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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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추위가 어제, 오늘에서야 잠시 수그러드는 것 같네요. 올 겨울은 '삼한사온' 이라는 겨울 날씨의 특징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춥기만 한 것이 이상기온의 한 형태인가 싶어 괜시리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가을엔 어김없이 낙엽이 떨어졌고 여름 한철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도 모두 사라지는 등 추위에 맞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지요. 
 

 <외뿔> 이 책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이외수님의 우화상자 입니다. 주인공은 짐승도 곤충도 아닌 물벌레 입니다. 호수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물벌레 말입니다. 최근에 읽었던 <사부님 싸부님>의 주인공이 올챙이였다면 이번에는 올챙이보다 더한 미물인 물벌레가 주인공인 것입니다.

 

 물벌레는 자신의 외모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평생 바닥을 기어다녀야 하고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되어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을 '조물주의 폐기물' 이라고까지 합니다. 열등감은 자기 비하를 낳고 자기 비하는 스스로를 고독에 빠뜨립니다. 결과적으로 열등감에 휩싸인 물벌레는 엄청난 고독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에세이와 마찬가지로 삽화와 여백 그리고 힘을 실어주는 문구들이 많은 작품입니다. 특히 물벼룩을 비롯해서 호수 속의 다른 생명체들이 툭툭 던지는 말들을 그냥 웃고만 넘길 수는 없는 문장이며, 미물보다 나을 것이 없는 인간들의 모습에서는 잠시 낯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등장하여 자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확실히 웃기면서도 단호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 사람의 외모가 어떠한지 어떤 학벌을 가지고 있는지, 집안이 어떤지 등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는 미물인 물벌레를 통해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 즉 사랑을 잃지 않고 내면을 채워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밑줄 친 문장들

 

 "좀도둑은 만 개의 자물쇠가 있으면 만 개의 열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큰 도둑은 한 개의 열쇠로도 만 개의 자물쇠를 열 수 있다. 깨달음이란 천지만물이 간직하고 있는 진리와 사랑의 알맹이를 한 개의 열쇠로 감쪽같이 도적질하는 일이다. (p.89)"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세상와 절연하는 방법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세상과 조화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조화로움이 곧 아름다움이니까요. (p.165)"

 

 "천하만물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되면 천하만물을 사랑하는 눈도 가지게 되리니 그때는 천하만물이 어디로 가는지를 절로 깨닫게 되리라.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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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잡학상식
손영란, 조규미 지음, 김영진 일러스트 / 삼양미디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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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삼양미디어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 상당히 좋아합니다. 초기에 출간된 종교, 신화를 시작으로 명화, 명작, 영화, 성서, 과학자, 서양음악, 미국역사, 클래식, 악녀, 몬스터 등 10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답니다. 사실상 상식의 범위란 것이 너무나 광범위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은데 이렇게 시리즈로 나와주면 참 좋지요. 그런데 최근에 발행된 책에서 약간 실망스러웠던 평가도 있었어요. 굵직 굵직한 분야들이 다 나온터라 조금 억지스런 주제도 있었거든요. 이쯤에서 상식시리즈가 거의 마감되려나 싶었지요. 
 
 이번에는 '잡학상식' 입니다. ^^ 지금까지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책 한권이 나왔었기 때문에 '잡학상식'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올줄은 미처 몰랐어요. 내용을 살펴보면 인체, 문화, 유래, 생활습관, 과학, 동식물 등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를 짚고 있네요. 울 아들이 좋아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혹은 '너 그거 아니?' 라는 제목의 책과 같은 구성처럼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페이에 걸쳐 2-3 가지의 문항을 설명하고 있을 만큼 간결하게 짚고 넘어갑니다.   
 
 테니스 경기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첫번째 공을 '서비스'라고 사는 것은 원래 테니스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기 쉽게 공을 보내는 경기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상대가 치기 어려운 공을 보내는 사람이 오히려 벌점을 받았다고 하니 신기하지요. 결혼식에서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를 보호해 주는 경호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결혼식날 식을 망치거나하는 나쁜 기운을 쫓는 의미도 있지만 이따금씩 벌어지는 불상사, 예를 들면 신부를 흠모하던 사람이 신부를 납치하던 사건을 막기 위한 역할도 했답니다.  
 
 '자매결연', '모교', '모국' 처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양측을 가리키는 말은 여성명사를 사용합니다. 이는 사람과 관련된 명사는 남성명사를 쓰고 사물과 관련된 것은 여성명사를 사용하는 한자의 특성 때문이라고 해요. 지구상에 조사된 전체 동식물의 종은 약 200만종 정도 된다고 해요. 정말 엄청난 숫자지요. 그런데 이들중 하루에도 100여종의 동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답니다. 이런 현상이 자연적인 멸종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이유때문이라니 심각한 일이지요. 
 
 진귀한 기록으로 유명한 기네스북은 영국의 맥주회사인 기네스사에서 술자리 이야깃감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권투 경기장을 링(ring) 이라고 하는 것은 초기의 경기장 모양이 둥근 원형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투신을 하려던 사람이 교각의 색깔에 영향을 받아 생각을 바꾸었다는 설명도 무척 흥미로웠어요. 인간의 '생각하는 동물'인 만큼 섬세하고도 감성적인 면에 좌우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답니다. 색깔과 관련된 것은 실제로 심리치료나 인테리어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요.
 
 생뚱맞은 이야기 한번 해볼까요? 2010년도 새해가 밝으면서 김혜수, 유해진 커플이 공식적으로 교재사실을 인정하자 연예계가 술렁이고 있지요. 울 삼실에 어떤 분은 "김혜수가 미ㅊ거 아냐?" 라는 격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못 미더워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최근에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니 유해진 씨가 상식이 굉장히 풍부한데 특히 그림이나 클래식 부분에 상당한 깊이가 있어 두 사람이 통하는 면이 있다고 하네요. 상식이 곧 힘인거죠. 상식 만쉐이~!!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잡학상식> 이 책은 한 마디로 재미있어요. 인문학적인 딱딱한 상식이 아니라 코믹하고 기발하며 재미있는 질문과 답이 넘쳐납니다. 물론 흥미위주로 편집된 점이 없지 않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정보입니다. 이런 책 읽다보면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옆에 있는 사람을 자꾸 귀찮게 만듭니다. 아는 것 자랑하고 싶어서, 신기한 이야기 잊어먹기 전에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말이지요. 무엇보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기출간된 상식시리즈 중에서 가장 낮은 연령층의 독자들까지 흡수할 수 있는 책이 라는 점에서 울 아들한테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서 반가웠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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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진단서 - 요리책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식품의 모든 것
조 슈워츠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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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요리책과 음식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리 바쁜 직장맘이라고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위한 가장 기본적인 노력은 음식에서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어린 이유도 있겠지만 아이의 편식을 고쳐주기 위한 요리를 고민해 보기도 하고 최근엔 식재료를 통째로 먹는 '마크로비오틱'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이왕이면 유기농이 좋겠고, 성장기 아이를 위한 고기도 중요하지만 과일과 채소가 우리 몸을 정화시켜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특정 식재료가 어떤 영양소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권장해야 하고, 어떤이에는 금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얕은 지식은 있는데 '성분'에까지 관심을 가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식품진단서> 이 책의 저자는 요리전문가가 아니라 화학자입니다. '요리책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식품의 모든 것' 이라는 문구처럼 식품의 화학 성분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라든지 식품첨가물에 대한 오해와 속설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뉴스에서 외국의 식료품 가게를 비추는 장면이 나올때면 소비자들이 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식품의 성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더 주의해야 겠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도 유전자 변형 식재료로 만들었는지, 색소는 어떤 종류이며 방부제가 사용되었는지, 기타 첨가물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인지하고 구입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다시말해 모든 식재료에는 흔히 알려진 대로 '어떤 영양소가 잇고 어디에 좋다.' 라는 것 이상으로 고유한 성분이 있습니다. 이 물질들은 음식으로 섭취되었을 때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독성물질과 유익한 성분이 함께 우리 몸에 흡수되게 됩니다. 설사 독성물질이 있다고 해도 아주 미량이어서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소량이라도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또한 비타민이나 우유, 달걀 같은 음식에 대해서는 '좋다' 혹은 '나쁘다'는 평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는데 정보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소신있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과적으로 화학자가 말하는 식품이야기 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물론 처음 듣는 화학 물질이 있어서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앞으로 음식을 먹을 때 어떻게 적용해야할까 고민도 하게 되지만 안다는 것은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믿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햇습니다. 식재료에 대한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최근에 '도시농업'이라고 가정에서 채소와 과일을 직접 길러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텃밭이 있는 사람들, 집안에 화단에 있는 사람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좁은 아파트 공간에까지 먹거리를 키우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 싶었지요. 식품이 가진 고유한 화학 성분은 어쩔 수 없다지만 기본적으로 먹거리에 대한 믿음 자체는 깨어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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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싸부님 1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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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를 즐겨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외수'라는 이름 석자는 들어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이야 작가들의 작품이 인터넷에 연재되는 경우도 있고 서점별로 작가블로그나 강연회 등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외수님은 어느덧 노작가라고 할 수 있는 연륜이 되셨습니다. 그럼에도 나이가 무색할 만큼 소통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시는 분이지요. 

 

 개인적으로는 2년전쯤 <하악하악>을 처음 읽었을 때 멍때릴 만큼 충격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른 중반인 저도 잘 사용하지 않는 인터넷 용어를 너무자 자연스럽게 구사하시면서 일침을 가하는 문장을 쓰셨더군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충분히 의미심장 했습니다만 약간은 어색했던 점도 있습니다. 작년에 <청춘불패>를 읽으면서는 예전에 쓰신 글을 다시 다듬은 내용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부님 싸부님> 이 책은 1983년에 첫출간 되었던 책이라고 합니다. 무려 27년만에 새옷을 갈아입고 다시금 선을 보인 것이지요. 세월의 흐름에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고전처럼 어찌보면 인간사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혜의 말'이라는 것이 큰 틀 안에서는 일맥상통바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제가 읽은 이외수님의 산문집(에세이)의 특징은 글과 그림, 여백의 조화로움 이었습니다. 이번 작품도 귀여운 삽화와 여백이 부담을 덜어주더군요.

  

 사람이란 본시 동물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짐승과 나무들을 함부로 하고 심지어는 자시기 사는 주변 환경조차 훼손하겠지요.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미물 취급을 받는 올챙이가 주인공 입니다. 그러니까 강원도 두메산골의 작은 웅덩이에서 어느 청개구리 부부의 513남 41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올챙이지요.

 

 이 올챙이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하얀색입니다. 그리고 색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사고를 하여 자신의 존재와 우주 만물에 대한 깨우침을 얻고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결심합니다.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바다로 가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행중에 만났던 수많은 수중생물들 중에서 바다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극히 드물 뿐더러 이따금씩 얻게되는 정보조차 궁금증을 채워주기엔 미흡합니다. 게다가 이 올챙이를 '싸부님'이라 부르며 따라 나선 또 다른 올챙이가 있으니 책임감도 무시하지는 못하겠지요.

 

 올챙이들은 수중 생물들의 복잡 미묘한 사연에 얽히기도 하고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잘난척 하는 인간들이 물 속 생물들에게는 어떻게 비치는지, 마치 맑은 호수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 처럼 부끄러운 장면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인간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는지 말입니다. 올챙이들을 미물이라 여기는 만큼 올챙이도 인간들을 불쌍히 여긴다는 사실이 씁쓸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올챙이가 처음 소개되고 얼렁뚱땅 싸부님이 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인지 1편이 더 끌립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1, 2편을 연속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올챙이와 수중 생물들의 입을 통해 말하고자는 하는 것은 한 문장, 한 단락이 연결되는 듯 하면서도 매듭이 지어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불가능할 것 같은 꿈, 바다를 향하는 두 올챙이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이유로 안주하고 열정 없이 살아간다면 이상을 가진 올챙이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이 책을 헛읽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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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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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history 애초부터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우리 역사를 예로들면 고려시대, 조선초기까지 부분적으로 여성에 대한 관대함을 찾아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며 동서양을 통틀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상의 반이 남자라면 그 나머지는 여자인 것을 어떻게 남자들의 기준으로만 역사가 만들어진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인들은 성녀로 칭송받든 아니면 악녀로 낙인찍혔든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들의 일생이 파란만장했던 만큼 후대의 여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고종석의 여자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인 고종석님이 손꼽은 34명의 여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인물이 중심이 되는 책의 경우 '역사를 움직인', '세계를 빛낸' 등의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왜 그 인물을 선정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뒤따르기도 하는데, 이 책의 경우는 서두에서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한다. 소개하고 있는 여인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에 따라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게 선정된 인물이며 실존과 허구, 삶과 죽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클을 걸 수가 없다. ^^; 

  

 솔직히 책을 처음 봤을 때, 바람직하지 못한 두 가지 생각을 떠올렸음을 고백한다. 요즘들어 '골프의 황제'라 불리는 세계적인 스타가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과 겹쳐 제목의 느낌이 달리 와닿았던 것이 첫번째이고 또 한가지는 '고종석'이 누구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기업이 브랜드화 되고 있는 것처럼 개인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독자로서 저자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자 순간 내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고픈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저자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그가 소개하고 있는 여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서른네 사람 중에서 반 정도만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었다. 오래된 영화나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니콜 게랭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러브스토리>의  에릭 시걸의 또다른 작품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에 등장하는데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로 결혼은 원치 않지만 아이는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하다 싶었다.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임을 감안할 때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논란이 될만큼 파격적인 생각이나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결손가정'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게 된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미디어 여왕'으로 등극한 오프라 원프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손꼽힌다. 그녀의 토크쇼에 출연했던 사람들은 진솔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유명인이란 타이틀을 내려놓고 진심을 털어놓게 된다고 한다. 오프라 원프리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려움에 처해있는 여성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또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을 극복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외에 마리 앙투아네트, 윤심덕과 같은 비련의 주인공들에 대한 의견이나 최진실, 강금실 전 장관을 포함한데 대해서는 의외였지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누구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여인 한 두명쯤은 가슴에 품고 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여인을 꼽으라면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바로 내 어머니를 꼽을 것이다. 어머니는 체형, 외모,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을 가지셨다. 단아하면서도 다소곳하시고 자식들에게 헌신적이며 생활력 강하시다.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셔서 주위에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많다. 사춘기때 한참 반항하고 그럴때는 엄마처럼 가족과 타인을 위해서 사는 인생을 누가 알아주느냐고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엄마를 반 만이라도 닮고 싶다는 바램이 간절하다. 뒤늦게 철드나보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고종석이라는 작가와 그의 여인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아무리 주관적인 생각으로 선정하였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인물들인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책 제목과 표지만 보고 선입견을 가졌던 점을 반성한다. 모두가 나의 내공이 부족한 것이 이유였는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나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세상을 경험하고 배울 시간이 많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이 많고 세상을 변화시킨 이들도 많지만 그들을 낳아 기른 것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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