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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친구야 잘 지내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 2048년에 우리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거야.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존 거크 보이드란 사람이 쓴 책 이야기 좀 들어볼래? 그래 맞다 2048 프로젝트가 뭔지 궁금하지?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공표되었잖아 한마디로 100주년이 되는 2048년까지 결실을 맺게 될 프로젝트라는 거지. 세계인권선언이니 그런 구호들은 집어치우고 인권을 국제 사회운동으로 확대시켜 강제력, 집행력을 가지게끔 하자는 게 2048 프로젝트의 요지야. 책을 다 읽기전부터 <왜 분노하지 않는가> 라고 도발적으로 물어오는데 사실 변명할 것도 세삼 물어보는 것 같아서 그저 멍때리고 있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 아래 우리가 너무 오래(?)살아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무감각 해진 건 우리의 심성에도 문제가 있는 거지만 실재 같은 가상의 세계에 너무 오랜 시간 노출이 되어버려 실재의 세계도 가상처럼 느끼며 그저 구경만 하고 소비하며 살았던 거지. 그래서 <왜 분노하지 않는가> 그 말이 이제라도 정신 좀 차리고 진짜 현실을 깨닫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반성도 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진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권리장전을 만들자고 알아 들었어.
2048프로젝트는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 선언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히고 있어.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야. 문제는 2048 프로젝트로 분열을 바로잡고 경제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원래의 마땅한 위치로 돌려놓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문제는 저자가 너무 낙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희망적이어서, 신념에 차 있어서 좋지만 독자인 나야 강건너 불구경하듯 그저 호기심어리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이러쿵저러쿵 딴지를 걸수도 수긍도 할 수도 있다는 거지. 인류의 합의로 만들어진 합의문은 기업과 정부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p.51) 고 하였는데 너무 순진한 바람이 아닐까 싶어.어떻게 기업에 도덕성을 바라는 건지..어떻게 국가를 양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지...또한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의사결정권을 맡긴다고 하니..이건 누가판단하며 누가 정하지? 라는 생각이 앞서네.
그런데 유럽인권재판소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르네 카생이 유럽인권조약의 작성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이런 말을 했대.
이 말이 왜 그리 웃기던지..내 마음의 어디를 건드렸을까?...눈물까지 찔끔거려가며 웃었어.
정말 효과가 있다니까요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저자의 표정이 연상이 되어서일까? 아, 이렇게 진지한 프로젝트에 미친듯 웃어재낀 건 예의가 아닌데 말이야...ㅡ.ㅡ
아, 저자의 말대로 인권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인다면(p40) 더할나위 없겠지만, 세상 일이 그리 녹록치가 않은 게 문제인 거지,. 그리고 이성으로 작동하는 게 있고 감정(혹은 감성)적으로 작동하는 게 있는데 어쩌자고 저자는 우월주의와 편견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온갖 잡동사니를 잔뜩 실은 트럭을 이에 물고 끌기위해 끙끙대는 차력사같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 그런데 가만보면 움직일 것 같지 않은 트럭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인단 말야.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누릴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희망이 있으니까 솔깃하긴 해. 솔직히 말하자면 저자의 그 진심에 순전한 동기와 인류애에 코끝이 찡할 지경이야. 하지만 의구심이 들어. 경제적 불평등, 전통, 윤리, 종교적 관습 등을 넘어서서 보편적 인권이라는 것을 과연 잡음없이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어서 말야... 괜한 걱정이고 의심일까? 그런데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인권을 사회계약으로 융합하자는 데 있어 모든 사람을 위한! 이 말에 의심이 드는 건 왜일까? 인권에 있어서 배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테두리 안에 다 끌어안을 수 있을지는 글쎄..회의적이야 인권에 위배되는 문화적 권리나 종교적 관습등을 포기하고(혹은 무시하고) 보편적 윤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인데 이것 또한 폭력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인권을 다룸에 있어 분명 배타적이거나 상대적이거나(혹은 절대적인 것 까지도)배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보편성으로 묶기에는 이 지구상의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미묘한데 말이야. 법의 지배가 가능할 때 사회는 번영한다(p.123)는 그의 말에서 법가사상으로 전국을 통일한 중국의 진시황제가 생각난 건 좀 뜬금없긴 한데 아무튼 이건 오바라고 봐. 아니 법이 세상을 구원할지니..하고 들려서 말이야. 그리고 저자의 중심은 유럽사회야. 국제사회가 유럽 국가들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 껄끄러워. 유럽이 무슨 이상사회처럼 보이잖아 진짜 왜그래?,,,
단일 문서 안에 모든 국가의 법정에서 집행력을 가지는 권리들을 만들어 내겠다는 2048 프로젝트,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인권이 전지구적으로 보장 받으려면 전지구적 민주화가 우선인데 진짜 풀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는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2048년 이제 정확이 36년 남았어. 보편적 윤리안에서 집행력과 강제력을 갖추는 데 충분한 시간이 되어줄까? 분명히 다르지만 정확히 일치하는 보편적 윤리를 위해 싸우는 2048프로젝트가 부딪히는문제들을 완만히 해결해서 결실을 맺는다면 무엇보다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바로 얼마전이야.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보내는 송환 반대 집회를 본적이 있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마음 아파하다 곧바로 일상으로 빠져들어 잊어버린 게 고작이었어.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고 보면 이러한 인권문제에 2048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강제력과 집행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인권은 절차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을텐데 하는 절실함은 들었어.
그래서 결론을 내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이고, 의구심과 의심이 가는 것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어졌어. 진실로 바라노라고! 꼭 이루어지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노라고!
그리고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어.
"효과가 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