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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ㅣ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주간지인 <뉴요커>에 3주간에 걸쳐 연재한 [침묵의 봄]이(물론 일부분이 실렸지만) 책으로 나온 지 올해로 50주년이 되었다. 50주년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 전에 [침묵의 봄]은 그 자체로 여전히 유효한 경고문으로 읽힌다. 그때 몰랐던 것을 지금도 모르고 있는 인간의 오만함과 자본주의적 탐욕을 향해서 말이다. 이 아름다운 지구에 인간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알고자 한다면, 사실 그러한 자료는 차고 넘친다. 얼마전 미군기지에 맹독성 폐기물 매립이 알려지게 되면서 시민사회와 환경단체들은 그 진상을 규명하는 규탄에 나서고 있다. 사실 미국, 베트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이런 일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났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매립된 폐기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오염된 지하수를 사용해온 인근 주민들의 대다수가 알 수 없는 병과 싸우는 동안에도 우리 정부는 과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 한들 미군기지에 대한 어떤 권한도, 감시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 노릇만 충실히 해오고 있었던 정부가 과연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몇 해 전에는 낙동강에 미군이 몰래 방류한 페놀 사건이나 산업화의 발전에 걸림돌이던 환경문제를 뒷전으로 밀쳐두었던 정부가 기업에 날개를 달아준 것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긴 하지만 여전히 카슨의 시대에 맞닥뜨린 당국의 관료주의와 기업주의 뻔뻔함은 통하는 데가 있다.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에 그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서로의 악행에 눈을 감아준 셈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달라진 점은 무얼까? 조금의 제재? 아니면 각성? 지금 이 순간, 여전히 지구를 오염시키는 사람들과 그 오염을 막고자 감시하는 환경운동가들과 별 관심없는 방관자들과, 저절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낙관주의자들이 한데 어울려 산다. 얼마전에는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어 더 많은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아름답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위로 수만볼트가 지나는 송전탑을 지으려는 정부의 폭력에 맞서 밀양의 한 늙은 촌부는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부어 산화하셨다. 얼마나 원통하고 원통하셨으면 그 길을 택하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다 여전히 삶을 위협하는 인위적인 요소들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다. 채소와 과일에 뿌려지는 온갖 농약의 문제 뿐만 아니라 발전이라는 구호아래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그래서 많은 것을 놓칠 수밖에 없는 환경문제들이 널려 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니까, 내 영역밖의 일이라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면 재앙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카슨이 살던 시대와 달리 무분별한 살포에서는 조금 자유로워졌다고는하나, 다른 양상으로 우리 삶이 위협받기는 마찬가지다.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맞고 자란 동.식물, 유전자조작 먹거리와, 산업화에 따른 기후온난화, 원자력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운좋게도 이 책을 잡고 반쯤 읽고 있을 무렵, 아는 동생으로부터 [침묵의 봄]을 연구한 이학석사 논문을 받고보니 그 감상과 생각이 남다르다. 130쪽에 달하는 연구논문에는 내가 알고자 했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침묵의 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레이첼 카슨의 저작들과 인터뷰, 강연과 신문칼럼 등, 49세에 이르러 환경운동에 참여하기까지의 행보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침묵의 봄] 배경과 과학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루고 있었다. 책을 읽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세삼 고마울 따름이다. 국내에선 번역되지 않은 글들을 읽는 행운이란 말할 것도 없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곳에 내가 있었다...ㅎㅎ
사실 너무나 유명해진 [침묵의 봄]에 대해선 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역으로 할 말이 참으로 많은 역작이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노래한 섬세하고 따뜻한 과학자였던 카슨은 과학의 맹목성과 이기가 낳은 폐해 앞에 절망하지 않고 학자와 연구자, 정부 관계자, 피해자들의 편지와 조언 등을 시간을 들여 수집하고 정리해나간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도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카슨은 노력과 정성을 들인다. 문학적 감수성으로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구체적이고 방대한 자료와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적 객관성을 획득한 것에는 카슨이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완벽하게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적 이기에 앞서 생물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것에 도덕성을 제기한 카슨은 자연을 자원으로만 인식하고 행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인위적 살포가 당장 목표는 달성될지는 몰라도 잘 짜여 있던 생태계의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김을 역설한 카슨은 환경의 문제를 유기체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위험을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곳에서만 인식할 뿐, 그 문제들이 모두 적용되는 광범위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구체적 사례와 함께 살충제, 제초제, 농약이 가지고 있는 독성이 인간의 몸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요하고도 성실하게 설명해 준다.
표지에 보면 파르르 떨다 마지막으로 가뿐 숨을 넘긴 듯한 가없은 새 한마리가 하늘을 향해 누워있다. 자유롭게 날고자 했던 날개는 접혀져 있고 까만 눈동자에는 하늘을 가득 담은 채 누워있다. '살아 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묵인하는 우리가 과연 인간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p.126) 7장의 마지막 문장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인간들이여~
완벽하고 아름다운 이 세상에 인간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요?(p.129)
마지막에 카슨은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인위적이고 화학적 방법이 아닌 자연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자연이용법(p.122~), 삼림유전학적 접근법(p.143) 등은 아주 지혜로운 조상들의 유산에서 해답을 찾은 셈이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라! 화학적 방제가 아닌 천적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윈이 이미 1800년도에 제시한 것이었다. 카슨은 여기에 손을 들어준다. 화학적 방법은 더 독한 놈으로 살아남게 해서 왠만한 약에는 내성만 생기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니플링 박사가 제안한 '수컷불임화' 에도 카슨은 지지를 보냈다. 그렇다면 오늘 날, 당면한 문제에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들은 무얼까? 몬산토 같은 다국적 기업에 맞서 인도의 반다나 시바 여사가 하는 환경운동에서, 세계 곳곳에서 하는 풀뿌리 운동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인위적이고 조작적이 아닌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토종의 고귀함과 생명활동을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는 자연을 닮아 있다. '저 스스로 그러하게 하라'는 진언을 품고 있는 것이다.
환경문제, [침묵의 봄]으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 있다. 거대한 기계로 굴러가는 시대에 겨우겨우 손으로 바퀴를 돌려가며 세상을 온전하게 돌려놓고자 하고 있다. 눈물겨운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각성하지 않고 안주해버린다면 늘 그렇듯 이 책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을 알려줄 뿐이다. 끝난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