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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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노 요코. 유명한 그림책 작가라지만 나는 몰랐다.  싱글 노인의 삶의 자세에 대해 쓴 우에노 치즈코 책에서 그 유명한 재규어 일화를 읽고, 도대체 이 독특한 언니는 누구인가, 하고 잠시 관심을 가졌을 뿐. 그러다 쟈인님 리뷰 덕분에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급히 읽었다. 아놔!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의 독특한 분이셨다.

 

이 책은 저자가 2003년에서 2008년까지 5년간 쓴 일기 형식의 글모음집이다. 저자는 2010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독자는 60대 후반기 싱글 여성의 현실을 대충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저자는 예상 밖의 캐릭터를 보여주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깔끔하고 남 신세 안 지고 지혜롭게 나이들어가는 귀여운 일본 할머니의 이미지는 전혀 없다. 저자는 적극적으로 실수를 한 후 자책하고, 맹렬하게 심술을 부린 후 후회한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고 공무원들과 싸우기도 한다. 건망증 때문에 치매에 걸릴까 걱정하며 사이사이 혼자서 별난 요리들을 해 먹는다. 만만찮게 독특한 친구들과 교류하기도 한다. 한류 드라마에 빠져 '화사한 마음'을 갖고 미남 배우들을 침대 한쪽으로만 누워서 보다가 턱이 돌아가기도 한다. 암에 걸려 자신이 시한부라는 것을 알자 당장 외제차 대리점에 가서 재규어 한 대를 산다.

 

배달된 재규어에 올라탄 순간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젠 늦었구나'라고 느꼈다. 시트는 나를 안전히 지키겠노라 맹세하고 있다. 쓸데없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고 마음으로부터 신뢰감이 저절로 우러났다.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규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그러자 나를 시기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요코한텐 재규어가 안 어울려." 어째서냐. 내가 빈농의 자식이라서 그런가. 억울하면 너도 사면 되잖아. 빨리 죽으면 살 수 있다고. 나는 일흔에 죽는 게 꿈이었다. 신은 존재한다. 나는 틀림없이 착한 아이였던 것이다.

- 242쪽에서 인용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243쪽에서 인용


이렇듯, 저자의 글은 시니컬하면서도 뜻밖의 유머가 넘친다. 한편, 뭔가 어려서부터 너무 고생을 했기에 이승에 미련이 없고 억지로 달관해버린 느낌이 풍긴다. 뭐랄까, 너무 고생하고 비극적 삶을 산 사람 특유의 '살아보니 별 거 없더라'하는 데서 우러나는 뜻밖의 낙천성이 보이는 글? 궁금해서 저자의 다른 책을 같이 읽어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20살 이전에 동생 둘과 오빠,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고학 생활. 성인이 되어 이혼 두 번. 살만 해지니 치매에 걸린 어머니 간병 담당. 엄마 간병하며 암 발병) 저자는 어둡게 명랑하고 독특하다.

 

아주 문학적 향기가 풍기고 삶의 지혜를 주는 에세이는 아닌데, 한번 읽어볼만하다. 특히 몇몇 언니들과 같이 읽어보고 이 저자와 각자의 어머니들에 대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나눠 보고 싶다. 독서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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