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사물
조경란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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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일을 사명이자 오락으로 생각하는 이에게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큰 모욕이다. 절대 저자와 같은 생각을 품을 수 없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뭐라도 적어야 한다. 소설가가 자신의 삶을 녹여내며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 "작가는 이런 사람이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을까? 아직 미완성되었다 해도 저항하는 것이 의무이다.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사물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사물은 추억의 주인공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물들 틈에서 과거를 하나하나 추려내는 것은 현재를 조금만 희생하면 가능한 일이다. 사물 뒤로 시간과 공간이 함께 움직이고, 사람들이 나타나고, 감각들이 느껴지다가, 마침내 나의 생각이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은 매개체일 뿐이다. 


 책, 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어렸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내 인생의 책을 고른 뒤, 그 사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진부하다. 서점에서 헌 책의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고민을 했던 기억은 이제 흐릿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읽었던 책을 떠올린다. 선생님 한 분을 탁자 가운데에 모시고 중고등학생 몇몇과 그들의 엄마(아빠는 없었다, 맹세코)들이 책 한 권의 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다같이 토론했었고, 그 청소년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당시 나는 꽤 적극적이었고 책의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그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어쩌면 선생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될 것만 같았던 5년 간의 수업은 꿈처럼 갑자기 끝났고, 여전히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와 함께 가는 것은 오직 『어린 왕자』뿐이다. 1년마다 나는 그를 찾아간다.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어른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화투, 는 내가 계획한 기억의 파편들 중 일부다.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해 놓았다. 2016년 9월 13일, 학교 과방에 모여 동기들과 선배들이 모여 화투 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나. 나는 여전히 화투 치는 법을 모른다. 만약 알았었다면 그 현장에 나도 참여했으리라. 선후배의 구분 없이, 삶의 고민을 잠시 전부 떨쳐버리고, 오직 화투를 치는 그 순간에만 집중했던 우리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화투 사진을 컬러로 뽑아 전시해 놓고, 제목은 '20160913'으로, 어떠한 부가 설명도 없이 감상하게 하고 싶었다. 과연 그 사진을 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이해할 수 없어 비난하며 지나가거나, 나처럼 사물을 통해 추억 속으로 빠져들거나, 선택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보여준다. 말하지 않는다.

 

 사진, 을 글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니 풍경 묘사나 분위기에 대한 설명 따위는 하지 않겠다. 내가 올해에 기억하려는 것은 내 친구가 홀로 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모습이 찍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기억하려는 나의 의지만 남아 있다. 글 쓰는 이의 주변인이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편한 일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록의 대상이 되어버리니까. 내 친구는 자신의 사진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알까? 알게 되면 좋아할까, 아니면 꺼림칙할까? 하지만 내 주변에 존재하는 이들을 모두 배제할 수는 없다. 때로는 나도 이야깃거리가 되니 그런 식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사물에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묶여 있다. 사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느니, 한 사람 한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더 빠르고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순간을 누군가 기억해 주었으면 싶다. 

 글 쓰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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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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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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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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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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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순간의 연속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의 끝을 알았던 사람이다. 비극 속 주인공은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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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 개정판
공지영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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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대로, '즐거운 나의 집'은 반어법이었다. 그러면서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화자인 '위녕'의 성장소설이자 엄마의 진솔한 고백록인 『즐거운 나의 집』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가정을 돌아보게 한다. 가장 놀랐던 점은 소설이 상당히 자전적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성 다른 세 아이의 엄마, 잘 나가는 소설가지만 집안에서는 상처 많은 여자, 실제와 상상을 오가는 과거가 공지영 자신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안 뒤 왠지 모를 깨달음이 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도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구나. 그리고 동시에 위대한 엄마구나.


 132개의 조각들로 나뉘어진 이 장편소설에서 전환점을 꼽으라면, 어찌보면 사소하고 어찌보면 큰 사건인 '코코의 죽음'을 뽑을 것이다. 이혼한 엄마의 행보를 지켜보며 사랑의 영속성에 의문을 가졌던 위녕이 거의 처음으로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었던 존재가 고양이 코코였다. 또한 지극히 보살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난 코코를 보내주는 과정에서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좋은 의도가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왜 '즐거운 나의 집'이 반어적이면서 동시에 맞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이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말드라마에 나올 법한 화목한 대가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돈 때문에 다투고, 교육열로 인해 갈등하고, 때로는 단순한 성격 차이로 싸운다. 집 안이 조용할 날이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돌아갈 곳은 집뿐이다. 바깥에서 긴 방황을 하고, 낯선 여인숙에서 여러 밤을 보내고 난 뒤,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으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비록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결국 늘 즐겁다.


 소설가란 작품을 쓰기 위해 천 번을 넘게 고친다. 작중에서 위녕의 엄마가 한 말이다. 나로서는 비슷한 나이대인 위녕보다 그녀의 고백이 더 와 닿았다.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죽도록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좋아하기에 잘해지는 것이다, 라는 누구나 아는 그 말 속에는 나날의 연구와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나의 생각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불멸의 정신이 녹아 있고 치밀한 세계가 형성되어 있다. 에밀 졸라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누가 감히 무너뜨릴 수 있을까? 공지영의 울림 있는 용기를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즐거운 나의 집』의 중요한 주제는 "나는 누구이기 이전에 나다"라는 선언이다. 가족은 '엄마이기 이전의 그녀', '동생이기 이전의 그'를 인정할 때 비로소 소중해진다. '가족이니까' 넘어가지 말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남들에게 그러하듯. 원래 나는 언제나 '나 중심'을 외치는 사람인데, 여기서는 조금 겸손해져야겠다. 이곳은 집이니까. 즐겁지는 않지만 썩 만족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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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의 네트워크
운노 히로시 지음, 이동철 옮김 / 해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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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세계의 음모론과 미스터리>에 대해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음모론이 소설이나 인터넷 상에 떠도는 루머에서 대중문화의 일종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한때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세계의 미스터리를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음모의 네트워크』는 20세기 역사의 보이지 않는 실마리를 연결해주고 있어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현대사, 특히 20세기 미국의 이면을 엿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결사를 알게 된 계기는 김진명의 『천년의 금서』와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이었다. 두 소설 모두 프리메이슨의 음모를 파헤치는 것이 주된 플롯이자 결말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러 소설에서 꽤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터라 나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가 실존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확신을 가졌다. 여기서 음모론의 장점이 드러나는데,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다. 우리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인간은 호기심을 품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음모, 비밀, 거짓 속의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 뒤의 개념들이 다소 추상적이고 개인적이라면 음모는 필연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만들어내는 비밀이다. '음모'를 뜻하는 'Conspiracy'도 '함께 모여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라고, 저자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비밀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도 음모론은 진화한다. 음모는 과거형이 되는 순간, 타인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의미를 상실한다. 여전히 우리는 마틴 루터 킹과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 달의 뒷면, 9·11 테러의 진실, 렙틸리언에 대해 무지해야 한다. 때로 진실은 너무나 따분하니까. 온 우주의 유일한 지성이 인간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삶의 목적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의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한 설명도 신용할 수 없다. 그 결과 '진실은 어딘가 저쪽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쪽이란 우주이고 초고대이며 외계인이다. 이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한 밀레니엄 환상 컬트주의도 그중 하나이다. 인간의 저쪽에서 진실이나 구원을 찾는 것이다. (p594)


 우리가 음모론을 믿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조차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고, 이단과 사이비가 순진한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경제와 정치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개인의 생활에도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그날의 날씨와 교통 상황, 다른 사람의 일정, 나의 건강 상태 등 현대인의 생활은 분명한 사실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살얼음판이다. 그러니 오히려 "완전한 진실 혹은 완전한 거짓"인 음모론을 믿는 것이 나아 보일 정도인 것이다.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의 불확실성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속에서 갖는 작은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교훈은 언제나 따분하고 획일적이다. 작가들은 언제나 독자들에게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 패턴이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음모론은 말한다. "믿고 싶은 대로 믿어라. 누구도 당신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세상이 음모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음모의 네트워크』를 읽은 나도 따라 외친다. 믿고 싶은 것을 믿어라. 다만 타인에게 말하지는 말라. 그 순간, 당신은 책임져야 하니까. 이런 작은 믿음은 우리 삶에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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