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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의 네트워크
운노 히로시 지음, 이동철 옮김 / 해나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세계의 음모론과 미스터리>에 대해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음모론이 소설이나 인터넷 상에 떠도는 루머에서 대중문화의 일종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한때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세계의 미스터리를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음모의 네트워크』는 20세기 역사의 보이지 않는 실마리를 연결해주고 있어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현대사, 특히 20세기 미국의 이면을 엿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결사를 알게 된 계기는 김진명의 『천년의 금서』와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이었다. 두 소설 모두 프리메이슨의 음모를 파헤치는 것이 주된 플롯이자 결말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러 소설에서 꽤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터라 나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가 실존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확신을 가졌다. 여기서 음모론의 장점이 드러나는데,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다. 우리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인간은 호기심을 품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음모, 비밀, 거짓 속의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 뒤의 개념들이 다소 추상적이고 개인적이라면 음모는 필연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만들어내는 비밀이다. '음모'를 뜻하는 'Conspiracy'도 '함께 모여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라고, 저자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비밀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도 음모론은 진화한다. 음모는 과거형이 되는 순간, 타인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의미를 상실한다. 여전히 우리는 마틴 루터 킹과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 달의 뒷면, 9·11 테러의 진실, 렙틸리언에 대해 무지해야 한다. 때로 진실은 너무나 따분하니까. 온 우주의 유일한 지성이 인간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삶의 목적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의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한 설명도 신용할 수 없다. 그 결과 '진실은 어딘가 저쪽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쪽이란 우주이고 초고대이며 외계인이다. 이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한 밀레니엄 환상 컬트주의도 그중 하나이다. 인간의 저쪽에서 진실이나 구원을 찾는 것이다. (p594)
우리가 음모론을 믿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조차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고, 이단과 사이비가 순진한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경제와 정치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개인의 생활에도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그날의 날씨와 교통 상황, 다른 사람의 일정, 나의 건강 상태 등 현대인의 생활은 분명한 사실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살얼음판이다. 그러니 오히려 "완전한 진실 혹은 완전한 거짓"인 음모론을 믿는 것이 나아 보일 정도인 것이다.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의 불확실성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속에서 갖는 작은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교훈은 언제나 따분하고 획일적이다. 작가들은 언제나 독자들에게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 패턴이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음모론은 말한다. "믿고 싶은 대로 믿어라. 누구도 당신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세상이 음모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음모의 네트워크』를 읽은 나도 따라 외친다. 믿고 싶은 것을 믿어라. 다만 타인에게 말하지는 말라. 그 순간, 당신은 책임져야 하니까. 이런 작은 믿음은 우리 삶에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