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의 대다수의 마니아님들은 동감하시겠지만, 책을 살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사놓고 바로 읽지도 않으면서 매달 알라딘에서 주는 적립금과 이벤트 당첨금 등 몇 천원을 쓰기 위해 주섬주섬 담다보면 한 달에 꼭 4~5권은 사게 된다. 물론 고수님들은 이 정도 갖고 뭘 그러느냐 하겠지만 이젠 더 이상 책을 꽂을 데가 없는 상황이라 멈춰야 하는데, 오늘도 9월 적립금을 사용하기 위해 중고책 몇 권을 샀다. 

8월의 마지막 날, 8월에 산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새 책



유일한 새 책이다. 글항아리 논픽션 시리즈 중 하나로 부제는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이다. 국제 분쟁 전문 기자 스콧 앤더슨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 땅에 영국 정보원으로 파견된 토마스 E.로렌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중동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펼쳐낸다.' 이 책은 현대 중동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토마스 E. 로렌스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 책으로 중동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 큰 맘 먹고 구입했다. 880쪽의 무겁고 두꺼운 책으로 벌써부터 부담이 간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볼 수 있는데 러닝 타임이 장장 3시간 47분이라 못 보고 있다. 


중고책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를 다룬 논픽션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매우 인상 깊게 읽고 바로 구입한 책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인생과 음악, 당시 레닌그라드 전투 실상을 어느 정도 알았으니 <시대의 소음>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특히 스탈린 체제에서 한 예술가가 감당해야 했던 내적 갈등을 줄리언 반스가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이상하게도 나와는 안 맞는 책이란 생각에 반납하고 다른 콜럼비아 작가인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로 갈아탔다. 창비에서 나온 <폐허의 형상>도 찜해 뒀는데, 일단 대표작인 이 책을 먼저 읽어 보려고 한다. 향기로운 커피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나라인 콜롬비아가 이젠 마약과 폭력을 빼면 이야기할 것이 없는 나라가 되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 책도 바로 마약과 폭력, 광기로 점철된 콜럼비아의 현대사를 다뤘는데, 이런 비극의 역사 속에서 또 어떤 개인의 삶이 추락할지 각오하고 읽어야 할 듯 싶다. 




올가 토카르추크, 선뜻 손이 안 가는 작가이다. 그러나 하기 싫은 부위의 운동도 해야 몸이 균형있게 발달하듯이 읽기 싫은 책도 읽어야 독서 근육이 생기겠지...라는 마음에 억지로 샀다. 사야 읽으니까...




필립 로스의 열혈 팬이신 새파랑님에게 자극을 받아 산 책이다. 미국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나머지 두 권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와 <휴먼 스테인>은 있는데, 순서대로 읽고 싶어서 구입했다. 중고인데 거의 새 책 수준이라 기분이 좋다.




예전에 골드문트님의 리뷰를 읽고 찜해둔 책인데 이번에 중고로 나왔길래 구입했다. 사막 소녀 랄라의 삶을 통해 사막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들의 역사를 그려낸 소설로 1980년에 출간되어 아카데미 프랑세즈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황금 물고기>도 갖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어 봐야겠다.




예전에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읽었으나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나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배수아 작가 번역의 예쁜 책이 눈에 띄어 구입했다. 



오늘 산 책



내가 읽은 현대문학 단편집 중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다시 읽고 싶어서 구입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경험으로는 미국 남부 출신 여성 작가들은 뭐랄까...적당히 봐주는 것이 없는 좀 무자비한 데가 있는 듯 하다. 그 중 플래너리 오코너가 최고인 듯 싶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대, 한 고아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라 안 읽어도 괜찮을 책 중 하나였는데, 완역본에다 한 권이라 맘에 들어서 구입했다. 표지 그림은 오거스터스 에드윈 멀레디(Augustus Edwin Mulready)의 '런던 브리지에서의 휴식'인데 소설과 매우 잘 어울린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돌의 연대기>도 주문했는데, 품절이라고 연락이 왔다. 이 책 사려고 금액 맞춰 산건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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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2-08-31 21:09   좋아요 3 | URL
아! 역시 스콧님은 읽으셨군요! 최애 논픽션이라니 더더욱 잘 샀다 싶습니다.

시대의 소음은 저도 별로라는 생각에 안 읽으려고 했는데 죽은자들...읽고 마음을 바꿨답니다.

폐허의 형상은 스콧님 리뷰 읽고 찜한것이죠. 😉
저는 늘 좇아가기 바쁘지만 좋은 책들 먼저 읽고 소개해주셔서 늘 감사하답니다.

바람돌이 2022-08-31 2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플래너리 오코너 언제부터 읽자고 생각만 하고 있는 책.
쿨캣님 읽으시고 리뷰 올라오면 바로 달릴 준비할게요. ^^

coolcat329 2022-09-01 07:14   좋아요 1 | URL
제가 100자평은 썼는데 리뷰를 못썼네요.😅
처음에 좀 읽기 힘들었는데 참고 읽다 보면 정말 오코너만의 세계가 열립니다.

페넬로페 2022-08-31 2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편소설에 주는 플래너리 오코너상까지 있더라고요.
이 책 집에 있는데 아직이예요.
저는 집에 있는 책부터 읽기로 해 당분간 ‘책 사지 않을 결심‘을 했어요**

coolcat329 2022-09-01 07:16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그 상을 받은걸로 알고 있어요.
9월엔 저도 책 사지 않을 결심!해볼까봐요~😆

레삭매냐 2022-09-01 0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 책쟁이들은 일단 삽니다 -
그런 다음에 나중에 읽으면 됩니다.

저도 어제 그제 잇달아 책들을
샀네요. 뭐 읽으면 되죠 ㅋㅋㅋ

아주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coolcat329 2022-09-01 18:03   좋아요 2 | URL
오늘도 9월 감사적립금 천 원을 또 주네요. 😓

새파랑 2022-09-02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언급되어서 영광입니다~!! 저 필립 로스 읽은지도 오래된거 같아요. 전작하고 싶은데 유명한 책들은 다 읽어서 이제 손이 잘 안간다는 😅 열권이나 사셨군요~! 전 저중에 딱 세권읽었네요. 죄책감은 한순간일 뿐입니다 ^^

coolcat329 2022-09-02 19:03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요즘 바쁘신 거 같아요. 필립 로스 많이 읽으신 거 같은데 읽을 책이 또 있군요. 😯
죄책감은 한순간! 정말 맞아요.ㅠ
사실 저기서 한 권 더 추가해야해요. 몰랐는데 한 권 더 샀더라구요.
여유있는 주말 되시길요~

mini74 2022-09-02 15: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적립금이 덫 같습니다. 책쟁이들의 덫....ㅎㅎㅎ 적립금 천원을 놓칠 수 없어, 하면서 덥석 미끼를 물지요 ㅠㅠ

coolcat329 2022-09-02 19:05   좋아요 1 | URL
아휴 적립금 천 원이 왜 그리도 커보이는지요. 🥺 그거 안 쓰면 계속 생각나고 찜찜하고 ㅋㅋ
미니님 좋은 주말 되세요!

scott 2022-09-04 00:18   좋아요 1 | URL
짠돌이 알라딘
적립금 던져 주는 시간을 알려 줬으면 좋겠어요
앱 터치 안하게 ㅎㅎㅎ

얄라알라 2022-09-03 0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을 읽었을 땐, 죄책감...말씀하셔서 8월 한달 이렇게 많은 책을 사셨을지 몰랐어요.

마침 저도 어제 올리버 트위스트 주문했는데, ^^ 반갑네요 쿨캣님 서재에서 보니까

coolcat329 2022-09-03 08:10   좋아요 1 | URL
9월엔 ‘사기‘보다는 ‘읽기‘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 사셨다니 저도 반갑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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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만의 시적인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어디선가 살해되고 박해당할지라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 잔혹한 괴물과 맞서 싸우고 싶었다."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영화 일 포스티노」로 유명한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armeta 1940~)가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오마주이자 칠레의 민주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네루다와 가상의 인물인 우편 배달부 마리오 사이의 우정을 담은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는 작가가 베를린 망명지에서 쓴 작품으로 1985년에 발표되었다.

시와 거리가 먼 한 젊은이가 칠레의 위대한 시인 네루다를 만나면서 시를 알게 되고 사랑에 눈 뜨면서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따뜻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특히 스카르메타의 유머와 해학이 번뜩이는 대사는 이 소설의 최고 재미인데, 다음은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인 로사 부인이 딸에게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이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p.67)]


'발톱의 때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우체부 마리오가 화려한 메타포로 딸인 베아트리스를 유혹하자 딸을 마리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로사 부인이 쏟아내는 말인데, 나는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네루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사 부인의 특기는 '속담 포병대를 이끌고 메타포 전쟁에 임하'(p.94)는 것으로 그녀의 걸쭉한 말솜씨는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재미를 선사한다.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검은 섬)를 배경으로 소설은 시인 네루다와 우편 배달부 마리오의 우정, 마리오와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의 사랑과 결혼, 칠레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소박한 민중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낯 뜨거운 성애 묘사마저도 순수함이 느껴지는 정겨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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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8-30 10: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웨이브에서 볼 수 있겠네요.^^* 어머! 로사 부인의 저 대사 굉장한데요? ‘속담 포병대를 이끌고 메타포 전쟁에 임‘한다는 네루다의 표현도 재밌습니다.ㅎㅎㅎ

coolcat329 2022-08-30 19:17   좋아요 2 | URL
저는 이 책이 코믹소설인가? 했답니다. ㅋ 로사부인을 비롯 모두가 정겹고 재밌습니다.😁

새파랑 2022-08-30 1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애 묘사가 왠지 웃기더라구요 ㅋ 이 책 읽으면 아 이래서 사람들이 명작이라 하는구나 하는 아우라가 느껴지더라구요 ^^ 쿨캣님과 저랑 책 읽는 분야가 많이 비슷한거 같습니다~!@

coolcat329 2022-08-30 19:20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도 웃으셨군요. 저는 이 소설이 코미디인줄 몰랐습니다.ㅋ 작가 스카르메타의 그 완벽한 대머리도 익살스럽게 보이고 이 소설 참 정겹더라구요.
제가 새파랑님 독서를 좇아가느라 마음이 바쁘답니다.😊

mini74 2022-08-30 12: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리오와 마리오의 그 투박한 저돌적 ? 사랑이 넘 재미있었어요 ~ 쿨캣님 인용문이며 리뷰 보니 즐겁습니디 ㅎㅎ

coolcat329 2022-08-30 19:22   좋아요 2 | URL
이 소설 참 웃음과 감동을 주죠~? 로사 부인도 웃기지만 밝히는! 마리오 때문에도 웃었네요.

페넬로페 2022-08-30 13: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첫 문장 넘 좋아요.
시적이면서도 유머코드가 있는 이 책도 읽어야하는데 ㅎㅎ
영화도 보고 싶어요^^

coolcat329 2022-08-30 19:23   좋아요 3 | URL
스카르메타의 저 말 참 따뜻하고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이 책 얇습니다. 반나절이면 읽으실 거에요. 페넬로페님도 좋아하실거라 믿습니다~^^

페크pek0501 2022-09-02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작품 좋더라고요. 은유를 배울 수 있었죠.^^

coolcat329 2022-09-02 18:57   좋아요 0 | URL
이 소설도 모두가 좋아하네요~^^
페크님~즐거운 주말 되세요.😊
 
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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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1919~2013)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1925년 가족이 남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하면서 어린 시절을 남아프리카의 고립된 농장에서 성장한다. 불행한 유년을 보낸 레싱은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타이피스트, 전화 교환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레싱은 한 편의 소설을 들고 1949년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데, 그 소설이 바로 <풀잎은 노래한다>이다. 그녀 나이 서른 살이었다.


제목 <풀잎은 노래한다>는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예배당 주변의 나자빠진 무덤들 위에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가져왔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풀잎보다는 제목에 생략된 '무덤'이 더욱 연상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식민지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메리라는 한 여인의 몰락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농장주 리처드 터너의 아내 메리가 원주민 흑인 하인에게 살해되었다는 기사로 시작한다. 

남아프리카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 태어난 메리는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도시로 나와 타이피스트로 일하며 자립에 성공하여 남아프리카 백인 여성으로서 나름 자유롭고 안락한 삶을 산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을 안한 그녀를 두고 친구들이 '나사가 하나 빠졌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p.66)하다며, 험담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 메리는 큰 충격을 받는다. 평소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남 얘기 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그녀가 결혼을 해야만 된다고 말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p.73) 남편감을 찾게 되고, 너무나 마음이 급했던 그녀는 리처드라는 남자를 만나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된다. 


리처드는 시골의 농장주로서 성실하지만 자본 없이 시작한 농사였기에 은행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하는 일마다 실패해 메리는 생활난에 쪼들리고 고립된 농장 생활로 심한 권태와 외로움을 느낀다. 시작부터 불행이 예상되었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점점 악화되고, 이런 상황에서 집안일을 해주는 하인이 새로 들어오면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풀잎은 노래한다>는 도리스 레싱의 자전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는 작품으로 백인이 지배하는 남아프리카 식민지 사회의 병폐를 사실적으로 고발하는 작품이다.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인종주의와 계급주의, 백인 사회의 존속을 위한 집단적 배타주의와 폭력, 남성과 여성의 갈등과 정체성 등을 다루며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여 이룬 백인 문명을 비판하고 그 미래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사악한 그 무엇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녀를 따라다녔기에 그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악한 그 무엇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도대체 뭘 하며 지내 왔기에 윤곽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없다. 그녀가 사악한 그 무엇에 대해 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끌려 다니기만 했을 뿐, 자발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p.333)]


메리는 왜, 무엇 때문에 죽었을까? 메리는 자신의 죽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을까?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p.44), 그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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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8-27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섯째 아이 읽고 레싱에 정 떨어졨다가 이 책으로 다시 붙였답니다. ^^

coolcat329 2022-08-27 09:16   좋아요 4 | URL
네~ 골드문트님 <다섯째 아이> 안 좋아하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ㅎㅎ

이 책 무엇보다 잘 읽히고 재밌었습니다. 근데 독자에게 안겨주는 메세지는 묵직하네요.

바람돌이 2022-08-27 17:03   좋아요 3 | URL
어 저는 다섯째 아이 때문에 도리스 레싱 좋아하는데..... ㅎㅎ

coolcat329 2022-08-27 18:58   좋아요 2 | URL
저도 좋아하는데, 임산부나 임신 계획있으신 분들은 읽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Falstaff 2022-08-27 20:23   좋아요 2 | URL
<다섯째 아이>를 읽을 때만큼 ˝제발 해피엔드로 끝나라, 해피엔드로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기원해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섬찟하던지요. 영문학자인 동무님이 픽, 웃으며 하는 말이, 도리스 레싱한테 해피엔드를 바란다고? 바랄 걸 바라라.
저는 이 책 <풀잎은 노래한다>하고 <황금 노트북>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기 작품과 이후의 것들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 맞죠? ㅋㅋㅋㅋ

새파랑 2022-08-27 1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캣님이 이렇게 초반부 내용 위주로만 리뷰를 남기시니 궁금 하군요 왜 죽었을까요?🤔

coolcat329 2022-08-27 18:55   좋아요 2 | URL
메리 죽음은...그게 참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네요. ㅎㅎ

mini74 2022-08-27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싱 좋아합니다. 이 책도 런던스케치도 마사 퀘스트도 좋았어요. 다섯째 아이는 전 너무 충격적이고 우울했어요. ㅠㅠ

coolcat329 2022-08-27 18:56   좋아요 1 | URL
미니님 레싱 작품 많이 보셨네요. 다 좋으셨다니 저도 나중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08-28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리스 레싱 작가에게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작가에게 소재가 많을 듯 하네요.
이 책도 읽고 싶고 정떨어지고 정붙는 다섯째아이도 읽고 싶네요.
책장에 살포시 놓여있는 ‘19호실로 가다‘도 읽어야하는데~~언젠가는 읽게 되겠죠^^

coolcat329 2022-08-29 15:20   좋아요 1 | URL
첫 작품인데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
 
죽은 군대의 장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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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산 책이다. 십 년 전 이 책을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당시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작가를 내가 알았다는 것도 신기하다.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1936~ )와의 첫 만남은 세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광기의 풍토>를 통해서 였다. 2019년에 쓴 독후감을 찾아 보니 낯선 나라의 이야기라 이해가 안가서 두 번 읽었다고 하면서 조만간 <죽은 군대의 장군>을 읽어봐야 겠다고 글을 남겼는데, 이제야 읽은 것이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 반도는 고대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특히 알바니아는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역사 내내 받았는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의 점령 하에 있었기에 국민의 67%가 이슬람교 신자로 주변 국가들과 문화적으로 색다른 차이를 보인다. 

1912년 터키로부터 독립하고 1928년 왕정이 선포되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대의 침공으로 알바니아는 다시 전쟁에 휩싸인다. 전후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고 독재자 엔베르 호자(1908~1985)의 통치를 받는데, 이 시기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의 길을 가게 된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이런 알바니아의 굴곡진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씀으로써 알바니아라는 나라의 비극적인 역사와 민족의 정서를 세계에 알린 작가이다. 

작가가 1963년에 발표한 <죽은 군대의 장군>은 바로 그 출발을 알린 첫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바니아에서 전사한 자국의 병사들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나라(소설 속에서 국명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역사를 통해 이탈리아 군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의 장군이 군종신부와 함께 종전(終戰) 20년 후 알바니아로 가 그곳에서 죽은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국의 땅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위협적인 산들을 보며 장군은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만, 한 문명국의 대표로 적지에 묻혀 있는 병사들을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고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한다. 장군은 신부와 함께 지도와 병사들의 명단을 바탕으로 알바니아 인부들을 고용하여 발굴 작업을 진행한다. 

비와 추위를 견뎌가며 알바니아의 거친 산악지대와 황량한 땅을 파헤치는 임무는 장군에게 전장에서 죽은 군인들을 '망각과 죽음으로부터 구'(p.17)한다는 비장한 뜻을 담고 있지만, 땅이 파헤쳐질수록 장군이 마주하게 되는 건 전쟁의 추악한 실체이다. 


어느 날 장군은 자국 병사들이 묻힌 묘지 담벼락에 쓰인 '이것이 우리 적들이 맞은 운명이다!'(p.64)라는 글을 발견한다. 장군은 알바니아인 기사에게 알바니아 인들의 이런 행위는 추악한 도발 행위라며 따지지만 기사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20년 전 당신들이 한 짓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동지들의 가슴에 파시스트 슬로건을 걸어놓은 채 그들을 목매달지 않았습니까. 그래놓고 어린 아이의 낙서가 분명한 이런 문구 하나로 발끈하는 겁니까!"(p.64)]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병사들의 시신들만이 아니다. 도시 외곽의 군 묘지에서 발견한 한 여자의 유해는 당시 자국의 군대가 매춘부들을 데려와 이 유서깊은 도시에 갈봇집을 만들었고 죽은 여자는 당시 전쟁에 동원된 매춘부들 중 한 명임을 알게 된다. 매춘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카페 주인은 '전선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빗물이나 진흙, 소실된 참호 따위의 괴로운 짐을 이 불쌍한 여자들에게 모두 쏟아놓은 것 같았'(p.90)다고 말한다. 


또한 한 알바니아 농부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다 청색대대에 의해 살해된 탈영병의 시신과 그 탈영병이 쓴 일기장을 장군에게 가져다 준다. 일기장에는 무뚝뚝하지만 자신에게 친절한 알바니아 농부들, 주인집 딸을 향한 묘한 감정, 자신처럼 탈영하여 알바니아 농장에서 일하는 자국 군인이 많다는 사실과 보복부대인 청색대대가 벌이고 다니는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소설에서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청색대대 소속의 'Z대령'이라는 인물이다. 장군과 신부는 유해 발굴을 시작하면서 '대령과 관련된 사항'(p.59)을 알아내야 한다며 대령의 시신을 찾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쓴다. 이 미스터리한 Z대령의 행적을 쫓아가는 과정과 그와 더불어 하나둘씩 밝혀지는 비밀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앞서 알바니아로 떠나기 전 장군은 Z대령의 어머니와 아내를 만나는데, 당시 노부인은 아들이 '군인의 자질을 타고'났으며, '젊고 미덕을 골고루 갖춘 아들'이었다고 회상한다. 대령의 어머니는 줄곧 아들의 이야기만을 하며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였다고요!"(p.104)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드러나는 청색대대의 만행과 알바니아를 떠나기 전 우연히 참석한 결혼식에서 극적으로 알게 된 대령의 이야기는 장군을 큰 충격에 빠지게 한다. 


전쟁의 실체를 마주한 장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을 갖는다.


["그래도 제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 군인들의 관이 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 우리의 죽음이 그들의 삶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줄 작정이었죠.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고 나니 상황은 딴 판이었습니다. (...) 맨 먼저 자부심이 사라졌고, 곧이어 그 어디에서도 엄숙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환상들이 깨졌죠. 이제 우린 전쟁이 낳은 불쌍한 어릿광대가 되어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서 수수께끼 같은 야유의 시선을 받으며 떠돌고 있어요. 이 나라에서 싸우다 쓰러진 사람들보다 더 가련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p.170)]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바니아의 적국이었던 나라의 장군과 신부의 눈을 통해 바라 본 1960년대 초 알바니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 풍경에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베어 있다. 험한 산악지대와 계속되는 악천후 속에서 알바니아인들의 눈에는 원한이 서려 있고, 설상가상으로 유해 발굴 도중 인부 한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 사고가 나자 장군을 향한 알바니아인들의 분노는 더욱 깊어진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전쟁의 실체에 장군의 불안은 점점 더 깊어지고 결국엔 자신이 맡은 이 임무가 얼마나 가식적이고 헛된 일이었는지 깨닫는다. 

알바니아인의 입장이 아닌 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 본 알바니아의 모습이기에 그 공허함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장군이 가지고 돌아간 것은 무엇일까? 

떠나는 날 장군은 비바람이 부는 비행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날씨가 춥다는 말 외에는. 

'사방이 비와 죽음이다. 그러니 다른 걸 찾게나.....'(p.302)

알바니아 노인의 이 의미심장한 말은 그에게 전쟁이 야기한 파괴와 슬픔을 상기시키지 않았을까?

추악한 전쟁의 본얼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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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19 17: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건 순전히 제 자랑질인데...

책의 맨 뒤에 보면 독자모니터
로 제 이름이 꽝!하고 박혀 있
답니다 :>

진짜 오래 전이네요.

coolcat329 2022-08-19 17:09   좋아요 6 | URL
오! 혹시 김형* 맞나요?
우와 우와 정말 멋지셔요!👍
성함에 줄 쳐놨습니다!

레삭매냐 2022-08-19 17:11   좋아요 4 | URL
네, 맞삽니다.

Falstaff 2022-08-19 19: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읽으셨네요.
이젠 카다레의 다른 책들을, 마치 순례자처럼 찾아다니시겠군요. ㅋㅋㅋㅋ
제 경우로만 말씀드립자면, 대박은 아닐지언정 스쳐 지나지 못할 작가입니다.

coolcat329 2022-08-19 20:21   좋아요 4 | URL
제가 찾아보니 카다레의 책을 여섯 권이나 갖고 있더라구요. 알바니아라는 나라와 자국의 문학을 세계에 알린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국의 장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국의 음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도 좋았고 무엇보다 소설에 유머가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Falstaff 2022-08-19 20:27   좋아요 3 | URL
헥! 여섯 권이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멍게 앞에서 여드름 짰습니다. ㅜㅜ

coolcat329 2022-08-19 20:32   좋아요 3 | URL
아 근데 이 중에 두 권만 읽었습니다. ㅋㅋ 왜 이렇게 모았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요.😅

새파랑 2022-08-19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네요 ㅋ 게다가 레삭매냐님의 독자모니터(?) 라니~!!

알바니아는 정말 낯선 나라인데 궁금합니다 ㅋ

coolcat329 2022-08-20 07:46   좋아요 3 | URL
저도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이스마일 카다레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발칸반도 여러 나라 중에서도 존재감이 좀 약한 나라였는데 문학을 통해 상위권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래서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mini74 2022-08-20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년 전 책을 발견하고 이렇게 또 멋지게 리뷰 쓰시고, 뭔가 10년전 적금 찾은 기분이시겠어요. 알바니아란 나라 이름만 들어봤는데 궁금해지네요. 매냐님 독자모니터에 쿨켓님 별 다섯개라니 ㅎㅎ

coolcat329 2022-08-21 07:18   좋아요 2 | URL
10년 전 적금 찾은 기분! 😆 어쩜! 제 마음을 딱 표현하셨어요~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2-08-20 14: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세계사시간에 배운 문장이 생각납니다.
유럽의 화약고ㅡ발칸반도~~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 처음 알게 되었어요.
알바니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문학을 통해 역사를 알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넘 좋아요^^

coolcat329 2022-08-21 07:21   좋아요 3 | URL
자연이 참 아름다운 곳인데 화약고라는 별명이 붙었으니 안타깝습니다. 여행 못가도 책으로 이렇게 배우고 여행갈 수 있으니 즐겁지요~😚

바람돌이 2022-08-20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이 작가님 책 피라미드가 나와서 찜해놓기만 했네요.
쿨캣님 덕분에 어떤 작가인지 알게되었어요.
알바니아는 저는 장미오일 유명하다는것만 알아요. ㅠ.ㅠ

coolcat329 2022-08-21 07:25   좋아요 2 | URL
아! 피라미드도 있죠. 구해야 겠습니다~^^
알바니아가 또 유명한 게 벙커더라구요. 호자가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전국을 요새화한다고 수십만 개의 벙커를 지어놨는데 큰 돈 들여 지은 벙커가 무용지물이라고 합니다. ㅠ

scott 2022-08-24 2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서 엄청 유명(20세기 명작으로 평가) 한데 이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사람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알바니아 출신으로 어렸을때 가족이랑 프랑스에 난민 신청한 )여서 널리 알려 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알바니아
사악한 푸틴이 노리고 있음

coolcat329 2022-08-25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수프 브리오니가 바이올리니스트였군요. 1945년 잿더미가 된 알바니아 돕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가 ‘잘못된 계급‘ 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는데, 그 때 이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고 하네요. 푸틴이 노리고 있다니 제발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ㅠ
 
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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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는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 1951~)가 2013년 발표한 작품으로 같은 해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르메트르는 추리 소설 작가로 이미 많은 상을 받았지만,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공쿠르 상이 장르 문학 작가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당시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던 듯 하다. 번역을 한 임호경씨도 이분이 뜰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크게 뜨게 될 줄'은 몰랐다며, 마침내 번역 의뢰가 들어왔고 '첫 페이지부터 독자의 멱살을 붙잡'는 이야기를 '폭풍흡입'하듯이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번역은 그리 만만찮았다고 하는데, 이야기는 워낙 재미가 있어 술술 읽히지만 문학적인 뉘앙스와 테스트 속 상징과 은유, 작가의 유머와 아이러니를 한국어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았다고 역자 후기에서 밝힌다. 그것은 이 소설이 대중성은 물론 문학성까지 겸비했다는 뜻이겠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시기인 1918년 11월, 휴전 협정 체결 이야기가 나오면서 병사들의 마음 속에는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싸우고자 하는 의지는 약해진다. 그러나 모두가 다 전쟁이 끝남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다. 몰락한 시골 귀족 출신인 도네프라델 중위는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워 '세상에서 다시 한자리 차지해야 한다는 광기에 가까운 욕구'(p.41)를 지닌 인물로 113고지를 바로 눈 앞에 두고 전쟁이 끝나려 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던 차에 종전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독일군의 동태를 살피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내려지고, 제일 나이많은 병사와 가장 어린 병사 둘이 정찰병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세 발의 총성과 함께 프랑스 병사들 사이에서는 독일군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자는 분노에 찬 소리가 터져 나온다. 

결국 1918년 11월 2일, 전쟁이 끝나기까지 채 열흘도 안 남은 시점에서 프랑스 병사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과 탄환을 뚫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고 그 와중에 프랑스 병사 알베르는 정찰병의 죽음이 독일군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이를 본 프라델 중위에 의해 포탄 구덩이에 매몰된다. 이런 알베르를 동료 병사 에두아르가 구하게 되는데 에두아르는 그 과정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얼굴 반쪽을 잃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약 10분의 1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전쟁의 상처만을 안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두 사람, 그러나 세상은 이런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전쟁 전 은행 출납원이었던 알베르는 에두아르를 돌보며 샌드위치 광고맨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신분을 바꿔치기해 외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에두아르는 모르핀에 의지해 그야말로 절망적인 나날을 이어간다. 

국가는 전사자들을 영웅시하며 추모 기념비를 세운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상이군인들은 외면한다. 전쟁마저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비열한 사회에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은 병사들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에두아르는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신문을 통해 보다가 어느 날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돌아오고 있'음을 느끼며 부조리한 세상을 상대로 황당한 사기극을 계획하는데, 그것은 바로 전사자 추모 기념비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버는 것! 처음에는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계획을 거부했던 알베르도 삶에서 그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자 사기극에 찬성하는데 재미있는 건 이 사기극을 나도 응원하고 즐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Au Revoir Là-haut'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뜻이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의 명령에 불복종거나 반란을 일으킨 병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는데, 이 책의 제목은 1914년 12월 4일 국가 반역죄로 총살형을 받은 병사, 장 블랑샤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남긴 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의 말은 이 책의 제사로도 인용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신께서 우릴 다시 만나게 해주시길 바라는 하늘에서 만나요.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천국에서 다시 봐요……


작가는 '감사의 말'에서 장 블랑샤르를 비롯해 모든 1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고백한다. 

국가에 의해서 영문도 모른채 전쟁터로 끌려가 사라져 간 젊은이들과 전쟁에서 운좋게 살아 돌아왔어도 다시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던 수많은 상이군인을 생각하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3년 전 이 책의 후속작인 <화재의 색>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뻔한 전개에 조금 실망했는데, 이번에 읽은 <오르부아르>는 1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배경으로 처음부터 강렬하게 시작해 도네프라델이 벌이는 공동 묘지 사업 비리, 알베르와 에두아르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사기 계획, 에두아르 아버지인 페리쿠르 씨가 추모 기념비 사업에 엮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이 시종일관 긴박하게 전개, 독자는 중간에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웃기지만 슬프고, 너무 재미있지만 깊이가 있으며, 해피엔드이면서 비극이기도 한 소설 <오르부아르> 이 여름이 가기 전에 강력히 추천한다. 

지구는 늘 대재앙이나 역병으로 황폐화되기 일쑤고, 전쟁은 이 둘의 조합에 불과하다. 그를 탄환처럼 꿰뚫은 것은 죽은 이들의 나이였다. 대재앙은 만인을 죽이고, 역병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죽이지만, 젊은이들을 그렇게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은 오직 전쟁뿐인 것이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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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3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우 쿨캣님의 강력추천이라니.
냉큼 담아갑니다. 쓰신 글을 봐도 재밌을듯요. ^^

coolcat329 2022-08-14 10:05   좋아요 1 | URL
네 이 책 재미하나는 정말 보장합니다~~^^

레삭매냐 2022-08-13 2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 짤과 그래픽 노블로 만났는데
정작 책은 사두기만 안 읽고 있네요.
그것 참.

coolcat329 2022-08-14 10:07   좋아요 2 | URL
아 그래픽노블 매니아답게 보셨군요. 저는 그래픽노블 도서관에 신청했답니다. 가면 그림이 궁금해서요~^^
책 정말 재밌습니다. 사두신 책이니 언젠간 읽으시겠지요?😊

새파랑 2022-08-14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추 작품이군요. 쿨캣님 강추는 흔하지 않은데..게다가 1차세계대전 배경이라니 더 관심이 가네요~!!

coolcat329 2022-08-14 12:56   좋아요 2 | URL
앗 그런가요? 😆
이 책 두꺼운데 책장이 훌훌 넘어갑니다.
1차 세계대전 후 전사자 기념비를 둘러싸고 파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페넬로페 2022-08-14 1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요즘 계속 이 시대의 스토리를 읽으시네요.
전쟁 후의 웃픈 얘기, 관심 백 입니다~~

coolcat329 2022-08-16 10:13   좋아요 1 | URL
<피에 젖은 땅> <봄의 제전> 이후로 전쟁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책 666페이지인데요 정말 잘 읽힙니다.

mini74 2022-08-15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문이 확 와닿네요. 젊은이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전쟁 ㅠㅠ

coolcat329 2022-08-16 10:13   좋아요 1 | URL
그쵸? 저 문장이 잊히질 않아서 써봤습니다.

scott 2022-08-15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작가 애정 하는 작가 입니다 ㅎㅎ
<오르부아르> 명작 중 명작!

늦깍이 작가지만 오래도록 작품 활동 해줬으면 하는 작가입니다 ^^

coolcat329 2022-08-16 10:15   좋아요 2 | URL
스콧님이 좋아하는 작가로군요! 이 분 지금 루이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시리즈의 3 권 쓰고 계시겠죠? 그건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일 듯 싶은데요, 기대됩니다~

mini74 2022-09-0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축하드려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오 *^^*

coolcat329 2022-09-08 18:34   좋아요 1 | URL
아~감사합니다.미니님도 즐거운 명절되세요😘

새파랑 2022-09-08 16: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당선 축하합니다~!! 역시 전쟁소설의 장인 쿨캣님 ^^

coolcat329 2022-09-08 18:35   좋아요 2 | URL
아 ㅋㅋ 감사합니다. 부끄럽고 많이 부족하지만 전쟁소설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