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삿갓 -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이청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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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걷는 것, 흐르는 것은 사는 것이었지만 오늘부터 걷는 것, 흐르는 것은 죽는 것이다. 누가 "왜 걷느냐?"고 물으면, '그저 술이나 한잔 마시러 가는 길'이라고 대답해 주리라. p.238

김삿갓 이라는 인물을 떠올리면 일단은 '도인'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전설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모르는 것도 없고, 해결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 지팡이를 휘둘러 도술이라도 부릴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작가는 서두에서 김삿갓의 도인같은 이미지보다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김병연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내 김병연의 인간적인 면을 물씬 느낄 수 있었고 그로인해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김병연은 당시의 글읽는 선비들이 그러한것처럼 부인과 자식들에게는 무심하기 그지없는 위인이었다. 나무를 한다든지 하는 기본적인 가사일을 거들고자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랑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자식이 그를 찾았을 때, 두번씩이나 도망(?) 가버리는 모습도 참 비정해 보인다. 그리고, 아무리 좋게 봐주려해도 심각한 수준의 알콜중독자였던것 같다. --;;

"조선 땅 어딜 가나 언제나 듣는 말이었다. 과거는 썩었다. 입 가진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붙어야겠다. 눈 뜬 놈은 모두 같은 소리를 했고, 같은 공부를 했다. 그러면 과거를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은 존경받아야 마땅한데 사실이 그런가? 아니었다. p.254"

김병연이 살았던 시대와 현재가 어쩜 이토록 닮았을까. '역사는 되풀이 된다'더니 이런 씁쓸한 모습은 두번다시 보지 않아도 좋으련만. 남루하여 거지와 같은 행색을 하고서도 글쓰는 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그는 한끼밥과 술한사발에 아첨을 떠는듯한 글도 짓고, 송사에서 양쪽 모두를 위한 글을 짓기도 하고, 과거에 예상문제, 예상답안을 만들어 시험장앞에서 팔기도 하는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다. 그토록 날카롭고 예리한 문장력으로 다른 이들을 비판하던 그가 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까. 그렇게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보통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몰입되고 주인공과 공감하게되는데 김병연과는 그렇지 못했다.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는 여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간적인 김병연'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가 힘들었다. 균형된 시각으로 김병연을 판단하기 위해 다른 관점으로 씌여진 글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전에 작가가 의도한 '인간적인 김병연'을 이해하기위해 마음을 열고, 그의 시들을 다시한번 음미하였다. 그의 글은 거침없고 직설적이다. 김병연은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팔아버린 자가 아니라 당시의 모순된 사회 분위기를 마음껏 농락함으로써 글쓰는 이의 자존심을 지켜려 했던 것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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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2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음, 박나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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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 미술관 기행의 두번째로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의 가장 큰 의미는 '공공 서비스'의 개념을 가진 첫 번째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1800년대 초반 대부분의 미술관은 서민에게있어 관람조건이 까다로왔지만 내셔널 갤러리는 아무건 제약없이 관람자를 받아들였는데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어린이들까지 입장이 가능하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무료 입장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에 관한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사람으로써 --;; 추상화는 이해하기 힘들어도 사실화와 추상화가 혼합된 형태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흐의 작품처럼 말이다. 그러나, 보통은 사실적인 풍경이나,인물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 관람하기 편한것은 사실이다. 내셔널 갤러리에는 14-17세기 작품이 주를 이루는데 종교적인 색체를 띠는 작품이 많고, 비너스같이 신화의 주인공를 그린 작품과 역사적 사실의 한 장면을 그린 작품, 인물화가 대표적이다.

처음 들어보는 화가의 생소한 작품도 더러 있었지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등 유명한 화가와 어디선가 본듯한 낯익은 작품들도 많아 무척 반가웠다. 기본적으로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작품과 설명이, 오른쪽에는 부분확대를 통해 미처 시선이 머물지 못했던 부분의 특별한 의미를 소개해준 부분이 특히 좋았다. 그림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크게 확대하여 다음 두페이지에 걸쳐 실었는데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책이 크기가 좀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따라다녔다. 부분적으로 펼쳤다가 접는 편집도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이 내뿜는 전체적인 이미지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편견만큼은 확실히 버렸다. 한스 홀바인의 '외국대사들'이란 작품에서 인물들의 장신구 그러니까 모자, 목걸이와 배경의 지구본, 탁자에 널부러져 있는 책과 악기등이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듯 세밀하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라는 작품에서는 사형집행인을 비롯해 그리스도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표정을 통해 그들의 성격을 담아내려했던 화가의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책의 표지를 장식한 작품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란 작품인데 벽에 걸린 볼록거울로 인해 관람객이 등장인물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볼거리와 읽을 거리가 풍부해서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 비슷한 시기의 유사한 작품을 만났을 때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좋았다. 처음엔 오로지 흰색이었을뿐인 그 공간, '무'의 공간을 정교하게 채워나간 화가들의 손끝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2차 세계대전중에 귀중한 유산들을 지켜내기 위한 신속한 대처, 전후에 경제 재건에 우선해서 예술 작품에 대한 세금을 편성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셔널 갤러리의 주인은 런던 시민과 모든 영국인이라는 그들의 자부심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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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 산다는 것
오동명 지음 / 두리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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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워 보아야 부모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더니 그 말이 참으로 옳다. 아이를 낳고 한 숨 돌리고 나니 친정엄마의 얼굴에 자리잡은 굵은 주름이 더 크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버이날만 되면 습관처럼 카드에 적었던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진심으로 전하게 되었으니 늦게나마 철이 드는가도 싶었다. 아이가 이쁜짓을 할 때면 내 부모님도 이렇게 가슴 벅차하며 기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아파 밤을 샐때면 어린시절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 때문에 고생하셨을 부모님 모습이 떠올랐다.


흔히 말하기를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있다고들 한다. 작가가 전하는 에피소드들 중에는 어머니와 아들간의 소소한 이야기보다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로서 넉넉치 못한 상황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과 그러한 아버지를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학업을 이루어내려는 아들의 모습이 인상깊다.


어머니의 사랑은 태중에서부터 시작해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자식과의 유대관계가 더욱 긴밀해 진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곰솥에 진국처럼 웅근하게 데워져 그 사랑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사춘기때는 아버지와 대립하기도 한다. 그 아들이 불혹이나 지천명의 때가 된 후에 이미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뒤늦게 죄스러움만, 한스러움만 남는 경우도 있다.


남자란 자고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권위로써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과거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아버지의 그림자만 보면서 자라고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 어려운 존재로 그렇게 자식들과 담을 쌓도록 방치했던 잘못된 인식을 이제는 깨끗히 지워버려야 할 때다. 지금의 어린 자녀를 둔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몸을 부비고 애정을 표현하고 사랑을 제대로,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 가족들과 함께 기쁨, 슬픔을 나누는 아버지, 솔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의 행사때만 하더라도 아버지들의 참여률을 보면 정말이지 놀라울 때가 많다. ^^


이 책은 '부모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저자의 일상과 다른 가정의 예화를 들어 잔잔하게 풀어낸 수필같은 이야기이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생각할 때의 심정, 부모가 된 후에 느끼는 부모님의 심정,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깊은 생각과 아들에게 들려주고픈 삶의 지혜가 수필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자식을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날마다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짜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줄 이제서야 알겠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평생을 지고 가야만 하는 '등짐'을 맡아있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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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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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 늦었어. 열 셀 동안 안나오면 나 먼저 가버린다. 화장은 차 안에서 하라고 몇번이나 말해야 들어?"
"여보, 미안해. 그러고는 싶은데 종류가 많아서 다 들고 탈수가 없어. ㅠ.ㅜ"
태어나 임신직전까지 사들인 화장품 값보다 출산 전후 1년동안 사들인 화장품 값이 더 많다. 화장품이든 연고든 파스든지 간에 몸에 뭘 바르는데는 취미가 없다. 25세까지는 쌩얼굴로 회사를 다녔고, 지금도 초간편 가벼운 화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내가... 출산 후, 충격을 받아 화장품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 종류도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땐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침, 저녁으로 사용순서가 헷갈려서 열가지 넘는 갯수를 줄을 죽~ 세워놓고 발랐을 정도였으니. ㅠ.ㅜ 그러다가 어느순간 정신 차리고 나서 그때 사들인 화장품으로 2년 넘게 썼다는... ㅎㅎ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유브 갓 메일> 등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로 불리는 작품에는 항상 이 책의 저자인 노라 에프런의 이름이 있다. 책의 소개를 읽는 순간 3초만에 꼭 이 책을 읽어보리라 두 주먹을 불끈 움켜 쥐었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에 대한 유쾌한 통찰'이라... 너무 멋진 말이다.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히야~ 나이 들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난 내 목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정말이다. " 노라 에프런이 처음 말문을 여는 순간 튀어나온 이 말은 정말이지 로맨틱하지도 않고, 더구나 코미디 스럽지도 않다. 잠시 주춤했다. 그리곤 공감했다. ㅠ.ㅜ '저두 제 목이 맘에 들지 않아요.' 목을 한번 슥~ 쓰다금고는 다시 책을 읽었다. 다이어트,가방,염색... 이야기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마치 내 이야기를 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아줌마~"라고 불리웠을 때,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 외면했다가 그 대상이 나 라는 것을 알고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당연하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끼게 해주는 것은 외모다. 헐리웃의 여배우가 나이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일매일 거울을 보면서 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고문'이다. "화장이 안 먹어.", "바지가... 줄었어." , "앗, 후크가 터졌어... " 등 체중은 유지하는데도 몸매는 전과 같지 않다는 것. 이런게 '나이살'인가? 마음은 20대인데 몸이 30대에 갇힌 듯한 답답함... 뭐야? 난 나이들 준비가 안됬다?

저자는 한 때, 살던 집과 사랑에 빠졌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일방적인 짝사랑이었고, 어느순간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줄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전에는 관심 밖이었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직장맘이라 시간도 없고, 손재주에 관한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두 손을 가졌지만 예쁜 인테리어나 그릇셋트를 구경할 때는 시간 가는줄 모른다. 마트에서 나도 모르게 주방용품쪽으로 카트를 밀면서 가고 있음 남편이 사정없이 경고메세지를 날린다. 그라탕 그릇, 생선 접시, 수저 받침 등 앙증맞고 이쁜 것들만 보면 너무너무 사고싶다. 날 좀 이해해주면 안되겠니? 당신도 공구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잖아.

종종 노년에 관한 책을 읽는데, 그 책의 저자들은 모두 한결같은 목소리로 나이 드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찬양한다. 현명하고 슬기롭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건 근사한 일이다.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 분별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 말을 늘어놓는다. 이런 헛소리를 해대는 인간들이 너무나 역겹다. p. 19

노라 에프런의 스타일은 솔직하고 거침없다. 나이 드는 것이 좋다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나이 먹는 것을 어쩌겠수. 그래서 이러이러한 점도 있으니 좋은 쪽으로 생각합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우? 에혀~" 라고 한다면 그런류의 책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난 집에 기름이나 부으라지. 저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들을 솔직히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친구들과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요전에 건망증 땜에 어떤일이 있었는줄 아니? 어쩌구 저쩌구..." 친구란 그래서 좋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상대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 "맞아 맞아~ 나두 그래." 하는 그 말에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노라 에프런의 글은 친구같고, 엄마같은 편안함 그 자체다.

누군가 내게 마법의 물약을 준다면...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 물약을 마시고 잠이든 후, 스무살의 어느날로 돌아가 잠을 깨고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지워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내 대답은 "노우~ " 다. 지나가 버린 나의 젊은 날을 붙들고 싶고,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잃어버린것과 얻을 것을 저울질 해보면 아직은 그렇게 원통할 것이 없다. 뽀송뽀송한 피부와 탄력있고 날씬한 몸매를 잃었지만, 적어도 시험,시험, 시험 각종 시험에서 해방되었고, 구직에 대한 스트레스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는 벗어났다. '건망증'과 '편두통'을 덤으로 얻긴 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도 있으니 모든 면에서 20대보다 더 여유롭다. 문제는 40대가 되어도 50,60대가 되어도 지금과 같이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내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면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 이야기를 하면 이번엔 웃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다. 즉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타가 되는 것이다. p. 106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했던 말중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무대 위에 선 배우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무대위에 선 배우들은 너나 없이 주인공이고 싶고, 실제로 각각의 관점에서보면 모두가 주인공이다. 웃음거리가 되든, 스타가 되든 연출자이면서 주인공인 나 자신에게 달렸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단 한분의 팬을 위해서라도 무대위에서 쓰러지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훌쩍 --;;" 걸핏하면 이 말을 내뱉는 연애인들을 보며 참 가식적이란 생각을 했던 적이 많다. 그것두 꼭 사고친 연애들이 재기를 앞두고 슬며시 나타나서 남발하는 찔러보기용 맨트가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이 말을 써먹으려하는 나 자신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을뿐더러... 정말로 '진심'임을 알아주었음 좋겠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단 한분의 팬을 위해서라도... 훌쩍, (근데 단 한명의 팬을 어디서 찾지? ㅠ.ㅜ 일단 아들내미를 끌어다 앉혀야 겠다. 흐흐) 무대위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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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머물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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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저자 카타야마 쿄이치의 작품이라는 떠들썩한 홍보 문구는 사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쉽게도 그의 전작에 대해 어렴풋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순애보 완결작'이라는 문구와 마치 그곳이 세상의 끝인 양 물위에 떠있는 작은 배가 그려진 표지 였다. 결혼한지 올해로 9년째다. 여섯살된 아들도 있다. 그런데도 '순애보'라는 말에 가슴 설레이는 나 자신이 싫지는 않다. ^^;


매일 밤 아파트 벽 넘어로 들려오는 여인 사에코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 šœ이치. "짜증나지 않았어?" "그런 생각은 안 들었나봐. 왠지 나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것 같았거든." p.44 인연이 될려면 그렇게도 되는가 보다. "당신은 당신대로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위험했어. p.46" 인생에 있어 힘든 시기에 만났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여느 부부들처럼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두 사람은 사에코가 여동생 이즈미를 위해 대리모가 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임신 초기, 중기를 거치면서 잘 견디어(?) 냈던 사에코는 출산일이 가까와 올수록 아기에 대한 집착이 극에 달하고, 정서적 혼란이 심해져 정신 분열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인다. 결국 아기를 유산하고서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렸다고 후회하는데...

10달동안 새끼를 품어 본 어미로서 사에코의 심정, 혼란등은 전적으로 이해가 된다. 내 속에 또 하나의 생명, 밤낮으로 태아와 소통하면서 내 몸과 마음을 함께 나누었던 그 경이로움을 어찌 말로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에코의 광기가 지나친 면이 있어 섬뜩하기도 했지만,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 책의 어떤 점이 순애보인가? 책을 읽으면서 혼란에 빠져 버렸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는 부분과 평온한 일상은 뒤이어 몰아닥칠 폭풍같은 상황에 강한 대비를 이루는 듯 지극히 평범한 부부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세상에 자신의 부인이 (아무리 형제라도) 대리모가 되겠다는데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남의 이야기 하듯 대답해 버리는 남편이 어디 있으며, 만삭의 부인이 심각한 정신병 증세를 보이는데 밤마다 눈 덮힌 거리를 배회하도록 방치하는 남편은 어디 있으며, 아내가 유산할 지경인데도 철저히 남의 아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내 눈에 비친 šœ이치는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남편일 뿐이었다.

šœ이치는 아기가 죽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이임을 인정하고 이로써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된다. '순애보'는 말그대로 순수한 사랑, 사랑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방관'하듯 지켜만 보는 것이 순애보일까? 사랑하는 연인을 곁에서 지키며, 설사 자신을 떠나버려도 언젠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편히 쉴 수 있는 '둥지'가 되어 목빠지게 기다리는 옛날식 '순애보'는 싫다. 서정적이긴 하지만 조금은 밋밋한 것이 자기 표현이 확실한 요즘 세대의 사랑 방법과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또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안타깝게도 내 주위엔 간절히 원하면서도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여러쌍 있다. 그들 중에는 육제적으로 문제가 있어 임신률이 낮은 부부도 있지만 아무 이유없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등으로 불임인 부부도 있다. 그들의 아픔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사에코만큼이나 이즈미부부도 안쓰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책을 덮으며, 처음 기대했던 설레임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내가 바라던 현실에 맞춰 업그레이드 된 '순애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숨을 고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 책 <세상의 끝에 머물다>는 젊은 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뛰어 넘어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굵은 줄거리는 šœ이치와 사에코 부부의 이야기지만 불임으로 고민하는 이즈미 부부, 주식 투자를 통해 재테크를 하려다 손해 본 이야기, 암 선고를 받은 한 가정의 가장, 정신병을 앓는 이웃 아주머니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현대인들이 겪을 법한 여러가지 삶의 모습, 그것도 위기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의 소재로서는 다소 무거운듯한 내용을 담담하게 풀어낸 점은 좋았다. 부부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는 인간의 습성, 언젠가 분명하게 일어날 파국이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현실감을 모르는 편리한 회로가 우리 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p. 173" "마지막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지금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현재를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거죠. p. 176"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절실히 느낀것이 있다면 모리 교수가 이야기 한 것이 분명 '죽음'이 아니라 '삶' 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같다. 세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누리고, 나누면 된다.

세상의 끝과 지금 서 있는 곳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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