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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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면 형사로 특정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버버리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채 입에는 담배를 물고 거침없이 총을 빼서 나쁜 놈을 쏘는...

한마디로 마초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그 모습이 어릴 때에는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설령 여자가 매춘부나 혹은 범인이라 할지라도 마구 거칠게 대하지 않고 숙녀처럼 대접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녀들을 대하는 대신 악당을 처단할 때는 거리낌 없이 총을 쏘고 주먹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아르물에 특화된 챈들러의 작품 속 형사나 탐정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하드 보일러 물이나 크라임 스릴러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챈들러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 살인의 예술은 그중에서도 흔히 보지 못했던 그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여기서는 5편의 단편을 모아놓았는데... 역시 탐정이 주인공이고 무대의 대부분은 호텔

그리고 어김없이 대화보다 총질을 많이 해댄다.

쇠락해가는 밤 풍경에 대한 묘사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묘사도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음악이 나오거나 묘사되지 않아도 왠지 재즈가 어울리는 밤에 대한 묘사는 마치 영화처럼 감각적이다.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모습과 이름은 달라도 그들 모두에게서는 어딘지 염세적이면서도 거친 남자의 냄새가 풍긴다.

챈들러의 소설은 이렇게 남자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의 소설 속 여자라는 존재의 의미는 남자들의 살인의 목적이나 도구로서 혹은 남성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할 뿐... 대부분 큰 역할이 아니다.

황금 옷을 입은 왕에서도 그랬다.

재즈 연주자로서는 최고지만 여자를 밝히고 아무렇게나 버리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주변에는 불나방처럼 여자들이 달려든다.

대부분은 그의 돈을 보고서지만 누군가는 그에게 마음을 줬다 상처를 입기도 한다.

호텔의 야간 경비로 일하는 남자는 그가 벌이는 소동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자릴 잃었고 재즈 연주자는 또 다른 여자의 집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마치 자살한 것처럼 혹은 그 집의 여자에게 당한 것처럼...

그리고 탐정은 그 여자의 말을 믿고 그녀의 의뢰를 받아 범인을 찾는다.

누구라도 그녀가 제일 의심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믿는다.

요즘의 시선에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챈들러의 소설에서는 가능하다.

3편 사라진 진주 목걸이에서는 약혼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사라진 노부인의 진주 목걸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5편 중 가장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약혼자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약혼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사건 해결의 과정이 다른 작품보다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챈들러의 작품은 살인의 방법이나 살해의 목적 같은 데 디테일하게 모든 초점을 맞춘 요즘의 작품과 달리 분위기로 몰아가고 복잡한 인물의 내면에 치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챈들러가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는 살인의 목적이나 이유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본능에 더 충실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복수를 위해 혹은 싸움을 하다 화가 나거나 수가 틀리면 대화보다 먼저 주목을 휘두르거나 총을 쏜다. 즉각적이다.

복잡한 과정의 생략은 군더더기 없는 작품으로 만들지만 독자의 시선에선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진달지...

짧은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누아르물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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