이 비롯된다고도 나는 생각한다.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어딘가가 열려 있어야 한다. 완결되어 있는 것에는 발전이 없다. 그러나 열려 있는 것은 동시에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자아와 콤플렉스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 31쪽에서 인용

 

우리가 콤플렉스의 인격화를 여실히 경험하는 것이 꿈 체험이다. 꿈에서는 우리의 많은 콤플렉스가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 151쪽에서 인용

 

콤플렉스의 내용은 감정으로 굳어져 있다. 그것은 사실 해소라기 보다는 폭발에 가까운 현상을 통해서야 비로소 극복된다 .

118쪽에서 인용

 

꿈이나 신체 이상 증상은 콤플렉스를 받아들여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암시이자 기회라는 말을 해주는 제5장 꿈과 콤플렉스 부분이 인상 깊다. 해마다 겨울이면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다. 꿈 속 등장인물에게 아무 미련이 없는데 왜 자꾸 내 무의식이 불러내나, 하는 점이 의아했는데 이제 알았다. 그가 내 콤플렉스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책을 읽은 후  단단히 벼르고 있다가 드디어 또 꿈에 나타나기에 "꺼져!"라고 말해 주었다. ㅋ)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대담집인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를 읽고 가와이 선생에게 마음이 끌려서 찾아 읽었다. 책으로 만났지만 좋은 인연이었다. 이분의 책을 더 찾아 읽고 싶다. 덤덤하면서 겸손하고 따뜻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저자다.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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