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그릇하다 -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서
김율희 지음 / 어떤책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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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다닐 때는 내 시간이 아까워 집에서는 대강 살았다. 살림할 시간을 아껴, 그 시간에 읽고 쓰는 것이 더 좋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지금은 좀 달라졌다. 의. 식. 주 관련하여 내가 몸을 직접 움직이는 시간 역시 고민하고 쓰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의 연속선에서, 삶을 담는 그릇에 관심을 가지다 이 책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그릇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홈쇼핑 엠디와 방송사 편성피디로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그릇과 패브릭, 가구를 취급하는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그릇에 대한 관심과 수집 과정, 그릇과 살림, 그릇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이고 소소한 에피소드를 보편적 공감을 주는 이야기로 엮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글이 촘촘하고 단단하다. 보통 내공이 아니다. 정밀하며 감성을 담아낸 묘사 부분에서는 그만 흡, 숨을 참고 읽었을 정도다. 일본 헤이안시대 세이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읽는 느낌과 비슷했다. 인용하자면 이런 대목.

 

설거지를 마치며 그릇을 하나씩 엎어 두면 크기가 비슷한 두 그릇이 빈틈없이 포개지며 오목한 소리를 낸다. 해와 지구와 달이 만나는 일식, 혹은 월식의 순간에 들릴 듯한 '톡'

- 189쪽에서 인용

 

이런 그릇에 대한 저자만의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저자는 설거지한 그릇을 쌓아 올리며 자신의 회사 생활을 회상하고 아래와 같이 쓴다. 이런 부분들이 내겐 참 좋았다.

 

나라는 탑이 균형을 잃지 않고 서 있는 것은 내 생애 나쁜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커다랗고 무겁게 저 아래서 지탱해 준 덕분이다.

- 324

 

그리고 그릇 덕후로서의 '덕력'이 보이는 대목이 많아 즐거웠다.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던 저자는 악당 모리아티가 런던탑에서 왕실의 보석을 훔치며 동시에 은행 전산과 감옥 보안 시스템을 해제하자, 쉬고 있던 각 담당자가 놀라는 장면에서 즐거워한다. 런던탑 보안 직원은 종이컵에, 교도관장은 머그컵에, 중앙 은행장은 고급  티웨어에 차를 마시고 있는 장면을 매의 눈으로 잡아 낸 것이다.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오후의 티타임을 갖는다. 그러나 드라마는 티웨어에 따라 다른 사회적 지위을 꼼꼼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런 서술 부분, 참 재미있었다. 좋아하고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것이 보여서 삶을 더 풍부하게 살 수 있지 않은가. 부디 저자분은,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서 그릇 수집한다고 뭐라뭐라 떠들어대는 사람들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자신 스타일대로 살며 이런 책을 종종 써 주셨으면 좋겠다.

 

사진에 엮어 몇 줄, 어디서 읽었던 것 같은 글을 양 부풀려 담아낸 흔한 감성 에세이 책이 아니다. 앞으로 쓸 글이 더 기대되는 저자다.  

 

***

 

옥의 티,,, 인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부분이 있다. 272쪽에 할머니 추억을 이야기하는 부분.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색이 소라색(そら色)이었다는 부분. 일본어인줄 모르고 사용했나 싶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기본 어휘를 익힌 할머니의 언어습관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알면서도 그대로 쓰셨나 싶기도 하고,,,,

***

 

이건 읽다가 박장대소하며 공감한 부분. 10살 때 수련회에 가서 급식을 거부했던 이야기. 저자는 금속 식판이 너무너무 싫었다고 한다. 똑같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급식실에 줄지어 들어가 차디찬 금속 재질 식판에 기계처럼 똑같은 메뉴를 받아 똑같이 먹어야 하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고 한다. 아아, 나도 그런데!

 

***

 

도자기에 대한 정보를 더 원하시는 분들은 조용준 저자의 도자기 여행 시리즈를 이어서 읽으시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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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 코미디언 무어 씨의 문화충돌 라이프
이안 무어 지음, 박상현 옮김 / 남해의봄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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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저자는  영국 대도시의 소란스럽고 여유없는 환경에 질려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시골 마을로 이사한다. 이 책은 저자 가족이 프랑스 집에 정착하는 5년을 회상한다.

 

저자는 영국 신사지만 모드족이다. 비틀즈 혹은 오스틴 파워에 가까운 패션을 즐기며 여러 분야에 약간 강박증이 있다. 작업복이 맘에 안 들어 농장의 연못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을 싫어하며 욕 조차 두운을 맞춰 할 정도. 반면 아내 나탈리는 동물 키우기를 좋아하여 집 안을 노아의 방주로 만들어 버린다. 새뮤얼, 모리스, 테렌스, 아들 셋도 만만찮게 개성이 강하고 동물을 좋아한다.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출퇴근을 해야하는 무모한 결정을 내리면서 프랑스로 이사온 것은 평화로운 농장 생활을 꿈꾸었기 때문인데 현실은 소란과 난장판과 분뇨 더미,,,, 그러나 이 엄청난 대가족의 가장인 저자는 공연을 위해 집을 떠나면 언제나 집에 가길 꿈꾼다. 결론은 기승전가족사랑 생명사랑. 뻔하지만 기꺼이 웃어 줄 수 있다.

 

나도 내 직업에서는 유능한 사람이다. 공연 중에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나는 술에 취한 미혼남녀 400명이 가득한 장소에서도 인내심을 잃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린 사내아이 세 명과 고양이 세 마리, 개 두 마리, 말 두 필, 그리고 아내와 함께 있으면 감당할 수 없다.

- 144쪽

 

개들은 위계 질서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 고양이들에게 위계질서라는 게 있다면 그건 세상의 모든 생물이 자기 아래에 있다는 것뿐이다. 고양이는 프랑스인이다.

- 277쪽

 

엄청 재미있다. 영국인다운 시니컬한 유머에다가 영화, 문학, 역사 등등에서 끌어온 비유를 적재적소에 다재다능하게 사용하여 고급스럽게 웃긴다. 그리고 늘 프랑스인을 걸고 들어간다. 아내와 아이들, 동물들과 기싸움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도 너무 재미있다. 수코양이의 중성화 수술과 자신의 정관 수술을 같이 이야기하는 대목 등, 인간과 동물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동등하게 서술하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읽는 내내, 역시, 공부를 위해 읽는 역사이론서라면 내 나이보다 훨 연상인 학자들의 묵직한 책이 좋지만,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기 위해 읽는 에세이라면 내 또래 저자들의 생활 밀착형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며 불완전한 존재인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비슷한 인생의 고비를 좌충우돌 헤쳐나가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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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 - 본격남자망신에세이
권용득 글.그림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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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의하면 저자의 직업은 프리랜서 예술 노동자(만화가)이다. 아내 송아람씨 역시 같은 직업을 가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기도 양벌리, 서울 휘경동과 논현동 등 자신이 살았던 공간의 기억과 아내, 아이, 부모, 이웃 등과 함께 살았던 시간의 기억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부부는 진정 하고 싶은 대안 만화 그리기보다 삽화 일감을 그려 생활을 해결해야한다. 집에서 작업하다보니 부모/남녀 역할 나눌 것 없이 한 사람이 작업하면 다른 사람은 육아와 가사를 맡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자는 저자 또래 남성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동네 아줌마 육아 수다 모임 참가는 물론, 아들 친구들과도 거리낌없는 우정(?)을 나누게 된다. 아들을 키우며 본인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며 아내의 성공을 응원하기도 한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정겹게 묘사하는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읽다보면 나도 몰래 미소짓게 된다.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소개하자면,

 

<스타워즈>가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갔다가 또 다음 세대로 이어 나가는 것처럼, 우리 집도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엄마의 포스'덕분이었다. (다쓰베이더 같았던 아버지도 한몫하셨다)

- 347

 

위의 대목처럼, 영화, 책, 음악 등 같은 문화적 경험을 통해 같은 추억을 가진 내 또래 글쓴이가 마흔 즈음이 되어 부모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오, 내 아버지도 다쓰베이더 같았다구요!)

 

여덟 살이나 여든에 가까운 일흔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어쩌면 인생은 스케치북에 물감을 잔뜩 풀어놓고 접었다 펼친 데칼코마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241

 

만화가의 에세이라고 유머와 반전으로 일관하지도 않다. 위 인용 부분처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문장이 곳곳에 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을 돈이나 생활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헬싱키까지 와서야 새삼 깨닫는다. 맨땅에 헤딩도 '계속하면' 헛되지 않구나.

- 301

 

그리고, 나 역시 몇 년 째 맨땅에 헤딩하는 입장이기에, 위 인용 부분처럼 하고 싶은 일과 생활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마흔 언저리의 생활인들, 다른 작업하다가 스스로 회의하면서 심신이 고갈되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표지와 책 제목, 약간 아쉽다. 표지를 보면 고무장갑에 앞치마 차림인 남성이 있다. 지쳐서 넋 나가 보이는 표정이다. 그 옆에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라는 제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전업주부일을 하는 남성이 가사노동에 지쳐 제멋대로 어지르는 가족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자신의 피곤을 하소연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제목이 등장하는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헬싱키 만화 축제에 초대작가로 참가한 저자가 헬싱키 거리 풍경을 관찰하고 이렇게 말한다.

 

질서든 무질서든 '알아서' 지키는 분위기다. 또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다. 그러면서도 서로 암묵적으로 철통같이 지키는 것이 하나 있었다. '타인의 자유'.

- 280쪽

 

사실은, 이렇게 멋진 내용을 담고 있는 제목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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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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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의 에세이는 다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와 닿는다. 40대의 일상 속 생각들을 담아서 그런 것 같다.

 

이 저자의 매력을 생각해보면, 정확한 상황 묘사력이다. 친구 등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 묘사뿐만 아니라 책이나 음악 감상한 소감 묘사라든가 자기 마음의 묘사가 뛰어나다. 솔직하고 독특하다. 미술 전공자라서 그런 것일까? 아래, 저자가 클래식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쓴 대목을 인용해본다.

 

어떤 클래식 음악을 듣든지 내 눈앞에는 언제나 남자와 여자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정경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간다. 브람스를 들으면 어딘가 날씨 좋은 외국의 꽃이 핀 들판에서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가 해롱거리며 달리는 장면이 떠올랐고, <운명>의 도입부를 들으면 거구의 남자가 여자를 때려 눕히는가 싶었다.

- 20쪽에서

 

성경을 읽고 쓴 아래 부분도 멋지다. 눈 앞에 스크린이 촤르륵 펼쳐지며 한 외로운 남자의 등이, 그의 살내음이 느껴진다.

 

그리스도는 웅크리고 땅바닥에 글씨를 쓴다. 성서에는 그것밖에 쓰여 있지 않다. 그러나 나에게는 먼지 이는 하얀 땅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고독한 남자의 등이 보이고, 샌들을 신은 발 위에 덮인 먼지가 보인다. 그 엎에 아름다운 창부가 가만히 서 있다. "돌아가라."라고 그리스도는 말한다.

나는 열아홉 때 읽은 성서의 단지 그 부분 때문에 그리스도를 친근한 남자처럼 느끼게 되었다. 친근한 남자처럼 느끼게 된 것 떄문에 벌받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지만, 그런 까닭에 성서는 나에게 언제나 아름다운 문학으로 남았다.

- 284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7장 '독서는 나태한 쾌락이다' 이다. 동화나 명작을 읽은 자신의 감상을 솔직히 적어 놓은 부분이다. 어린 아들 겐에게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해주는 부분에서는 진지하게 저자의 아들인 히로시 겐 씨를 만나고 싶어졌다. '백조가 왜 오리보다 좋은 건데? 그러면 오리한테 미안하잖아, 오리는 오리로 훌륭하게 살아가면 되잖아!'라며 열등감에 찌든 엄마에게 깨우침을 주는 아들이라니. 멋지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니. 책에는 이렇게 독특한 시각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고,

 

나는 영화를 해피엔딩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빈자와 부자, 추녀와 미녀, 행복과 불행, 리얼한 것과 거짓된 것, 어떤 생활이 계속되든 끝나든,, 사람의 일생이란 그 안에 그 모든 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갖고 있으며, 진흙투성이 거적이든 얼룩 하나 없는 비단옷에 싸여 있든, 사는 것은 아름답다고, 핏덩어리를 토하며 죽는 몰리에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엄숙하게 느꼈다.

- 139쪽

 

몰리에르에 대한 영화를 보고 위와 같이 말하는 지극히 착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제목에 매우 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제목인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나는 세상이 규정하는 대로 열심히 하지 않으련다"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게 세상의 방식으로는 열심히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는 열심히 하며 살면 얼마나 외로울까. 순간순간 밀려드는 외로움을 저자는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부부는 녹아서 들러붙은 엿을 보고 같이 웃었다. 나는 가슴으로 따뜻한 바다가 흘러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엿이 녹은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행복.

- 352쪽에서

 

나는 기껏 녹아붙은 엿을 보고 웃는 커플을 보며 따뜻한 밀물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건 자신을 고집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평생 내 것이 아닌 따뜻함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경쾌발랄한 문장 사이사이 쓸쓸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말이 당당하게 쓰인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냐고? 그런 질문은 넌센스다. (중략) 나는 나인 채로 할머니가 되는 거다.

- 35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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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뭐라고 -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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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가 이렇게 많이 알려질 줄 몰랐다. 나는 우에노 치즈코의 책에서 재규어 일화를 읽고 매력을 느껴 읽기 시작했는데, <사는 게 뭐라고>가 나온 이후 갑자기 책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다. 절판된 <나의 엄마 시즈코 상>도 원제 그대로인 <시즈코 상>으로 다시 나올 정도이니. 그러나 <죽는게 뭐라고>와 이 책 <자식이 뭐라고>는 작가 사후에 남은 원고를 모아 나와서 그런지, 좀 함량미달이다. 그러나 어쩌리. 이 작가에게 반했으니 또 읽는 수밖에.

 

여튼, 이번에는 아들 이야기다. 저자의 다른 에세이에 등장하는  일화로 보아, 아들 히로세 겐은 꽤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미운 오리 새끼>이야기를 읽어주자 오리에게 감정 이입하는 게 아니라 그럼 오리 가족은 뭐가 되냐고 화내는 어린 시절 일화를 읽고 겐에게 관심이 갔다. 게다가 저자는 <시즈코 상>에서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도 독특한 드라이함으로 서술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엄마에게 냉정했던 사람이 자신이 엄마 역할 하는 것은 어떻게 썼을지 궁금했다.

 

내 아들이 정이 많은 아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다정하지 않은 아이라면, 그건 내 다정함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내가 다정한 인간이라고 거의 자신할 수 없어진다.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들을 사랑하지만 내 사랑이 충분하고 적절한지 확신할 수 없다.

- 112 ~ 113쪽에서 인용

 

윗 부분 읽는 데 찡했다. 역시나, 엄마와의 관계에서 사랑 주고 받기가 자신 없었던 사람은 자식과의 관계도 그런건가. 인간의 굴레가 따로 없구나. (내 아들 기욤이와 서리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책 내용은 아들 히로시 겐이 어린 시절부터 20살 정도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이야기다. 다니바타라는 여자친구를 동시에 좋아하는 아들의 친구들(겐, 우와야, 욧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1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우와야, 부모가 이혼한 겐, 두 친구를 보며 자신은 너무 쉽게 산다고 고민하는 욧짱,,, 고등학생이 되어 이 세 친구가 작가의 집에 모여 엄마/친구 엄마인 작가 몰래 술을 마시고는 취해버려서 서로 굳세게 살자고 어깨 두드리며 악수하는 장면이 귀엽다. 친구 엄마인 작가에게 들키자 이들은 '아줌마도 굳세게 살아요'라며 작가의 어깨를 두들겨 준다. 이런 일화 등등, 아들과 아들 친구들의 온갖 좌충우돌과 만행을 지켜보며 작가는 이렇게 쓴다.

 

뭐든 마음껏 해보렴. 어린 시절을 충분히 아이답게 보낸다면 그걸로 좋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남을 원망하는 일도 짓궂은 일도 실컷 해보기를.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사랑하는 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 115쪽에서 인용

 

이로써 현재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사노 요코 작가의 에세이는 다 읽었다. 아직 국내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한두 권 더 있다면 좋으련만. 모르지, 아들인 히로세 겐 씨가 숨겨놓은 엄마의 원고를 투덜대며 또 책으로 펴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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