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출근시간 늦었어. 열 셀 동안 안나오면 나 먼저 가버린다. 화장은 차 안에서 하라고 몇번이나 말해야 들어?"
"여보, 미안해. 그러고는 싶은데 종류가 많아서 다 들고 탈수가 없어. ㅠ.ㅜ"
태어나 임신직전까지 사들인 화장품 값보다 출산 전후 1년동안 사들인 화장품 값이 더 많다. 화장품이든 연고든 파스든지 간에 몸에 뭘 바르는데는 취미가 없다. 25세까지는 쌩얼굴로 회사를 다녔고, 지금도 초간편 가벼운 화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내가... 출산 후, 충격을 받아 화장품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 종류도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땐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침, 저녁으로 사용순서가 헷갈려서 열가지 넘는 갯수를 줄을 죽~ 세워놓고 발랐을 정도였으니. ㅠ.ㅜ 그러다가 어느순간 정신 차리고 나서 그때 사들인 화장품으로 2년 넘게 썼다는... ㅎㅎ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유브 갓 메일> 등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로 불리는 작품에는 항상 이 책의 저자인 노라 에프런의 이름이 있다. 책의 소개를 읽는 순간 3초만에 꼭 이 책을 읽어보리라 두 주먹을 불끈 움켜 쥐었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에 대한 유쾌한 통찰'이라... 너무 멋진 말이다.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히야~ 나이 들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난 내 목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정말이다. " 노라 에프런이 처음 말문을 여는 순간 튀어나온 이 말은 정말이지 로맨틱하지도 않고, 더구나 코미디 스럽지도 않다. 잠시 주춤했다. 그리곤 공감했다. ㅠ.ㅜ '저두 제 목이 맘에 들지 않아요.' 목을 한번 슥~ 쓰다금고는 다시 책을 읽었다. 다이어트,가방,염색... 이야기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마치 내 이야기를 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아줌마~"라고 불리웠을 때,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 외면했다가 그 대상이 나 라는 것을 알고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당연하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끼게 해주는 것은 외모다. 헐리웃의 여배우가 나이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일매일 거울을 보면서 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고문'이다. "화장이 안 먹어.", "바지가... 줄었어." , "앗, 후크가 터졌어... " 등 체중은 유지하는데도 몸매는 전과 같지 않다는 것. 이런게 '나이살'인가? 마음은 20대인데 몸이 30대에 갇힌 듯한 답답함... 뭐야? 난 나이들 준비가 안됬다?

저자는 한 때, 살던 집과 사랑에 빠졌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일방적인 짝사랑이었고, 어느순간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줄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전에는 관심 밖이었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직장맘이라 시간도 없고, 손재주에 관한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두 손을 가졌지만 예쁜 인테리어나 그릇셋트를 구경할 때는 시간 가는줄 모른다. 마트에서 나도 모르게 주방용품쪽으로 카트를 밀면서 가고 있음 남편이 사정없이 경고메세지를 날린다. 그라탕 그릇, 생선 접시, 수저 받침 등 앙증맞고 이쁜 것들만 보면 너무너무 사고싶다. 날 좀 이해해주면 안되겠니? 당신도 공구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잖아.

종종 노년에 관한 책을 읽는데, 그 책의 저자들은 모두 한결같은 목소리로 나이 드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찬양한다. 현명하고 슬기롭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건 근사한 일이다.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 분별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 말을 늘어놓는다. 이런 헛소리를 해대는 인간들이 너무나 역겹다. p. 19

노라 에프런의 스타일은 솔직하고 거침없다. 나이 드는 것이 좋다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나이 먹는 것을 어쩌겠수. 그래서 이러이러한 점도 있으니 좋은 쪽으로 생각합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우? 에혀~" 라고 한다면 그런류의 책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난 집에 기름이나 부으라지. 저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들을 솔직히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친구들과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요전에 건망증 땜에 어떤일이 있었는줄 아니? 어쩌구 저쩌구..." 친구란 그래서 좋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상대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 "맞아 맞아~ 나두 그래." 하는 그 말에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노라 에프런의 글은 친구같고, 엄마같은 편안함 그 자체다.

누군가 내게 마법의 물약을 준다면...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 물약을 마시고 잠이든 후, 스무살의 어느날로 돌아가 잠을 깨고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지워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내 대답은 "노우~ " 다. 지나가 버린 나의 젊은 날을 붙들고 싶고,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잃어버린것과 얻을 것을 저울질 해보면 아직은 그렇게 원통할 것이 없다. 뽀송뽀송한 피부와 탄력있고 날씬한 몸매를 잃었지만, 적어도 시험,시험, 시험 각종 시험에서 해방되었고, 구직에 대한 스트레스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는 벗어났다. '건망증'과 '편두통'을 덤으로 얻긴 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도 있으니 모든 면에서 20대보다 더 여유롭다. 문제는 40대가 되어도 50,60대가 되어도 지금과 같이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내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면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 이야기를 하면 이번엔 웃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다. 즉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타가 되는 것이다. p. 106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했던 말중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무대 위에 선 배우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무대위에 선 배우들은 너나 없이 주인공이고 싶고, 실제로 각각의 관점에서보면 모두가 주인공이다. 웃음거리가 되든, 스타가 되든 연출자이면서 주인공인 나 자신에게 달렸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단 한분의 팬을 위해서라도 무대위에서 쓰러지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훌쩍 --;;" 걸핏하면 이 말을 내뱉는 연애인들을 보며 참 가식적이란 생각을 했던 적이 많다. 그것두 꼭 사고친 연애들이 재기를 앞두고 슬며시 나타나서 남발하는 찔러보기용 맨트가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이 말을 써먹으려하는 나 자신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을뿐더러... 정말로 '진심'임을 알아주었음 좋겠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단 한분의 팬을 위해서라도... 훌쩍, (근데 단 한명의 팬을 어디서 찾지? ㅠ.ㅜ 일단 아들내미를 끌어다 앉혀야 겠다. 흐흐) 무대위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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