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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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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초등학생인 울 아들이 5세쯤 되었을 때다. 당시 다니던 어린이집이 아이들의 나이에 상관없이 5-7세 합반 수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솔직히 엄마된 심정으로는 큰 애들한테 치이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똑같은 주제를 놓고 수업을 진행할 때,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것인데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 수 있는지 걱정이 많았었다. 그 때 원장님께서 학부모들에게 하신 말씀인즉, 나이에 상관없이 '꽃'을 관찰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아이들은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좀 더 성숙한 아이들은 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또 다른 부류의 아이들은 꽃을 감성적으로 해석하는 등 저마다 자율적인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메두사의 시선> 솔직히 오랫만에 무척 힘든 독서를 했다. 철학과 사상이라는 분야 자체가 원래 형체가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던가. 더구나 만물의 영장이자 이토록 복잡미묘한 사고를 가진 인간의 생각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어찌 쉬울 수 있으랴만은 머리가 한 줌은 빠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난해한 책이었다. 계간지인 <철학과 현실>에 연재되었던 글을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이 철학문화연구소의 계간지를 읽을 일은 없을 터, 사실상 철학을 위한 대중서로 자리매김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나마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서평을 남길 작정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년전 어린이집 원장님의 말씀을 떠올려가면서 욕심을 내려놓고 어려운 용어, 해설 다 이해할려고 애쓰지 말고 내게 와닿는 것만 움켜쥐자 라며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임을 밝혀둔다.  

 

 작가는 신화-과학-철학을 상호 연결된 하나의 선상으로 보았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철학이야기는 각각 신화에서 시작해서 철학으로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과학으로 이어진다. 가령 '헤라클레스와 육체의 반어법' 이라는 장을 예로들면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영웅인 헤라클레스 신화에 대해 그가 해결했던 많은 미션들이 강인한 육체보다는 오히려 지혜를 요구하는 것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던 육체와 영혼에 대한 철학이야기로 옮겨갔다가 다시 뇌과학과 영혼탐구라는 과학적인 분야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르키소스가 빠져들었던 대상을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확장된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약간은 어려우면서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최근에 자신에게 당당한 젊은 세대를 보면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 잠시도 쉴 새가 없는 모습, 자신을 알아주는 이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거나 자기 자신의 모습에 빠져있는 모습을 나르키소스라고 표현한 점이 특히 그렇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신화는 인간의 정체성과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대해 언급되었다가 인간의 모습을 본뜬 로봇으로까지 확장되고 디오니소스의 신화는 니체의 충동과 예술, 찰스 다윈의 인간의 기원에서 농업 기술로 이어지는등 저자의 인문학적 해박함과 사고의 확장에 감탄했던 시간이었다.         

 

 수년전만 해도 소설만 줄창 읽던 내가 그나마 인문학을 가까이 하고자 애쓰는 것은 책 읽는 시간이 더이상 오락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또 다른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주는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가끔씩은 이번의 경우처럼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책을 만나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잘 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하늘을 자유롭게 올려다보는 동물이었다는 점이 인간의 사상을 폭팔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말이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 실제로 신화의 내용이나 '신' 이라는 존재도 하늘과 하늘 너머의 우주에까지 사고가 미친 결과니까 말이다. 이처럼 어떤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과학-철학' 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은 인문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꼭 필요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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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
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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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범죄나 청소년들의 성에 관한 부분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다. 그러고보니 20여년전 내가 고등학생 일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미국이나 유럽에는 아기를 업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있고 학교내 마약 문제도 심각하다고 하셨었다. 그땐 정말이지 생각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너무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딴나라'를 넘어 '별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문제가 서구 사회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폭력적인 미디어를 탓하기도 하고, 인터넷의 발달, 가정 불화로 인한 무관심 혹은 그 반대로 지나치게 보호받으며 자란 것을 탓하기도 한다. 사실상 인성교육을 포기하다시피한 교육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요즘 아이들이 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빠르게 성숙하는 것만은 분명하며, 가정과 학교 양측에서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세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어야 할 것이다.        

   

 <슬램> 이 책은 16세에 아빠가 된 소년의 이야기다. 이렇게 적고 보니 무척 문제가 많은 학생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단지 샘의 엄마도 너무 이른 나이에 샘을 낳았다는 사실이 다른 가정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겠지만 이혼한 아빠와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비교적 평범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샘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스케이트 보드에 열광하는 보통의 학생일 뿐이었다. 그런데 첫눈에 반한 여자친구와 사귀는 동안 수많은 시간들 중 단 5초간의 실수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언젠가 어떤 스케이터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스케이트가 믿기 어려울 만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라고 했다. 인생 최고의 스케이팅을 펼치며 '이렇게 끝내주게 타다니'라는 생각이 막 드는 순간,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쳐박을 수도 있는 게 스케이팅이라고. 한마디로 9분 55초 동안 멋지게 스케이트를 타는 것만으론 안 된다. 나머지 5초란 사람을 갑자기 최악의 머저리로 만들고도 남는 시간기 때문이다. 흥, 인생이란 그런 거다. (p.71)"

 

 인생이란 그런 거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불쑥불쑥 생겨나는 것이 인생인 거다. 이 철딱서니 없는 소년은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한 나머지 여자 친구에게 연락을 끊고 다른 도시로 도망가서 살 생각까지 한다. 그런 상황에서 몇 배 아니 몇 십배는 더 충격에 빠져있을 여자 친구를 내팽개칠 생각을 하다니! 그 나이 때 딱 그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소년을 남자로 자라게 만들었다. 옛날 어른들 말씀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고 했는데 소년은 아빠가 되면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이다.     

 


 "나는 몸을 구부려 아기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지난번에 잘 모를 때는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아기 똥 냄새가 좋은 편이라는 걸, 어쨌든 거의 그렇다는 걸 몰랐으니까. "맞아, 기저귀 갈아 줘야겠어. " (p.279)" 

 

 이 책의 내용이 무척이나 현실감있게 와닿았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샘과 여자 친구 모두 평범한 학생이라는 설정덕분이다. 때문에, 설마... 라는 생각으로 밀쳐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당사자 이거나 혹은 부모의 입장으로)'이라는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샘은 여자친구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원치 않게 아빠가 되었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결혼 문제와 상관없이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의 찌질했던 모습에 비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하겠다. 덧붙여 상대의 자식이 내 자식의 인생을 망쳤다고 주장하는 양가 부모들의 입장을 대하면서 어쩜 동서양을 구분할 것 없이 모든 부모의 입장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의 제목인 '슬램(Slam)'은 스케이트 용어로 '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인공 샘은 자신의 인생에 닥친 가장 큰 위기를 -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었다. - 본인의 의지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 처럼 혹은 스케이트를 탈 때 처럼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다보면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소년의 경우는 넘어져도 제대로 넘어진 경우였지만 최소한 엎드려 누워있지만은 않았고, 아직은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무난하게 헤쳐나갈 것이라 믿고 싶다. 

 

 주말에 인터넷 기사를 보니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낳은 뒤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기사를 읽었다. 잊을만하면 이런 기사가 나오니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미혼모를 위한 보호기관이나 입양이라는 방법도 있을텐데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미혼모라는 낙인이 무서워서 어쩔수 없었다는 그 여인도 딱하고 그들을 그렇게까지 내몰 수 밖에 없는, 아직은 성숙되지 못한 우리 사회도 문제일 것이다. 무조건 막자고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최선이 안된다면 늘 차선을 열어놓는 것. 그것이 바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기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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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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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제 친구는 절대로 거짓말 할 그런 애가 아니라니깐요! 오랜만에 삼동서가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면 일단은 '군대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간 거다. 흔히들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이야기, 축구이야기 그 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네버앤딩 스토리이긴 하다. 재미있는 것은 직접 겪은 이야기보다 전해들은 이야기가 더 인기라고 우리집만 해도 현역인 울 신랑 보다 6방인 형부와 면제인 형부가 더 열변을 토한다. "내 친구말로는..." 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아무도 못말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현역은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다. 대신 드물게 부연 설명이나 쐐기를 박는 말은 한다. "그거요? 다 뻥입니다!"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이 책은 속된 표현으로 '세상에서 가장 뻥을 잘 치는 남자가 떠든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어릴 때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이란 제목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남작이라는 직책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1차적으로 혹해서 지체 높으신 남작님이 직접 들려주는 황당하면서도 기발한 모험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내용도 있었고 결국 모든 것이 뻥이구나, 라는 허탈감도 들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모험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려진 것과 같이 이 책의 주인공인 뮌히하우젠 남작은 18세기 독일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수렵가이자 모험가, 군인이었던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지인들에게 과장해서 들려주었는데 그 내용이 책으로까지 출간된 것이다. 사람들은 뮌히하우젠이 허풍쟁이라는 것을, 그의 이야기가 엉터리임을 알면서도 왜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허풍도 허풍이지만 아마도 입담이 좋았던 것을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요즘으로 치면 개콘 육봉달이 "달리는 2-1번 마을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철근을 씹어먹고..." 라는 말이나 너도나도 "만주에서 개 타고 말장사 하던 시절"을 회상하고 "월남 스키부대 출신" 이라며 으스대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또 한가지는 그의 이야기가 허풍을 넘어 판타지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주목받고 싶고 재미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뛰어 넘어 바다에서 육지로, 사냥터에서 전쟁터로, 달나라에서 지구 중심부까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들며 뻥을 쳐도 아주 예술적으로 쳤다. 더구나 오늘날 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달나라를 여행한다는 자체가 '단순한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뮌히하우젠의 허풍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술이자 설화, 전설이었던 것이다.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정말 오랫만에 다시 읽었는데 한페이지씩 넘길때마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도 되살아나고 역시나 웃겼다. 어릴 땐 단순히 재미로만 읽었던 이야기인데 25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온갖 추측과 사고를 이끌어 낸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던 시간이기도 했다. 서두에 작가가 말하기를 독일의 이야기인데도 영국에서 먼저 출간된 점에 유감을 표한 부분이 있는데 뮌히하우젠에 대한 독일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내용중에 뮌히하우젠이 굉장히 진지해지는 장면이 있다.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꾸며서 떠들어대는 여행자와 자신의 이야기를 왜곡해서 옮기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 그렇다. 그 능청스러움이란... 그 대목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뻥을 쳐도 진지하게, 엘레강스하게 치면 누구라도 넘어가게 된다는 사실~ ㅋ

 

 사족처럼 들리겠지만 한 가지만 덧붙여야 겠다. 혹자는 뮌히하우젠의 모험을 '걸리버 여행기'나 '돈키호테의 모험'에 비교하기도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의 작품을 모두 포함해서 모험을 즐기고 신대륙을 탐험하는 주인공을 통해 확실히 독일인, 영국인, 에스파냐인의 성향을 말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부터 제국주의의 싹이 보였다고 말하면 너무 오버하는건가? 어쩜 단순히 맥주타임에 안주가 필요했을 수도 있고 웃고 떠드는 가운데 은근슬쩍 '고귀하신 남작님은 뻥쟁이' 라는 점을 들어 당시 사회를 풍자하려 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떤 이유든 이런 장르의 책이 '고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구라같은 이야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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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도시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5
이동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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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적 자랐던 한옥집 마당에는 지붕보다 높게 자란 석류 나무가 있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손주들을 위해 손수 심으셨다는데, 얼핏 보면 한 그루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 그루의 나무가 자연스레 휘감긴 것으로 모양도 참 멋있었다. 그런데 한옥집을 헐고 집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계획대로라면 공사 기간동안만 잠시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가 되가져와야 했으나 옮겨진 곳에서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해 죽었다는 것이다. 20여년 간이나 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해마다 풍성한 열매로 보답했던 나무의 마지막이 너무나 쓸쓸했던 것 같아 한동안 온 가족이 허탈해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나 나무를 구분할 것도 없이 생명이 있는 존재는 나고 자란 환경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내 몸 뉘일 곳' 이라는 개념의 집이나 동네 특히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반에 반만 이해해도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 뿌리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살면서 형편이 좋아져서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간다면 그러한 고민조차 행복의 일부가 될 수 있겠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환경의 변화' 라는 그 자체가 고통일 수 밖에 없다.

 

 <장난감 도시> 이 책은 한국 전쟁 직후 고향을 떠나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가족의 아픔을 담고 있다. 주인공이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는 초등 4학년으로 고향에서는 면장감이라는 칭찬을 들을 만큼 나름 만족한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때문으로 도시의 판자촌으로 이사를 오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 병약한 어머니, 민며느리가 된 누이 그리고 온기없는 방과 구걸을 해야할 정도의 굶주림까지...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 중 대부분이 넉넉치 않은 살림이었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 닥친 끝도없는 불행을 생각하면 참고 살다보면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위로가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자문하게 된다. 

 

 소년에게 도시는 생명이 없는 '장난감'처럼 삭막하고 매마른 곳일 뿐이었다. 그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좌절하고 방황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너무나 측은했다. 자신이 당했던 것들, 가슴속에 억눌린 것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고 민며느리로 들어간 누이에게 철없이 반항하는 모습도 안스럽기만 했다. 특히 개한테 물리고 받은 돈으로 꾸역꾸역 허기진 배를 채우던 모습,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도 여전히 허기를 느낀다는 말은 당시 주인공이 가졌던 상실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신기한 것은 주인공 '나'가 떠올리는 기억의 조각들이 온통 가슴 아픈 이야기 뿐인가, 하는 순간 어느새 감동적인 성장소설이 되어 있음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단편적이지만 한곳에 모으면 훌륭한 작품이 되는 퀼트 이불처럼 말이다. 더구나 1-3부가 4년여에 걸쳐 완성된 중편의 모음이라는 사실은 따로 설명하지 않으면 알지 못할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져 있다. 솔직히 2, 3부 없는 '장난감 도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재출간 시점에 맞춰 아버지나 누이의 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다.   

 

 끝으로... 해방전에 태어나신 아버지가 예전 이야기를 꺼내실때마다 솔직히 그렇게 감동받거나 경청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전에는 그때의 형편에 맞춰 살았고 지금 사람들은 지금 형편에 맞춰 사는 것인데 자꾸만 못먹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시니 괜시리 반항심이 생겼던 탓일게다. 헌데 이상하게도 내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주인공에게는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감정 이입이 된다.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것으로 남아야 하고, 소설 속의 주인공이 겪은 상처는 살면서 내게 닥칠 수 있는 역경을 대입하기 때문일까? 나는 왜 가까이 있는 가족의 '리얼 스토리' 보다 소설에 더 집착하는가. 아, 어떤 이유든 난 못된 딸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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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속의 세상, 세상속의 교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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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동업이나 돈 빌려주기 같은 금전 거래는 기본이요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는 것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절친한 사이일 뿐 아니라 가족이라고 해도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주제가 그렇다. 이념이나 사상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어서 부모와 형제라고 해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주제로 대화하다보면 누군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살벌한 토론의 분위기가 연출되거나 결국은 상대방을 공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이 책은 참으로 민감한 주제인 종교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배타적이라고 알려져 있고 욕도 많이 먹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히 교인들이라면 한번쯤은 눈여겨 볼지도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시선 한번 받지 못할 그런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김두식 님이라면 어떨까?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 가족>을 통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법조계의 문제점들을 솔직하게 보여준 점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우선 내 주위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단체에 대해 그렇게 좋은 감정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유일신이라는 핵심적인 교리에 의한 배타성이라든지 그들이 부르짖는 사랑이나 박애주의에 비해 교인들끼리만 뭉친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저자는 모태신앙으로 어려서 부터 교회의 풍경에 익숙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오랫동안 교인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을 짚어주되 법학자의 냉철한 시선과 교인으로서의 애정어린 마음이 동시에 느껴진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신 중심이 아니라 목회자 중심이라는 점, 개인의 성공을 갈구하는 토속신앙적인 모습, 교회의 세습화, 신도들의 계급화, 믿음이 아닌 징표에 의지하는 모습 등 막상 교인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교회의 모습은 솔직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 위에 언급된 문제점들이 다른 종교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싶다. 어쩜 중요한 것은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고 과연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가 혹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라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교회가 초심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초기의 한국 교회가 사회 사업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설사 어떤 목적의식이 있었다 할지라도), 목회자들이 부와 명예 보다는 사명감을 중요시하던 그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교회도 외부 감사를 받고 세금도 내는 방법으로 제정에 투명성을 높여야 할 것이고, 개인들에게는 '복음'이라는 책임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줌으로써 더 많은 안티를 만들어내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이 책을 통해 세속화 되어버린 교회의 모습과 세상 속의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무신론자나 타종교인에 의해 씌여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마도 심각한 종교전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 싶다. 역시나 변화란 타인에 의해서 보다는 자성의 목소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문제점에 비해 대안이 약한듯 해서 아쉽기도 했고, 책 한 권으로 수많은 교회들이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직은 한국 교회에 희망이 남아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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