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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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가 밀리고 독촉 전화가 오고 처리할 각종 세금이나 공과금을 못 낼 정도의 힘든 상황이 올 때

보통의 사람들은 돈을 빌리려고 애쓰거나 지금 하는 일 말고 또 다른 일을 찾아 투잡을 한다거나 등등 나름의 수단을 찾는다.

하지만 쉽게 돈을 벌어본 경험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범죄자라면... 그 사람이 지금 아무리 개과천선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신을 속인다. 이번 딱 한 번만이라고...

이런 점이 범죄 전과자가 손을 씻기가 힘든 이유다. 다른 방법을 찾아 뼈를 깎는 노력을 하기보다 그저 한 번 만이라며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가까운 사람을 실망시키며 쉬운 방법을 찾는다.

이 책의 주인공 보러가드 역시 위기 상황에 처할 때까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는 평범한 가장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 잠깐 교도소에 다녀온 후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잘 살아오고 있는 듯했지만 그 역시 위기의 상황이 오자 어쩔 수 없는 전과자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밀린 집세와 각종 세금, 엄마의 밀린 병원비, 딸아이의 대학 입학금 등등 돈 들어갈 곳은 천진데 그의 정비소는 경쟁업체가 생긴 이후로 줄곧 내리막이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불법 자동차 경주에 나가기도 하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가진 돈을 잃는 경험을 하면서 굳었던 그의 결심도 무너진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예전에 잠깐 같이 일했던 동료가 찾아와 보석상 털이를 제안하자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러가드는 이번 한 번만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강도 짓을 벌일 보석상 주변을 미리 답사하고 도로 사정을 점검하는 등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계획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실수를 범한다.

첫 번째가 도주 경로며 도로 사정까지 살펴볼 정도로 모든 것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계획하는 그가 정작 가장 중요한 같이 할 동료에 대해 부주의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와 함께 보석상을 털 사람 중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예전 동료의 말만 믿고 함께 하기로 하는 모습은 부주의함을 넘어 어리석어서 이 계획의 끝을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그의 실수는 보석상에 있기엔 너무 많은 다이아몬드의 출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점이었다.

정상적인 경로라면 그 보석상이 감당할 수 없을 양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데 그는 그 부분 역시 그냥 넘어가 스스로를 덫에 걸리게 한다.

그리고 범행 당일 이런 복잡한 일을 감당할 수 없는 동료들은 실수를 연발하지만 보러가드만이 특유의 드라이버 실력으로 쫓아오는 경찰과 경찰차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다.

돈을 나누고 숨을 돌린 것도 잠시 그 들의 뒤를 쫓는 자가 나타난다.

그들의 뒤를 쫓는 사람들은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았고 덕분에 이제 보러가드는 그날의 결정으로 가족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보러가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 즉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그가 선택을 한 이후로의 진행은 쏜살같은 스피드를 보여준다.

특히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로를 질주하고 끊어진 다리를 엄청난 스피드로 넘어가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이 박진감이 느껴졌다.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삶이 아닌 제대로 배우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이었다는걸...

하지만 범행에 발을 담그면서 자신의 가족은 무사할 거라 믿는 그의 안일함이랄지 순진할 정도로 어리석음은 결국 누가 되었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된다.

자동차 엔진의 거친 음과 엄청난 속도의 차가 내뿜는 연기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거친 황무지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어쩌면 그가 원한 건 자신을 붙잡는 가족이나 의무 같은 속박 없이 어디든 마음껏 달리는 자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총격 신도 그렇고 추격신이며 경찰을 따돌리는 방법은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봐온 익숙한 장면들이었지만 그걸 글로써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며 스릴 있게 묘사된 걸 읽는 건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하는 것... 그게 작가의 필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작가 S.A 코스비가 왜 그렇게 많은 상을 수상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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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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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면 형사로 특정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버버리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채 입에는 담배를 물고 거침없이 총을 빼서 나쁜 놈을 쏘는...

한마디로 마초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그 모습이 어릴 때에는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설령 여자가 매춘부나 혹은 범인이라 할지라도 마구 거칠게 대하지 않고 숙녀처럼 대접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녀들을 대하는 대신 악당을 처단할 때는 거리낌 없이 총을 쏘고 주먹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아르물에 특화된 챈들러의 작품 속 형사나 탐정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하드 보일러 물이나 크라임 스릴러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챈들러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 살인의 예술은 그중에서도 흔히 보지 못했던 그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여기서는 5편의 단편을 모아놓았는데... 역시 탐정이 주인공이고 무대의 대부분은 호텔

그리고 어김없이 대화보다 총질을 많이 해댄다.

쇠락해가는 밤 풍경에 대한 묘사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묘사도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음악이 나오거나 묘사되지 않아도 왠지 재즈가 어울리는 밤에 대한 묘사는 마치 영화처럼 감각적이다.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모습과 이름은 달라도 그들 모두에게서는 어딘지 염세적이면서도 거친 남자의 냄새가 풍긴다.

챈들러의 소설은 이렇게 남자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의 소설 속 여자라는 존재의 의미는 남자들의 살인의 목적이나 도구로서 혹은 남성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할 뿐... 대부분 큰 역할이 아니다.

황금 옷을 입은 왕에서도 그랬다.

재즈 연주자로서는 최고지만 여자를 밝히고 아무렇게나 버리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주변에는 불나방처럼 여자들이 달려든다.

대부분은 그의 돈을 보고서지만 누군가는 그에게 마음을 줬다 상처를 입기도 한다.

호텔의 야간 경비로 일하는 남자는 그가 벌이는 소동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자릴 잃었고 재즈 연주자는 또 다른 여자의 집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마치 자살한 것처럼 혹은 그 집의 여자에게 당한 것처럼...

그리고 탐정은 그 여자의 말을 믿고 그녀의 의뢰를 받아 범인을 찾는다.

누구라도 그녀가 제일 의심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믿는다.

요즘의 시선에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챈들러의 소설에서는 가능하다.

3편 사라진 진주 목걸이에서는 약혼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사라진 노부인의 진주 목걸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5편 중 가장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약혼자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약혼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사건 해결의 과정이 다른 작품보다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챈들러의 작품은 살인의 방법이나 살해의 목적 같은 데 디테일하게 모든 초점을 맞춘 요즘의 작품과 달리 분위기로 몰아가고 복잡한 인물의 내면에 치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챈들러가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는 살인의 목적이나 이유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본능에 더 충실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복수를 위해 혹은 싸움을 하다 화가 나거나 수가 틀리면 대화보다 먼저 주목을 휘두르거나 총을 쏜다. 즉각적이다.

복잡한 과정의 생략은 군더더기 없는 작품으로 만들지만 독자의 시선에선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진달지...

짧은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누아르물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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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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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더니 아니나 다를까 엄청 취향 저격인 작품이었다.

더 신나는 것은 이게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점!!

게다가 좀처럼 흔하지 않은 여형사를 주인공으로 법정 스릴러라니...

사실 여자 형사나 탐정이 주인공인 작품은 몇 권 나왔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이라던가 캐릭터가 남자 형사나 탐정이 주인공인 작품보다 재미 면에서 나 스케일 면에서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재미도 그렇고 이야기의 짜임새 면에서도 그렇고 캐릭터까지 다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고 더군다나 이게 시리즈의 시작인데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음 편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준다.


숲에서 백골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골의 성별이 여자라는 게 밝혀지면서 모두가 한 사람을 떠올린다.

20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찾고자 했던 더 키드 라 불리던 소녀 세라

세라가 사라진 후 근처에 사는 성범죄 전과자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세라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마침내 사건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안도하지만 세라의 유일한 가족이 된 언니 트레이시는 끝이 아니라 이제서야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자신이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살았던 트레이시는 동생이 사라지고 용의자가 특정될 때부터 이 사건의 수사 방식이며 드러난 증거에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형사가 되었다.이 부분을 보면 그녀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의심되거나 미심쩍은 부분은 답을 알기까지 집요하게 달라붙어 진실을 알고야 마는 유형

사건 당시의 조사나 진술 내용을 비롯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정황들이 트레이시의 의심처럼 수상한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세라와 가장 가까웠던 언니 트레이시를 모든 것에서 배제한 것부터 세라가 사라진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나타난 목격자의 진술로 용의자였던 에드워드를 단숨에 검거하는 과정을 보면 마치 모든 것이 짜 맞춘듯한 느낌이 든다.

그녀가 왜 그토록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그런 소란을 피우고도 세라의 시신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도 그가 진짜 범인이 맞나 하는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단지 그가 성범죄 전력이 있어서 혹은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라서 모든 의심이 그에게 쏠렸던 건 아니었을까?

이번에 드러난 동생 세라의 사체를 증거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다시 수사를 하기 위해선 앞의 재판을 모두 부정해야 했고 이를 아는 사람들이자 당시 사건의 관계자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으면서 마을 전체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게다가 오랜 세월 그녀의 집안과 알고 지내며 돌아가신 아빠와 막역한 관계였던 마을의 보안관과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를 비롯해 언론까지 그녀가 왜 성범죄자를 풀어줄려고 하는지...부정적인 여론이 가득하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 마음속으로 품어왔던 동생 죽음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트레이시의 굳은 결심과 의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사건의 진행과정과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그녀가 느꼈을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왜 모두가 반대하는 이런 결정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초반부터 강렬한 몰입감을 보여주면서 시작하다 다소 늘어질 수 있는 중간 부분까지 거침없이 내달리며 엄청난 흡인력을 보여주는 내 동생의 무덤...

휘몰아치는 눈과 바람을 뚫고 마침내 진실을 찾아낸 트레이시의 활력이 종반부에서 거침없이 빛을 발한다.

가독성 끝내주고 몰입감도 좋았던... 무조건 후속편을 봐야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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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모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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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녀를 불구하고 상대방의 외모가 멋지고 빼어날수록 그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외모와 전혀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난 외모는 신뢰감마저 높게 평가할 때가 많다.

그래서 외모가 뛰어난 미남미녀는 사회생활하는 데 있어 그만큼 더 이점을 가지고 하게 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연봉도 더 높게 받는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내 배우자가 남들도 인정하는 멋진 외모를 가졌고 거기다 직업마저 선망하는 직업의 잘나가는 사람이라면 그의 호감도는 상당히 높을 것이고 그런 그 사람이 남들이 보는 데서 나에게 자상한 행동을 하고 사랑에 빠져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에 대한 신뢰도는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남편이 사실은 모두가 안 보이는 데서는 나를 학대할 뿐 아니라 목숨마저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나의 이런 말을 과연 얼마나 믿어줄까? 이런 의심에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다.

웬만한 영화배우보다 잘생긴 얼굴에 단 한 번도 재판에서 진 적 없는 변호사인 남편 잭... 심지어 남편은 매 맞는 아내들을 위해 배우자를 상대로 재판을 걸고 그런 아내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잭의 모습은 완벽한 위장에 불과하고 그런 사실을 결혼하기 전에는 깜쪽같이 몰랐던 그레이스는 신혼여행지인 태국에서 남편 없이 혼자서 밤을 보내고 마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잭을 보면서 그제야 이 결혼에 대해 의심이 생긴다.

사실 그는 밀리와 함께해야 하는 결혼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원하기까지 해서 그레이스를 감동시켰고 그녀로 하여금 이 결혼에 한치의 망설임이 없도록 했었다.

무엇보다 이제껏 사귀었던 남자들이 다 부담스러워했던 그레이스의 동생 밀리라는 존재를 생각한다면 잭이 왜 그레이스와 결혼했을까? 하는 뒤늦은 궁금증이 생긴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살인이 나오거나 잔인한 사건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커리어가 있고 당당히 자립해 살아가던 한 여성이 어떻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고 의지를 상실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로 하여금 잭이 가진 광기와 그걸 깨달은 그레이스의 두려움을 서늘하게 표현한 심리 스릴러이다.

탁월한 전략가이자 사람의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잭이 그레이스 스스로 자신의 직장을 관두고 전업주부로서의 길을 선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완벽하게 잭의 포로가 되도록 하는데 그 과정을 보면 누구라도 그의 매력적인 제안에 흔들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잭의 계획은 완벽했고 그래서 더욱 그가 교묘하게 친 거미줄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었던 완벽한 그루밍의 과정이었다.

이렇게 겉으로는 완벽한 남편의 모습, 완벽한 부부의 모습을 가장하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여자의 직업을 스스로 그만두게 해 운신의 폭을 좁히고 집안을 요새처럼 꾸며 마치 보안에 신경 쓴 듯 보이지만 탈출을 방지하고 심지어는 먹을 것으로도 사람을 조정하는 등... 잭은 냉혹한 사육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도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공포에 젖은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그레이스의 불안하고 절박한 심리묘사가 탁월했고 사이코패스인 잭이 노리고 있던 하나뿐인 동생이자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밀리를 잭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그레이스의 치열한 투쟁을 그리고 있는 `비하인드 도어`

생각보다 그레이스의 반격이 치밀하지 않았던 게 좀 아쉽지만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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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
유디트 타슐러 지음, 홍순란 옮김, 임홍배 감수 / 창심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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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볼 때 오랜 시간 사귄 연인은 단순히 커플이라고 보기보다는 거의 부부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 세월이 10년을 넘어가면 그들이 결혼을 했다 안 했다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장기 연애하는 커플 중 결혼으로 가는 커플보다 깨지고 각자 다른 이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걸 보고 결혼할 인연은 따로 있다 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렇게 서로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지냈던 커플이 깨져서 각자가 다른 사람과 새로운 연을 맺었다면 안타깝긴 해도 그들의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새로운 연인과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났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남게 되는 경우가 있을 때 그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그 남은 사람이 떠난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미련이 남아있을 경우는 그야말로 최악이 아닐까 싶다.

이 책 국어교사의 여주인공인 마틸다가 그런 케이스였다.

16년을 사귀었고 그중 대부분을 함께 살았던 남자가 성공하자 그녀의 곁을 떠나버린다.

그것도 그녀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가 없는 틈에 사라져버리는 최악의 이별 방법으로 그녀에게 두 번의 상처를 준 채...

그러고는 오랜 세월이 흘러서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뻔뻔하게도 그녀에게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말하는 남자

그 남자는 작가로 성공했고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마틸다가 그토록 원했지만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던 아이까지 낳고 잘 살면서 그 모습을 TV 나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그래놓고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녀 앞에 나타나 지난 일은 잊자는 남자를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워크숍을 작가들과 매칭해서 직접 작가에게 듣는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이자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줬던 크사버가 연락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일의 내용을 통해 크사버가 마틸다에게 한 짓이 드러났을 뿐 아니라 그녀가 그에게 원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녀가 그에게 원망만 품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와의 대화를 반기는 기색마저 보여 그녀가 아직도 그에게 미련이 있음을 짐작케한다.

게다가 오래전 그들이 서로 연인일 때 그녀가 크사버의 작업을 도왔을 때처럼 서로에게 하나씩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 같은 방식이라는 다소 낯선 방식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내용은 독자를 헷갈리게 하기 충분하다.

우선 크사버는 오래전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났지만 고향에서 고통받는 가족을 외면하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을 책임을 다하면서 살았던 조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자신은 단 한 번도 웃어본 적 없어 말년에 후회하다 끝내 미국으로 갔던 조부의 이야기를 통해 크사버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은 뭘까?

마틸다 역시 이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아이를 몰래 데려와 그 아이를 감금한 채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말을 가르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만 볼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섬뜩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라 보기엔 어딘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섞여 있었다.

현재와 헤어졌을 당시의 과거 시점은 물론이고 서로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느꼈던 감정 그리고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시점이 섞이고 이야기와 현실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헷갈리게 해놓은 상태에 충격적인 진실이 섞이면서 과연 이 해괴하고 섬뜩한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 끔찍하게 느껴진다.

정말 버림받았던 전 연인을 향한 끔찍한 복수극일까?

아니면 아직도 잊지 못한 그녀의 미련일까?

단순하게 누구를 향한 처절한 복수극이라고 보기엔 너무 심오해 난 이 작품의 장르를 스릴러가 아닌 한 여자의 뜨거운 로맨스로 보고 싶다.

한순간의 선택과 우유부단한 결정이 빚어낸 비극을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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