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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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인생론 에세이. 이번 책은 젊음, 그것도 '자립한 젊음'을 평생 유지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역시 목차부터 시원시원하다.

 

1장 가족에 길들지 마라
2장 직장에 길들지 마라
3장 지배자들에 길들지 마라
4장 목적이 없는 자는 목적이 있는 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5장 당신을 구제할 힘은 처음부터 당신에게 있었다
6장 누구의 지배도 받지 말고 누구도 지배하지 마라

 

자신이 시골에서 전업작가로 살아온 이야기이기에 도시의 직장인들에게는 좀 다른 세상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본은 다 옳으신 말씀이다.

 

산 자에게 유일무이한 보물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아무도 지배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진정한 자립이며 진정한 젊음이다. 하지만 무수한 욕망과 무수한 정념이 그 길을 가로막아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자는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가시밭길이다. 투쟁의 연속이며 숨 돌릴 틈도 없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사는 것의 진정하고도 깊은 맛은 자신이 확신을 갖고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다.

- 192쪽에서 인용

 

그것은 절대 속지 않는 것이다. 속지 않으려면 모든 권력과 권위를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수 조건이다. 아니 어떤 권력도 권위도 다 사기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 208쪽에서 인용

 

젊은 시절 까칠하게 글 쓰시던 분들도 연세 들면서 심신이 약해지면 글빨도 무뎌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분은 일흔 넘어서까지 일관성 있으시다. 나이 들어 갑자기 착해지고 푸근해져서 종교에 귀의하여 독자들에게 배신감 안겨 주는 그런 부류의 작가가 아니다.

 

저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는 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있다면 거기에 가서 어떻게든 살아갈 생각을 하면 되고, 없다면 무가 되어 소멸되면 그뿐이다.

- 207쪽에서 인용

 

자립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첫째 조건.

간호는 지옥이다. 간호를 받는 쪽도 그렇지만 간호를 하는 쪽에게는 그 이상의 지옥이 없다. 그 지옥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전 인생에서 자립한 젊음이 시험받는 최대이자 최후의 사건일 것이다.

아내에게는 미리 전했다. 쓰러져 의식을 잃는 일이 있어도 절대 구급차를 부르지 말라고. 죽음을 확인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말고 방치하라고.

- 226쪽에서 인용

 

저자는 독자나 평론가들 눈치보지 않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절약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로 시골에서 산다. 전업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작가들이 으레 하는 문단 사교 활동 등은 일절 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글을 위해 자기 방식대로 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늑대와 집개의 차이를 말씀하시던 친구분 생각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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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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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 이 분 참 묘하게 재미있다. 소설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자기 절제 능숙한 선승이다. 그런데 날 목소리가 그대로 나오는 에세이에서는 저돌적인 노지심이다.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인생론 에세이 책들과 다르다. '실용서'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시골에 가서 새로운 삶을 꾸려보려는 독자를 위한 실용적 정보를 주는 것이 목적인 책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골 생활 도우미 서적이 아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시골 생활은 이렇지만, 실상은 이렇다. 꿈 깨고 가라. 시골에 간들 당신의 삶의 자세와 정신상태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 마루야마 선생 아니면 어떤 작가가 이런 실용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정말 좋아서 미치겠다.

 

게다가 에세이에서 보이던 이분의 돌직구 문체가 이번 책에서는 완전 웃긴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면서 그런 것, 즉 시골의 실상을 느물느물 다크하게 서술해 주시는데,,, 시골이 건강 관리에 좋다고 생각하지 마라며, 응급실 가까운 대도시와 달리 비상사태 발생시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고 말한다. 아주 진지하고 냉정하게. 눈 앞에 정색을 하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다. 읽다보면 빵빵 터진다. 자신은 웃지도 않고 허리 꼿꼿이 세우고 무표정하게 이야기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를 웃기는 말 잘하는 까칠한 친구같다. 이번 번역자분은 ' ~ 입니다'라고 번역해놓아서 그런지, 정중하고 진지하게 서술하다가 핵심을 찌르며 반전을 보이는 저자의 개성이 더욱 돋보인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일본 국민성이라는 것이, 대도시 일본인 위주이거나 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 위주였다는 깨달음이 온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또 이분의 시골살이 조언에서 일반적인 시골의 주된 이웃이자 원주민으로 등장하는 분들(그러니까, 연세드신 시골 분들, 전쟁을 체험한 세대)의 다크한 면을 직면하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거 때마다 박정희의 공화당부터 시작해서 민정당, 민자당,,,, 이어 현재 여당까지 줄기차게 찍어대며 나이드신 분들의 특성과 너무도 같아서 놀랐다. '강자에게 지나치게 복종하여 눈앞의 이익만 얻으려는 국민성(125 쪽)' 같은 것.

 

이하, 이분의 매력 맛보기 인용

 

여하튼 나이만 먹어 가는 후반 인생을 시골에서 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거의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을,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 43쪽,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에서.

 

요컨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다고 개탄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은 당신이 사랑에 굶주려 있는데 아무도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워서일 뿐입니다. 이 얼마나 보기 흉하고 망신스럽고 구제하기 힘든 60세입니까.

- 112쪽, 삭막한 도시가 싫어 시골의 정을 느끼기 위해 귀촌하려는 사람에게 해 주는 말.

  ( 이 꼭지의 타이틀은 '관심받고 싶었던 건 당신이다'이다. )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당신들의 존재 자체가, 오랜 세월 동안 시골을 지배해 온 불문율 규정을 깨고 만 것입니다. (중략) 질투와 증오의 대상은 이렇게 해서 탄생합니다.

- 114쪽. 시골 원주민들의 텃세에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는 조언.

  ( 이 9장의 타이틀은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이다. )

   

어쩌면 당신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감정이 향하는 대로, 본능이 향하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자신의 형편에 맞는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에 나쁜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야생동물은 곧 죽음을 통해 사라질 운명에 있습니다. 다른 것들에 의지하려 하거나 주의를 게을리하자마자 소리도 없이 슬며시 몸이 파멸되기 시작합니다.

- 145쪽. 건강을 위해 귀촌하려는 사람에게 해 주는 조언.

 ( 저자는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며, 술담배 끊고 식습관 생활습관 등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말한다. )

 

남존여비 시대에 당신은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 덕에 주군 대접을 받으며 살았을 텐데, 이런 것을 단점으로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가까이에 있는 여성들에게서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것과 같은 보살핌을 오랜 세월 받아 왔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을 잃고 무엇을 몸에 익히지 못했는가에 대해 숙고한 적이 있습니까. (중략)

모친의 극진한 헌신과 봉사 덕에 당신은 겉만 번지르르한 성인 남성으로 세상에 나아갑니다. 결혼해서는 아내라는 제2의 모친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집니다. (중략) 거짓된 충실감과 성취감을 맛보면서 정년퇴직을 맞이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에 당신 배우자는 여자로서 겪는 이런 저런 모순을 깨닫고 의문을 품습니다. (중략)

(은퇴후 당신은) 먹고 마시고 자기만 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중간 같은 성가신 존재로 변해 배우자를 하루 종일 압박합니다. (중략)

그것은 당신이 홀로서기를 한 성인 남성이 되지 못했고 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어린애의 혼을 가진 채 60년을 지내 왔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받아야만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목각 인형, 타율적인 빈껍데기 인생밖에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154 ~ 156쪽. 은퇴 후 귀촌을 결행할 때 같이 갈 아내의 입장 대해 생각해 보라는 부분.

  ( 이 꼭지 제목은 '엄마도 아내도 지쳤다' 이다. 대박! )

 

그리고, 아래 인용부분은 시골생활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 와 박히는 문장이어서 인용한다. 

 

품격이란 어떠한 달콤함에도 어떠한 회초리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틀렸더라도 권위나 권력에 아양을 떨지않는 의연함 그 자체입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혼자일지라도 행동할 때에는 행동한다는 독립된 한 인간에게만 적합한 말입니다.

- 125쪽

 

덧붙이면, 눈빛이 죽어 있는 야생동물은 없습니다. 야생동물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본래 눈빛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생명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75쪽

 

노년에 이르러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져가는 중에 제 정신으로 이런 말 하는 어르신들이 참 좋다. 명예나 권력에 빌붙거나, 외롭다고 자기 말 들어주고 자기 말 지면에 실어주는 게 좋아서 정부나 매체가 원하는 말 해 주는 원로들은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자신의 매력이 떨어져서 돈으로 오빠 소리 들으려는 아저씨, 할아버지들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오빠와 아저씨의 차이는 눈빛의 차이, 저항하는 포즈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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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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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참 개성 강하다. 소설로 읽으면 숨막힐 정도로 시적인 문체인데, 에세이로 읽으면 거침없이 결론만 육성으로 내지르는 문체다. 삶과 글, 심지어 외모까지 일치하는 작가다.

 

이 책은 저자의 인생론이다. 부모에게서 자립하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캥거루족, 그보다 더한 패러사이트족이라고까지 이름붙을 정도로 사회문제가 된 일본 청년들을 예상 독자로 보고 쓴 책 같다. (이제 실직 상태인 일본 젊은이들은 단카이 세대인 부모가 퇴직하고 나면 부모의 연금에 기생해 살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 젊은이들 대상이지만 꿈을 가지고 노력해라, 원래 청춘 시기는 힘들고 아픈 법이다, 이런 뻔한 이야기 없이 자기 자신이 되어 제 정신으로 살 것을 강조한다. 특히,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해, 아래와 같은 조언은 정말 좋다.

 

그러니 적은 타국이 아니라 자국이다.

나는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자기 일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강자를 기다리다가는, 정신이 들었을 때는 독재자에게 굴복해 소총을 들고 군가를 흥얼거리며 행진하고 있는 허울뿐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총알받이의 하나로 최전선에 배치되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68쪽에서 인용

 

책에는 부모로부터의 자립부터 시작해서 국가 권력이나 종교에 세뇌당하지 말 것, 연애 놀이에 빠지지 말 것 등 비단 일본 젊은이뿐만 아니라 착실하게 나이 들어가는 대로 남들 사는 물결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좀 까칠하고 괴팍해보일 수도 있는 인생 충고가 담겨 있다.

 

내겐 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속이 후련했다. 공연장도 아닌데 읽으면서 막 "오빠, 꺄약~ "하고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솔직히, 남들에게 별나게 보일까봐 내 마음 속에 담아만두고 노트에 끼적거리던 문장들이 떡하니 책에 나와서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 같은 대 작가가 쓰니까 통하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쓰면 욕이나 한 사발 받아 먹기 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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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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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짧은 글 모음집이다. '유쾌한 지식 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이란 부제가 붙었다. '유쾌한 지식여행자'라니! 딱 저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카피다.

 

내용 소개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책에는 동시통역 에피소드, 동서양 혹은 일본과 러시아의 문화 차이, 해외 여행, 어릴 적 경험, 자신의 삶, 읽고 본 것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제목은 '문화편력기'이지만 문화에 대한 지식 정보를 얻는다,,,기보다 글쟁이인 한 인간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책은 본업인 통역 사이사이 짬을 내어 연재한 칼럼 모음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짧고 가볍게 지나가는 듯하지만, 그 짧은 글에 담긴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캠브리지대학에서 필기시험이 수학은 1747년, 고전은 1821년, 법률과 역사는 1872년에 시작할 정도로 서구에서 구술시험이 발달한 이유를 종이부족이 원인이었다고 평하는 대목은 놀랍다.  맛보기로 이어서, 저자가 애국주의, 내셔날리즘에 대해 논평한 문단을 아래에 인용한다. 줄친 부분의 명쾌한 비유는 정말 이 저자만의 개성이다.

 

(애국주의, 내셔널리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밑바닥에, 이치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틀림없이 숨어 있는 불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감정이기에 더욱 목청을 높여 주장하거나 선동하는 사람들을 신용할 수 없다. 성욕을 부채질하는 것처럼, 더러운 협잡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즈모폴리터니즘이나 보편주의라는 명목하여 그것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좋게 보면 위선이고, 나쁘게 보면 기만이다. 억제된 내셔널리즘이 폭주하는 공포를 20세기는 물릴 만큼 경험했지 않은가.

- 55쪽에서 인용

 

요시와라 유곽 특유의 '아린스'문체는 출신지역이 각각 다른 유녀들이 자기 고향 방언을 사용하여 생기는 지방색을 지워, 유녀의 출신지를 불분명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영어 등이 표음문자라고는 하지만 이름뿐이고, 말의 표기가 역사와 의미를, 발음이 현재를 각각 분담하고 있으며 그 증거가 발음기호다,,,, 등등 통역인으로서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한 성찰이 담긴 짧은 글들을 읽다보니,,, 아쉽다. 이 분이 작심하고 묵직하고 긴 역사 에세이를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건강하게 더 오래 사시다가 은퇴하신 후에 전업 작가 생활을 하셨다면 어떤 책이 나왔을까.

 

요네하라 마리, 관심이 가는 저자다. 본업인 러시아 동시통역을 하면서 얻은 일/러 문화와 역사 이야기, 프라하에서 소녀 시절을 보낸 독특한 이력에서 오는 감성 그리고 인간 관찰력과 유머. 이 저자만의 특성은 확실하다. 그런데 전문 역사서가 아니어서인지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읽을 때는 재미있는데 소장하고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다거나, 다른 일 하다가 생각난 정보를 확인하게 되지는 않는다.

 

박사 학위를 가진 다른 역사 저술가, 역사문화 에세이를 쓰는 시오노 나나미와 요네하라 마리,,,,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글을 쓰는 필자들의 개성과 장단점을 비교해 보다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 오타

62쪽  이반 츠베타예바 => 츠베타예프.

아버지는 츠베타예프, 딸은 츠베타예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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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진보 -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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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닥터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마음이 아프면 내가 처방한 책을 읽는다. 그런데 아, 이 책 약발 끝내준다!

 

이 책은 <축의 시대>로 유명한 종교 저술가 카렌 암스트롱(1944 ~ )의 자서전이다. 영적인 삶에 관심있던 저자는 17세에 수녀원에 들어간다. 명민한 그녀는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경직된 수녀원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7년만에 환속한다. 신경 쇠약을 앓는다.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공부에 몰두하지만 수녀원에서 7년동안 익힌 삶의 방식 때문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다. 최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논문을 쓴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자신이 교수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교 외 세상에 적응해 살 자신이 없다. 간질 발작이 시작된다. 박사 논문은 통과되지 못한다. 대학에 남지 못하게 된다. 여고 교사로 취직해 영문학을 가르친다. 수녀원 경험을 다룬 첫 책을 쓴다. 병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저자는 자신이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이며 낙오자, 주변인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자신을 이렇게 망가뜨린 수녀원과 종교를 비판하면서도 저자는여전히 영적인 것에 끌린다. 방황한다. 생계를 위해 덥석 맡은 방송 작가 일로 예루살렘에 취재하러 갔다가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접하며 종교, 신, 영성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된다. 종교 공부를 시작한다. <신의 역사>와 <마호메트>를 저술하며 드디어 신과 종교의 본질에 대해 깨닫는다. 다른 문화권의 종교에 대한 편견, 혐오를 없애는 역할을 하며 종교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동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넓고 근사한 계단이 아니라 좁은 나선형 계단(책 표지 이미지)을 빙빙 돌며 번번이 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삶이 그래도 빛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도중에 있었다는 의미 부여를 하며 책은 끝난다.  

 

큰 내용은 위와 같지만 얼핏 보기와 달리 그리 종교적이며 근엄한 내용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1944년생인 저자는 2차 대전 후 영국에서부터 2001년 911테러까지 세계사의 굽이굽이와 자신의 방황을 함께 이야기한다. 그 굽이와 방황이 어떻게 자신을 성장시키고 '마음의 진보'를 이루어냈는지를. 종교에 관심이 없어도 마음이 힘든 분이나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별개로 자신의 길을 찾으며 성장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래 인용 부분, 뭉클하지 않은가. '남의 괴물과 싸우지 말고 자신의 괴물과 싸워야,,,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 이 문장에, 나는 그만 책상에 머리를 박고 한참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신화를 보면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번번이 길을 잃는다. 영웅은 낡은 세상과 낡은 길을 버리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도도 없고 뚜렷한 발자취도 없는 미지의 어둠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남의 괴물과 싸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괴물과 싸우고 자기의 미궁을 탐색하고 자기의 시련을 감내해야만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을 결국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거듭나야만 자기가 두고 온 세상에도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안겨줄 수 있다.

- 본문 453 ~ 454쪽에서 인용

 

문학 전공자인 저자는 곳곳에 영미 명시를 인용하고 신화, 전설을 예로 든다. 문장도 솔직하면서 품위 있다. 게다가 내 입장에서는 저자가 문학 덕분에, 또 글을 쓰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 성장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 참 좋았다. 나는 그동안 이 저자가 종교학 박사 출신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박사 학위도 없었고 문학 전공자였으며 종교는 독학으로 공부한 것이었단다. 정신 병원에 입원도 하고, 거식증도 앓는 등 병든 심신을 추스리고, 독학을 하고, 모든 실패를 딛고 글쓰는 삶에 도전하고,,, 이 모든 것이 저자 나이 40대에 이룬 성과였다. 그리고 결국 저자는 지금 어린 시절에 꿈꾸었던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추구하며 살게 되었다.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게 되었다.

 

나는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였지만 아마추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추어는 어차피 자기가 좋아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 아닌가. 나는 고독한 나날을 말없이 나의 주제에만 몰두하면서 보냈다. 매일 아침 어서 빨리 책상으로 달려가서 책을 펼치고 펜을 쥐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애인과 밀회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 그날 하루 배운 내용을 뿌듯하게 음미했다. 가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혹은 국립 도서관에서 먼지가 쌓인 두꺼운 책을 읽다가 내가 연구하던 신학자나 신비론자의 마음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은 초월과 외경, 경이의 순간을 잠깐씩 체험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음악회나 극장에 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나 자신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본문 482 ~ 483쪽에서 인용

 

입시 준비하듯 책의 정보만 흡입하는 독서를 하다가, 오랫만에 감정 이입해서 500쪽이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몹시도 추운 날씨에 거리를 한참 헤매다가 난방 잘된 까페에 들어가 갑자기 뜨거운 커피를 마셨을 때처럼, 책을 읽어가며 좋은 문장이 나올 때마다 머리가 띵했다. 우지직, 살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한 240쪽 정도 읽어나가니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 다리가 아프니 좀 주저앉아 이 책을 읽으며 쉬어가자. 나의 나선형 계단, 지금 있는 자리가 가장 춥고 어두운 모퉁이도 아닌데 뭘.

 

좋은 책 읽을 때마다 호들갑 떨며 친구분들께 강추니 어쩌니 리뷰에 적곤 했지만, 이 책에는 그런 말을 못 쓰겠다. 읽는 사람이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이 책이 각각 다른 무게로 느껴질 것 같아서.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절망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위안을 줄 수 있는 책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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