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 농장]을 수 차례 읽었다면서 조지 오웰 본명도 기억 못했다. 하지만, 한사코 '에릭 아서 블레어'라고 호명하시는 이웃님 덕분에 본명을 각인했다. 에릭 블레어는 작품만큼이나 독특한 이력(생애사)로도 많이 언급되던데, 그래픽 노블 전기라면 쉽게 접근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책 구하기 어려웠다. 무려 "조지 오웰 70주기 기념"으로 실력파 만화 작가들이 협업한 작품이었으나 공공 도서관의 벽이 높았다. 도서관 측에서는 "단지"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지 오웰] 구입 신청을 반려했다. 그나마 검색해낸 책은 서가에서 실종되어 '분실(=도난)처리' 되었음을 통보받았다. 어제서야 우여곡절 끝에 [조지오웰]을 만났다. 오래 탐해왔던 만큼 읽는 즐거움이 컸다.
조지 오웰 70주기 기념 그래픽 노블은 일단 판형이 크다. 양장 표지와 내지 모두 고급스럽다. 무엇보다,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그림체와 적절히 배치하여 하이라이팅 효과를 극대화한 채색 기법, 그리고 조지 오웰이 직접 쓴 문장은 타이프 활자체 처리해서 작가의 목소리와 변별시킨 점 등, 세세한 전략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예를 들어, 대표작 [동물 농장] 초판본 표지는 본문에서도 아래와 같은 이미지로 실렸다.
삶과 밀착된 현장형 저널리스트로서 조지 오웰의 인생에서 각성의 계기가 된 순간들 역시, 강렬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독자에게 각인된다.
대영제국 (식민지 파견)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인도에서 태어난 에릭 블레어는, SF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소년이었다. 덕분에 상류층 자제들을 위한 이튼 스쿨에서 수학했다. 그래픽 노블에서는 그의 이튼 스쿨 시절을 상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하급 중산층에 속했던 에릭 블레어가 계급 문제를 피부로 느낀 계기는 피에르 브루디에와 마찬가지였을지 모르겠다. 졸업 후, 그는 다른 이튼 졸업생들처럼 옥스퍼드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 버마의 경찰이 되었다. 조지 오웰이 그 경험을 이렇게 적었다. "그 시절, 나는 제국주의 자체가 악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제국주의 경찰이라는 더러운 직업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빨리 그만둘수록 더 좋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35) 실제 에릭 블레어는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를 간직한 채 경찰 일을 그만두었고, 이 경험을 토대로 [버마 시절]을 집필했다. 또, 런던 하층민과 어울리는 밑바닥 생활을 소재로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을 썼다. 이튼 학교 시절 습득한 상류층 악센트를 가진 그는 호텔에서 접시도 닦고 노숙인에게나 배급하는 식사도 한다. 그 생활이 계속 가진 않았고, 다섯 살 때 이미 본인이 작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는 에릭 블레어는 작가로 살게 된다.
내가 에릭 블레어, 즉 조지 오웰스러움에 매혹당한 장면이 바로 아래 장면이다. 파시스트들의 참호가 지척 거리에 있는데, 목숨을 걸고 강물로 뛰어드는 장면이다. 이(lice)를 떨궈내기 위한 무모한 행동이었는데 다행히 무사했다. 하지만, 워낙 장신(190cm 이상)이었던 에릭 블레어는 참호 엄폐물 밖으로 드러낸 목을 노리는 총알은 피하지 못 했다. 총알이 그의 목을 관통했으나 살아남았다. 이후로도 그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차 세계대전 당시 잠시 펜을 놓고 입대를 자원하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매혹적인 인물이다. 조지 오웰이 왜 그렇게 계속 인용되고 추앙받는지 짐작하게 해준 고마운 그래픽 노블 [조지 오웰] 덕분에 서가에 모셔두었던 [1984]을 꺼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