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항설백물어 - 하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9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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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항설백물어는 우리가 어렸을 때 무서워하면서도 숨죽여 보던 전설의 고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분명 누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믿기 힘든... 도저히 사람의 소행이라 할 수 없는 일들이 보란 듯이 발생하면 사람 이외의 그 무엇 즉 초자연적인 것의 소행이라고 치부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위로를 삼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다를 바 없다.

이 책 항설백물어에서의 사건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도저히 사람의 소행이라 볼 수 없는 이상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사람의 소행이 아니니 피해자는 있어도 범인을 속출해내기 쉽지 않다.

멀쩡한 여염집 아가씨가 어느 날 갑자기 백주대낮에 사라졌다 아이를 안고 나타났는데 아가씨를 끌고 간 것이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괴담 속 주인공인 산 사내라면 그는 요괴일까 사람일까

어릴 적 기억으로 자신의 아비가 한 여자로부터 자신을 받아들었고 그 여자는 빛나는 백로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서 날아갔다면 그 아이는 사람의 자식일까 아님 소문처럼 마물의 자식인 걸까

이렇게 얼핏 들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거기다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 일본의 개화시기와 맞물려 옛것의 가치와 관습이 변해가는 즈음이란 것도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습을 타파하고 오래된 것을 저어하는 시기지만 사람들의 인식이나 습관 같은 게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힘든 법

그래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면 예전처럼 요괴의 짓이나 요물 혹은 그 무엇의 소행이라 하고 싶어도 개화된 선진 시민이 그런 미신을 믿을 수는 없기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런 때 기담과 괴담을 좋아하던 4인방 중 한 사람인 겐노신이 마침 순사여서 사건을 보다 소상히 알 수 있었고 나름대로 4명 모두 괴담에 대한 지식도 있고 그중에 외국물을 먹은 이도 있어 이들 4인방에게 이런 사건은 구미를 돋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들에겐 젊을 적부터 온갖 기이한 이야기들을 들고 경험한 일당백의 잇바쿠옹 즉 모모스케도 있으니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자 그 누가 있으랴

겐노신이 도저히 사람의 소행이 아닌 것 같은 수상한 사건을 들고 오면 4인방은 각자의 지식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괴담을 찾어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다 벽에 부딪히면 만물박사 같은 모모스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고 그러면 모모스케는 예전에 자신이 겪었거나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두 사건 간의 공통점을 찾아 현재의 사건 해결에 도움을 받아 진상을 밝혀낸다는 식으로 되어있다.

이 앞의 이야기들이 좀 더 무겁고 어두웠다면 이번 편에선 역시 귀신이나 요괴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걸 깨닫게 해주지만 전편보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사건 해결을 보여주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개화의 속도에 맞춰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한 까닭이 아닐까 짐작한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 발생해도 초자연적이거나 요괴의 소행으로 미루기보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에서도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모든 사건의 바탕에는 인간의 욕심과 질투, 악의가 깃들여져 있었고 거기에 괴담이나 요괴는 그들이 자신을 숨기고 누군가를 속이는 데 필요한 장치였을 뿐... 시대가 변해가며 점점 인간 아닌 것들이 설자리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

역시 이런 이야기는 뜨뜻한 방에 누워 마치 옛날이야기를 읽듯 읽는 재미가 제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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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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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살면서 늘 누군가를 만났다 헤어진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거나 혹은 변화의 계기가 되는 사람을 우리는 인연이라 하는 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은 동물이라 그런 인연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이 책 다시, 만나다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처음 제목을 보고 당연하게도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난 거라고 예상했는데 처음 이야기부터 내 예상을 깨면서 시작한다.
그림을 좋아해서 엉겁결에 일러스트의 세계로 들어와 별다른 막힘없이 커리어를 쌓아가던 나는 타인들은 몰라도 내 그림에 그들이 말하는 깊은 의미나 철학 같은 게 없는 그저 텅 빈 그림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런 괴리의 차가 벽에 부딪쳤을 때 만난 잡지의 편집자의 말과 그가 내 그림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용기를 얻어 원래 원했던 꿈을 찾아 파리로 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오랜만에 만났던 그 편집자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있었고  글과 그림을 대하던 진지한 자세에서 어느새 다른 사람들처럼 바쁜 업무의 하나로 대하는 그를 보면서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의 인연은 내가 원했던 꿈을 실현하는 작은 전시회에 초대하면서 또다시 이어지는데 그는 처음의 모습과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고 서로에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시 헤어진다.
이 첫 번째 단편 다시,만나다를 보면서 그와 처음 편집자로 만났을 때 그녀가 느꼈던 호감이 발전해 연인으로 가리라 예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는 이미 유부남이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의외였고 두 번째 의외는 그들이 몇 년 후 다시 만났을 때 이번엔 진짜 무슨 연애 감정이 싹트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은 서로의 꿈을 빌어주는 그야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의 인연으로 끝맺는 걸 보면서 아... 내가 너무 속물적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성간이든 누구든 나와 말이 통하고 조금씩 변화해가는 걸 긍정적으로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일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인연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백화점 식품부에서 사온 음식이 표시되어있던 재료가 아닌 다른 재료였음을 알고 어찌 된 일인지 연유를 묻던 여자가 어떤 대우를 받게 되고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흥미롭게 그려낸 순무와 샐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는 일상에서 한 번쯤 경험해본 이야기라 더 흥미로운데 그런 그녀가 백화점에 가기 전에 잠시 스쳐갔던 한 남자가 대낮의 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여 인명을 사상한 사람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면서 그녀가 느꼈을 안도감이 제대로 느껴졌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 보내는 하루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면서 그녀는 다시 예전처럼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정성껏 밥상을 차리리라 결심하게 된다는 이야기
따로인듯한 세 남녀의 이야기가 왠지 환생의 이야기인 듯 서로 이어진 느낌이 강해서 묘하게 매력적이었던 꼬리등
그리고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매듭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본 이야기라 더욱 공감이 갔다.
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로 반 전체를 실망하게 했던 경험이 있는 여자는 클수록 그게 가슴속에 남아있어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드디어 졸업한 지 몇 년이나 흘러 성인이 되어 그때의 반 친구들을 만나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매듭
사실 매듭은 누구나 다들 경험해본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했던 진실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들여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이면이 드러날 때가 많은데 가만 생각하면 이런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원래가 상대방의 입장보다 내 입장이 우선일 수밖에 없고 모든 걸 내 관점에서 생각하다 보니 이런 차이가 생기고 거기서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데 매듭에서 그랬다.
오랫동안 자신을 옭아매던 매듭이 마침내 뚝 끊어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 출발할 수 있게 된 그녀가 느꼈던 해방감이랄까 시원한 마음이 저절로 느껴졌다.
이렇게 살면서 인연이든 혹은 과거의 어떤 년이든 사람은 늘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동안 그 만남이 좋은 쪽이 될 수도 있고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걸 늘 자각하며 살 수는 없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어찌 될지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은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특유의 필체로 무겁지 않게 그려낸 사람들 간의 인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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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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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라고 하니 느낌상 발음상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가만 보면 우리의 전설의 고향류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오고  향토 문헌 같은 데에서도 짧게 언급되기도 한 다소 이상하거나 괴이한 사건을 모아놓은 기이한 이야기집이랄까
기담류나 괴담 같은 걸 소재로 현재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과 연결해 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있을 수 있는 일인지를 요즘 말로 하면 좀 한량 같은 남자들이 서로 정보를 모아서 의견을 나눠보고 문제를 풀어보다 결국엔 좀 더 경험 많고 이런 쪽으로 더 선배인 자칭 잇바쿠 옹이라는 노인에게 자문을 구하면 그가 오래전 자신이 경험했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식의 전개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이어서 더 할아버지로부터 듣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이 강하다.
때는 바야흐로 메이지 유신이 있고 일본이 개화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때라 직업의 변화가 있었고 번이니 가신이니 하는 체제가 사라졌지만 아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은 신구가 뒤섞인 시기
그래서일까 신기하거나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맨 먼저 저주나 원한, 지벌이라는 비과학적이면서 토속적인 신앙 같은 것에 많이 기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자신들은 신식이고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요지로, 겐노신, 소베, 쇼마 일행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를 흥미 삼아 재미 삼아 모아서 그 기담의 뿌리를 연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을 뿐 아니라 서로 간에 누가 제대로 그 출처를 찾아서 근거를 제시하는지 경쟁하고 있는 관계다.
여기엔 3편의 기이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우리에게도 도깨비불이라 불리는 신기한 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하늘 불과 집안의 길흉과 관계있다고 여겨지는 뱀의 상서로운 기운을 담은 상처 입은 뱀 그리고 섬에 모시고 있는 에비스 상의 얼굴이 붉어지면 섬이 멸한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붉은 가오리가 있는데 개인적으론 가장 섬뜩하고 기괴하게 느껴진 건 역시 붉은 가오리였다.
하늘 불과 상처 입은 뱀은 우리에게도 다소 익숙한 내용이었고 특히 권선징악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사건의 해결 과정이 다소 과장되고 부풀려져 있어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붉은 가오리에 담긴 내용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섬마을 전체가 한 사람을 모시고 그의 모든 명령에 따를 뿐 아니라 표정조차 없이 온 섬을 다니면서도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불만도 없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처음에 그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잇바쿠 옹 즉 모모스케가 느낀 그들에 대한 연민에 공감하다 결정적인 순간 그들이 보인 행태를 본 후에는 아무런 죄의식이나 어떠한 의문도 없는 집단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하는 신념의 행동이 폭력이나 다름없음을 보면서 처음에 느꼈던 연민은 사라지고 그들 위에서 군림하며 호의호식한다 여겼던 섬주인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했다.
섬주인이야말로 그들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사육되고 받들어지는 동물이나 다름없었음을...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있고 그 섬은 지옥에 한없이 가까운 곳임을 깨닫게 되면서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섬뜩한 이야기여서 뒤에 나온 기담들 속 사건은 오히려 명쾌하게 느껴졌달까
일견 터무니없는 듯 귀신 장난 같은 사건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인간이 사는 도리, 삼라만상에 관한 모든 것들이 섞여지고 아우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마치 옛날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져 무서운듯하면서도 어딘지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역시 이런 건 긴 밤 지루함을 달래주기엔 딱인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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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기생충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시온 그림, 현정수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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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 본인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 그건 진정한 사랑일까 아닐까? 그 사랑은 내가 한 것일까 아님 누군가의 것일까?
이 책에선 그런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어느 날부터 조금씩 강박증이 심해져서 마침내 바깥 생활을 하기가 거의 힘들 정도가 된 코사카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 모든 연인들이 사랑하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바이러스를 만들어 크리스마스에 퍼지도록 하지만 그의 이런 계획을 미리 알아본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받게 되는 이상한 협박은 자신과 어딘지 닮은듯한 여고생 사나기 히지리와 친해져서 그녀가 왜 등교를 거부하는 건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
그녀 사나기와 가까이 지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강박 증상이 조금씩 나아지는듯하고 사나기 역시 다른 사람의 시선을 견뎌낼 수 없어서 일상생활이 힘들었는데 그와 있을 땐 조금 편해지게 된다.
이렇게 둘만의 세상에서 조금씩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로를 받아들일 무렵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두 사람의 머릿속에 신종 기생충이 살고 있고 그 기생충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끌린다는 것
인간의 몸을 숙주로 한 기생충이 자신이 원하는 걸 취하기 위해 인간의 뇌 속에서 인간을 조정한다는 설정은 사실 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코사카를 비롯해 다른 감염자 커플이 구충제를 먹어 기생충을 없애고자 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이 한낱 기생충에 의해 조정되어 사회에서 고립되고 사람들을 꺼리는 증세를 보인다는 것도 조금은 어이없지만 인간이 가장 숭고하게 여기는 사랑마저도 인간의 의지가 아닌 번식에 성공하기 위한 기생충의 조정이라니...
내가 만일 그런 사실을 안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구충제를 먹고 내 머릿속에서 내 의지를 조정하는 그 기생충을 죽일 것이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결정을 할 것이다.
이런 때 조금은 특별한 소녀 사나기는 혼자서 반대하면서 절대로 기생충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입장에 선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늘 마음 한편이 공허하고 두려웠으며 사는 게 즐겁지 않았는데 자신과 같이 감염된 코사카와 같이 보낸 나날은 평화롭고 조금은 행복했기에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는 입장이다.
그녀는 지금이 좋을 뿐 아니라 기생충에 의한 조종이든 뭐든 그게 있으므로 자신에게 특별히 해가 되는 것도 아니면 굳이 그걸 죽여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
하지만 코사카는 그녀와 나이차도 의식되고 기생충에 의해 조종되어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을지 모르는 사나기의 입장을 생각해서 치료하기로 결정한다.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우선 뭔가 하나씩 강박증 같은 게 나타나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다 마침내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버리고 오로지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감염자와만 반응한다는 설정인데 이런 모습들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과 고립되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은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 이제는 특별하다 여겨지지도 않는 모습인데 이런 모습이 이 책에서는 신종 기생충에 감염되어 인간의 의지가 아닌 기생충의 조종으로 이런 상태가 되었다는 설정으로 바꿔놓는 기발함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신선한 발상도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도 흥미로운... 지극히 일본 소설스러운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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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토끼 식당 차림표 : 6시 20분의 고기감자조림 눈토끼 식당 차림표
고미나토 유우키 지음, 박유미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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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배가 고프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좀 더 심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그러다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그때 밀려오는 만족감이란...
그래서 힐링을 다루는 작품들 중에는 음식을 소재로 하거나 작은 소품처럼 다뤄지는 작품들이 꽤 있다.
아마도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먹는 즐거움만큼 큰 즐거움이 많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책 역시 제목에서부터 음식을 중요한 소도구로 다뤄지리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일본식에 대해 관심도 있었기에 더 궁금해진 책이었다.
할머니부터 해 오던 단출한 식당 눈토끼 식당을 물려받은 다이키는 식당 앞에서 쓰러진 아오이를 데려와 자신의 음식을 먹이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입맛을 잃어버린 아오이는 그저 최소한의 식사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결국 눈토끼 식당 앞에서 무너져버린 것인데 무엇을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아오이지만 웬일로 다이키가 만들어준 음식에 텅 빈 가슴이 조금은 채워지는듯하다.
알고 보니 이 집은 아빠의 단골 식당이었고 그때부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식사도 하게 되고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에 대해 새삼스러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늘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들을 당연하다는 듯 먹었기에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해 지은 음식의 소중함과 정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자신이 홀로 남은 아빠를 위해 아침밥을 지으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새삼 느끼는 아오이
사회 초년생으로 갓 들어간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딸을 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가족들.... 그리고 그 마음을 알면서도 마음과 달리 짜증을 부리던 미케 역시 자신의 본심을 자신이 처음 만든 음식으로 엄마에게 표현하는 장면을 보면서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람을 왜 식구라 하는지 이해가 갔다.
또 오랫동안 사랑받았지만 새로운 트렌드에 따라 변화를 시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고집스레 옛것만 주장하는 아버지와 마찰을 빚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쿠라다 푸딩 가계의 이야기도 결국 그 사이에 낀 딸이자 동생이 만든 푸딩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그렇고... 이렇듯 별다른 말이 없더라도
따듯한 밥 한 끼로도 때론 그 사람의 진심을 이해할 수도 있다.
특별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모양을 자랑하지도 않지만 정성을 들여 오랫동안 조리하고 그 마음으로 누군가의 한 끼를 해결해주는 다이키의 태도는 우리가 바라는 음식점 주인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집 주변에도 이렇게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이대가 비슷한 두 사람이 남녀 간의 로맨스로 변질되지 않은 점은 특히 마음에 들었고 읽으면서 내내 배고픔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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