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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평점 :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견과를 보고, 목재를 보고, 그림자를 본다. 장식품이나 예쁜 가을의 나뭇잎을 본다. 길을 가로 막거나 스키장을 훼손하는 장애물을 본다. 깨끗이 밀어야 할 어둡고 위험한 장소들을 본다. 우리 지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지들을 본다. 환금성 작물을 본다. 하지만 나무는, 나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p.596)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도서관에서 온통 숲 그림으로 뒤덮인 이 책을 우연히 발견, 한참을 빌릴까 말까, 살까 말까 망설이며 들여다봤다. 그러나 두께에 기가 죽어 '언제 다시 눈에 띄면 그때 가서 읽자...'하고 그냥 집으로 왔었다. 근데 이 책이 나와 인연이 있었던지, 작년에 북플 이웃이신 폴스타프님께서 반갑게도 이 책의 리뷰를 올리신 것이 아닌다. 리뷰를 읽고 바로 구입했다. (폴스타프님~당시에 '땡스투'를 몰라서 조금이나마 감사의 표시를 못한 걸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하긴 나무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사주팔자에서 나를 대표하는 오행도 木이다. 하늘을 향해 당당한 자태를 뽐내는 甲木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주된 이유는 아니다.
2017년에 호프 자런의 <랩 걸 Lab Girl>을 읽은 것을 계기로 나는 나무라는 존재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막연히 좋아하던 마음에서 나무를 뭐랄까... 어떤 신과 같은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할까...당시 이 책은 나에게 매우 놀라운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나무가 서로 간에 소통을 하고 어른 단풍나무가 어린 단풍나무를 위해 힘껏 물을 끓어와 어린 나무들에게 나누어 주며, 나무도 유년 시절을 기억해 그에 맞춰 자란다는 것이다. 병충해가 생기면 멀리 있는 나무들에게 병충해를 조심하라는 경고도 보낸다는 내용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2019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워스(1957~)의 <오버스토리>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나무들의 경이로운 삶에 또 다시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
"이 나무들 일부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여기에 있었어요. 우리는 이미 이 오래된 나무들의 97퍼센트를 베어냈어요. 마지막 3퍼센트 정도는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요?" (p.231)
이 책은 저자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마주하게 된 거대한 삼나무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으로, 제목 '오버스토리'는 숲을 위에서 봤을 때 '숲 상층부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뜻한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가 바로 그 '오버스토리'를 보여준다.
미대륙에서 사라져가는 '마지막 3퍼센트'의 원시림을 지키고자 모여든 아홉 명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간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가 작가의 해박한 나무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저마다 다른 운명으로 나무와 인연을 맺게되는 9명의 인물들.
노르웨이 이민자인 고조 할아버지가 심은 밤나무, 그 밤나무를 찍은 100년 치의 사진을 물려받는 화가 닉, 뽕나무 가지가 정교하게 세공된 옥반지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중국계 미국인 엔지니어 미미, 자신의 탄생나무인 단풍나무와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심리학자 애덤, 아마추어 시민극장에서 '맥베스'를 공연하면서 움직이는 숲을 연기하다 '기묘하고 불규칙적인 이파리 모양에 감탄'하게 되는 변호사 레이와 린덴 나무와 함께 그의 아내가 되는 속기사 도러시, 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가 격추 당해 떨어져 태국 밀림 속 반얀나무에 걸려 겨우 목숨을 구한 참전용사 더글러스, 어린 시절 참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나 컴퓨터 게임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프로그래머 닐리, 청각과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나무가 서로 소통함을 발견하는 식물학자 패트리샤, 감전 사고로 죽다 살아나 어떤 알 수 없는 '존재'의 이끌림에 무작정 떠나는 대학생 올리비아가 그들이다.
<오버스토리>의 목차는 '뿌리','몸통'.'수관','종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 '뿌리'는 8개의 소챕터로 나뉘어 위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인물들에 얽힌 극적인 이야기가 차례로 나온다. 그리고 각각 한 그루의 나무같은 9명의 인물들이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우연과 운명으로 크고 작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 숲을 이루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하루에 축구 경기장 100개' 만큼 사라지는 원시림의 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의 투쟁은 효율성과 유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앞에서 무력하고 그만큼 처절하다.
원시림의 벌목을 막기 위해 60미터 높이의 나무 위에 올라가 일 년 가까이 살며 투쟁하는 닉과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천 살이 넘은 이 나무의 몸통에 팔을 두르며 말한다.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 몸 말고는 이걸 지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p.366)
그들은 60미터 높이에서 '3미터 두께에 900살이 된 나무들이 20분 만에 쓰러지고 또 한 시간 안에 운반되어'(p.377)가는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4년 동안 나무 5만 그루를 심은 더글러스. 5만 번째 나무를 기념하는 날,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묘목 하나를 심을 때마다 회사는 '선량한 시민으로서 인정'을 받고, 그와 더불어 '연간 허용 벌채량이 늘어난다'는 것.
"자네가 아기들을 심어서 그 작자들이 걔네들의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그리고 자네의 묘목들이 자라면 그것들은 단일작품 병충해를 맞게 되겠지, 친구. 행복한 해충들의 드라이브스루 식당이 되는 거야" (p.263)
더글러스와 시위 현장에 간 엔지니어 미미는 '역겨운 것들을 알게' 된다. 산림청의 후원을 받는 부유한 벌목 회사가 '수 세기 동안 자란 다양한 침엽수들'을 법의 공백기를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베어 놓은 처참한 현장을 목격한다. '버섯들마저 다 죽을 만큼 디젤을 쏟아붓고 불에 태운 다음, 빠르게 자랄 이 회사의 병목식 단일작물 외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게 제초제를 퍼부어놓은 땅'(p.339)을 보고 미미는 나무를 지키는 일에 뛰어든다.
식물학자 패트리샤는 말한다.
"다음 세기의 토양을 원한다면, 순수한 물을 원한다면, 다양성과 건강을 원한다면, 우리가 다 측정할 수 없는 안정장치와 서비스를 원한다면, 그러면 인내심을 갖고 숲이 천천히 주기를 기다리세요."(p.400)
'하루에 300제곱킬로미터씩 새로 늘어나는 농경지. 그리고 줄어드는 숲은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더욱 높여서 먹고사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p.552)이며,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 그걸로 만드는 건 최소한 당신이 잘라낸 것만큼 기적적인 것이어야'(p.637) 한다고 말한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올리비아의 말처럼 인간은 '나무를 획득한 것처럼 자르지 말고, 마치 선물인 것처럼'(p.406) 잘라야 하는데, 인간은 나무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무엇보다 진보와 발전 앞에서 기다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나무들은 우리에게 말하지만 '사람들이 듣기에는 너무 낮은 주파수로 말을' 하기에 '유용성'에 눈이 먼 인간들은 그들의 말을 들을 수도 없고 들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나무에 관한 책을 100권 이상 읽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나무에 대한 신비하면서도 경이로운 이야기가 곳곳에 나온다.
병충해의 공격을 받은 나무들이 스스로 살기 위해 살충제를 뿜어내고, 아직 병충해의 공격을 받지 않은 나무들에게 경고 메세지를 보내 '방어체계를 가동'하게 한다.
나무들은 허공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수만 제곱미터를 건너 면역 체계를 공유, 서로를 보호하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공기와 뿌리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한다.
씨앗이 그들의 어린 시절 계절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싹을 틔운다는 사실.
건강한 숲에는 반드시 죽은 나무가 필요해서 죽어서도 모든 숲 속 생명들에게 영양을 주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 주변 나무들은 차분한데 혼자서 떠는 사시나무들, 평생에 딱 한 번만 꽃을 피우는 나무, 타치갈리 베르시콜로르, 일명 자살나무.
패트리샤는 묻는다. "자, 여러분이 평생 딱 한 번만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p.640) 이 나무는 유일하게 꽃을 피운 해에 죽는다고 한다.
피처럼 붉은 액체를 흘리는 용혈수, '폭발하는 열매에서 씨앗을 시속 260km로 쏘아내는 모래상자나무 등 수많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나무들 앞에서 독자는 숙연해진다.
우리가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왔듯이 나무들도 우리에게 원한다. 나무들은 지하에서 서로 뿌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환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이다. 서로 의존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이다.
인간은 숲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받지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명리학에서 木은 仁을 뜻하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뜻하며 해가 뜨는 동쪽을 의미한다. 인간을 너그럽고 어질게 품어주는 동쪽의 순수함과 생명을 뜻하는 이런 나무를 인간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파괴하고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물질'을 다 없애버리려고 한다. 기다리지 못하는 인간, 당장의 눈 앞의 이익에만 연연하는 인간이 너무나 추하게 느껴졌고 인간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기다리고 더 멀리 보지 못하는지 답답함을 느꼈다.
패트리샤는 생각한다 나무가 사라지듯이 '우리들 역시 사라져야만 할 것이다'(p.595)라고...
결국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다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까...슬프다...
패트리샤는 묻는다.
"내일의 세계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장 훌륭한 일이 무엇일까요?"(p.641)
숲은 향기로 말한다.
"너희 종은 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해. 절반이나 그 이상을 놓치지. 언제나 땅 위만큼 땅 밑에도 많은 것들이 있어. 네 마음이 조금만 더 푸르렀어도 우리가 너를 의미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 텐데."(p.14)
마지막 장 '종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지구의 현재까지의 역사를 단 하루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동물과 식물이 나누어지는 것은 오후 4시쯤이며, 저녁 9시에 해파리와 벌레들이 나타난다. 식물들은 밤 10시가 되기 직전 육지로 올라오고, 바로 곤충들이 나타나 공중을 차지한다. 밤 11시경 공룡들이 나타났다가 '포유류와 조류에게 한 시간 동안 통제권'을 넘긴다. 그리고 인간은 자정이 되기 4초 전에 나타난다! 최초의 동굴 벽화가 3초후에 생기고, 자정이 되기 '천 분의 1초 전에 생명이 DNA의 미스터리를 풀고 스스로 생명의 나무 지도를 만들기 시작', '자정에 지구의 대부분이 지역의 한 생물종을 보살피고 먹이기 위한 줄뿌림 작물 천지'로 변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생명의 나무가 다시 다른 것으로 변'하기 시작, 거대한 나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고...
자정 4초전에 나타난 인간들이 지구를 이렇게 거대 작물지로 만들고, 인간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살아온 나무를 변화시킨다...
사실 나는 이 책을 힘들게 읽었다. 작가가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매우 은유적이라 이해하기 위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가독성이 많이 떨어졌다. 거기다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상황이라 700페이지가 넘는 이 무거운 책을 좋지 않은 컨디션에서 누워서 읽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중간에 역자가 누군가 찾아봤더니 5년 전 꾸역꾸역 겨우 읽은 2013년 맨부커 수상작 <루미너리스>를 번역한 사람이 아닌가...'아직도 400페이지 넘게 남았는데...' 순간 살짝 겁이 났다.
나무에 대한 거대 서사이다 보니 중간중간 지루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몸 상태가 불편하니 몇 번의 포기 유혹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끝까지 읽어냈다. (나 자신에게 박수!!!)
책이 어려운 건지, 번역이 나랑 안 맞는건지, 아니면 내 이해력이 문제인지 고민하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뉴욕타임즈 한 줄 평대로 이 책은 '어느 작가도 시도하기 어려운 것을 성취'한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무의 나이테를 상상했고 나무가 뿜어내는 향을 맡았으며 나무가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밖에 나가 걸으면서 바라보는 나무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고 나에게 향기로 말을 거는 듯이 보였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나무는 인간이 쓰고 버리는 작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며 미래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은 시대에 나무를 보게 해준 이 책은 고마운 책이며 맨부커 심사위원 말대로 '최고의 환경 서사시'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의 핵심은 다음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p.597)
자정 4초전에 나타난 인간들이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생명은 이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음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