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조앤
제니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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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분명 옳다고 믿었던 일이 지나고 나서 보면 착오였고 잘못된 판단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다.

사람의 일이다 보니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치관도 신념도 시대적 상황도 바뀔 수밖에 없는데 변화된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 혹은 선택의 잘잘못이 가려지게 된다.

레드 조앤은 그런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든이 넘은 조앤의 집으로 MI5 요원들이 들이닥치고 그녀를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죄는 국가기밀을 적국에 넘긴 것으로 그녀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 닉조차 그녀가 왜 그렇게 엄청난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조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하에 저지른 일이라고 고백한다.

이야기는 현재 MI5 요원들 앞에서 심문을 받는 시점과 그녀가 과거 스파이를 했을 당시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보여주면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집에서 나와 당시의 여성으로선 드물게 대학 그것도 자연과학을 전공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조앤은 그곳에서 그녀의 운명을 바꿀 두 사람을 만난다.

바로 그녀의 첫사랑이자 잊을 수 없는 연인 레오와 그의 사촌인 소냐

러시아에서 건너온 두 사람 중 특히 레오는 공산주의 사상에 강렬하게 매료되어있을 뿐 아니라 조국 러시아를 위해서 공산주의 사상이 반드시 뿌리내려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있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런 그를 사랑한 조앤에게 그녀가 있는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추진되었던 프로젝트 정보를 넘겨달라는 레오

당연히 그녀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사랑 때문에 스파이의 길로 접어들었을 거란 예상을 깨고 그녀는 단호히 이를 거부하는 강단을 보인다.

그녀는 레오를 사랑하지만 그가 요구하는 것은 그녀의 신념과 정의에 반할 뿐 아니라 처음에는 그의 사상에 매료되었으나 그녀가 그의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들기에는 너무나 냉철했다는 것이 레오의 폐단이 된다.

그렇다면 연인의 요구마저 거부했던 그녀가 왜 스파이가 된 걸까?

조앤이 러시아에 넘긴 기밀문서는 핵폭탄 제조와 관련된 것으로 그녀의 이런 선택은 결국 국제정세를 뒤흔들 너무나 큰일이었지만 그녀는 단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힘은 또 다른 파국을 맞게 된다는 걸 알기에 힘의 균형을 위한 결정이라고 한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자신과 연구소가 만든 핵폭탄이 단순히 독일을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 죄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자각은 그녀로 하여금 조국을 배반하는 결심을 굳히게 한다.

물론 당시의 그녀는 자신이 조국을 배반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단지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훔친다기 보다 서로 공유한다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행한 것일 뿐 이후 벌어지는 사태의 진전에 대해서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들 닉과 MI5 요원들의 입장에선 나라 간 힘의 균형을 위해 실행했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그녀가 스파이를 했을 당시인 1930년대 후반과 2차 대전이 발발하던 때는 이러한 생각이 터무니없다기 보다 그럴 수도 있다는... 아니 독일의 나치즘이 한창일 때는 정치인들조차 러시아를 적국이 아닌 독일에 대항해 싸우는 우방국으로 여겨서 정보의 공유가 불법이 아니었다는 걸 감안하면 조앤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도 있을듯하다.

하나둘씩 드러나는 정보 앞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회상에 젖는 조앤은 과연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한 가운데 그녀에게 다가온 운명적 사랑의 결말과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서야 드러나는 진실이 안타까움과 함께 연민을 불러온다.

여자 스파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섹시하고 매력적인 팜 파탈이 아니라 사랑 앞에 흔들리고 이념보다 정의를 위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과감성에 누구도 여자인 그녀가 한 짓이라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허를 찌른 평범하면서도 똑똑했던 조앤의 이야기는 실제 KGB를 위해 가장 오랫동안 스파이로 활동했던 스파이 멜리타 노우드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매력적이고 스릴도 있으며 가독성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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