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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유괴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3월
평점 :
돈이나 재물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유인하거나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는 걸 보통 유괴라고 한다.
원하는 게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납치 대상을 통제하고 있어야 하는 까닭에 보통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관리를 위해서라도 납치 대상의 수는 한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보통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책의 작가 니시무라 교타로는 통상의 이런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발상의 전환으로 읽으면서 내내 감탄하게 만든다.
일본 전 국민을 납치한다는 대담한 발상은 얼핏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이 똑똑한 작가는 사람들의 그런 허를 찌르고 들어온다.
총리 공관으로 자신들을 블루 라이언스라 칭하는 낯선 자가 전화를 걸어와 자신들이 일본 국민 전체를 납치하고 있다며 국민의 몸값 5천억 엔을 요구한다.
누가 들어도 헛소리인 이 말은 당연히 묵살되지만 그로부터 사흘 후 도쿄의 한 찻집에서 젊은 남녀가 청산가리를 먹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화를 장난전화로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여기서 천재적인 탐정인 사몬지 스스무가 등장한다.
쉽게 풀릴 수 없고 대놓고 대대적인 수사를 하기도 쉽지 않은 이 사건에 경찰은 사몬지의 도움을 청하게 되면서 쉽게 풀릴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은 가닥을 헤아리게 되지만 블루 라이언스팀 역시 만만치 않다.
또 다른 살인사건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비행기를 폭발시키는 대범한 사건까지 일으켜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면서 그들의 위협은 점점 더 실체를 얻게 되고 경찰 역시 모든 걸 동원해 범인을 쫓지만 그들은 한 번의 실수나 단서를 내놓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경찰의 완패는 당연한 거고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블루 라이언스팀은 느닷없이 노선을 변경해 자신들의 입장을 쓴 입장 문과 이제까지 총리실과의 통화를 녹음한 녹음본을 언론에 흘리고 대담하게도 국민들과 직접 협상을 시도한다.
목숨이 아깝다면 자신들이 지정한 와펜을 5천 엔에 구입해 달고 다닌 사람은 무차별 살인에서 제외해 준다는 다소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져 이내 국민들은 너도 나도 와펜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읽으면서 이 천재적인 발상을 한 작가에게 내내 감탄했다.
대체로 납치 사건의 대부분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몸값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잣집 사람을 납치해 거금을 요구하고 용의주도하게 탈출 계획을 세웠다 해도 납치 대금을 받기 위해선 한 번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그때를 경찰들이 그대로 두고 보지는 않는 법... 그래서 납치 사건 대부분은 납치 대상의 생사 여부와는 별개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블루 라이온스라는 천재적인 범죄 집단을 내세워 누군가를 힘들여 납치하지 않고도 오히려 전 국민을 납치한다는 기발한 발상에다 한 술 더 떠서 몸값을 받을 때의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택한 방법이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다지 비싸지 않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몸값을 지불한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독창적이고 천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전략의 탁월한 점은 또 있다.
용의자를 특정해도 그들의 범죄사실을 증명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무엇보다 국민들 스스로 물건을 산 것이기 때문에 그 돈을 법적으로 뺏을 수 없다. 그야말로 눈뜨고 모든 걸 뺏기는 형상인데다 사람들이 와펜을 많이 달면 달 수록 경찰 입장에선 조롱당하는 느낌을 들 수밖에 없으니 블루 라이언스로서는 일타이피의 상황
점점 더 흥미로워진 상황이지만 이 똑똑한 범죄자들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즈음 작가는 역시 천재적인 탐정을 내세워 또 한 번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기발한 작전을 구사한다.
읽으면서 전무후무한 이 작전을 짜낸 작가의 탁월함에 손뼉을 치게 되고 더 놀라운 건 이 책이 첫 출간된 시기가 1977년이라는 점이었다.
그 당시에 이 정도로 뛰어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범죄를 구상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작가의 기발하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독성은 기본!! 소재부터 전개 그리고 결말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수 없었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