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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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살짝 바꾸어 본다면, 우여곡절 끝에 양가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하는 내용으로 끝이 났더라면 지금 처럼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는 희곡으로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에 대한 환상 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금지된 사랑', '안타까운 사랑' 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보았으리라. 가질 수 없는 것,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여자는 자신의 바다, 그리고 모든 남자는 자신의 하늘을 품고 있어. 아니면 반대로 모든 여자는 자신의 산을, 모든 남자는 자신의 바다를 품고 있지. 그들은 상대방의 낯선 매력에 빠져들곤 하지.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에서 서로 맞닿을 수 있지만 절대 하나가 될 수 없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없지. p.36"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익숙해 지는 것, 편안함' 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 간다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빛나는 것, 그것은>에서 독수리와 물고기 익투스의 사랑 처럼 서로가 간절히 원해도 공유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품을 수 없는, 안길 수 없는> 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세계를 인정해 주는 것,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사랑 아닐까?

여섯편의 사랑이야기들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었다. 평생을 스쳐지나가듯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튤슈와의 사랑, 역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연인 튤슈를 찾아 떠도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복수성, 즉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혹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는 사랑의 신비로운 감정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의 사랑은 '용기없는 사랑'처럼 보였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남자는 '사랑하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를 찾기 위해 지구를 몇바퀴나 돌고, 매일같이 광장에서 목이 잠길때까지 튤슈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말한다.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열정은 갈수록 강렬해집니다. p.185 " 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났을 때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어쩜 그는 사랑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스스로 찰나의 사랑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짙은 검은 색 눈을 가진 튤슈든, 초록색 눈동자의 튤슈든 그녀가 혼자이든 일행이 있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했었어도 가슴이 이렇게 답답하진 않을텐데...

"튤슈가 왜 좋은 여자냐고요? 제가 사귀었던, 자신들이 튤슈라고 우겼던 여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저와 다투지 않았고, 다툴 상황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와의 관계에서 이익을 따지지도 않았으며 제게서 뭔가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 자신과 저를 속이지 않았고, 위선적이거나 가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음흉한 일도 벌이지 않았죠. 왜냐하면 이런 것들로 다툴 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

책을 펼치려던 순간, 사랑을 막 시작하려는 젊은 남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띠지를 보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불가능한, 닿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 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 무슨 생각으로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권하는 것일까. 어쩜 역자는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누군가 내게 책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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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 씨와 파란 기적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7
파울 마어 지음, 유혜자 옮김, 우테 크라우제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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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기위한 교육이 잘못되었을 때, 오히려 아이들의 사고를 방해한다는 것을 익히 경험하였다. 예를 들면 상상력을 키우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위해 미술학원에 보냈더니 정형화된 나무, 사람, 자동차 그리는 방법을 배워서 너나 없이 똑같은 그림을 그려낸다는 사실이다. 방문 학습지도 마찬가지다. 사고력을 키워주는 과목이라고 말은 하지만 처음엔 흥미로워 하던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한가지를 말하더라도 자유로운 사고가 아니라 생각을 쥐어짜도록 요구한다. '상상은 자유'라고 했는데 상상을 강요받는다.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방법 책에서 찾는 것이 제일 쉽다.

책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벨로라는 개가 파란 물약을 먹고 사람인 벨로씨가 된다는 것이다. 좀더 상세히 말하자면,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둘이 살고 있는 막스는 12살 생일선물로 애완견을 사달라고 한다. 약사인 아빠는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벨로라는 개를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한편, 벨로가 막스네 집에 오기직전 정체를 알 수 없는 할머니가 나타나 아빠에게 파란 물약을 주고 간다. 아빠의 할아버지가 만든 약이라는 말만 남기고 말이다. 실수로 깨진 약병에서 흘러나온 파란 물약을 핥아먹은 벨로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말도 하고 털복숭이지만 분명 사람이다. 문제는 벨로씨가 자신이 개인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이야기가 묘하게 꼬이기 시작하는데 벨로씨가 사소한 사건에 휘말려 경찰서로 가게되는 바람에 막스가 고아원에 보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엄마도 없이 아빠하고만 사는 것은 그렇다쳐도 자신이 개라고 생각하는 벨로씨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 것이다. 가족은 청소년 위원회의 크납 부인에게 좋은 환경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벨로씨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예절을 배우고, 아빠가 좋아하는 베레나 아주머니를 좋아하게 된다. 여기에다 아빠 친구인 에드가씨네 농장 가축들도 사람으로 변해버리는등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막스네 가족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 나갈까?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

어린이 책을 고를 때, 엄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논술'과 '창의력','상상력' 이런 단어가 아닐까 싶다. 늘어놓은 단어들은 제각각 따로일 것 같지만 결국은 동일한 틀 속에 있다. 논술의 바탕은 창의력이고, 창의력은 결국 상상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상 좀 해 봐~" 하는 말만 가지고는 상상력을 키울 수 없다. 상상력은 마음을 여는 것. 기존의 사고를 던져 버리는 것이다. 솔직히 '말을 하는 개'는 사랑스러워도 '사람으로 변한 개'는 왠지 '엽기'스럽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으니 이 책은 내게도 큰 '시험'이 되었다.

파울 마어의 글은 "상상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 준다. 실제로 저자는 가족 여행중인 휴가지에서 저녁마다 벽난로 앞에 모여앉아 이러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시간을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와 그 때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책이 그렇게 쉽게도 만들어 지는가 싶다. ^^ 책의 권장 연령은 11세로 초등 고학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책을 덮은 후 우리집 강아지가 벨로씨처럼 된다면? 혹은 사람이 물약을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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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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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것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 4학년때 처음 안경을 쓴 후로 시력이 계속 나빠졌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느새 시력판에 기호를 하나도 맞출 수 없게 되었고, 시력판을 통채로 외운적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난시까지 겹쳐 막대의 끝이 어디를 짚는지 알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데도 나빠지는 정도가 약간 둔화되었을 뿐 시력은 계속 나빠졌다.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20대 중반쯤엔 안과에서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안과 의사가 말했다. 보통은 20세 이후에 안구와 각막이 다 자라면 시력이 고정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계속 나빠지나요? 안경이 없음 맹인과 다를바 없는데 이러다가 정말 눈이 머는 것은 아닐까요? 의사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꼭 그런것은 아닙니다. 너무 걱정마시고 일단 지켜봅시다. 근데요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눈이 멀게 되는 경우도 있나요? 그런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만... 의사는 귀찮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미용상의 문제라도 해결하시려면 일단 이걸 써보시죠. 의사는 콘텍트랜즈를 권해주었다. 그날 안과에서 맞춘 랜즈는 착용한지 한달쯤 되었을 때 내 눈에 염증만 남기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다시 안경으로 돌아왔다.

실명은 원래 옮는 것이 아닌데. 죽음도 옮지 않죠. 하지만 우리 모두 죽지 않습니까. p.53 교통 체증으로 짜증스러운 도로 한복판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못하는 차량이 있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 닫힌 창문을 거칠게 두드린다. 운전자는 신호등이 바뀔때쯤 갑자기 눈이 멀어 버렸다. 왜? 이유는 모른다. 그냥 멀었다. 안과 의사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돌림병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건부의 공무원은 그저 평범한 안과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병원장도 신중한 태도를 택한다. 실명은 옮는 것이 아니라면서... 첫번째 눈이 안보이는 남자가 생긴 이후, 그의 아내, 그를 집에 데려다준 택시기사와 남자, 경찰, 병원에 있었던 환자들, 의사,간호사 순대로 실명이 전염되고 단 몇일만에 '기하급수적으로 번진다'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는 상황이 된다. 당국은 실명한 사람들을 비어있는 정신병원에 수용하고, 군병력을 투입하여 감시하는데 보초를 서던 군인들 중에서도 실명하는 사람이 속출하자 감시라인을 벗어나는 수용자들에게 무조건 사살이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p. 166 처음부터 끝까지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의사의 부인'이다. 그녀는 의사가 구급차에 타는 그 순간 자신도 눈이 멀었다고 말하고 수용소로 따라와 남편과 다른 눈먼 사람들을 돌본다. 지금껏 살면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에 적응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쓴다. 그러나, 보초 선 군인들이 방관하는 것을 이용해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한 눈 먼 사람들의 무리가 등장한다. 더 이상은, 정말이지 더 이상은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눈이 멀고, 격리 수용되고, 추위와 굶주림, 더러운 환경에 놓여졌다. 그 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무엇일까? 상상을 뛰어넘는 끔찍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환상적 리얼리즘', '경계없는 상상력','실랄한 풍자' 이 모든 수식어는 저자인 사라마구를 위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사에서 홍보를 위해 내세운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말 때문에 이 책을 더 늦게 만나게 되었다. 먼 길을 돌았지만 입소문에 힘입어 마침내 내게로 온 책, 첫장을 펼치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후론 계속 경악하고, 분노하고, 한숨쉬며 그렇게 읽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름도 필요 없단다. 472페이지나 되는 이 책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하나도 없다. 첫 번째 눈이 먼 남자,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의사, 의사의 부인, 검은 안대를 한 노인등이 등장인물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옴표가 없는 대화체를 읽을 때는 '책을 더듬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작가가 노린것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독특하다.

  한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책읽는 동안 계속 긴장이 되었다. 실체없는 공포, 이유없는 설정에도 구성은 치밀하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은 '살아남는 것', 생존 자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제대로 느낀것인가 하는 부담감도 없지 않다. 의문점들... 왜 의사의 부인은 눈이 멀지 않았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눈이 먼다는 것을 암시한 것일까? 왜 암흑이 아닌 백색, 빛의 실명일까? 성상들은 왜 눈이 가려졌을까? 등 그 속에 어떤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것은 아닐까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과감하게 털어버리기 했다. 고민을 끌어안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무겁고 신작인 '눈뜬 자들의 도시'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남은 의문 한가지. 모두가 눈먼 세상에서 혼자 눈뜬 사람의 고통이 눈먼 자보다 덜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 모두가 눈 먼 세상에서 혼자 앞을 보는 여인의 고통을 떠올리며...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어. (p.96)
- 다른 모든 사람이 눈먼 세상에서 눈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러분은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나는 장님 나라의 여왕이 아니에요. 나는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려고 태어난 사람일 뿐이에요. (p.388)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에요. (p.418)
-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p.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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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칵테일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상큼한 세계사가 온다!
역사의수수께끼연구회 지음, 홍성민 옮김, 이강훈 그림, 박은봉 감수 / 웅진윙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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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세계사' 하면 일단은 좀 갑갑했던 기억이 있다. 공부할 분량은 많은데 비해 실속은 없는 과목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른 상황인지라 그다지 즐겁게 공부했던 기억은 없다. 심지어 중간, 기말고사땐 선생님이 미리 문제를 흘리기도 하셨고, 선배들한테 기출문제를 물려받아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성적을 유지했던 과목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라는 상황이 사람을 얼마나 구속하는지 행동뿐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딱딱하게 서술된 교과서와 독자의 입맛을 고려한 일반 서적과 어찌 비교하겠는가 만은 그렇다고 모든 인문학 서적이 잘 팔리고 '대중화'에 성공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세계사 칵테일>은 원시, 고대에서 부터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 속의 주요 사건들만을 뽑아 질문과 대답형식으로 130여 건을 소개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역사의 흐름대로 흘러가면서 큰 테두리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고 간혹 기발한 내용들이 감초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백년 전쟁은 정말 100년간 했을까?' 라든지 '장미 전쟁은 장미와 무슨 상관일까?' '예수의 혈액형은 무엇일까?' 등이다. 시대별 주요 사건들을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대부터, 고대는 아직도 의문 투성이다. 그래서 더욱 신비롭다. 예전에 배웠던 내용들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로 수정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외웠던 4대 문명중 이집트 문명은 약 2,500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3,000년, 황하 문명은 탄생부터 은나라 멸망까지 계산하면 약 5,000년간 지속된데 비해 인더스 문명은 불과 500년 만에 소멸하였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유목민족 아리안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이었는데 지금은 '홍수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환경 파괴설'이 떠오른다고 한다. 연료를 위해 주위의 삼림을 지나치게 벌채해 홍수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환경 문제가 심각한 요즘 시대에 좀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중세로 넘어가기에 앞서 그리스, 로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폴리스, 아테네, 트로이, 알렉산더, 클레오파트라, 그 중 로마제국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로마제국이 번성했던 시기에 유독 황제와 귀족의 출산율이 낮았던 이유가 '납중독' 때문이라는 설이있단다. 당시 로마는 상하수도 시설이 발달해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로마를 비롯한 각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교가 있었다. 그런데 수도교로부터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내는 수관이 납으로 되어있었고, 납으로 만든 냄비와 식기를 사용했다고 하니 로마인들은 일상적으로 납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로마 황제들의 폭력적인 성향과 로마인들의 퇴폐적인 생활도 납중독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하니 참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닌가 싶다.

중세는 역시나 종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로마교황은 언제부터 카톨릭의 수장이 되었는지, 중세도시의 성, 연금술, 기사단, 페스트, 마녀사냥, 드라큘라 백작이 등장한다. 전쟁이 없을 때 기사들은 어떻게 보내는지, 영국과 프랑스가 앙숙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마르코폴로가 사실은 약간 허풍쟁이에다 20년 넘게 중국에서 살았으면서 정작 중국말은 유창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에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근,현대에 넘어와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제국주의' 와 '식민지'에 대한 내용이다. 강대국의 횡포에 휘둘리는 세계사라 참으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세계의 화약고' 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 바로 영국이라는 사실 지금까지 나만 몰랐나? ㅠ.ㅠ 영국은 당시 그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터키 제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아랍과 유대인 양쪽에 이중으로 협정을 맺는 제멋대로식의 외교를 펼쳤다. 후에 분쟁이 커지고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게되자 UN에 중동 문제를 떠넘겨 버린다. 흠...

'아편 전쟁' 에 대한 이야기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당시 영국인들은 중국의 차문화에 매료되어(이때부터 영국사람들이 홍차에 열광했어나 보다) 막대한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국은 아편을 중국으로 몰래 들여왔고 이에 분노한 중국과 발발한 전쟁이 '아편 전쟁' 이다. 전쟁에서 이긴 영국은 홍콩을 조차하고, 개항과 배상금까지 받아냈으니 당시 영국내에서도 전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하나마나한 소리아닌가. 하긴... 아직도 침략전쟁을 정당화 시키고, 정신대 문제등 억지 주장만 펼치고 있는 나라도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당신들은 그나마 신사라고 말하고 싶은 거요? ==;

<세계사 칵테일> 이란 제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상큼한 세계사가 온다' 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책의 구성과 내용, 느낌을 제목에 잘 반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광범위한 세계사의 중요한 부분만 콕콕 찍어 재미있고, 신나게 엮어 놓은 가벼운듯 하면서도 깊이 있는 책이다. 초등 고학년 이상만 되다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으리라 . 다만, '역사의 수수께끼 연구회'라는 단체가 국내 단체인줄 알았는데 일본의 연구 그룹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는 잠시 '깬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내용면에서 한쪽으로 치우칠만한 그런 건덕지는 없으니 안심하여도 좋겠다. 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서운함일뿐 역사책이어서 더 그런가 보다.

책을 펴낸다는 것이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우리도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괜찮은 세계사책을 펴냈음 좋겠다. 대한민국이이 주체가 된, 이 책에는 실리지 못했던 내용들도 거침없이 실어 세계 각나라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는 교양서적도 될 수 있고, 때론 자부심도 되겠지만 후세에는 또다른 문헌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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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풍속사 - 조선.조선인이 살아가는 진풍경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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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도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머금어 진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림속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오거나 아니면 내가 족자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인물들의 표정은 한명 한명이 살아 숨쉬는 듯 생기가 넘치고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이다. 풍속도를 보면서 느껴지는 친근함은 내 속에 정녕 '조선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신윤복의 <선유도>와 <월하정인>, 김신득의 <파적도>로 시선을 사로잡은 <엽기조선 풍속사> 일단 표지 부터 마음에 든다.

한 때 신드롬이라 불릴만큼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엽기'라는 단어는 어느덧 모양새가 많이 깍이고 다듬어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엽기 조선풍속사>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과연 엽기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만큼 내용이 충격적일까 하고 사뭇 궁금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보니 내용 자체가 그런것이 아니라 접근 방식이 엽기다. 게그프로에서처럼 왕관을 삐딱하게 쓴 임금과 목청을 한껏 드높힌 환관이 사투리로 대화 한다고 상상해보라.

첫 이야기인 '태양과 맞짱 뜨던 조선의 왕' 에서부터 나 자신이 조선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일식을 절대 권력자인 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일식 전투'를 별였던 것은 그 시대엔 상징적인 의미로 그런 행사를 했을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조선시대에 이미 일식이 자연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고 과학적인 계산으로 예측까지 할 수 있었다는 사실, 내가 놀랐던 것은 바로 그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조선시대는 까마득하게 먼 과거는 아니다. 물론 기계에 의한 물질적 풍요로움과 교통시설등을 생각한다면 현재와 비교가 되지 않지겠지만 책을 통해 바라본 조선 시대상 사람들의 생각, 가치, 욕구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임 관리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던 면신례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후엔 최근에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대학가의 신입생 신고식이 애교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다. 권력자들, 정치인들의 끝없는 탐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 잦은 외세의 침략 전쟁 속에서 이 땅의 여인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환향녀'가 되어야만 했다.

최근에 '조선'에 관한 책을 두어권 읽고 난 후 우리의 옛 문화에 대해서 갑자기 관심이 많아졌다. <엽기조선 풍속사>라는 이 책에 눈길이 간 것도 관심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몇달 전만 하더라도 스스로가 이토록 '조선'에 깊이 빠져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는데 그 흡입력은 바로 친근하게 다가와 알아듣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옛 문화에 '엽기'를 접목시킨 발상이 참신했다. '엽기'라는 느낌이 주는 조금은 어둡고, 기괴하고, 황당한 느낌들을 밝고, 톡톡튀는 이미지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싶다. 역사를 지나치게 가벼이 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잠깐 들긴 했지만 '조선 시대' 나 '선비'에 대해 딱딱하게 기술된 책을 힘겨워하다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린다면 이 책이 애초에 의도했던 '역사의 대중화' 라는 가치에는 분명 근접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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