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쫓아오는 밤 (반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4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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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이라는 장르의 특징상 주인공들이 어디론가 마음대로 달아날 수 있고 외부에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긴장감이나 긴박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디에서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도망갈 길 없는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즉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민낯이 추악하면 할수록 비열하면 할수록 그들을 쫓으며 살육하는 존재와 결국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인 주인공은 더욱 돋보이기 마련이고... 결국 그런 모든 것에서 살아남아 탈출하는 것으로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공포물이 잘 되기 위해선 일단 외부와 고립되어야 하고 사람들을 쫓아와 해를 가하는 것의 정체가 사람들로부터 공포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폭풍이 쫓아오는 밤은 이런 모든 공식에 잘 맞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동생과 함께 원치 않는 가족 여행을 온 열일곱 살 소녀 이서는 산속 깊이 자리한 수련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서네 가족을 포함 3팀이 모인 수련원의 밤은 각자 술을 마시고 즐겁게 노느라 바쁜데 갑작스러운 정전과 함께 모든 통신이 두절되면서 뭔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아빠가 관리동에 간 사이 가족들이 머문 숙소에 뭔지 정체 모를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접근해왔고 그 괴물의 공격을 피해 달아났지만 이웃동은 피할 겨를이 없이 그 괴물에게 그대로 당하고 만다.

이제까지 봐왔던 그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은 그 괴물이 자신과 눈을 마주친 순간 이서는 그 괴물이 노리는 건 자신이라는 걸 직감한다.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수려원이라는 위치와 때아닌 폭풍이 몰려오면서 전기가 끊기고 통신이 두절되는 등 일종의 고립된 상태 즉 밀실 상태가 되면서 괴물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마련되었다.

여기에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성인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일찌감치 제거되었고 결국은 어린 이서와 또래의 남학생 수하 단둘이서 사라진 아빠를 찾고 어린 동생을 보호해야 할 보호자의 위치가 된다.

이서와 수하 역시 도망갈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괴물과의 대결을 선택한다.

이 들의 대결은 마치 사춘기를 넘어선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치르는 자신과의 싸움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마침 두 사람이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 역시 있었다.

이서에게는 자신의 잘못으로 눈앞에서 엄마를 잃었던 기억이 있고 수하 역시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자라 자신의 내부에도 그 사람과 같은 폭력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두려워해 좋아하던 축구마저 포기한 상태... 그런 두 사람의 깊은 죄의식을 자극하는 게 바로 죄를 지은 사람만 공격한다는 괴물이었다.

괴물은 괴물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두 사람 깊은 곳에 숨겨진 상처이자 트라우마의 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스피디한 전개와 빠른 장면전환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된 긴박감이 잘 어울린 작품이었다.

영상으로 보면 더 흥미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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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다운
피터 메이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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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간 전 세계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사로잡았던 팬데믹 상황

지긋지긋하지만 아직도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또 다른 변이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이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개중에는 발발 시점이나 장소가 불분명하다는 걸 들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나온 바이러스라는 말도 나오고 온갖 음모론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 책 락다운을 쓴 작가 역시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춘듯하다.

알고 보면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기 전에 이미 소설의 초안을 완성한 듯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하다는 이유로 어떤 출판사에서도 소설로 출간하기를 거절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요 몇 년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냈는지를 생각하면 당시 출판사의 판단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팬데믹의 진원지가 된 런던은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이라 마치 유령도시처럼 폐허 상태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환자를 임시보호할 병원을 짓는 현장에서 가방에 들어 있는 어린아이 유골이 발견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경찰청 근무를 그만두기로 한 맥닐 형사는 이제 근무 시간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수사를 맡게 된다.

그리고 맥닐의 연인이자 두개골 전문가인 에이미에 의해 유골 상태인 아이의 복원이 이뤄지고 그 작업으로 인해 죽은 아이가 중국계 여자아이이자 심한 구순구개열을 지닌 채 태어난 상태임이 밝혀진다.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엄청난 치명률로 죽어나가는 상황이라 동양 여자아이의 죽음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지만 맥닐은 모든 관심과 역량을 아이에게 쏟는다.

맥닐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할 시간을 얻기 위해 형사를 그만두지만 그 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손쓸 틈조차 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닐의 뒤를 누군가가 은밀하게 쫓는다.

그의 이름은 핑키라 불리는 킬러

그는 누군가의 명령으로 맥닐을 뒤를 쫓으며 그가 접촉하는 사람들 모두를 하나둘씩 처리해나간다.

그가 왜 그 사람들을 죽이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핑키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은 왜 그토록 죽은 아이의 정체가 드러나는 걸 막으려 했을까?

이야기의 모두 초점은 바로 거기에 달렸다.

그들이 그토록 숨기고자 하는 아이의 정체는 뭔지 왜 그 아이는 그런 죽음을 맞아야만 했는지...

하룻밤의 기한을 남겨두고 작은 단서를 쫓아 하나둘씩 단계를 거쳐 점점 더 실체에 다가가는 맥닐

그리고 그런 맥닐의 뒤를 따르면서 그가 만났고 접촉했던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며 쫓는 킬러

단 하나의 살인사건의 진실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 분명 여자아이의 죽음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비밀이 숨겨져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살인사건의 수사와 별개로 팬데믹이 발생한 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 사람들끼리 서로 접촉을 꺼리고 거리의 많은 상점은 약탈당한 채 폐허처럼 변하고 거리는 군인들에 의해 통제가 된 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없는 상황 등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장면들은 우리가 요 몇 년 동안 지켜봐온 상황과 비슷해서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맥닐이 단서를 쫓아 하나둘씩 진실을 향해 가면서 드러나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했던 그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맥닐이 너무 쉽게 그 실체에 다가가는 모습에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드러난 진실 역시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죽은 여자아이가 중국 출신이라는 점이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팬데믹 상황을 다른 점 때문에 엄청 관심을 두고 읽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느슨한 전개라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필할 만한 점이 부족하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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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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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모여사는 조용한 동네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여자들의 실종사건

단순하게 생각하면 일단 가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우선되고 그게 아니라면 배우자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

누군가가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면 연인이나 배우자를 조사한다는 이런 공식은 슬프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법칙과도 같다.

이 책 사라진 여자들에서도 그런 순서로 사건 수사가 진행되지만 아무런 증거 하나 없이 홀연히 사라진 세 명의 여자들 중 성인인 두 사람은 안타깝지만 죽은 채로 발견된다.

두 사건 중 첫 번째 사건은 출산을 한 아내를 두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고 또 다른 결정적 증거가 나와 아내 살인범으로 검거되어 실형을 받는 것으로 또 한 번 세간의 속설을 입증했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다.

우선 겉으로 보기엔 부부간의 관계도 좋고 메러디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해 한 명을 남겨두고 다른 한 명만 데리고 가출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건 수사가 진행될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최근 그녀에게는 말 못 할 고민거리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종결한다.

문제는 메러디스가 사라졌을 때 함께 사라진 아이 딜라일라의 흔적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서에 쓰인 글... 안전하지만 절대로 딸을 찾을 수 없을 거라 장담한 듯 쓴 글처럼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 어린 여자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죽은 것도 아니고 생사조차 모른 채 사라진 아이를 찾으며 기다리는 일만큼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는 일이 있을까

평범하지만 화목했던 조시의 가정은 한순간에 모든 것이 풍비박산 난 채 시간이 흘렀고 조시 역시 하루하루 무너져내리고 있을 즈음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마지않던 딸이 돌아왔다.

어둠을 뚫고 자신을 가둬둔 채 짐승처럼 양육했던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를 구한 딜라일라...

그녀의 귀환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었다.

폭우가 쏟아져 마을의 전기마저 끊긴 집이 발생할 만큼 어수선했던 그때 평범한 주부이자 출산도우미로 일하던 조시의 아내 메러디스가 딸 딜라일라를 데리고 사라지게 되기까지의 순서와 11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났지만 오랫동안의 학대로 인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딜라일라를 발견한 이후 사람들이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그 날밤 사건의 진상이 뒤집어지는 과정을 세심하면서도 치밀하게 그려놓은 사라진 여자들은 작가의 전작인 디 아더 미세스를 뛰어넘는 작품이었고 전작에 비해 훨씬 더 긴장감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일견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생활하던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맞으면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의 모습을 서늘하면서도 공포스럽게 그려낸 사라진 여자들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시선이 아닌 사건 당사자 혹은 사건 당사자의 곁에서 지켜본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다소 혼란스럽고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훨씬 더 드라마틱한 연출은 물론, 각자가 보는 시선 속에서 스쳐가듯 나오는 증언 중에 수많은 복선이 깔려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계산하고 세심하게 안배하지 않으면 자칫 지루할 수 있거나 아니면 어수선한 전개를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과감하게도 이런 실험적 모험을 했고 그 의도는 성공했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으로 그려서 훨씬 더 입체감 있었고 진상이 드러났을 때 느끼는 반전의 묘미가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복잡하고 다중적인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묘사 역시 탁월해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잘 짜인 스토리 몰입도 높은 전개 그리고 마지막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얼른 만나보고 싶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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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강지영 외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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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소설을 이끌어가는 다섯 명의 작가들이 모여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누아르처럼 풀어낸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는 좀 무거운 내용부터 범죄를 다루지만 경쾌함이 묻어나는 작품 혹은 어두운 범죄의 세계를 생각지도 못한 기발함으로 접근한 작품까지...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만큼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그래서 골라 먹는 재미만큼 골라 읽는 재미를 준다고 할지...

어쨌든 단편집의 재미를 제대로 살린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겉으로 표방하는 누아르의 세계에 가장 근접한 작품은 바로 작열통이 아닐까 싶다.

조폭들이 나오고 패싸움이 나오는 등 얼핏 봐선 표제작인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가 더 누아르 적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들여다보면 일반인인 주인공이 엉뚱하게도 조직폭력배와 어울리게 된 사연부터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패싸움에서 멀쩡히 살아남는 것도 그렇고 모든 요소에 유머 코드가 있다.

그리고 프리랜서라는...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직장인의 비애

이에 비해 작열통은 시작부터 다소 비장하기 그지없다.

일단 그 큰 버스를 땅에 묻고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제대로 된 답을 말하지 않으면 폭파시키겠다는 협박도 그렇고 모든 것이 철저히 계획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결국 그들이 원한 건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죄를 불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느꼈던 고통을 느껴보길 원한 걸까?

다섯 편의 작품 중 가장 현실적인 건 역시 중고차를 파는 여자라고 볼 수 있겠다.

중고차 매물 사진을 보고 전화를 해 그곳으로 가면 찾던 물건은 없고 대신에 원치도 않았단 물건을 생각지도 못한 금액으로 눈탱이를 맞고 구매하는... 현실에서도 가끔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 중고차 사기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고 기타 보험 범죄에 관한 일화는 충분히 현실적이어서 더 재밌었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해결하는 게 바로 중고차를 파는 여자라는 설정도 그렇고...

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불의를 못 참고 굳이 힘으로 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속 시원하게 내는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아직 독립하지 못한 형사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미숙함을 드러내는 주인공이 있고 그런 주인공을 도와주는 것처럼 접근해서 천천히 가스라이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거기에 요즘 문제시되고 있는 애완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이는 걸로 비뚤어진 만족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현실에서도 이런 관계 즉 주변으로부터 고립 시켜 결국 자신이 마음대로 교묘하게 조정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기분 나쁜 사람들과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자신만의 세계에 갖힌 사람들이 있는 데 거기에 빗댄 작품이 아닐까 싶다.

가장 특이하고 신선한 발상은 역시 네고시에이터 최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를 유괴한 범인과 경찰이 아니면서 피해자 가족과의 중재에 나서 서로 원하는 결과를 취하도록 하는 직업이 있다는 설정은 우선 신선할 뿐만 아니라 들여다보면 나름 실효성도 있는 것 같다.

유괴나 납치에 공권력이 끼어들면 반드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어느 한쪽이 큰 희생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고 그 대부분의 피해는 피해자가 입는다고 생각할 때 두 이해 당사자 사이에서 서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조정하고 조율하는 직업이 있다면...? 하는 설정은 황당한 듯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두 당사자들 사이에 감정적으로 얽혀있지 않아 가장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달지...

다섯 편의 단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매력이 있어 가독성이 좋았다.

무엇보다 누아르라고 해서 지나치게 무겁거나 장중하지 않다는 점도... 그래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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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운
문경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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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그게 아니라 해도 적어도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투자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월급이나 기타 노동 소득만으로는 쉽게 부자가 되거나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매번 유행처럼 투기자본이 몰리거나 그때그때 때에 맞춰 투자를 선도하는 종목이 나오는 데 그게 때론 주식이 되기도 하고 부동산이 되기도 하다 금이나 달러가 되었다 그림 같은 걸로 갈아탄다.

이 모든 게 하루라도 빨리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불러오는 현상인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다른 것보다 유독 부동산으로 울고 웃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인구수에 비해 좁은 땅덩어리를 가져 누구나 자신의 집을 자신의 땅을 소유하고픈 욕망 탓이 아닐까 싶은데 여기에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부동산은 불패한다는 믿음이 신화처럼 굳어져 돈이 생기면 누구라도 부동산을 맨 먼저 고려한다는 점도 한몫한다.

이 책 화이트 타운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땅 때문에 울고 웃고 땅을 가질 욕심 때문에 인간으로서 해선 한 될 짓까지 서슴없이 해치우는 사람들의 추악한 욕망의 말로를 그리고 있다.

일단 한 여자가 자신의 죽음으로 복수가 시작된다고 되뇌면서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곽중선

그리고 얼마 뒤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이 소식은 화약 관리사로 일하는 아들 종걸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별다른 감정의 표현도 내색도 않는 종걸

두 사람은 말로만 모자관계였을 뿐 그때까지 서로 왕래는커녕 연락조차 않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럼에도 모친이 남긴 아파트가 곧 재개발된다는 호재로 생각지도 못한 거액의 유산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작은 만족감을 느낄 뿐이던 종걸에게 국회의원인 강정혜가 찾아와 엄마의 죽음에 의심스러운 점이 없었는지를 묻는 질문을 하면서 찜찜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모친의 아파트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 즉 엄마와 연관이 있던 남자 임창현을 발견하면서 그의 이런 미심쩍음은 점점 강해지고 그 아파트에서 자영과 준호 남매를 만나면서 자신이 알던 엄마의 다른 모습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한다.

소설 속에서 가장 강렬한 욕망의 소유자이자 땅에 대한 집착이 컸던 인물 임창현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부동산의 변화에 있어 산증인 같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

전쟁 중에 고아가 되어 땅부자 집에 입양되었던 이력 때문인지 남달리 땅에 대한 욕심이 컸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이용해 돈이 될 땅을 선점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폭력으로 빼앗다시피해서 수많은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을 모았지만 그의 돈을 비롯해 모든 장부를 관리하던 종선의 죽음으로 자칫하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처지에 처한다.

어린 시절 고아로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삶을 살던 창현이 자신들의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거기에서 군림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 건 어찌 보면 이해 못 할 부분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에게 손가락 질을 받아 가면서까지 악착같게 돈을 모으는 창헌을 턱 끝으로 부리며 개처럼 다루는 권력자들은 비록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나오진 않았지만 개발 정보를 쉽게 얻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용도변경도 할 수 있으며 사람의 목숨을 쥘 수 있는 지위와 힘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아파트 주민을 비롯해 그와 마주친 힘없는 사람 위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사람들을 조정해 원하는 걸 얻었던 창현조차도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외려 그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역시 그저 힘없는 허수아비였을 뿐이라는 슬픈 자각과 함께...

어쩌면 작가는 우리가 매일 보는 이 현실이 누군가의 입맛이나 뜻에 따라 좌우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소득의 불평등 해소 혹은 부의 지나친 편중화를 줄이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걸 조장하고 이용해 자신의 부와 권력을 키우는데 이용하는 사람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또 다른 허수아비를 통해 치워버리고 자신의 손에는 한 톨의 먼지조차 남기려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지금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듯한 소설이라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았고 그래서 더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로 봐도 재밌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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