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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성장기를 보냈기에? 하는 생각이 들어 읽은 책이다. 흠, 그랬군. 그는 록
소년이었군. 흠, 그랬군. 마루야마 겐지는 영화, 오쿠다 히데오는 록.
성인인 현재 시점에서 작가가 오디오를 장만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작가는 과거에 수집한 음반을 새 오디오로 들으며 왕년의 록 소년 시절을
회상한다. 중고교 시절의 작가는 여러가지로 문화 혜택을 받기 힘든 시골에서 부단한 노력을 통해 1970년대 록 밴드의 전성기를 영미 팬들과
실시간으로 누리게 된다. 1969 ~ 77년까지 대략 6년간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한 중딩 오쿠타 소년은 라디오를 사고
테이프에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한다. 집에 오디오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시절을 거쳐, 드디어 부모님을 졸라 오디오를 산다. 이제 엘피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다. 용돈을 아껴 음악 잡지를 사고 인근 대도시로 공연을 보러간다. 유명 록커들의 패션을 따라한다. 당연히 늘 돈이 모자란다. 개성
강한 친구들과도 록 음악 덕분에 뭉치고, 파칭코로 음악 관련 활동을 할 돈을 벌기도 하는 등 록 덕분에 버라이어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주요 곡명을 제목으로한 각각의 꼭지에 들어 있다. 그렇게 록 소년의 한 시절이 회상되면 각 꼭지 뒤에는 앨범 소개가 있다. 재미있는
구성이다. 번역도 발랄하다.
음악 이야기가 주이기는 하지만, 당시 영미 록 뮤직을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능청스런 입담 덕분이다. 나는 읽으면서 얼마나
소리내어 웃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당시 어린 소년의 입장에서 세세한 일화를 진지하게 소개한다. 그러다 갑자기 현재 성인의 시점이 되어 과거의
자신과 거리를 두고는 '참으로 한심한 오쿠타 소년이었다.'하는 식으로 논평해 버린다. <제인 에어>에서 반항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소녀와 숙녀의 두 시점을 사용하는 것의 코믹 버전같다. 예를 들자면 1976년 레인보의 첫 내일(來日) 공연 일화. 저자는 오전 수업
후 학교에서 도망가 공연장 매표소 앞에 줄 서서 표를 산다. 공연이 무르익자, 어린 작가는 리치 블랙 모어가 기타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만 보고 만 것이다. 리치가 기타를 부수기 전에 몰래 무대 뒤에서 싼 기타로 바꿔 매는 것을. 그 장면을 현재 성인인 작가는 이렇게
서술한다.
아아, 무대 뒤를 보고 말았다. 어른은 정말 교활하구나. 하기야 애용하는 스트라토캐스터를 부술 수는 없겠지. 어차피 연출이겠다. 오쿠타
소년은 어른의 사정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 252쪽
아아, 독특한 성장담 서술 방식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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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당시 희망대로 음악 관련 직업을 갖지 못하고 작가가 된다. 그러나 록에 빠졌던 그 경험은 작가로서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다. 말하자면 저항 정신이나 예술가의 자세 같은 것?
하지만 그 시절, 열여섯 나이에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208쪽
나는 작가가 되고 나서 뼈저리게 느꼈다. 창작자는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같은 창작자로서 피니건을 비롯해 '숨은 명반'을 만든 이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팔리지 않은 데 대해 당신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괴롭지 않았나요? 차가운 레코드 회사에 불을 싸질러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 267쪽
마이크 피니건이나 에이머스 태릭이 돼서 누군가 볼 줄 아는 사람에게 발견되고 싶다. 그런 작가를 은밀히 지향하고 있다.
- 270쪽
간단히 말해서, 팔리고 싶다, 하지만 농담이 통하지 않는 대중은 상대하기 싫다. 마니아가 인정하는 고고한 존재로 있고 싶다, 하지만 돈과
명성에도 매우 미련이 있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그럼 중간을 취한다 칠 때 어느 정도의 포지션이 이상적이냐 하면 그게 스틸리 댄인 것이다.
1년에 한 권 정도 책을 내서 그럭저럭 팔리고 평가도 받고, 오래도록 사랑해주는 팬이 있으면서 배신하지 않는다. 아아, 그런 작가로 있을 수 있다면,,,,, 나도 꽤나 얌체 같은 소리를 한다. 하하하.
- 281쪽
솔직히, 나는 록 음악 이야기하는 부분보다 위의 인용 부분이 더 와 닿았다. 오쿠타 씨, 저도 고고한 작가인 척하면서 돈에 미련 있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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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에는 마치 음반의 보너스 트랙처럼 단편 소설이 한 편 실려 있기도 하다. 임진모 씨의 글도 있다. 일본 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일러스트며 표지며 대단히 공들인 티가 나는 책이다. 왕년에 록 소년이었던 분은, 아니 지금까지도 록 소년인 분(이 정도만 써도 블로그 글벗 중
누구이신지 다들 감이 오실 것이다. )은 록에 문외한인 나 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듯 하다.
자신이 십대 때 듣던 록이며 팝을 좋은 음질로 다시 듣는다는 것은 어른이기에 가능한 은밀한 즐거움이다. 나는 이제 새 음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역이 아닌 것이다. 복고 지향이라고 하든 말든, 사람이 뭔가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허용량이라는 게 있다. 그게 다 찬 사람은 그 안에서
조용히 노는 게 일종의 점잖음이 아닐까.
-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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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또 와 닿은 부분이 있다. 저자가 록 음악 이야기를 하며 허세 부리는 대목. 중고딩 시절의 나는 '참으로 한심했던 오쿠타 소년'과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으며 잘난 척을 하던 '참으로 한심했던 껌정 소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가한다. 333쪽에 '개랑 원숭이랑 꿩이야. 조금은 도움이 될 테니까 데려가라." 는 말은, 일본민담인 <모모타로>에서
아기 장수 모모타로(복숭아 동자)가 개, 원숭이, 꿩을 육해공군 부하로 데려가는 것을 빗대어 자기들이 오케이의 거사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라는 거, 다들 아셨나요? 그외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린다'라든가 '오봉 춤 박수' 등등,,, '참으로 한심한 껌정 소녀'인 저는,
책을 읽는 내내 역자 주석 없이 서술된 일본 역사 문화 배경 지식에 대해 무진장 잘난척 하고 싶어졌답니다. 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