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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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줄창 눈물을 찍어낸 적은 많아도 울다가 웃다가를 이렇게 많이 반복한 책은 처음이다. 구입할 때 그저 '입소문' 하나 믿고 주문했던 책.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고백컨데 '허삼관 매혈기' 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중국풍과 함께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앞섰고 표지의 그림 또한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고개가 갸우뚱해 졌다. 그러나, 서평을 시작하려는 지금 내가 느낀 감동을 글로 모두 표현할 자신이 없을 만큼 큰 감동을 준 책임을 미리 밝힌다.

<허삼관 매혈기>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사람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매혈의 금전적 의미는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큰 수익을 말한다. 허삼관에게 처음 피를 파는 방법을 가르쳐준 근룡과 방씨는 땅파서 버는 돈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뿐 결혼하고 집을 짓는 등 큰 일을 치르기위해서는 피는 파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허삼관이 처음 피를 판 돈을 쥐고 가치있게 쓰기 위해 고민한 결과도 바로 '결혼'이다. 허옥란이라는 여인과 가정을 꾸리고 일락, 이락, 삼락 형제를 낳아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간다.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쓰인 첫번째 매혈을 시작으로 그 후, 인생에 있어 뜻하지 않은 고난이나 큰 일이 닥칠때마다 매혈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

젊은 시절 허삼관은 피를 팔고도 체력에 큰 무리가 없었다. 밑천이 들지 않는 돈나무에 비유하면서 가끔씩 어깨가 으슥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허삼관도 나이가 들었고 매혈이 마음처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타지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일락이 집에 들렀을 때, 수척해진 아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허삼관은 아들을 배웅하는 길에 피를 팔아 돈을 쥐어준다. 그리고는 한달정도 지났을 무렵 둘째 아들의 상관이 집으로 온다는 통보를 받고 또다시 매혈을 한다. 그리곤 이를 악물고 대작하며 술 잔을 비우는데 '이락이를 위해~ 이락이를 위해~' 하고 맘속으로 외치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그러나, 이 장면도 곧이어 등장하는 '매혈여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척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일락은 간염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일락을 허옥란과 함께 큰도시의 병원으로 먼저 보내놓고 돈을 구하기위해 동분서주하는 허삼관, 일락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보름간의 여정동안 들리는 곳곳마다 피를 팔리라 결심한다. 삼형제 중에서도 가장 든든한 자식이었던 맏이, 아내 허옥란이 결혼전 만났던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가진 허삼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아이,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허삼관의 자식인 일락이를 위해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아니, 먼저는 힘을 싹 팔았고, 그 다음엔 온기를 싹 팔았다더니, 그럼 이제는 목숨만 겨우 남았을 텐데, 또 피를 팔면 그건 목숨을 팔아 넘기는 거 아니요?"

이토록 미련하고 어리석고 대책없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아들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사흘에 한번씩 피를 파는 남자, 쉰 나이 허삼관에게 매혈은 목숨을 담보한 위험한 줄타기와도 같다. 예상대로 매혈여로중 세번째 피를 판 날 병원에서 쓰러지고 마는데... "저야 내일 모레면 쉰이니 세상 사는 재미는 다 누려 봤지요.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스물한살 먹어서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 봤으니 사람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p.285 앞서 누렸던 잔잔한 감동들을 접어두고 '이대로 허삼관이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내 다시는 중국소설을 읽지 않으리라.' 울컥하는 마음에 작가 위화에게 한마디 협박도 해보았다. 눈물은 또 얼마나 쏟아지는지.

허삼관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한 남자의 일생동안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매혈' 과 연관시킨 독특한 시각이 돋보인다. 중국 사회를 뒤흔든 '문화혁명'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소설속 중요한 모티브를 차지하고, 주변 인물들은 일락의 생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겹다.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가를 비추어 주는 듯 따스함이 느껴진다. 시대에 따라 변 한 것도 많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주인공 허삼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의 모습은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지만 내 아버지의 모습, 내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이젠 더이상 피를 팔수 없을만큼 늙어버린 허삼관이 바라는 것은 그저 돼지간볶음 한접시와 황주 두냥이면 족하다. 참, 황주는 데워서.

작가 위화는 이 책이 '평등'에 관한 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작가의 우려처럼 안타깝게도 책을 다 읽고 서평을 마무리하려는 지금도 이 책과 '평등' 을 연관짓지는 못하겠다. 내겐 '가족'과 '가족애' 혹은 한 인간의 '일생'과 '삶'을 주제로 한 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작가에게 내 마음을 꺼내 보일 수만 있다면, 내가 느낀 감동의 깊이를 전할 수만 있다면 이 무지한 독자를 용서하고도 남으리라 나 혼자 그렇게 결론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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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쯔이 성공 Story
두리 지음 / 월드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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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쯔이를 처음 봤을 때 공리와 정말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래전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를 감동깊에 보았었고 그 영화를 통해 깊이 각인된 공리라는 배우가 지금까지도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장쯔이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공리와 닮았다고 생각하나 보다. 대뷔초에 '작은 공리'로 불려지면서 대스타의 닮은꼴 배우로 시작했던 그녀가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세계에 알렸다. 이제 그녀를 대하는 어느 누구도 공리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장쯔이는 그냥 배우 장쯔이일 뿐이다. <와호장룡>을 통해서 만난 그녀는 귀여우면서도 여성스럽고, 고전적이면서도 톡톡튀는 느낌이 들었다. 단 한편의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도 대성할 배우라는 느낌이 팍팍 와닿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장쯔이는 불과 6년전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존재감이 없는 사람', 평범한 소녀라고 말한다. 스타가 된 지금도 정말 의외이고 자고나니 스타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다. 장쯔이의 어린시절 어머니는 허약한 딸을 위해 체육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해 체조반이 개설되지 않았고 체육교사의 소개로 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11살때 북경 무용학원 부속중학교에 입학하여 6년간 무용을 배우게 되는데 이는 그녀의 연기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후, 중앙희극학원에서 연기수업을 받고 평생의 은사인 창리선생을 만난다.

누가 뭐라해도 배우 장쯔이는 운이 좋다. 인생에는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지만 장쯔이가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것, 중앙희극학원에서 창리선생을 만난 것, 장예모 감독의 눈에 띄여 첫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찍은 것만해도 3번의 소중한 기회를 모두 쓴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싶다. 첫 영화로 이미 영화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한 그녀는 다음해에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을 통해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서극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한다. 세계적인 감독들과 연이어 작품을 함께하는 영광을 누린다는 것은 결코 흔한 기회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장쯔이가 단순히 운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무용을 배우던 시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연습실로 가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했다고 한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혼자 밥을 해먹어 가면서 공부했고 당시에도 잘 사는 집 아이들은 그녀와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장쯔이의 어린 시절을 가장 잘 아는 단짝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장쯔이의 무용 실력은 2% 부족했다고 한다. 그녀는 노력파였고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매일 늦게까지 연습하곤 했다.
영화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배역이 맡겨지면 철저하게 캐릭터에 몰두하려고 애썼다. 연극 공연장에서 격앙된 분위기 속에 유리가 깨어져 상처를 입고도 대사를 읊었던 이야기, 농촌 여인을 에 충실하기 위해 농촌 여인을 연기하기위해 한달간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물 긷고, 아궁이에 불 떼고, 베를 짜는등 철저하게 농촌 여인이 되고자 했다. 그녀의 진솔한 일기를 통해 농촌 생활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절실함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인>을 찍기 전에는 따로 무술 과외를 받았고 한동안 맹인 소녀와 함께 지냈으며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어둠 속을 더듬거리면서 생활하기도 했다. "영화 촬영이 거의 끝나갈 때쯤, 마음이 아닌 눈빛으로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정말 잊지 못할 기분이었죠." p. 257 행운의 여신이 장쯔이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녀의 성공은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장쯔이 성공 Story> 이다. 여류 프리랜서 작가인 두리가 장쯔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어린시절부터 세계적인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기술한 것이다. 솔직히 내용 전개 면에서는 약간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앞서 언 급한 내용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고, 장쯔이에 대해 쏟아졌던 끝없는 논쟁과 스캔들에 대해서 시원한 대답보다는 적당히 무마하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불과 6여년 정도의 배우 생활이긴 하지만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그녀의 선행에 관한 내용이 불과 2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움이다. 그러나, 연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과 배우 장쯔이의 팬들에게는 이 책이 분명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적지 않은 사진컷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장쯔이는 현대 여성은 자신의 일과 생활이 있고, 스스로에 대해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며 계속해서 배우고 자신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바로 자신감이 있고 자아가 확립된 사람,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잘 아는, 정신적으로 독립된 여성이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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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만화 국어 교과서 1 - 맞춤법 되기 전에 시리즈 4
고흥준 지음, 마정원 그림, 정호성 감수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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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주눅이 든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학창시절엔 책을 너무나도 좋아했고 글 쓰는 것을 즐겼기에 따로 맞춤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국어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지금의 맞춤법이 새롭게 시행되었고 약간의 혼란스러움속에 대학을 진학하고, 책과는 점점 멀어지는 사이 맞춤법에 대한 개념이 흐릿해져 버렸다. 졸업 후, 바로 직장을 구하고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였지만 업무적으로 쓰는 문서들은 거의 틀에 짜여진 것들이 많아서 맞춤법과는 거리가 멀다. 우스겟소리로 맞춤법, 띄어쓰기 몰라도 지금껏 사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가 한글을 깨치기 시작할 무렵, 집안 구석구석에 사물카드를 붙이다가 내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맞는지 '에어콘'이 맞는지, '텔레비젼'이 맞는지 '텔레비전'이 맞는지 외래어에서 시작해 '~했어요'를 왜 소리나는 대로 적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을 할때 대답을 못해주어서 너무 미안했다. ^^;;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살때는 몰랐는데 관심을 좀 가지기 시작하자 산 넘어 산이다. 사이시옷의 사용법과 두음법칙, 모음동화등 조금씩 알아간다고 생각할수록 헷갈린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시리즈 답게 내용이 쉽고 재미있게 되어있다. 단순하게 만화풍의 그림만을 빌린 것이 아니라 책의 앞부분에 소개된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있는 전개 방식을 통해 책을 읽는 재미와 한글공부를 조화롭게 담아 내었다. 한글의 원리인 형태소에서 시작해서 책의 앞부분에 언급된 내용이 반복적으로 복습되게 구성된 점과 각 장의 끝부분에 총정리를 해준 것도 맘에 든다. 책의 저자인 꼬주 아저씨가 초등학생인 딸을 위해 보다 쉽고 재미있는 맞춤법에 대해 고민한다는데 책 속에서 그런 정성스러움이 느껴진다.

한 권의 책을 읽고나서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고는 말 못하겠다.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도 책을 덮고나면, 혹은 문장이라도 한번 써볼려고 하면 적용이 안된다. 오랫동안 몸에 배인 습관들이 하루 아침에 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늘 곁에두고 반복적으로 읽고 또 읽어서 눈에 익게 만들고 손 끝과 친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내겐 너무 어렵기만 했던 맞춤법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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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박완서.이해인.이인호.방혜자 지음 / 샘터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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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나 산문을 대할때면,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가슴에 와닿는 감동만큼이나 글을 쓰신분에대한 궁금증이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글을 쓰신 작가는 어린시절이 어떠했는지. 언제부터 열정을 품기 시작했으며 글을 처음 쓰게 된 계기나 ,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개인적으로 '글쓴이의 말'이 짧지 않게 들어가 있는 책을 만나면 참 반가운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에는 문학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저자와의 만남'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또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설사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마련된 자리라 할지라도 독자들에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화>는 박완서님과 이해인님, 그리고 방혜자님과 이인호님의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박완서님과 이해인님은 설명이 필요없는 분들 아니던가. 1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삶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삶에 대한 진솔함과 영혼을 정화시키는듯한 박완서님의 글이 6.25를 겪으면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보낸 슬픔을 바탕으로 씌여졌다는 것을 알고 무척 마음 아팠다.

예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내가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이 착잡하고 혼란스러울때의 내 모습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시각화 해준 화가라는 점 때문이다.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견디며 사는 거죠. p.49" 박완서님의 말씀처럼 물한모금 넘길 수 만큼 고통스런 날을 보낼 때, 상처입은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이겨내라고, 너는 할수 있다는 강요가 아닌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다. 가만히 슬픔에 귀기울여 줄사람, 옆에서 아무말 하지 않고 손 한번 잡아 주는 것으로 슬픔을 공감해 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위로임을 깨닫는다. 한 사람의 화가가 고뇌의 순간, 절망의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모습, 그 모습을 박완서님에게서도 보았다.

"제 초기 작품은 다 전쟁 얘기에요. 그것은 제가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기도 하고... 저는 전쟁을 통해 하나하나의 소중한 개별자들이 어떻게 삶의 비극 속에 던져졌는지. 그런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 p.85
"제 자식을, 사랑하는 남편을 보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요? 그건 극복이 아니죠. 어떻게 참고 더불어 사느냐의 문제일뿐. 절대로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견디며 사는 거죠." p.49

이해인님을 떠올리면 가정먼저 '순수한 영혼'이란 느낌이 든다. 수녀원이란 폐쇄적인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세상의 소외받은 사람을 위해 사랑의 메세지를 나누시는 모습이 항상 고귀하고 존경스러웠는데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수녀원에서의 일화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주신 점은 얼마나 고맙던지. 내가 우러러보던 분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분들께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다. ^^

방혜자님과 이인호님은 이번에 책을 통해 알게된 분들이다. 방혜자님은 '빛'의 화가로서 "우리가 사실은 빛이고 빛에서 와서 빛으로 가는 존재로구나." 하는 깨달음 얻으셨다고 한다. 이인호님은 역사학자이면서 한국 최초로 여성 대사의 임무를 수행하신 분으로 두분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성공을 얻었고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 주셨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일제강점기때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쓰면 벌을 서고, 집에서는 일본말을 쓰면 혼이 났던 혼란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국이란 나라가 '약소국'으로 인식되어진 시대에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지금은 지나치게(?) 당당해진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본다.

두분을 통해서 꿈을 향한 열정도 보았고 강한 의지와 신념등 정말이지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시는 1960년대다. 어린딸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어른들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읽은 반기문총장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그 시대에 맞추어 적당히 공부시키고, 좋은 혼처에 시집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딸의 인생을 위해 몇십년을 내다볼줄 아셨던 어르신들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속으로부터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던 분, 그분들의 대화에 동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너무 기뻤다.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들은 대신 해주시고, 궁금해 했던 대답들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연륜이 깊다'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네분의 대화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신 점에서 내 인생의 거울로 삼고 싶은 분들이기도 하지만 글을 통해, 시를 통해, 예술 작품으로, 학자로서 타인에게 삶을 나누어 주시고 깊은 지혜의 울림을 들려주신 것. 그것이 진정 닮고 싶은 부분이다. 책을 읽은 후 이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도 드물었다. 제목 그대로 <대화>한 느낌, 삶을 나누어 가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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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절대로 열지 마시오
미카엘라 먼틴 지음, 홍연미 옮김, 파스칼 르메트르 그림 / 토토북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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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절대로 열지 마시오!" 첨엔 뭐 이런 제목이 다 있나 싶었다. 당돌한 제목을 달고 나타난 책 ^^ 책장을 넘기니 표지에서 만났던 돼지가 나타나서 또 투덜거린다. 5,6 페이지 까지 계속 돼지가 나타나 책장을 넘기지 말아 달라고, 이 책은 완성되지 않은 책이라고 사정을 한다. 많은 단어들이 적힌 카드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마침내 독자에게 두손 든 돼지는 열심히 카드를 배열해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돼지와 입씨름을 해가며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수록 마지막엔 어느새 한권의 책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흔히 '단방향'으로 인식되어진 독서에 대해 과감하게 '양방향' 의 소통을 시도한 책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책 속의 돼지가 이름을 묻는다. 아이는 키득거리며 수줍게 대답한다. 돼지는 아이에게 글자를 못쓰겠다고 말하고 밑줄 그어진 부분이 나올때마다 아이의 이름을 넣어서 읽으라고 한다. 돼지의 눈으로 바라본 독자(유아)는 '말썽쟁이 거인'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의미는 책의 활자를 읽는 다는 것이 아니라 책과의 대화, 엄밀히 말하면 책속의 돼지와 대화한다는 뜻이다. 물론 저자가 의도한 효과를 100% 얻기 위해서는 책읽어주는 엄마의 오버스러움도 한몫해야 한다.

유아들의 글쓰기는 아무렇게나 적어 놓은 낙서에서부터 시작되며 글은 문자로 된 것뿐만 아니라,그림이나 낙서, 알아보기 힘든 긁적거림까지 포함한다고 한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낙서를 해놓고는 꿈보다 해몽이라고 열심히 설명하는 우리 아이들을 떠올려 보자. 황당한 설명 들으면서 표정관리 하기 무척이나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울음'이란 한가지 방법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던 아이들이 색연필을 들고 형상을 그려냈다는 것.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

'이렇게 해도 책 한권은 만들어 낼 수 있다.' 는 것이 책의 주제이다. ^^ 돼지는 완성되지 않은 책이라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책을 열지 말라는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했다. 무엇이 주제이든지 혹은 어떤 내용이든지 생각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서 부터 글쓰기가 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유아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지침서가 되어주면서도 주제는 깊이 감추고 웃음만 넘치는 유쾌한 동화책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서평을 쓸 때 잘 써먹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책에 대한 느낌 예를들면 표지, 제목, 그림, 주제나 내용과 관련된 일화, 책의 줄거리, 기억에 남는 구절등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조리 일단 써놓고 본다. 말 그대로 횡설수설이다. 몇번이고 다시 읽어 보면서 문단 사이에 풀칠(?)을 하고 필요 없는 것은 지우는 방법으로 완성한다.

이 서평도 같은 방법으로 쓴 것이다. ㅎㅎ



ps. 책을 덮은 후, 아들이 묻는다. "내 이름은 물어 놓고, 니 이름은 뭐냐. 돼지야?"
글쎄... 정말 실컷 대화해놓고 아무리 찾아 보아도 돼지의 이름이 없다.
아들 왈, "내가 니 이름을 알지. 너의 이름은 '엄마'다!!! " 이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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