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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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 1,2,3번<안나 카레니나>이어 4번째 책인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페루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가 197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콜롬비아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남미를 대표하는 작가로 여러 문학상과 함께 198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해 낙선했다. 이후 다시 문학에 전념하여 1994년 스페인어권의 최고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 2010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의 외모 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이전 작품에서는 어떤 유머도 사용하지 않던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소설에 '유머'를 도입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바꾼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바르가스 요사는 1958년과 1962년에 아마존 지역을 방문하면서 '아마존 수비대원들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페루 군부가 조직했던 특별봉사대'라는 조직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 곧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익살과 농담과 웃음을 요구'하고 '문학에서의 유머와 장난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내주면서 진지한 문학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1956년 페루, 리마에 있는 병참사령부에서는 아마존 밀림 지역에 주둔한 군대 병사들이 마을 부녀자들을 상대로 저지르는 겁탈과 강간을 중단시키기 위해 특별 모임을 소집, 모범 장교로 정평이 나있는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를 책임자로 아마존 밀림 지역인 이키토스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여든 명의 장교 중 판토하 대위가 책임자로 선택된 이유는 '천부적인 조직력, 정확하고 엄밀한 질서 의식, 행정 능력'(p.17)을 가지고 있다고 평이 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하는 그는 장교로 복무하면서 한 번도 징계를 받은 적이 없는 뛰어난 장교이다. 


고립된 밀림 군부대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은 성에 너무 굶주린 나머지 마을 여자만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무조건 덤비고 보는데,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1년도 안되서 43명의 여성이 임신을 할 정도이다. 당연히 지역주민의 분노는 끓어오르고, 군대는 가해자인 병사와 피해자인 임신한 여성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말도 안되는 조치만 내릴 뿐이다. 

따라서 페루 군부는 더 극단적인 방법을 고안, 그것은 성에 굶주린 병사들을 위한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줄여서 수국초특)를 창설하기로 하고 바로 이 책임자로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를 선택한 것이다!


군대와 가정밖에 모르던 '바른 남자'가 하루 아침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임무를 맡게 되니 얼마나 괴로울까 싶지만 군인에게 명령은 목숨과도 같기에 판토하 대위는 울며 겨자먹기로 특별봉사대를 조직하기 시작한다. 철저히 비밀리에 운영되어야 하기에 민간인으로 위장, 아내와 어머니에게도 비밀로 하며 판토하 대위는 본격적으로 창녀들을 모집, 군대에 창녀들을 공급하기 시작하는데...더 이상 내용을 말하지 않겠지만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일을 너무 잘해도 문제라는 거...


이 책은 그 불편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작정하고 경쾌하고 웃기게 쓴 글이라 중간중간 빵빵 터진다. 특히 2장은 상부에 보고하는 문서로 '수국초특' 창설과 운영 상황을 알려주며, 특히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병사 개인당 월 평균 희망 횟수와 평균 희망 소요 시간-결과를 도표로 작성한 판토하 대위의 진지한 보고서는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소설은 형식과 구성이 독특하다. 빠르게 전환되는 대화 장면들, 보고서, 편지, 신문 기사, 라디오 방송 대본 등 다양한 장르가 삽입된 점은 이 소설의 특징이자 재미이다. 이러한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구성은 작년에 읽은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1976)를 생각나게 했다. 그러고보니 두 작품은 1970년대 남미 문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위선적인 페루 군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언론인, 혼란한 정치 상황, 그 가운데 극성을 부리는 신흥사이비 종교집단,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그러나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특별봉사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개성 만점 창녀들 등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유머러스하게 그려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앞에서는 바르고 도덕적인 척 하지만 뒤에서는 온갖 더럽고 추잡한 짓을 벌이는 페루 군부, 그 추악한 위선과 여성의 성이 권력에 의해 재물로 희생당한 역사는 이 소설을 마냥 웃으면서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 말도 안되는 정책이 페루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놀랄것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달러 버는 애국이라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국가에 의해 미군기지로 보내졌는가...달러벌이를 위해 나라가 직접 나서서 성병관리를 했고 병든 여성들은 따로 모아 수용한 역사는 참 너무나 가슴아프다. 기지촌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자발적으로 일했으면서 이제와서 왜 아쉬운 소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직업소개소에서 속아 잔뜩 빚을 지고 일할 수밖에 없던 여성들도 많았다. 나라가 외화벌이 수단으로 매춘을 조장한 역사는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이다.


웃기는 소설이지만 아픔도 담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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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02 2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머가 있는 소설이라니 넘 끌리네요~ 제목도 뭔가 심상치 않고요~ 그나저나 문학동네 세계전집을 1권부터 다 읽고 계시는 건가요? 완전 멋짐 부럽!

coolcat329 2021-06-02 21:38   좋아요 3 | URL
위에 제 글이 전집을 순번대로 읽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네요 ㅋㅋ
아 우연이지만 제가 뿌듯하게도 안나 카레니나를 읽긴 했답니다😂
근데 절대 순서대로 읽는 건 아니구요. 저는 다만 이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이 안나 카레니나 바로 뒤에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저렇게 쓴 거에요.😅
5번은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인데 조만간 읽겠습니다!

Falstaff 2021-06-02 21:57   좋아요 3 | URL
<황금물고기>.... 읽으시면 단박에 클레지오의 팬이 돼버리실 겁니다!
아, 넘 좋았어요.

coolcat329 2021-06-02 22:01   좋아요 1 | URL
아! 왜이리 좋은 책이 많은지요~^^ 조만간 읽겠습니다 ~

잠자냥 2021-06-02 22:31   좋아요 1 | URL
쿨캣 님 호를 만드세요. 조만간 쿨캣 ㅋㅋㅋ

청아 2021-06-02 21: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찜을 안할 수가 없네요!

coolcat329 2021-06-02 21:40   좋아요 2 | URL
바르가스 요사 책은 두 권만 읽어봤지만 그냥 이상하게 이 작가가 좋네요. 그냥 무조건 좋은 거 있죠~~^^

scott 2021-06-02 2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꾸준하게 고전 완독 하시는건 멋집니다! 일주일에 한권 고전 완독 목표 세웠지만 어느새 흐지부지해 버린 1人 ^ㅅ^

coolcat329 2021-06-02 21:43   좋아요 5 | URL
제가 사실은 골고루 읽자~주의였는데, 문학이 늦게 너무너무 좋아져서,게다가 책 읽는 속도도 빠르지 않아 이 짧은 인생 좋은거 읽고 가자싶어 문학만 읽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래도 4단 서랍장 위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피에 젖은 땅>은 읽어야 하는데요...🤭

새파랑 2021-06-02 2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런 무서운 분이 계시는군요 ㅋ 저도 언젠가는 이렇게 순번으로 읽어보고 싶어요^^

coolcat329 2021-06-02 21:45   좋아요 4 | URL
아닙니다 ㅋㅋ 제 문장이 헷갈리게 해드렸네요. 제가 새파랑님 독서력이라면 추진해보겠는데요 ㅎㅎ

Falstaff 2021-06-02 21: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근데, 솔직하게 얘기해서 쿨캣님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말씀드립자면, 이 책이 제가 읽은 모든 요사 가운데 제일 재미 읎었습니다. ㅋㅋㅋㅋ 그러니 이제부턴 무조건 이것보다 재미있을 겁니다. 이게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6-02 21:50   좋아요 5 | URL
아~~제가 사실 바르가스 요사는 <새엄마 찬양>으로 단박에 팬이 되었어요. 네~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어요.
폴스타프님이 요사 작품 중 최고로 인정하신게 <천국은 다른 곳에>아닌가요? 맞죵?
이거 중고 상태최상으로 구해놨습니다. <염소의 축제>두요~~
남미 소설은 이상하게 너무 끌립니다. 이유가 뭔지... 읽은게 많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자꾸 빠져드네요~

이런 의견 너무나 좋고 감사합니다 😄

Falstaff 2021-06-02 22:02   좋아요 4 | URL
요사는 정치소설과 예술 특히 미술 분야의 소설로 거칠게 나눌 수 있겠더라고요.
예술 소설쪽으로 대빵은 얘기하신 <천국은 다른 곳에>, 뭐 말이 필요 없습니다. 비록 헌책만 살 수 있지만 눈에 띄면 곧바로 읽어야 할 것이지요.ㅋㅋㅋ <달과 6펜스> 이상으로 재미 있습니다.
정치소설은 <세상 종말 전쟁>이고요.

근데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장렬하게 영광의 준우승을 한 사람이잖습니까. 예술 소설이라도 정치적인 색깔은 조금 들어 있습니다. ^^

coolcat329 2021-06-02 22:06   좋아요 4 | URL
아!<세상 종말 전쟁> 알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1-06-02 22: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전집 순서대로 읽기 시작하시는 줄 알았어요 ㅎㅎ
아! 이 책도 읽고 싶은데 어떡하죠 ㅎㅎ
일단 찜합니다~~

coolcat329 2021-06-03 09:40   좋아요 1 | URL
읽고 싶은 책들 많은건 행복입니다~좋은 하루되셔요!

바람돌이 2021-06-02 2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집에 사놓고 안 읽은 책 <염소의 축제>있는데 이걸 빨리 읽고 이 책도 읽고.... 아이고 저는 마음만 바쁜 독서가입니다.

coolcat329 2021-06-03 09:41   좋아요 1 | URL
저도 염소 읽어야하는데요 ㅋㅋ 자꾸 다른 책이 유혹을 하네요. 책보면 행복하기도 하지만 마음도 바빠집니다.

레삭매냐 2021-06-03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요사스러운 샘
의 책이라 그런지 가장 애정이 가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필두로 해서 요사스러운 샘의
극렬 팬이 되었습니다.

영화도 있는데 장난 아닙니다. 지금은
아마 구할 수가 없지요.

작가로서는 좋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페루의 MB라는 말이 있어서리...

<염소의 축제>는 제가 직접 모니터링
한 책이라 ㅎㅎㅎ 인연이 많네요.

coolcat329 2021-06-03 14:01   좋아요 2 | URL
저도 영화 사진 좀 올리려다가 그냥 관뒀습니다. 레삭매냐님이 올리신 사진만으로도 충분해서요. 가장 수위가 낮은 걸 올리셨더라구요.ㅎ

정치인으로서 요사는 생각않는게 좋겠습니다. 헐 페루의 ××...

직접 모니터링이라함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리뷰를 쓰신건가요?

레삭매냐 2021-06-03 14:16   좋아요 2 | URL
제가 찾아 보니 두 번 리뷰를 올렸었
네요 ㅋㅋ 찐팬 인정이네요.

사진은 그리했다 합니다 ㅋㅋ

모니터링은 출간 전에 원고를 받아
오탈자와 기타 등등의 자잘한 오류
들을 잡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서평단하고는 좀 다르지요.

얄라알라 2021-06-03 18:28   좋아요 3 | URL
와 레삭매냐님 출간전 모니터링까지, 역시 책의 달인이신지라 러브콜도 많이 받으시나봐요. 멋지십니다^^ 인연 있는 책은 최종 출간되었을 때 만나면 특별할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1-06-03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대통령 후보까지 도전한 작가, 게다가 coolcat님께서 화려한 외모라하시니 곧 구글검색 들어가봐야겠네요.
독일에서도 아리안 순혈주의를 위한 여성들을 동원해 breeding house 내 기거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겁했는데, 무섭고 ㄲㅉ하네요. 유머러스하게 그렸다지만 기저의 ㄲㅉ이 읽기 전부터 무서워집니다.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coolcat329 2021-06-03 19:00   좋아요 2 | URL
바르가스 요사의 사진을 한 장 올릴 걸 그랬네요~
사진 보시면 남미의 화려함과 강한 양의 기운! 을 느끼실거에요.ㅎ

순수혈통에 대한 집착으로 여성들의 애국심을 부추겨 애낳는 공장에 가둔 만행 역시 참 끔찍합니다. 히틀러 본인이 아리안 순수혈통 같지가 않은데요...🤨

서니데이 2021-06-03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처음 소개를 읽었을 때, 제목을 보고 생각했던 것과 책 소개의 내용이 달랐던 기억이 나요. 잘 읽었습니다. cooicat329님, 좋은 밤 되세요.^^

coolcat329 2021-06-04 10:50   좋아요 2 | URL
그쵸~만화 제목같기도 하구요~~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초딩 2021-06-05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 스페인이 금에 미쳐 아메리카를 약탈하기 시작할 때, 페루를 그들은 지루라고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마르케스와 같은 남미 작가의 발견이네요 ^^ 감사합니다. 러시아문학 만큼이나 남미 문학도 좋은 것 같습니다.
우앗 그리고 순서대로 문동 다 읽으시는거에요? 엄지척!

scott 2021-07-07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
해피수요일 ^0^

새파랑 2021-07-07 16:17   좋아요 1 | URL
쿨켓님 축하드려요 😄

서니데이 2021-07-07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coolcat329 2021-07-07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모두들 감사드립니다. 😅

잠자냥 2021-07-07 20: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그래서
안 할게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07 20:45   좋아요 1 | URL
넹~~😂😂😂 오늘 리뷰당첨 발표날이라 북플이 정신이 없습니다 ㅋ 어쩜 이리도 다들 부지런하신지 ㅋㅋ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모파상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0
기 드 모파상 지음, 김동현.김사행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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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은 10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3백여 편의 단편과 6편의 장편 소설외에 시, 희곡 등을 썼다고 한다. 참으로 엄청난 양이다. 1893년 "어둡다, 아아 어둡다!" 라고 소리 지르며 43세의 젊은 나이로 떠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의 양은 아마도 두 배로 불어나지 않았을까도 싶다. 


이 단편선은 그의 수많은 단편 중 19편을 담고 있다. 몇 개월 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한 두편씩 읽었는데, 독후 기록을 남기려고 보니 몇 달 전에 읽은 단편은 기억이 나질 않아 당황스러웠다.


스승 플로베르의 지도 하에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삐에를와 장> 서문,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능은 오랜 인내이다-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그 누구도 본 적 없고 말한 적 없는 어떤 측면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오래, 그리고 무척 주의해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 가장 사소한 것에도 미지의 영역이 조금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발견해내자. 활활 타오르는 불을, 그리고 평원의 나무를 묘사하려면 그 불과 그 나무가 더는 다른 그 어떤 나무와도 그리고 다른 그 어떤 불과도 닮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불과 그 나무 앞에 머무르자."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똑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스승 플로베르를 통해 알게된 모파상은 이런 창작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을 발전시킨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인간의 삶을 정확히 포착한 그의 작품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보면, '파리 소시민의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들, 전쟁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비참함을 다룬 작품들,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작품들, 노르망디 시골 사람들의 삶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들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전쟁(보불전쟁)으로 빚어진 평범한 인간의 비극을 담은 작품 <두 친구>가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하고 관찰하듯이 덤덤하게 표현한 그의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이 외에도 그 유명한 <목걸이>,<보석>으로 대표되는 파리 소시민의 삶을 그린 작품들은 도시에 사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속물성, 위선을 극적인 구성으로 보여주는데, 또 다른 주제로 분류되는 시골 사람들을 다룬 작품들과 비교해서 읽으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시골 사람들의 단순한 삶 속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은 슬프면서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인생의 잔인함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의자 고치는 여인>, <달빛> 등 여성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들 또한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특히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두운 인생의 이면'을 섬세한 시선으로 관찰, 간결하면서 사실적인 문체로 보여준 그의 단편들은 하나하나가 옮긴이의 말대로 '찬란한 보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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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2 1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빠상 단편 너무 좋아요^^ 짧은 글에 어쩜 그렇게 임팩트 있게 글을 쓰는지 ㅎㅎ 생각날때 한번씩 읽어봐요 ㅋ 저는 장편이자 막장이라는 <벨아미>가 아직 못 읽고 책꽂이에서 노려보는데 언제 읽을수 있을지 ㅜㅜ

coolcat329 2021-06-02 12:20   좋아요 3 | URL
저는 지금 벨아미 상태 좋은 중고를 찾고 있어요 ㅋㅋ

청아 2021-06-02 11: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희곡 까지 써낸것도 놀랍습니다. 단편모음은 정말 리뷰쓰기에 애매한것도 같아요.
저는 단기간에 읽어도 앞쪽 잘 생각안남요ㅋㅋㅋ

coolcat329 2021-06-02 12:21   좋아요 4 | URL
단편이야말로 인내심이 필요한거같아요. 어쩜 읽은 내용이 기억이 안 날까요..ㅠ

붕붕툐툐 2021-06-02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파상 작품을 읽었겠으나 기억이 거의 없네요~
43세라... 뭐가 그리 어두웠을까요.. 단명이 아쉽습니다~

coolcat329 2021-06-03 09:43   좋아요 1 | URL
제가 알기로는 밤생활이 조금 과하셨던듯 합니다. 매독으로 고통받고 정신에도 문제가 와서...ㅠ
작품양으로 봐서도 뭐를 하든 적당히 하는 분은 아니었나봅니다.ㅠ

scott 2021-06-02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모파상 단편 장편 초딩 졸업 선물로 받았는데(큰엄마가 사주쉼) ‘비계덩어리‘ ‘목걸이‘ 부터 읽고 충격 받음 ^ㅎ^

coolcat329 2021-06-03 09:45   좋아요 4 | URL
헉~초딩 졸업으로 모파상이라뇨! 특히 비계덩어리는 어린아이가 충격받을만 하죠. 그걸 이해하신 스콧님 역시~👍

새파랑 2021-06-04 17:33   좋아요 2 | URL
와 중딩때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게 놀랍네요~!!

초딩 2021-06-04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친구의 그 가로등이 아직도 어두침침하게 느껴집니다.
읽고 듣고 또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모파상 좋은 것 같아요 :-)

페크pek0501 2021-06-05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흥미로운 책입니다. 말씀하신 단편은(두 친구 부터 달빛까지) 제가 모두 읽은 것이네요. 아마 제가 반쯤 읽은 모양이에요. 반만 더 읽으면 이 책 완독입니다. 모파상은 단편의 천재인 듯.
같은 책을 읽어서 반가웠습니다...

파이버 2021-07-3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자 고치는 여인>에 나온 여인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19편이나 담겨있다니 책이 생각보다 두껍나보네요!
 
마르케스 -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6
오스카르 판토하 지음, 유 아가다 옮김, 미겔 부스토스 외 그림 / 푸른지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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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흙을 먹던 여동생과 예지 능력이 있던 할머니, 그리고 절대로 행복과 광기를 구분 짓지 않던 똑같은 이름의 수많은 친척들과 함께 그 큰 집에서 보낸 슬픈 내 유년시절에 대한 시적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 


이 책 <GABO : Memorias de una vida mágica>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화려한 그림으로 흥미롭게 보여주는 그래픽 평전으로 '네 명의 젊은 콜롬비아 작가들이 살아 있던 그를 위해 쓴 마지막 오마주'라고 한다. 


콜롬비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Gabo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 에스파냐어로 쓰여진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백년의 고독>을 쓰기까지의 그의 삶과 이 대작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이해하기 쉽게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이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즐기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데, 다 읽고 나서 느낀 건 <백년의 고독>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삶과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작가를 떠나서 이해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마꼰도 마을에 큰 성당을 지을 목적으로 헌금을 거두러 다니는 신부가 하느님의 무한한 능력을 보여준다며 초콜릿 한 컵을 마시고 땅 위 12cm 높이로 공중 부양하는 장면이 소설에 나오는데, 이 장면이 작가의 상상이 아니라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유년시절 실제로 목격한 장면이었던 것!

또한 소설에서 흙을 파먹는 레베까라는 여자가 나오는데, 이 인물은 실제로 흙을 파먹곤 했던 여동생 마르곳을 모델로 한 것이다.


저자 오스카르 판토하는 후기에서 '이 책은 마콘도의 빛이 이미지와 융합되어 어둠속에서 태동하는 바로 그 창작의 순간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p.171) 고 말한다. 


나는 이 책을  <백년의 고독>을 읽고 나서 봤는데, 소설을 읽기 전에 보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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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28 2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먼저 읽어야하는군요~!!

청아 2021-05-28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들어가보니 평전이 10권정도 있어 다른 책들도 궁금합니다. <백년의 고독>대체로 어렵다던데 귀한 정보네요^^*👍

scott 2021-05-29 0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은 ❣입니돵 ^ㅅ^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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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 가장 오래 꽂혀 있던 책, <백년의 고독>을 드디어 읽었다! 

워낙에 읽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은 체력과의 싸움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책은 재미있다. 그러나 책을 펼치자 마자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와 쉴 틈이 없다. 몸이 피곤한데 귀에다 대고 계속 누군가가 옆에서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그 피로감...그래서 이 책은 몸과 정신의 컨디션이 중요하다. 

긴 호흡의 문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애송이 독자이지만 내 독서 인생에서 이토록 빽빽한 플롯의 이야기는 처음 만났다. 

많은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점 또한 이 소설의 읽기 힘든 점으로 말하는데, 나는 이름으로 애를 먹진 않았다. 왜냐하면 6대에 걸친 한 집안의 이야기가 인물 중심으로 시간의 순서대로 전개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가계도를 확대 복사해서 옆에 두고 읽으니 도움이 되었다. 


이 소설은 마꼰도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100년의 6대(7대라고 봐도 됨)에 걸친 부엔디아 집안의 성쇠를 다룬다. '주민들 가운데 서른 살이 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마을'(1권 23쪽)이었던 마꼰도는 외부와의 교류를 통한 과학 문물의 도입, 콜롬비아 정부의 간섭, 보수파와 자유파 간에 일어난 내전, 철도 건설, 미국 자본주의 유입과 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외부 문물과 자본이 들어옴에 따라 한때 활기찬 도시로 흥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마꼰도 마을이 누렸던 균형과 평화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미국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바나나 농장은 엄청난 이윤을 챙기지만 노동자들은 부당한 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다. 노동자들은 조합을 만들어 파업을 하지만, 정부는 회사의 요청으로 군인을 파견,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학살한다. '천일전쟁'과 함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이 '바나나 농장 학살 사건'은 이 소설에서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군중은 기관총들의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규칙적인 가위질에 의해 가장자리가 양파 껍질 벗겨지듯 차근차근 동그랗게 잘려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진원지를 향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타고 빙빙 돌면서 가운데에 갇히게 되었다. (2권 152쪽)


군인들의 기관총 발사에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가장자리 사람들이 벗겨져 나가는 학살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끔찍한 학살은 정부의 조작으로 애시당초 없었던 일이 된다. 정부의 '특별 포고령'은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고, 만족한 노무자들은 모두 가족을 찾아 돌아갔으며 바나나 회사는 비가 그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한다는 내용' (2권 157쪽) 이었다. 그러나 밤이 되고 통행금지가 되면 군인들은 용의자들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 죽이는 일을 반복, 결국엔 '노조 지도자들을 몰살'하기에 이른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런식으로 국민들을 속이고 억압한다. 끔찍한 사건은 정부의 은폐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사라지고 마꼰도에는 자그만치 4년 11개월하고도 이틀동안 비가 내린다. 그리고 10년 동안 다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마꼰도는 홍수와 가뭄, 개미들의 공격, 곰팡이 등으로 폐허로 변해간다.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부엔디아 가문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고독은 점점 깊어진다. 가문의 그 누구도 고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부엔디아 가문은 콜롬비아, 더 나아가 라틴 아메리카의 불운한 역사와도 겹쳐진다.


그리고 마꼰도라는 마을의 탄생과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근친상간이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내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친 상간에 의해 고착되어 있는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작품해설 2권 321쪽)이라고 말했다. 부엔디아 집안의 사람들 피 속에 흐르고 있는 근친 상간의 유혹은 고독과 함께 그들의 삶을 운명적으로 이끈다. 


마꼰도 마을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사촌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나와 결혼한 우르술라가 근친 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 것을 두려워해 부부 생활을 안하는데, 이를 놀리던 동네 사람을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나가 죽임으로써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던 사연이 있다. 우르술라는 자손들에게 근친끼리의 관계를 엄격히 금하지만, 부엔디나 가문의 혈통에 흐르는 근친상간을 향한 끌림은 억지로 금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형과 동생이 같은 여자와 관계해 아이를 낳고,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자매, 친오빠는 아니지만 오빠와 결혼하는 여동생, 고모와 조카, 이모와 조카와의 관계 등, 근친 상간은 대를 이어서 계속 크고 작게 나타난다. 


'왜 작가는 이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근친상간의 모티프를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로 삼았을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근친상간은 외부가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나와 같은 피를 몸에 지니고 있으며 나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과 몸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나를 밖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수렴, 응축되는 느낌, 더 나아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느낌을 다른 어떤 관계보다 더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기에 어쩌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근친을 향한 본능적인 끌림이 있는게 아닐까...그래서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내면에 숙명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 고독을 근친과의 관계를 통해 치유할 수밖에 없던게 아닐까...


조카와 이모사이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와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사랑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뱃속의 아기가 자라감에 따라 두 사람은 점점 단 한 사람으로 변해 갔고, 마지막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그 황폐한 집의 고독 안으로 점점 더 들어가고 있었다. (2권 296쪽)


고독해서 성에 탐닉, 더 나아가 근친 상간에 빠지고 그로인해 또 다시 고독해지는 인간의 반복되는 모습은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의 삶을 통해 숙명적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장남 호세 아르까디오의 죽음을 묘사한 장면이다.


호세 아르까디오가 침실문을 닫자마자 권총 소리가 집 안을 진동했다. 한 줄기 피가 문 밑으로 새어나와, 거실을 가로질러 거리로 나가, 울퉁불퉁한 보도를 통해 계속해서 똑바로 가서, 계단을 내려가고, 난간으로 올라가, 터키인들의 거리를 통해 뻗어나가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다른 길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돌아, 부엔디아 가문의 집 앞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닫힌 문 밑으로 들어가서는 양탄자를 적시지 않으려고 벽을 타고 응접실을 건너, 계속해서 다른 거실을 건너고, 식당에 있던 식탁을 피하기 위해 넓게 우회해서 베고니아가 있는 복도를 통과해 나아가다, 아우렐리아노 호세에게 산수를 가르치고 있던 아마란따의 의자 밑을 들키지 않고 지나, 곡식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우르술라가 빵을 만들려고 달걀 서른 여섯 개를 깨뜨릴 준비를 하고 있던 부엌에 나타났다. (1권 200쪽)


호세 아르까디오, 창녀들이 돈을 내고 서로 자려고 할 정도로 엄청난 남성성을 지닌 남자. 미스터리한 그의 죽음과 그의 피가 온 마을을 흘러 엄마인 우르슬라에게까지 가는 이 장면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피를 따라가는 내 눈과 마음이 마법에 홀린 듯해 '아 이래서 이 소설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건가...' 싶었다.


이 외에도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죽던 날, 밤새 내리던 노란 꽃비, 침대 시트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미녀, 흙을 먹는 여자, 날아다니는 양탄자, 전염되는 불면증 등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한 사건들로 가득한 이 소설은 그야말로 현실과 상상이 마술적으로 섞여 있어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야기에 나 자신을 맡기고 읽는 것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참...써놓고 보니 글에 맥락이 없어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고 이렇게나마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낀건 역시 독서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건강식으로 먹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먹었다.

이번 달에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책을 두 권 읽었는데, 다음엔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족장의 가을>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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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5-28 15: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 저도 오래 전에 읽다만
그런 책이네요.

그리고 다시는 쳐다 보지도 않
고 있네요 :>

coolcat329 2021-05-28 16:27   좋아요 4 | URL
저는요 이 책을 16,17년 전에 샀는데요...이제야 완독을 했습니다. 어떤 산을 넘은거 같아 정말 기쁩니다.😅

Falstaff 2021-05-28 16: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무조건 필독서잖아요. ㅋㅋㅋ

coolcat329 2021-05-28 16:29   좋아요 3 | URL
네 ㅋㅋ 필독서죠🤣 너무 뿌듯합니다.

새파랑 2021-05-28 16: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피를 따라 내려가는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네요. 딱 봐도 어려워보이지만 읽어보고 싶은 ㅜㅜ 읽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웁니다 ~~

coolcat329 2021-05-28 16:31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도 저 문장 인상적이시군요. 네 저 남성성의 화신의 죽음이 저에겐 마법같았습니다.

새파랑님은 책읽는 기계인데 뭐가 문제신가요~~^^ 저같은 느림보가 울어야죵 ㅠㅠ

얄라알라 2021-05-28 16: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6,17년을 coolcat님의 손길을 기다린 책이었군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coolcat329 2021-05-28 16:31   좋아요 3 | URL
네 ㅋ 정말 후련합니다. 감사합니다!

scott 2021-05-28 16: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쿨켓님 완독 축하 합니다
저는 이책 거의 몇십년 묵혀 두었다가
어쩌다 물에 홀라당 젖어 양피지 처럼 페이지가 색이 바래고 두꺼워져서(종이가 녹지 않고)
한장씩 읽을때마다 버려야지 했다가 몇일 꼴딱 밤을 지새우게 만든
인생 책 중 한권 입니다
마르케스 이책 말고도 명작이 많은데 한국에 번역된 책이 몇권 없어서 슬픔이 ㅎㅎㅎ
^ㅅ^

coolcat329 2021-05-28 18:12   좋아요 3 | URL
이 책이 인생책이시군요! 인생책은 너덜너덜한게 더 멋지게 보여요.
저는 인생책 이런거 아직 모르네요. 저도 인생책 만나고 싶어요.😆
근데 이 책은 제 독서 생활에 어떤 의지를 불어넣어준 작품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1-05-28 18: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꼭 재독하고 싶은 책 입니다
민음사판으로 구입해놨는데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어요~~
리뷰, 넘 멋져요^^

Falstaff 2021-05-28 20:30   좋아요 5 | URL
저도 조주호(민음), 안정효(문학사상) 두 역자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안 입니다.
조는 일단 직역, 안은 저작권료 지불하지 않은 중역이고요, 안은 소설가로 워낙 글을 맛있게 쓰는 양반이라 번역하기 힘든 (원문도 아니고)영어본을 기묘하게 맛있는 우리말로 바꾸었다는 누명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줄거리를 왜곡시키는 건 아닙니다만 원문과 그래도 비슷하게 바꾸려고 애를 쓴 조주호 판을 권합니다.
즉, 제 생각엔 안정효 번역을 굳이 다시 찾을 필요는 없다! 하는 겁니다. 물론 지극히 사적인 의견입니다.

페넬로페 2021-05-28 20:51   좋아요 5 | URL
아! 그렇군요^^
그럼 제가 민음사판을 준비 잘한거죠? ㅎㅎ

coolcat329 2021-05-28 21:17   좋아요 3 | URL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때로는 긴 문장을 우리말에 맞게 끊어서 번역하는게 좋기도 하겠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문장을 살려 번역한게 참 좋습니다. 너무 긴 문장은 낭독을 해보
는것도 좋더라구요~~

붕붕툐툐 2021-05-28 2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쿵~ 여기가 바로 백년의 고독 성지군요! 완독 너무 축하드려요~ 묵혔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시지 않을까 싶네요. 스콧님 리뷰 읽고 쿨캣님도 쓰셨다하여 방문했습니다. 넘 잘 읽고 가요~~

coolcat329 2021-05-28 21:20   좋아요 3 | URL
아이고~~직접 방문까지 해주시고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접한 기록일 뿐인데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2021-05-28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이버 2021-07-31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작년에 샀어요! 언제 펼쳐볼지는ㅜㅠ 말씀대로 독서도 컨디션이고 체력인 것 같아요…
 
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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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더욱 순수하고 아름답고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 우리의 평화, 독립, 타고난 권리 등이 광신도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겨우 열 명 남짓한 인간들의 광증에 제물로 바쳐진 시대에, 시대로 인해 자신의 인간성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모든 문제는 단 한 가지로 집중된다. 곧 '어떻게 하면 나는 자유롭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p.32)


츠바이크는 나치의 광기를 피해 1935년 런던으로 망명, 1941년에는 다시 브라질로 이주했다. 브라질 페트로폴리스의 셋집 지하실에서 우연히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수상록>을 발견한 그는 전 부인 프리데리케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지금 몽테뉴를 큰 기쁨으로 자주 읽고 있거니와 그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유혹을 느껴요. 또 하나의 에라스무스. 진정 위로하는 정신." (p.165원서 편집자 후기)


츠바이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스무 살때 몽테뉴의 <수상록>을 처음 읽었고 문학적으로 이해는 했으나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기처럼 전해오는 힘'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몽테뉴가 말하는 온건함, 관용, 마음의 진정같은 권고와 지혜가 피끓는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제적 이데올로기가 목숨을 위협'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한 츠바이크는 '이런 집단 광증의 시대에 가장 내밀한 자아에 충실하기 위해선 얼마만 한 용기와 정직성과 단호함이 필요한지를, 그리고 이 거대한 파멸의 한 가운데서 정신적,도덕적 독립을 흠 없이 지키는 일'(p.21,22)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고, 종교전쟁으로 자신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몽테뉴와 '운명의 동질성을 겪고서야' 그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1569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5년간 일했던 공직에서 물러난 몽테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의 탑 건물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에 자신의 서재를 만들어 10년간 외부 세계와 작별을 한다. 서재 천장에 프랑스어로 새겨넣은 "내가 무엇을 아는가?" 라는 문구처럼, 그는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한다. 몽테뉴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신의 참된 자아'였고, 자신의 '정신에 완벽한 무위를 선물'하는 것에서 최고의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샤를9세 치세 동안의 성밖의 세상은 카톨릭과 개신교간의 내란이 십년 넘게 일어나 그야말로 프랑스에는 매일같이 피냄새가 진동한다. 이 중 하룻밤에 8천명이 살해당하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1572)은 그 광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범죄는 범죄를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 야만성이 온 마을과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고 그 어디에도 관용은 없었다. 


정신적 독재에 '미친 자들', 자기들이 얻은 '새로운 것'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옳은 진리라고 우기면서 자기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보다 몽테뉴가 더 미워한 것은 없었다. (p.119)


그는 루앙에서 만난 브라질 출신의 식인종들을 보았을 때도 놀라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종교와 관습이 있음을 인정한다. '사람을 먹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것보다 사소한 일이라고'(p.120) 말한다.


다양한 세상을 학설이나 체계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 다른 사람을 자유로운 판단과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자기 안에 있지 않은 것을 강요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잘못이고 범죄다. (p.119)


몽테뉴는 '스스로를 위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권리'(p.119)를 줘야하며,그 누구보다 이것을 실천하는데 앞장 선 사람이었다.

몽테뉴는 '그 어떤 선입견으로도 자신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지상의 모든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p.121)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하지 않고 개인의 내면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 선구자 몽테뉴는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너와 나를 편가르고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버린 시대에 개인의 영혼과 자아, 자유의 보존을 위해 그가 평생에 걸쳐 얻어낸 사유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들에게도 크고 작은 위로를 주리라 생각한다. 


어쩌자고 그 모든 일을 그렇게 힘들게 받아들여? 너의 시대의 부조리와 야만성을 앞에 두고 어쩌자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풀이 죽지? 그 모든 것은 너의 피부만을 , 너의 외적인 삶만을 건드릴 뿐 진짜 내면의 자아는 건드리지 못하는데. (p.38)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건 오직 나 자신이며, '분별력'을 잃지 않는 한 그 어떤 압력이나 힘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며 스스로 자유를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을 계속 상기시킨다. 


'우리가 가진 유일하고 잃어버릴 수 없는 깊은 내면의 자아를 그 어떤 외적인 강요를 위해서도, 시대나 국가나 정치적 강제와 임무를 위해서도 내버리지 말라고 경고해주는 사람만큼 고마운 사람은 없다'는 츠바이크의 말에서 나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 느꼈을 절망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츠바이크는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1942년 2월 아내와 세상을 떠나는데, 몽테뉴의 위로가 그의 최후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자신의 자유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최상의 자유를 향해 떠나간 것일까...

츠바이크가 우리에게 위로를 주듯이 그도 위로를 받고 떠나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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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21 13: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지상의 모든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 말 너무 좋아요!! 이 책 사놓길 잘했네용ㅋㅋ

coolcat329 2021-05-21 14:07   좋아요 4 | URL
츠바이크가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미완성 작품이라 전성기 때 쓴 전기들에 비하면 조금 아쉽지만, 몽테뉴를 통해 작가가 느꼈을 그 깨달음이 크게 다가왔고 여전히 내가 누군지 모르는 저에게도 저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해줬습니다.

새파랑 2021-05-21 15: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완성 작품인가 보네요. 몽테뉴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5개라니 일단 ㅎㅎ 책도 그렇게 두껍지 않고 좋네요. 얼마전에 서점가서 마리앙뚜아네트 평전을 봤는데 벽돌책이어서 구매 포기했었는데, 이책은 읽을수 있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1-05-21 17:02   좋아요 4 | URL
네,미완성이라 중간에 미처 정리 못한 문단도 들어가 있고...ㅠㅠ
체스이야기쓰고 당시 발자크 평전도 같이 쓰고 있었던듯 싶은데, 영국에서 얼마나 급하게 브라질로 왔으면 쓰던 발자크 원고도 놔두고 떠났는지...ㅠ
다행히 친구가 다 정리해서 발자크 평전이 세상에 나왔지요. 저는 발자크 평전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발자크 소설 두개밖에 안읽어봤지만 이 평전이 소설보다 더 잼있거든요. 아흑 눈물이...
마리 앙트와네뜨도 역시 강추합니다.

scott 2021-05-21 17: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완성이라니 너무 아쉽네요 츠바이크가 완성한 몽테뉴의 삶이 미완성으로 남았다는건 츠바이크 삶이 어제의 세상에서 스스로 끝을 내버려서 ㅜ.ㅜ

coolcat329 2021-05-21 17:17   좋아요 3 | URL
네...너무 아쉽습니다. ㅠㅠ

붕붕툐툐 2021-05-28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몽테뉴 작품부터 읽고,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수상록>이 인생책인 사람이 그리도 많다는데 연이 참 안 닿았었어요. 근데 이 책이랑 엮어서 이제 진짜 읽어야겠다 싶네요~~

coolcat329 2021-05-29 07:00   좋아요 1 | URL
이 책 읽으면 몽테뉴 읽고 싶어져요.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몽테뉴 글 중 죽음과 노화에 관한 것만 추려서 고봉만이 엮은 책도 있으니 참고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