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했던 작가 중에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과작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특이한 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려 사진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는 걸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좀머 씨 이야기가 자전적 소설이라고들 하는 데... 작가 중에는 그렇게 대중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리는 은둔형인 사람이 제법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헬레나 로스라는 유명 작가 역시 그런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극도로 예민하고 모든 것에 절대적인 규칙이 있어 그게 깨지는 걸 못 참야 하는 신경질적인 사람

머릿속에는 자신이 쓴 글의 다음 챕터로 가득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

그럼에도 나오는 작품마다 대중의 인기를 끌어 돈은 흘러넘치도록 많지만 주변에 마음을 터놓고 친밀하게 여기는 친구조차 없는 외톨이...

소설 속의 로맨스 대작가인 헬레나 로스가 바로 그런 여자였고 이제 그녀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소설을 집필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번에 마지막으로 집필할 그녀의 소설은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남편, 완벽한 아내, 그리고 완벽한 가족의 새빨간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이자 죽음을 앞둔 그녀가 반드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글이었다.

사실 그녀는 말기 암으로 인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헬레나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소설을 대신해서 계약하고 마케팅도 담당해 주는 대리인인 케이트에게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몸 상태로는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대리 집필해 줄 작가를 꼭 집어 말한다.

그녀가 원하는 대리 작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작가였다.

누구나 알고 있고 지금 제일 잘나가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자 헬레나와는 서로 이메일로 작품에 대해 혹평을 주고받는 작가에게 자신의 대리 집필을 맡기고자 하는 헬레나의 의도대로 상대방에서도 그녀의 요구에 응답해오고 그 사람이 헬레나의 집을 방문한 날 그 사람을 맞은 건 모든 것이 텅 빈 듯한 집이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커다랗고 공허한... 크기만 큰 집은 어쩌면 헬레나의 상태를 암시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유명 작가가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써왔던 허구의 소설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대리 작가를 구하고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 즉... 자신과 자신의 남편이었던 사이먼과의 거짓말에 관한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리 집필 작가는 몰랐지만 그녀는 남편 사이먼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걸 밝히고 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된 건지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들려주지 않는다.

대부분 이 부분에서 사이먼에게 또 다른 누군가가 생긴 경우 즉 배우자의 부정으로 인한 배신감으로 그 사람을 살해했고 남은 배우자가 그 진실을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소설이 가독성 있게 쓰인 것과는 별개는 소재로는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스릴러 소설로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의 종반까지 가면서도 계속 소설의 집필에 관해 서로 다른 입장 차를 보였던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쓰여있다는 점도 이 책이 여느 스릴러 소설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별다른 사건이나 사이먼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부분만 제외하면 의미 있는 듯한 복선도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가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가 하면 의외로 두 사람의 케미가 상당히 좋아서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진실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며 이제까지 조금씩 긴장감을 높여오던 걸 끝에 가서 확 터트리는 작가의 작전은 성공한 듯하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듯하면서도 곳곳에 보이는 헬레나의 과도한 듯한 예민함과 상대를 가리지 않는 무례함은 조금씩 긴장감을 높이게 하고 딸아이를 상대로 보였던 그녀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그녀의 남편 살해조차 뭔가 수상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휘몰아치는 듯한 마지막이 전체의 잔잔함과 대조되어 더 강한 인상으로 남을 책...단지 제목은 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락 에브리 도어 - 꿈꾸던 문 너머, 충격적인 욕망을 마주하다
라일리 세이거 지음, 오세영 옮김 / 혜지원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댈 곳 없고 당장 손에 쥔 게 없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잠자리와 먹을거리가 아닐까

사람이 일단 쉴 곳이 있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던지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데 오늘 당장 잠잘 곳이 없다던가 혹은 밥 한 끼 사 먹을 돈도 없다면 얼마나 암담하고 힘들지 상상하기도 싫다.

전 세계가 팬데믹 이후 자영업자들이 쓰러지고 일자릴 잃은 사람이 넘쳐났던 것도 잠시 각국에서 돈을 풀어 그런 사정을 해결하고 난 이후에는 이제 천정부지로 솟은 인플레로 인한 금리 인상으로 또다시 주변에서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럴 때 가장 힘든 건 역시 가진 것 없는 빈곤층과 모아놓은 자산이 적은 젊은 청년층들이 아닐까 싶다.

이 책 락 에브리 도어에 나오는 주인공 줄스가 처한 상황 역시 그렇다.

직장에서 해고되어 돌아온 그녀를 맞은 건 같이 사는 연인의 바람피는 현장... 더 이상같이 살수 없게 된 집에서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그냥 지내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준다는...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조건에 혹해서 스스로 구덩이로 걸어들어가 고난을 겪은 케이스랄까

게다가 줄스가 간 곳은 오래전부터 동경해오던 곳이자 누구나 알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인 바솔로뮤... 그 굉장한 곳에 단지 석 달만 빈 집을 지켜준다면 만 이천 달러라는 쉽게 손에 쥘 수 없는 거금을 가질 수 있다니 친구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행운으로 여긴 게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누가 봐도 너무 좋은 조건은 일단 한번 의심을 해봐야 하는 게 상식적이지만 줄스가 처한 상황이 그녀의 눈을 가렸고 그곳에서 제시한 엉뚱한 조건.. 즉 방문객 금지, 밤에 아파트 밖에서 지내는 것 역시 금지하는 규칙에도 의심은커녕 다른 누가 일자릴 차지할까 걱정을 했을 정도다.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잠시... 바솔로뮤에서 자신과 같은 아파트 시터를 하고 있는 인그리드를 만나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바솔로뮤는 무서운 곳이라고...

그녀에게 경고해주던 인그리드가 하룻밤 새 깜쪽같이 사라져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더욱 이상한 건 그녀가 사라지기 전 줄스는 그녀의 비명소리를 들었었고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 인그리드가 보인 이상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행적을 궁금해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줄스만 사라진 그녀의 행방을 찾을 뿐...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만 사는 비밀스럽고 프라이빗 한 아파트 바솔로뮤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락 에브리 도어는 뒤로 갈수록 속력이 붙고 긴장감 역시 점점 더 커져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처음의 다소 느긋했던 진행은 거짓말처럼 속도가 붙기 시작하고 하나둘씩 줄스의 추적으로 인해 그 곳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싶을 즈음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많은 제약과 규칙이 있어도 위험하거나 수상하다 싶으면 걸어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아 크게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런 반응을 기다린 것처럼 연이어 터지는 폭탄 같은 장치에 놀랄 틈도 없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으로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휘몰아치는듯한 후반부가 전체의 분위기를 단숨에 상쇄시키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풍이 쫓아오는 밤 (반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4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포물이라는 장르의 특징상 주인공들이 어디론가 마음대로 달아날 수 있고 외부에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긴장감이나 긴박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디에서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도망갈 길 없는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즉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민낯이 추악하면 할수록 비열하면 할수록 그들을 쫓으며 살육하는 존재와 결국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인 주인공은 더욱 돋보이기 마련이고... 결국 그런 모든 것에서 살아남아 탈출하는 것으로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공포물이 잘 되기 위해선 일단 외부와 고립되어야 하고 사람들을 쫓아와 해를 가하는 것의 정체가 사람들로부터 공포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폭풍이 쫓아오는 밤은 이런 모든 공식에 잘 맞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동생과 함께 원치 않는 가족 여행을 온 열일곱 살 소녀 이서는 산속 깊이 자리한 수련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서네 가족을 포함 3팀이 모인 수련원의 밤은 각자 술을 마시고 즐겁게 노느라 바쁜데 갑작스러운 정전과 함께 모든 통신이 두절되면서 뭔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아빠가 관리동에 간 사이 가족들이 머문 숙소에 뭔지 정체 모를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접근해왔고 그 괴물의 공격을 피해 달아났지만 이웃동은 피할 겨를이 없이 그 괴물에게 그대로 당하고 만다.

이제까지 봐왔던 그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은 그 괴물이 자신과 눈을 마주친 순간 이서는 그 괴물이 노리는 건 자신이라는 걸 직감한다.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수려원이라는 위치와 때아닌 폭풍이 몰려오면서 전기가 끊기고 통신이 두절되는 등 일종의 고립된 상태 즉 밀실 상태가 되면서 괴물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마련되었다.

여기에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성인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일찌감치 제거되었고 결국은 어린 이서와 또래의 남학생 수하 단둘이서 사라진 아빠를 찾고 어린 동생을 보호해야 할 보호자의 위치가 된다.

이서와 수하 역시 도망갈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괴물과의 대결을 선택한다.

이 들의 대결은 마치 사춘기를 넘어선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치르는 자신과의 싸움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마침 두 사람이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 역시 있었다.

이서에게는 자신의 잘못으로 눈앞에서 엄마를 잃었던 기억이 있고 수하 역시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자라 자신의 내부에도 그 사람과 같은 폭력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두려워해 좋아하던 축구마저 포기한 상태... 그런 두 사람의 깊은 죄의식을 자극하는 게 바로 죄를 지은 사람만 공격한다는 괴물이었다.

괴물은 괴물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두 사람 깊은 곳에 숨겨진 상처이자 트라우마의 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스피디한 전개와 빠른 장면전환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된 긴박감이 잘 어울린 작품이었다.

영상으로 보면 더 흥미로울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락다운
피터 메이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 몇 년간 전 세계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사로잡았던 팬데믹 상황

지긋지긋하지만 아직도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또 다른 변이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이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개중에는 발발 시점이나 장소가 불분명하다는 걸 들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나온 바이러스라는 말도 나오고 온갖 음모론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 책 락다운을 쓴 작가 역시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춘듯하다.

알고 보면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기 전에 이미 소설의 초안을 완성한 듯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하다는 이유로 어떤 출판사에서도 소설로 출간하기를 거절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요 몇 년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냈는지를 생각하면 당시 출판사의 판단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팬데믹의 진원지가 된 런던은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이라 마치 유령도시처럼 폐허 상태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환자를 임시보호할 병원을 짓는 현장에서 가방에 들어 있는 어린아이 유골이 발견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경찰청 근무를 그만두기로 한 맥닐 형사는 이제 근무 시간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수사를 맡게 된다.

그리고 맥닐의 연인이자 두개골 전문가인 에이미에 의해 유골 상태인 아이의 복원이 이뤄지고 그 작업으로 인해 죽은 아이가 중국계 여자아이이자 심한 구순구개열을 지닌 채 태어난 상태임이 밝혀진다.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엄청난 치명률로 죽어나가는 상황이라 동양 여자아이의 죽음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지만 맥닐은 모든 관심과 역량을 아이에게 쏟는다.

맥닐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할 시간을 얻기 위해 형사를 그만두지만 그 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손쓸 틈조차 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닐의 뒤를 누군가가 은밀하게 쫓는다.

그의 이름은 핑키라 불리는 킬러

그는 누군가의 명령으로 맥닐을 뒤를 쫓으며 그가 접촉하는 사람들 모두를 하나둘씩 처리해나간다.

그가 왜 그 사람들을 죽이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핑키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은 왜 그토록 죽은 아이의 정체가 드러나는 걸 막으려 했을까?

이야기의 모두 초점은 바로 거기에 달렸다.

그들이 그토록 숨기고자 하는 아이의 정체는 뭔지 왜 그 아이는 그런 죽음을 맞아야만 했는지...

하룻밤의 기한을 남겨두고 작은 단서를 쫓아 하나둘씩 단계를 거쳐 점점 더 실체에 다가가는 맥닐

그리고 그런 맥닐의 뒤를 따르면서 그가 만났고 접촉했던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며 쫓는 킬러

단 하나의 살인사건의 진실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 분명 여자아이의 죽음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비밀이 숨겨져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살인사건의 수사와 별개로 팬데믹이 발생한 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 사람들끼리 서로 접촉을 꺼리고 거리의 많은 상점은 약탈당한 채 폐허처럼 변하고 거리는 군인들에 의해 통제가 된 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없는 상황 등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장면들은 우리가 요 몇 년 동안 지켜봐온 상황과 비슷해서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맥닐이 단서를 쫓아 하나둘씩 진실을 향해 가면서 드러나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했던 그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맥닐이 너무 쉽게 그 실체에 다가가는 모습에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드러난 진실 역시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죽은 여자아이가 중국 출신이라는 점이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팬데믹 상황을 다른 점 때문에 엄청 관심을 두고 읽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느슨한 전개라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필할 만한 점이 부족하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산층이 모여사는 조용한 동네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여자들의 실종사건

단순하게 생각하면 일단 가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우선되고 그게 아니라면 배우자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

누군가가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면 연인이나 배우자를 조사한다는 이런 공식은 슬프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법칙과도 같다.

이 책 사라진 여자들에서도 그런 순서로 사건 수사가 진행되지만 아무런 증거 하나 없이 홀연히 사라진 세 명의 여자들 중 성인인 두 사람은 안타깝지만 죽은 채로 발견된다.

두 사건 중 첫 번째 사건은 출산을 한 아내를 두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고 또 다른 결정적 증거가 나와 아내 살인범으로 검거되어 실형을 받는 것으로 또 한 번 세간의 속설을 입증했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다.

우선 겉으로 보기엔 부부간의 관계도 좋고 메러디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해 한 명을 남겨두고 다른 한 명만 데리고 가출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건 수사가 진행될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최근 그녀에게는 말 못 할 고민거리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종결한다.

문제는 메러디스가 사라졌을 때 함께 사라진 아이 딜라일라의 흔적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서에 쓰인 글... 안전하지만 절대로 딸을 찾을 수 없을 거라 장담한 듯 쓴 글처럼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 어린 여자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죽은 것도 아니고 생사조차 모른 채 사라진 아이를 찾으며 기다리는 일만큼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는 일이 있을까

평범하지만 화목했던 조시의 가정은 한순간에 모든 것이 풍비박산 난 채 시간이 흘렀고 조시 역시 하루하루 무너져내리고 있을 즈음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마지않던 딸이 돌아왔다.

어둠을 뚫고 자신을 가둬둔 채 짐승처럼 양육했던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를 구한 딜라일라...

그녀의 귀환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었다.

폭우가 쏟아져 마을의 전기마저 끊긴 집이 발생할 만큼 어수선했던 그때 평범한 주부이자 출산도우미로 일하던 조시의 아내 메러디스가 딸 딜라일라를 데리고 사라지게 되기까지의 순서와 11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났지만 오랫동안의 학대로 인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딜라일라를 발견한 이후 사람들이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그 날밤 사건의 진상이 뒤집어지는 과정을 세심하면서도 치밀하게 그려놓은 사라진 여자들은 작가의 전작인 디 아더 미세스를 뛰어넘는 작품이었고 전작에 비해 훨씬 더 긴장감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일견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생활하던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맞으면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의 모습을 서늘하면서도 공포스럽게 그려낸 사라진 여자들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시선이 아닌 사건 당사자 혹은 사건 당사자의 곁에서 지켜본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다소 혼란스럽고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훨씬 더 드라마틱한 연출은 물론, 각자가 보는 시선 속에서 스쳐가듯 나오는 증언 중에 수많은 복선이 깔려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계산하고 세심하게 안배하지 않으면 자칫 지루할 수 있거나 아니면 어수선한 전개를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과감하게도 이런 실험적 모험을 했고 그 의도는 성공했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으로 그려서 훨씬 더 입체감 있었고 진상이 드러났을 때 느끼는 반전의 묘미가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복잡하고 다중적인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묘사 역시 탁월해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잘 짜인 스토리 몰입도 높은 전개 그리고 마지막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얼른 만나보고 싶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