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르소설을 이끌어가는 다섯 명의 작가들이 모여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누아르처럼 풀어낸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는 좀 무거운 내용부터 범죄를 다루지만 경쾌함이 묻어나는 작품 혹은 어두운 범죄의 세계를 생각지도 못한 기발함으로 접근한 작품까지...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만큼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그래서 골라 먹는 재미만큼 골라 읽는 재미를 준다고 할지...
어쨌든 단편집의 재미를 제대로 살린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겉으로 표방하는 누아르의 세계에 가장 근접한 작품은 바로 작열통이 아닐까 싶다.
조폭들이 나오고 패싸움이 나오는 등 얼핏 봐선 표제작인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가 더 누아르 적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들여다보면 일반인인 주인공이 엉뚱하게도 조직폭력배와 어울리게 된 사연부터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패싸움에서 멀쩡히 살아남는 것도 그렇고 모든 요소에 유머 코드가 있다.
그리고 프리랜서라는...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직장인의 비애
이에 비해 작열통은 시작부터 다소 비장하기 그지없다.
일단 그 큰 버스를 땅에 묻고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제대로 된 답을 말하지 않으면 폭파시키겠다는 협박도 그렇고 모든 것이 철저히 계획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결국 그들이 원한 건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죄를 불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느꼈던 고통을 느껴보길 원한 걸까?
다섯 편의 작품 중 가장 현실적인 건 역시 중고차를 파는 여자라고 볼 수 있겠다.
중고차 매물 사진을 보고 전화를 해 그곳으로 가면 찾던 물건은 없고 대신에 원치도 않았단 물건을 생각지도 못한 금액으로 눈탱이를 맞고 구매하는... 현실에서도 가끔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 중고차 사기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고 기타 보험 범죄에 관한 일화는 충분히 현실적이어서 더 재밌었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해결하는 게 바로 중고차를 파는 여자라는 설정도 그렇고...
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불의를 못 참고 굳이 힘으로 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속 시원하게 내는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아직 독립하지 못한 형사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미숙함을 드러내는 주인공이 있고 그런 주인공을 도와주는 것처럼 접근해서 천천히 가스라이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거기에 요즘 문제시되고 있는 애완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이는 걸로 비뚤어진 만족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현실에서도 이런 관계 즉 주변으로부터 고립 시켜 결국 자신이 마음대로 교묘하게 조정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기분 나쁜 사람들과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자신만의 세계에 갖힌 사람들이 있는 데 거기에 빗댄 작품이 아닐까 싶다.
가장 특이하고 신선한 발상은 역시 네고시에이터 최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를 유괴한 범인과 경찰이 아니면서 피해자 가족과의 중재에 나서 서로 원하는 결과를 취하도록 하는 직업이 있다는 설정은 우선 신선할 뿐만 아니라 들여다보면 나름 실효성도 있는 것 같다.
유괴나 납치에 공권력이 끼어들면 반드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어느 한쪽이 큰 희생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고 그 대부분의 피해는 피해자가 입는다고 생각할 때 두 이해 당사자 사이에서 서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조정하고 조율하는 직업이 있다면...? 하는 설정은 황당한 듯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두 당사자들 사이에 감정적으로 얽혀있지 않아 가장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달지...
다섯 편의 단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매력이 있어 가독성이 좋았다.
무엇보다 누아르라고 해서 지나치게 무겁거나 장중하지 않다는 점도... 그래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