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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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내게 작가라는 명칭보다 아나운서로 더 친숙한 방송인 손미나의 여행기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 <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라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 작품이 첫만남이 되었다. 요즘들어 연예인을 비롯해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방송인들이 책을 내는 경우가 많다. 에세이가 가장 흔하지만 자신의 취미를 살려서 사진에 관한 책을 낸다든지 패션 노하우를 기록한 책도 있고 심지어 소설을 쓰는 이들도 있다. 연예인 이라고 해서 방송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그러니 책을 내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다만 여행서의 경우는 여행 경비를 지원받는 경우가 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선입견이 있었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책을 내기 위한 여행이라는 점에 대한 불편함 이랄까. 그런 이유로 이름이 알려진 이가 쓴 여행서는 읽지 않았다. 방송인 손미나의 경우는 그녀가 직접 번역한 <엄마에게 가는 길>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던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 양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란 인도인 입양아가 친부모를 찾기위해 인도를 여행하는 과정을 그린 실화였는데 번역가로서 무척 훌륭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 때,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였다.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동화에서 주인공 마르코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도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는 것을 확인해 주니 기분이 새로웠다. 이탈리아 뿐 아니라 수많은 유럽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몰려들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갈등이 생기게 되고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의 이민 정책이 실패하면서 경제가 어려워 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열정이 넘치는 곳이다.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했던 만남과 사건, 사고일 것이다. 책 읽는 내내 어쩌면 이렇게도 운이 좋은가?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저자와 친구가 되고 길을 안내해 주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가 싶어서 부럽고도 신기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골든벨 스타 수영이를 만난 일이나 안데스 인디언 총각을 만났던 일, 화석을 찾아다니는 가우초 일행과 동행한 일, 빈민촌의 스타와 친구가 되고 탱고를 배우고 아르헨티나 방송에도 출현한다. 중간에 가방을 분실해서 귀중한 자료를 잃어버린 것은 안타깝지만 소중한 친구를 얻은 것은 더욱 의미있다고 하겠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이 책을 펼치면서 아르헨티나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손꼽아 보았다. 가장 먼저 축구와 '애비타', 탱고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열정'이다. 남미의 다른 나라들이 그런 것처럼 아르헨티나도 뜨거운 기운으로 넘쳐난다. 저자는 여행을 결심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인생에서의 큰 도전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던 때라고 했다. 어찌보면 여행만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보냈던 시간은 힘겨운 삶을 이겨낼 힘을 주었고 그녀에게, 독자들에게 가슴을 덥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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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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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처음 받아들고 두툼한 두께감과 묵직함 때문에 살짝 압도되었다. 우선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색인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하늘빛 표지가 맘에 들었고 장대끝에 불안하게 매달린 소녀에게서도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은, 무언가 갈망하는 듯한 눈빛이 맘에 걸렸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띠지를 벗겨내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 소녀가 매달린 장대의 아랫 부분이 누군가의 엄지 손가락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적절한 균형' 이라는 제목과 너무나 절묘하게 매치된 설정이긴 했지만 보는 이를 조마조마 하게 만드는 것 같아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위태로움이 단순한 설정인줄만 알았지 소설 속에 언급된 장면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소설의 배경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전 종교와 이념의 갈등으로 어수선하던 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주인공 디나 달랄은 의사인 아버지와 인자한 어머니 밑에서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그녀는 상류층의 자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교육을 받았고 미래가 총망되는 아가씨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무기력해져 버렸고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더이상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고 결혼을 강요한다. 디나는 오빠가 정해준 혼처를 마다하고 스스로가 선택한 결혼을 하지만 짧은 행복을 뒤로하고 미망인이 된다.

 

 오빠에게 신세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디나는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대학생 마넥에게 하숙을 내어주고 재봉사인 이시바와 그의 조카인 옴프라카시를 고용해서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시작한다. 마넥은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은 도련님이지만 아버지와의 갈등과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들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재봉사들은 당시만 해도 천민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기술을 배워 가족의 자랑, 마을의 자랑이 되었으나 분수를 모른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고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다.  

 

 계급이란 것이 참 그렇다. 어느 나라든지 역사를 되짚어 보면 계급이 없었던 시대가 없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시민 사회가 되자 자연스럽게 계급이 없어지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유독 인도라는 나라는 아직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계급이 존재하며, 소설에서도 법적으로는 계급이 없으나 실제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로 치면 조선시대 양반들이 거의 무임금으로 사람들을 부리고 노비를 사고 판다든지, 천민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상황과 매우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더한 경우도 많다. 복잡한 상황에서 종교적인 갈등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마을에서 계급이 높고 공적인 힘이 된다 싶은 사람의 눈밖에 나면 일가족이 몰살당해도 어디가서 하소연 할데가 없다. 경찰은 도리어 무고죄로 잡아가둔다며 피해자를 윽박지르니 말이다. 당시 공무원들의 실상이란 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빈민촌으로 내몰고 빈민촌 사람들을 강제로 태워다가 선거 유세장에 데려다 놓고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가 다시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 정책을 펼쳤다. 심지어는 산아제한을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다가 불임 수술을 시키고는 실적이라고 내세울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희망이야 항상 있죠. 우리의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 충분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끝장이죠. (p.803)"

  

 책을 읽다보면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꾸만 잊어버리게 된다. 아이를 장대 끝에 매달아 위태로운 연기를 하면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불구로 만들어 구걸을 시키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마음이 어지럽혔다. 우울한 분위기 때문인지 흡입력있는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진도가 더디어 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디나의 작은 집에서 솟아났던 희망의 빛이 완전히 꺼졌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래도 매일 웃을 수 있다던 그녀를 보면서 나 자신이 너무나 비겁하고 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절망을 대신할 수 없는 것 처럼 희망도 타인의 시선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로힌턴 미스트리라는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최근에 읽었던 인도와 관련된 소설들이 무척 감동적이었기에 이 책도 관심이 갔었다. 물론 각종 수상경력과 함께 오프라 원프리의 북클럽 선정 도서라는 점도 기대감을 더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 라는 말이 정말이었던 것이다. 다양한 계층의 주인공들,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네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인도 사회 전반에 걸친 계급 문제와 정치인들의 부패, 사회의 부조리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에야 깨달았다. 내가 손꼽던 최고의 인도 소설이 바뀌었다는 것을. 정말 슬프고도 감동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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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 2009-12-20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절망 속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라..정말 아름답군요
 
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 종이, 자연 친화적일까? 세계를 누비며 밝혀 낸 우리가 알아야 할 종이의 비밀!
맨디 하기스 지음, 이경아 외 옮김 / 상상의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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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 늘어놓으면 세대차이라고 타박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종이가 귀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기가 끝나면 쓰다남은 공책의 뒷부분을 모아 공책을 만들던 기억이 나는데, 그나마도 종이질이 좋지 않아서 지우개로 지우다 보면 구멍이 났을 정도였다. 선배들이 공부했던 교과서를 물려받아 사용했던 적도 있고 초등 고학년 때까지 아버지가 구해주신 이면지에다 문제를 풀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이쁜 연습장을 장만하던 날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공부가 절로 될 것만 같았다. ^^;

 

 그런데 요즘은 종이가 참 흔하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각종 서류에 달력, 편지봉투, 포스트잇, 광고전단, 영수증... 종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인터넷을 비롯한 모바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머지 않아 종이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자책 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고 검색한 것은 출력물을 가져야만 하고, 손에 영수증을 쥐어야 든든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라는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뜨끔했던 것도 내 스스로가 종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1년 동안 한 사람이 소비하는 종이량이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레로 각종 휴지와 종이 뭉치를 날라다가 보여주었다. 짐작은 했었지만 한 곳에 모아 놓으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환경을 위해서 자원을 아껴야 한다는데 공감하면서도 종이는 왜 이렇게 마구 사용해 왔을까? 우선은 재활용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천연자원이라 땅에 묻거나 소각해도 유독하지 않다는 인식이 컸던 것을 인정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가 수많은 생물의 삶의 터전을 훼손한 결과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p.29)"

 

 저자는 주장한다. 애초에 종이의 재료가 되는 나무를 베는 순간부터 자연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캐나다 숲의 경우 벌목한 나무를 강물에 띄워 운반하는데 강바닥을 긁으면서 나무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나무가 썩는 것을 막기위해 강에다 수은을 풀기 때문에 숲에 사는 생물들 뿐만아니라 인근의 원주민들까지 심각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의 밀림을 비롯해 북유럽과 캐나다 북쪽의 산림은 태고적 부터 숲을 이루어 온 원시림이다. 기업화되고 조직화된 벌목꾼들은 그린피스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합법성을 내세워 산림을 훼손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자라온 나무들이 너무나 짧은 시간에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안타까운데 사후 처리는 더욱 기가찬다. 무조건 빨리 자라는 외래종에다 단일 수종일 경우 이전 생태계와는 확연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우리 산이 그랬던 것처럼 눈가림할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심은 아카시아는 다른 나라에도 골칫거리라고 한다. 아카시아가 뿜어내는 독성은 인근의 식물들을 죽게 만들어 산을 황폐화 시키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합법적이라는 것인지. 누가 다른 생명체의 생존을 결정짓는 행동을 해도 된다고 허락할 수 있다는 것인지. 합법적이라는 말이 반드시 도덕적이라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세상의 어떤 생물종도 자신의 서식 공간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서식 공간이자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각종 물질을 생산해 해는 숲을 파괴하는 유일한 생물종이다. (p.251)"

 

 신이 인간에게 다른 동물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허락한 것은 자연을 돌보고 지켜주라는 의미였을 것이나 오늘날 인간들은 지구를 가장 많이 오염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었다. 기억할 것은 우리가 마구 쓰고 버리는 종이가 천연자원이자 유한자원(나무가 자라는 속도와 베는 속도를 비교하자면 유한자원으로 봐도 무방하다.)인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소비자가 질 좋은 티슈를 선호할수록 더 많은 나무들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 질 좋은 종이일수록 약품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화학 처리된 종이는 재활용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다. 또한 재활용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우리가 소비하는 종이의 반도 재활용되지 못하며 매립되는 종이는 유독 가스를 발생시킨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선진국을 비롯해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발전과 환경 오염이 비례하기 때문이며, 종이 소비량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종이의 재료를 대체할 방법으로 캥거루 똥, 엘크 똥, 대나무, 볏짚, 사탕수수의 버려지는 부분으로 종이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나무를 대신하여 종이를 만들 재료들을 찾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의 나무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일상속에서 종이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는데 특히 사무실에서의 이면지 활용이나 화면 인쇄로 확인하고 출력을 한다든지, 각종 우편물을 이메일로 받는 등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장기적으로는 수많은 나무들을 지켜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니 가벼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종이를 재활용하는데 있어서도 종이의 질에 따라 분리 수거를 세분화해야 하며 특히 이물질이 묻은 종이가 재활용으로 분류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앞서 읽었던 부분들이 마치 거대한 음모를 엿보는 것처럼 너무나 엄청난 내용들이어서 의외의 제안에 어리둥절 하기도 했지만, 환경 문제라는 것이 국가나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인식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덧붙임. 우선 위험을 무릎쓰고 전세계를 누비며 종이를 추적한 저자의 용기에 고개 숙여진다. 처음엔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는데 질감이나 무게를 느껴보니 재생용지 같아서 안심이 된다. 솔직히 책 사면서 종이 질 따져본 적은 한번도 없다. 오히려 무거운 책 보다는 두께감이 있더라도 재생용지로 만든 가벼운 책이 좋더라. 나 뿐만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재생용지로 만든 책 분명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업계에서는 이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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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블레의 아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라블레의 아이들 - 천재들의 식탁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양경미 옮김 / 빨간머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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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를 맞닥뜨리곤 한다. 처음 책의 제목을 얼핏 봤을 때, '라블레'가 사람 이름인지 지명인지 조차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 라블레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먹거리에 대한 언급을 읽으면서 비로소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프랑수아 라블레라는 인물을 검색하게 되었다. 프랑수아 라블레는 몽테뉴와 함께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대표작으로는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가 있다. 솔직히 설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낯설긴 하지만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에 비견될 정도라고 하니 라블레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들 중에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라블레도 의사이자 인문학자이면서 글을 쓰기도 했다. 라블레의 작품 속에는 풍성한 식탁이 자주 등장하며 주인공들도 대식가이거나 미식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천재들이 보여준 호기심과 진리에 대한 탐구 열정을 식욕에 빚대어 <라블레의 아이들> 이란 제목으로 천재들의 식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어떤 재료로 어떤 요리가 만들어졌는지 글로써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요리를 완성해서 시식까지 하고 감상을 남겼다는 점이다. 말이쉽지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어 단지 안다는 것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런 점이 마케팅과 연결될 때,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고 말이다. 가령 대감님 댁의 제사음식은 어땠을까, 임금님의 수라상에는 어떤 음식이 올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자료로 끝나지 않고 요즘에도 '헛제사밥'이나 '궁중요리'로 맛볼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전통을 자랑하는 가문에서 전수되어 온 비법 요리를 맛볼 때도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는 그 시간 만큼은 대감님도 되었다가 종가의 어른도 되었다가 임금님도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린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메이지 천황 무쓰히토의 오찬회 요리를 맛볼 때나 아피키우스의 고대 로마의 향연을 즐길 때, 아마도 세상을 다 가진듯한 여유로움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장어요리도 여러 차례 등장하고, 마녀의 수프를 재현한 요리도 흥미로웠다. 프랑스 민심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과자 이야기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푸딩도 기억에 남고 앤디 워홀의 통조림 수프처럼 저렴한 요리도 있다. 더구나 마지막에 소개된 것은 아이들한테 인기 만점인 후리가케다. 아이가 어릴 때 밥먹이기 힘들면 후리가케 뿌린 밥을 김에 싸서 먹였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천재들이 먹었던 요리를 시식했던 것 처럼 독자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저자도 직접 만들어 먹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우여곡절 끝에 요리사들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본 것이다. 과자나 푸딩, 후리가케는 그렇다 쳐도 대부분의 요리가 독자들의 입장에서 재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득 책에 소개된 메뉴로 식당을 차리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는. 또 한가지는 책에 소개된 25가지 음식의 주인공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사실인데 아무래도 아는 인물들이 많았더라면 더 관심있게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론적으로 요리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요리'를 위한 책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고, 표현하자면 "음식을 통해 천재들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인문학적 노력이 돋보이는 책" 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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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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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케이블 방송을 통해서 '서바이벌' 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 제작된 일종의 리얼 프로라고 할 수 있는데 참가자들은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은 오지에서 각종 규칙을 지켜가며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초반에는 부족(팀)간의 단체 경기를 치르면서 상대팀원을 탈락시키는데 몰두하지만 점차 개인전으로 바뀌면서 오직 한 사람의 우승자만이 거액의 상금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직장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탈을 꿈꾸는 마음에서,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상금을 노리고 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배고픔에 괴로워 하고 사람들과의 심리전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문명인다운 이성은 약해지는 반면 철저한 생존 본능에 의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정말 힘들다고 생각되면 기권하면 되는 것이고 부상을 당했을 때도 스텝들에 의해 바로 후송된다. 그런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진짜'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자로 나가야 한다면 어떨까? 누구의 도움을 바래서도 안되고 죽을 때까지, 참가자 중에서 오직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상대를 죽여야 한다면... 거기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TV를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열광한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똑똑히 봐둬. 우리가 너희 아이들을 데려다 희생시켜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너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박살내버릴 거야. 13번 구역에서 했던 것 처럼 말이야. (p.23)" 

 

 소설의 시점은 먼 미래다. 북미 대륙이 잿더미가 된 후, 판엠이라는 국가가 생기는데 캐피톨이 중심이 되어 주변 구역을 다스리는 형태다. 부족한 자원으로 인해 판엠에 맞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캐피톨은 12개 구역을 굴복시키고 13번째 구역은 아예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열두 구역의 소년, 소년가 한명씩 뽑혀와 '헝거 게임'을 벌여야만 한다. 24명의 참가자는 단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워야만 한다. 최후의 생존자는 자신의 구역민들은 물론이고 캐피톨의 영웅이 된다. 

  

 주인공 캣니스는 제비뽑기에 걸린 동생을 대신해 12번 구역의 대표로 헝거 게임에 출전한다. 함께 참가하게 된 소년은 피타라는 아이로 오래전 굶주리던 캣니스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빵집 아들이다. 캣니스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리라 결심하지만 언젠가 피타와도 칼을 겨누어야 한다는 사실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더구나 죽여야만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겐 우승자가 있어야 한다는 거 우리 둘 다 알고 있잖아. 둘 중의 한 명밖에 될 수 없어. 제발, 날 위해서 우승자가 되어 줘. (p.342)"

 

 어릴때는 그랬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에서 맹수가 사슴을 숨을 끊고 고기를 뜯어 먹는 장면을 보면 정말 잔인하다고, 저러니까 '짐승만도 못한' 이라는 욕도 있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좀 살았다고 할만한 나이가 되니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제일 잔인한 동물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들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은 물론 같은 종족끼리도 속이고 기만하고 죽게 만든다.

 

 캐피톨의 사람들은 고대 로마인들이 그랬던 것 처럼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피를 뿌리는 정책을 폈다. 그것도 어린 소년, 소년들을 '조공인'이라는 희생물로 삼아가면서 말이다. 어짜피 죽어갈 것임을 알면서도 개회전부터 이벤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전체 판엠이 헝거 게임을 축제처럼 즐길 것을 강요한다. 헝거 게임중에 제대로 된 볼거리가 없다고 판단되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분위기를 몰아가기도 하는등 철저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입소문이 돌던 책이어서 기대가 컸다. 좋아하는 작가인 스테프니 메이어 여사가 식사 중에도 몰래 읽을 정도라며 칭찬을 했다는 말도 영향을 미치긴 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미래가 아닌 암울한 지구와 광기에 사로잡힌 듯한 '판엠'의 분위기가 우울하면서도 의미 심장하게 다가왔고, 전체적으로는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바탕으로 사랑, 죽음,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굉장히 흡입력있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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